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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면적 | ‘서울 면적 4분의 1’ 불타‥특별재난지역 선포 (2022.03.06/뉴스데스크/Mbc) 298 개의 가장 정확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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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과 강원도 삼척, 동해, 강릉의 산불이 사흘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피해 면적은 1만 5천 헥타르로, 서울시 면적의 약 1/4에 달합니다. 오늘도 동원 가능한 모든 헬기가 투입됐지만 주불을 잡지는 못했습니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22/nwdesk/article/6347625_35744.html
#산불, #특별재난지역, #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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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서울의 면적은 605.23 km2로 대한민국 면적의 0.6%이고, 인구는 약 950만 명으로 대한민국 인구의 17%를 차지한다. 시청 소재지는 중구이며, 25개의 자치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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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10/2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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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 나무위키:대문

다른 뜻에 대한 내용은 서울(동음이의어) 문서 … 서울특별시 휘장 … 면적. 605.2㎢[2]. 인구. 9,494,807명[3]. 인구 밀도. 15,688.7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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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4/8/2021

View: 6298

서울 |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 서울연구원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이다. 서울의 면적은 605㎢로서 도쿄의 23개 특별구와 비슷하며, 싱가포르와 뉴욕시보다 다소 작은 크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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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data.si.re.kr

Date Published: 8/6/2021

View: 2684

비교대상도시 소개 | 서울정책아카이브 Seoul Solution

도시별 주요현황 서울 도쿄 베이징 싱가포르 뉴욕 런던 파리 도시별 주요현황 Main Characteristics of 7 Cities 자료다운로드 | 엑셀 주 도시별 면적(행정구역)은 …

+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Source: seoulsolution.kr

Date Published: 7/26/2022

View: 3016

서울특별시_1인당 거주면적 통계_20071231 | 공공데이터포털

2007년 생산종료. 서울시 인구 1인당 거주면적을 제공하는 일반ㆍ가공통계입니다. 서울시 자치구별 주택평균 면적과 평균 가구원수 산출을 통해 1인당 거주 면적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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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ata.go.kr

Date Published: 2/14/2021

View: 6839

1만 4천 ha 불타‥서울 면적 1/4 육박

경북 울진과 강원도 일대 대규모 산불이 사흘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산림당국은 진화헬기를 투입해 큰불을 잡는데 주력하고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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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imnews.imbc.com

Date Published: 10/27/2021

View: 6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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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면적 4분의 1' 불타‥특별재난지역 선포 (2022.03.06/뉴스데스크/MBC)
‘서울 면적 4분의 1’ 불타‥특별재난지역 선포 (2022.03.06/뉴스데스크/MBC)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서울 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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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서울은 여기로 연결됩니다. 다른 뜻에 대해서는 은 여기로 연결됩니다. 다른 뜻에 대해서는 서울 (동음이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서울특별시는 대한민국의 수도이다. 삼국시대 백제의 첫 수도인 위례성이었고, 고려의 남경이었으며, 조선의 수도가 된 이후로 현재까지 대한민국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이다. 중앙으로 한강이 흐르고, 이를 기준으로 강북 지역과 강남 지역으로 구분한다. 북한산, 관악산, 도봉산, 불암산, 인릉산, 청계산, 아차산 등의 여러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의 도시이다.

서울의 면적은 605.23 km2로 대한민국 면적의 0.6%이고, 인구는 약 950만 명으로 대한민국 인구의 17%를 차지한다. 시청 소재지는 중구이며, 25개의 자치구가 있다.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하계 올림픽,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 등을 개최하였다. 2018년 서울의 지역내총생산은 422조원이었다.[1]

지명 [ 편집 ]

“서울” 어원에 관해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하나,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수도를 뜻하는 신라 계통의 고유어인 서라벌에서 유래했다는 설을 유력하게 받아들이고 있다.[2] 이때 한자 가차 표기인 서라벌 원래 의미에 관해서도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 삼국사기 등에서 서라벌을 금성으로도 표기했다는 점과 신라까지 포함하여 “설[새: 新, 金]-벌[땅: 羅, 城]”, 즉 ‘새로운 땅’이라는 뜻으로 새기는 견해가 있다. 고대-중세 한국어에서 서라벌에 관한 정확한 발음을 확실하게 확인한 게 없으며, 그 발음은 훈민정음 창제 후 “셔ᄫᅳᆯ”이라는 표기가 등장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서울 한자 음차 표기로는 이십일도회고시, 한경지략, 증보문헌비고[3]의 서울(徐菀), 동사강목, 북학의의 서울(徐蔚), 대동지지의 서울(徐鬱), 앙엽기의 서올(徐兀) 등이 있다.[4] 이처럼 조선 시대 서울은 한양, 한성(漢城) 외에도 서울( 셔ᄫᅳᆯ), 경도(京都), 경부(京府), 경사(京師), 경성(京城), 경조(京兆) 등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김정호의 수선전도에서 알 수 있듯 수선(首善)으로 표기한 예도 있다. 이 가운데 한양과 한성을 제외하면 모두 수도를 뜻하는 일반 명사로서 ‘서울’이 원래는 서울 지역(사대문 안과 성저십리)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 수도를 뜻하는 일반 명사였다는 방증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일반 명사 ‘서울’을 ‘한 나라의 중앙 정부가 있고, 경제, 문화, 정치 등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도시’라고 정의하고 있다.[5]1910년 10월 1일에 일제가 한성부를 경성부로 개칭하면서 일제강점기에 서울은 주로 경성으로 불렸으며, 1945년 광복 후에는 ‘경성’이란 말은 도태되고 거의 ‘서울’로 부르게 되었다.[6]

서울특별시 개정 로마자 표기: Seoul Teukbyeolsi 공식 표기: Seoul Special City

서울 로마자 표기 ‘Seoul’은 19세기 프랑스 선교사들이 서울을 쎄-울(Sé-oul)로 표기한 데서 비롯했다. 오늘날 프랑스에서는 서울을 ‘Séoul’로 표기하고, 스페인어권에서는 ‘Seúl’로 쓰나 모두 ‘쎄울’로 읽는다. 또, 영미권에서는 일반적으로 ‘Seoul’로 쓰고 영혼을 뜻하는 단어 ‘Soul’처럼 ‘쏘울’로 읽는다. 서울시에서는 이러한 점을 착안하여 2006년 11월 13일 서울시 서브슬로건(Sub slogan)을 《Soul of Asia》로 지정하였다.

서울은 한자어가 아닌 고유어 지명이기 때문에 서울이라는 한자가 존재하지 않아서 이전 중국에서는 서울을 한청( 중국어 간체자: 汉城, 정체자: 漢城, 병음: Hànchéng, 한성)이라 불렀고, 1988년 서울올림픽도 한성올림픽이라고 불렀으나, 2005년에 서울시가 서울과 발음이 유사한 쇼우-얼( 중국어 간체자: 首尔, 정체자: 首爾, 병음: Shǒu’ěr, 수이)을 서울 공식적인 중국어 표기로 정하면서 점차 이 표기가 확산되어 가는 추세다. 일본어 표기는 ‘소우루'(ソウル)다.

해방 이후에는 미군정청 문서에서, 서울특별시 영문 공식 명칭은 ‘Seoul Independent City’였다. 직역하면 “서울독립시”이나, 독립시라는 표현이 어색하다는 한국어 관점에 따라 “특별시”(영어: special city)로 번역한 게 굳어져 ‘Seoul Special City’로 되었다. 하지만 서울특별시청 홈페이지에서 서울특별시 공식 영어 명칭은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이다.[7]

역사 [ 편집 ]

이 문서는 간략화된 서울특별시의 역사에 관한 것입니다. 과거 서울에 대한 자세한 서술에 대해서는 한성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서울의 역사 입니다.

선사 시대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으며, 대표적 유적지로는 암사동 선사주거지가 있다. 삼한 중 마한에 속하였다.

삼국시대

기원전 18년부터 475년까지 서울의 동부에 백제의 수도인 위례성이 있었다.

475년 고구려의 장수왕이 이곳을 점령한 후 하남위례성에 한산군(漢山郡)을, 한강 이북에는 남평양(南平壤)을 설치하였다.

551년 백제는 신라와 동맹을 맺고 고구려에게서 서울과 한강 하류지역을 탈환했으나, 553년에 나제동맹을 깬 신라에게 공격당하여, 이 지역을 빼앗겼다. 이후, 신라는 옛 위례성 인근에 한강 유역을 관할하는 한산주의 치소(治所)를 설치하였다.

통일신라

삼국통일 후 685년에는 서울의 한강 이북지역은 한산주가 관할하는 북한산군(北漢山郡)이 되었다.

757년에 한산주를 한주(漢州)로, 북한산군을 한양군(漢陽郡)으로 개칭하였다.

고려시대

조선시대

조선 태조가 1392년에 개경에서 조선을 건국하고, 1394년 10월 한양으로 천도했다. 당시 한양으로 도읍을 정한 데에는 풍수사상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1395년 한성부로 개칭하고 5부(部) 52방(坊)의 행정 구역을 확정했다. 한성부의 지리적 범위는 사대문 안 도성과 도성 밖 10리(약 4 km)까지의 성저십리(城底十里)로 구성되었다. 1398년 숭례문을 완공하였고, 1404년 경복궁을 준공하였다.

이후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전란을 거치며,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후에 서서히 재건되었다.

1894년 갑오개혁 때 5부제를 5서제(署制)로 고치고, 47방 288계 775동이 되었다.

대한제국

1899년 서대문~청량리 단선전차를 개통하였다.

1900년 한강 가교가 준공되었다.

1902년 한성전화소가 서울시내전화교환업무를 시작하였다.

1908년 전차선로 가설을 위해 성곽의 일부가 일본군에 의해 철거되었다. 이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도성의 성문이나 성벽 일부를 훼손하고 신작로나 철로를 개설하는 등, 조선 개국 이후로 존재했던 서울의 역사성과 공간구조가 훼손되었다.

일제강점기

1910년 국권을 침탈한 일본 제국은 한성부를 경성부로 개칭하고 경기도에 예속시켜 지위를 격하시켰다. 1911년 경성부의 하부기관을 5부 8면으로 구분하여 성 안은 동·서·남·북·중의 5부로, 성 밖은 용산·서강·숭신·두모·인창·은평·연희·한지의 8개 면으로 구분하였다.

1914년 면(面) 제도를 폐지하고 부제(府制)를 실시하면서 용산·숭신·인창·한지·두모면의 일부를 경성부에 편입시키고, 명칭은 정(町)으로 바꾸었다.

1936년 고양군·시흥군·김포군의 일부 면들이 편입되어 행정구역이 133.94km 2 로 확장되었다.

로 확장되었다. 1943년 구제를 실시하여, 중구·종로구·동대문구·성동구·서대문구·용산구·영등포구등 7개 구로 나누었다.

현대

지리 [ 편집 ]

서울은 북위 37° 34′, 동경 126° 59′의 한반도 중서부에 위치하는 분지 지형의 도시이다. 시의 중심으로 한강이 흐르고, 서울 도심에는 남산(270m), 인왕산(338m)이 있다. 시 주변으로 북한산(836m), 관악산(629m), 도봉산(740m), 수락산(641m), 불암산(510m), 구룡산(306m), 우면산(293m), 아차산(295m), 지양산 등이 서울을 둘러싸며 경기도 및 인천광역시와 자연적 경계를 이루고 있다.[10] 동서 간의 거리는 36.78 km, 남북 간의 거리는 30.3km이며, 면적은 약 605.25 km2이다. 서울의 면적은 대한민국의 0.6%이며 남북한 면적의 0.265%이다. 서울특별시의 최북단은 도봉구 도봉동이고 최남단은 서초구 원지동이며 최동단은 강동구 강일동, 최서단은 강서구 오곡동이다.

산 [ 편집 ]

서울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북한산(삼각산)을 최고점으로 한 고양·양주구릉과 경기평야가 만나는 지대에 있다. 주위에는 북한산(836m)·도봉산(717m)·인왕산(338m)·관악산(629m) 등 500m 내외의 산과 구릉이 자연성벽과 같이 둘러싸고 있는 분지이다. 광주산맥의 한 줄기인 도봉산은 백운대·인수봉·노적봉의 3개 봉우리가 솟아 있는 북한산과 이어져 있고, 그 산줄기는 다시 남으로 뻗어 북악산(342m)을 솟게 하였다. 그리고 북악산에서 동으로 뻗은 산줄기에 낙산(125m), 서로 뻗은 산줄기에 인왕산이 있다. 인왕산에서 뻗은 산줄기 중 남쪽으로 뻗은 것은 숭례문을 지나 남산(265m)·응봉(175m)과 이어져 있고, 서쪽은 무악재의 안부(鞍部)를 지나 안산(296m)과 이어져 있는데 모두 구릉성 산지이다. 한강 남쪽에는 100m 이하의 구릉지가 펼쳐져 있고, 남쪽에 천연의 요새와 같이 서울의 외곽에 솟아 있는 관악산(629m), 청계산(618m), 구룡산(306m), 우면산(293m) 등이 있다. 그 외에 서울 동부에 불암산, 수락산, 망우산, 아차산 등이 있다.[10]

서울의 주요 산 위치도

강 / 하천 [ 편집 ]

서울의 중심에는 한강 하류가 동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있다. 하류이기 때문에 구배는 완만하며 물의 흐름은 느리나, 홍수 때는 상·중류의 유역 지방으로부터 흘러내려오는 물 때문에 수위가 높아진다. 여의도는 상류로부터 운반되어 온 토사가 퇴적된 하중도이다. 한강물은 서울시민의 수돗물로도 공급되는데, 과거에는 뚝섬과 선유도 등에도 취수장이 있었으나 현재는 잠실 수중보와 팔당 저수지로부터 물을 끌어들여 공급하고 있다.[10] 한강은 일제 강점기까지 별다른 정비가 없었다가, 1960년대 이후 한강을 정비하는 사업이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1968년 밤섬을 폭파한 뒤 여의도를 개발하였고, 1970년부터 1975년까지 잠실 개발계획으로 잠실섬과 부리도의 남쪽 물길(송파강)을 막아 육지로 만들었다. 1982년 시작된 ‘한강종합개발사업’을 통해 둔치를 조성하고, 강변 양쪽에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를 놓았다. 2006년에는 한강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한강 주변을 다시 정비하였다.

한강 이외의 주요 하천으로는 불광천, 안양천, 중랑천, 청계천, 탄천, 양재천, 여의천, 홍제천 등이 있다.

서울의 하천 지도

임야 [ 편집 ]

서울의 임야 면적은 2006년을 기준으로 157.35 km2으로, 임야의 51.5%는 국공유림이고 49.5%는 사유림이다. 임야의 분포는 산이 많은 노원구에 17.73 km2, 관악구에 17.53 km2, 강남구에 16.11 km2가 있어서 전 임야의 32.6%를 차지하고 있다. 이 임야의 많은 부분이 개발 제한 구역으로 묶여 있어서 임야는 잘 보호되고 있는 편이긴 하지만, 임야 면적은 매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11]

도심 [ 편집 ]

서울 도심

서울 도심 주변에는 도심을 관통하는 청계천의 계속된 침식으로 북악산과 남산에서 산기슭이 발달되어 기복이 많은 지형이 되었다. 을지로에 있던 구리개, 조선일보사 앞의 황토현(黃土峴)이란 기복은 가로공사와 도시개발에 따라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으나, 현재도 율곡로·퇴계로·을지로 곳곳에서 기복을 찾아볼 수 있다.[10] 이러한 기복 때문에 이 지역에는 고개 또는 현(峴)이란 지명이 남아 있다. 이러한 지명에는 충무초등학교 부근의 풀무고개 또는 대장고개(治峴), 인현(仁峴)·종현(鍾峴)·진고개(泥峴), 계동(桂洞) 일대에 관상감현(觀象監峴), 가회동 일대에 맹현(孟峴)·홍현(紅峴)·안현(安峴)·송현(松峴)·배고개(梨峴) 등이 있다.[10] 이러한 지형은 조선시대에 잘 이용되었다. 풍수설에 따라 북악산 기슭에는 경복궁·창덕궁·창경궁·종묘, 인왕산 기슭에는 덕수궁을 지었고, 궁궐 사이는 궁인(宮人)·귀족·고관 들의 저택지로 이용하였다. 이 지역의 침식으로 운반된 토사는 청계천 연안에 퇴적되어 평탄한 시가지를 형성하게 하였다. 따라서 도심지에서 가장 평탄한 곳은 청계천 북쪽의 연안으로 동대문에서 세종로 사이의 종로이며, 이곳에서는 지형의 기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10] 삼각지로부터 해발고도 20m의 갈월동을 지나면 지형이 차차 높아져서 서울역 앞에 오면 더욱 높아지기 시작하고, 숭례문 부근은 해발고도가 40m 내외가 된다. 이곳은 분수계(해발 36.6m)가 되어, 동으로는 청계천이 동으로 흘러 중랑천과 합류한다.[10]

지질 [ 편집 ]

한반도 내의 선캄브리아기에 형성된 경기 지괴 내에 위치한 서울의 지질은 주로 선캄브리아기의 편마암류와 이들을 관입한 중생대의 화강암류로 구성되며, 하천을 중심으로 이 모두를 부정합으로 덮는 제4기의 충적층이 분포한다.[12]

선캄브리아기의 암석 중 가장 주된 것은 서울도폭(1982)에서 정의된 호상흑운모편마암(PCEbngn; Precambrian biotite gneiss)이다. 지형적으로 저지대를 이루면서 강서구 화곡동, 서대문구, 마포구, 용산구, 은평구, 영등포구, 동작구, 강남구, 서초구 등지에 분포한다.[13] 이 암석은 경기편마암복합체의 일부로서, 이 지역 내에서는 가장 오래된 암석으로 기저(基底)를 이루고 있다.[12] 서울 동부지역으로 가면 선캄브리아기의 암석이 조금 더 세분화되어, 논현동 일대에 분포하는 안구상 편마암(PCEagn)이나 강남구, 송파구, 강동구 일대에 흩어져 분포하는 운모편암(PCEms) 등으로 분류된다.[14]

중생대의 화강암은 이 지역에서 흑운모 화강암(Jbgr; Jurassic biotite granite, 서울도폭, 1982) 또는 서울 화강암(Jsgr; Jurassic Seoul granite, 뚝섬도폭, 1981)으로 정의되어 있으며, 서울시 북부인 중구, 동대문구, 성북구, 종로구, 노원구, 북한산 지역에 분포한다. 이 화강암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넓게 분포하는 주요 화강암인 대보 화강암의 일부이며, 선캄브리아기의 편마암류를 관입하고 있다.[13][12]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신갈 단층 입니다.

신갈 단층은 한반도 경기 지괴 내 연천군에서 서울특별시와 성남시 분당구 등을 지나 평택시까지 이어지는 연장 130km의 주향 이동 단층이다.[15][16] 추가령 단층대의 일부이며,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제공하는 지질도 Archived 2021년 10월 24일 – 웨이백 머신에 의하면 도봉구, 성북구, 동대문구, 강남구, 서초구 남부 등 서울특별시 동·북부를 지난다. 특히 한강 이북지역에서는 거의 중랑천[13]을 따라가는데, 이미 뚝섬도폭(1981)에서 그 존재가 간접적으로나마 언급된 바 있다. 도폭 설명서에서 대놓고 신갈 단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북쪽으로 의정부도폭(2005), 남쪽으로 둔전도폭(1982)으로 이어지고 남-북 주향의 대단층인 것으로 설명되어 있어, 대규모 단층이 지나감을 암시하였다.[14]

기타 [ 편집 ]

화강암은 조립질이면서 다른 암석과는 다르게 절리(節理)가 잘 발달하고 풍화작용에 약하며, 도봉산·백운대·인수봉과 같은 봉우리가 기암절벽을 만들어 서울 특유의 절경을 보여 주고 있다. 홍제동·안암동·창신동·장위동 등지의 화강암은 1990년대까지만 하여도 건축재로 쓰이곤 했다.[17]

화강편마암은 견고한 암석이지만 접착성이 적기 때문에 쉽게 붕괴되어 봉우리를 이루지 못하나, 작은 기복을 이룬 노년기 지형을 나타내주고 있다. 특히 동작동 부근의 화강편마암은 판형으로 쉽게 벗겨져 온돌의 구들장으로 쓰였고, 화강편마암이 풍화되어 된 천호동의 점토는 벽돌과 옹기 제조의 원료로서 많이 쓰였다.[17]

기후 [ 편집 ]

서울은 냉대 동계 소우 기후[18](쾨펜의 기후 구분 Dwa)[19] 또는 온대 하우 기후에 속하며, 습윤 대륙성 기후로 분류하기도 한다. 기온의 연교차가 큰 대륙성 기후이다. 최근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으로 인해 최한월 평균기온이 영하 3 °C보다 높은 -2.4 °C로 높아져 대한민국 기상청은 온대 하우 기후(Cwa)로 변경했다. 그러나 이는 열섬 현상으로 인한 것으로 외곽 지역은 여전히 -3 °C 미만으로 내려간다는 점과 냉대 기후의 최한월 평균기온 기준을 0 °C 미만으로 간주하는 경우도 많다는 점에서 온대기후와 냉대기후의 중간정도 되는 기후이다. 여름 기온과 겨울 기온의 연교차가 28.1 °C로 매우 크기 때문에, 겨울은 매우 춥고, 여름은 몹시 무덥다. 최근 30년(1991년~2020년) 기준으로 서울의 연평균 기온은 12.8 °C 이고, 최난월인 8월 평균 기온은 26.1 °C, 최한월인 1월 평균 기온은 -1.9 °C이다. 특히 최한월의 평균 기온은 같은 위도 상의 다른 도시에 비해 낮은 편이다. 시내의 기온 분포는 중구와 같이 가옥이 밀집한 곳과 많은 자동차가 배기가스를 뿜으며 지나는 간선도로, 그리고 도심부의 포장도로가 지나는 지역이 가장 기온이 높고, 한강 연안과 가옥의 밀집도가 낮은 지역은 기온이 낮게 나타나고 있다. 도심의 기온은 여름철의 6, 7, 8월 3개월을 제외하고는 해가 거듭될수록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이 상태로 계속 기온이 높아진다고 가정하면 약 100년 간에 평균기온은 1.8 °C, 일 최저 기온의 연평균치는 3.1 °C씩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시내의 습도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17]

계절은 여름이 가장 길고 그 다음 겨울, 봄 순서대로이고 가을이 가장 짧다. 봄은 3월 중순부터 시작되는데 월평균 기온이 5 °C 이상으로 올라가고 날씨는 맑고 따뜻해진다. 그러나 제트기류가 서쪽에서 불어올 때 황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여름은 20 °C 이상의 기온이 계속되며 7, 8월에는 30 °C 내외, 심하면 35°C 이상의 무더운 날씨가 많다. 또한 장마나 집중호우가 계속되어 많은 비가 내리므로 홍수의 피해가 크다. 가을은 하늘이 높고 맑은 날이 계속되며, 기온은 차차 내려가 선선한 날씨가 시작된다. 겨울은 최저 기온이 0 °C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100일 내외, 최저기온이 -10 °C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29.4일로서, 추운 날이 비교적 오래 지속되고 있다. 눈이 내리는 기간은 12.5일, 얼음이 어는 기간은 16.4일이나 강수량은 여름에 비하면 훨씬 적어 건조한 날씨가 많다. 최근 30년(1991년 ~ 2020년) 기준으로 연평균 강수량은 약 1,417.9mm이나, 1990년에는 2,355.5mm, 1949년에는 633.7mm가 내릴 정도로 연 강수량의 기복이 심한 편이다. 계절별 강수량은 여름철에 892.1mm, 겨울철에 67.3mm로 여름철에 강수가 크게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한반도는 계절풍 지대에 속하기 때문에 서울은 여름에 남동풍, 겨울에 북서풍이 빈번하게 분다. 도심부에서 도로 위를 부는 도로바람은 남산의 북사면에서 발달한 차가운 공기가 충무로 지하상가 위를 지나 을지로 입구 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퇴계로 2가 부근에서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분다.

역대 최저 기온은 1927년 12월 31일의 -23.1 °C, 역대 최고 기온은 2018년 8월 1일의 39.6 °C이다.

서울 (1981-2010 평균, 극값 1907-현재)의 기후 월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년 최고 기온 기록 °C (°F) 14.4

(57.9) 18.7

(65.7) 23.8

(74.8) 29.8

(85.6) 34.4

(93.9) 37.2

(99.0) 38.4

(101.1) 39.6

(103.3) 35.1

(95.2) 30.1

(86.2) 25.9

(78.6) 17.7

(63.9) 39.6

(103.3) 평균 최고 기온 °C (°F) 1.5

(34.7) 4.7

(40.5) 10.4

(50.7) 17.8

(64.0) 23.0

(73.4) 27.1

(80.8) 28.6

(83.5) 29.6

(85.3) 25.8

(78.4) 19.8

(67.6) 11.6

(52.9) 4.3

(39.7) 17.0

(62.6) 일 평균 기온 °C (°F) −2.4

(27.7) 0.4

(32.7) 5.7

(42.3) 12.5

(54.5) 17.8

(64.0) 22.2

(72.0) 24.9

(76.8) 25.7

(78.3) 21.2

(70.2) 14.8

(58.6) 7.2

(45.0) 0.4

(32.7) 12.5

(54.5) 평균 최저 기온 °C (°F) −5.9

(21.4) −3.4

(25.9) 1.6

(34.9) 7.8

(46.0) 13.2

(55.8) 18.2

(64.8) 21.9

(71.4) 22.4

(72.3) 17.2

(63.0) 10.3

(50.5) 3.2

(37.8) −3.2

(26.2) 8.6

(47.5) 최저 기온 기록 °C (°F) −22.5

(−8.5) −19.6

(−3.3) −14.1

(6.6) −4.3

(24.3) 2.4

(36.3) 8.8

(47.8) 12.9

(55.2) 13.5

(56.3) 3.2

(37.8) −5.1

(22.8) −11.9

(10.6) −23.1

(−9.6) −23.1

(−9.6) 평균 강수량 mm (인치) 20.8

(0.82) 25.0

(0.98) 47.2

(1.86) 64.5

(2.54) 105.9

(4.17) 133.2

(5.24) 394.7

(15.54) 364.2

(14.34) 169.3

(6.67) 51.8

(2.04) 52.5

(2.07) 21.5

(0.85) 1,450.5

(57.11) 평균 강수일수 (≥ 0.1 mm) 6.5 5.8 7.4 7.8 9.0 9.9 16.3 14.6 9.1 6.3 8.7 7.4 108.8 평균 상대 습도 (%) 59.8 57.9 57.8 56.2 62.7 68.1 78.3 75.6 69.2 64.0 62.0 60.6 64.4 평균 월간 일조시간 160.3 163.3 189.0 205.0 213.0 182.0 120.0 152.5 176.2 198.8 153.2 152.6 2,066 출처: 대한민국 기상청[20][21][22]

서울 (1991-2020 평균, 극값 1907-현재)의 기후 월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년 최고 기온 기록 °C (°F) 14.4

(57.9) 18.7

(65.7) 23.8

(74.8) 29.8

(85.6) 34.4

(93.9) 37.2

(99.0) 38.4

(101.1) 39.6

(103.3) 35.1

(95.2) 30.1

(86.2) 25.9

(78.6) 17.7

(63.9) 39.6

(103.3) 평균 최고 기온 °C (°F) 2.1

(35.8) 5.1

(41.2) 11.0

(51.8) 17.9

(64.2) 23.6

(74.5) 27.6

(81.7) 29.0

(84.2) 30.0

(86.0) 26.2

(79.2) 20.2

(68.4) 11.9

(53.4) 4.2

(39.6) 17.4

(63.3) 일 평균 기온 °C (°F) −1.9

(28.6) 0.7

(33.3) 6.1

(43.0) 12.6

(54.7) 18.2

(64.8) 22.7

(72.9) 25.3

(77.5) 26.1

(79.0) 21.6

(70.9) 15.0

(59.0) 7.5

(45.5) 0.2

(32.4) 12.8

(55.0) 평균 최저 기온 °C (°F) −5.5

(22.1) −3.2

(26.2) 1.9

(35.4) 8.0

(46.4) 13.5

(56.3) 18.7

(65.7) 22.3

(72.1) 22.9

(73.2) 17.7

(63.9) 10.6

(51.1) 3.5

(38.3) −3.4

(25.9) 8.9

(48.0) 최저 기온 기록 °C (°F) −22.5

(−8.5) −19.6

(−3.3) −14.1

(6.6) −4.3

(24.3) 2.4

(36.3) 8.8

(47.8) 12.9

(55.2) 13.5

(56.3) 3.2

(37.8) −5.1

(22.8) −11.9

(10.6) −23.1

(−9.6) −23.1

(−9.6) 평균 강수량 mm (인치) 16.8

(0.66) 28.2

(1.11) 36.9

(1.45) 72.9

(2.87) 103.6

(4.08) 129.5

(5.10) 414.4

(16.31) 348.2

(13.71) 141.5

(5.57) 52.2

(2.06) 51.1

(2.01) 22.6

(0.89) 1,417.9

(55.82) 출처: 대한민국 기상청[23][24][25]

김포국제공항 (1981-2010 평균, 극값 1961-현재)의 기후 월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년 최고 기온 기록 °C (°F) 14.6

(58.3) 19.2

(66.6) 23.8

(74.8) 30.0

(86.0) 32.9

(91.2) 34.4

(93.9) 36.8

(98.2) 37.8

(100.0) 32.7

(90.9) 28.9

(84.0) 25.2

(77.4) 16.4

(61.5) 37.8

(100.0) 평균 최고 기온 °C (°F) 1.4

(34.5) 4.5

(40.1) 10.2

(50.4) 17.6

(63.7) 22.7

(72.9) 26.6

(79.9) 28.6

(83.5) 29.7

(85.5) 25.6

(78.1) 19.7

(67.5) 11.4

(52.5) 4.2

(39.6) 16.9

(62.4) 일 평균 기온 °C (°F) −3.8

(25.2) −1.0

(30.2) 4.5

(40.1) 11.3

(52.3) 16.9

(62.4) 21.5

(70.7) 24.5

(76.1) 25.2

(77.4) 20.1

(68.2) 13.3

(55.9) 5.8

(42.4) −0.9

(30.4) 11.5

(52.7) 평균 최저 기온 °C (°F) −9.1

(15.6) −6.4

(20.5) −1.1

(30.0) 5.1

(41.2) 11.6

(52.9) 16.8

(62.2) 21.1

(70.0) 21.4

(70.5) 15.1

(59.2) 7.3

(45.1) 0.4

(32.7) −5.9

(21.4) 6.4

(43.5) 최저 기온 기록 °C (°F) −23.5

(−10.3) −20.2

(−4.4) −11.2

(11.8) −6.5

(20.3) 2.8

(37.0) 9.0

(48.2) 13.0

(55.4) 11.2

(52.2) 3.9

(39.0) −4.7

(23.5) −11.6

(11.1) −19.1

(−2.4) −23.5

(−10.3) 평균 강수량 mm (인치) 18.1

(0.71) 20.0

(0.79) 40.7

(1.60) 58.0

(2.28) 96.2

(3.79) 119.4

(4.70) 357.2

(14.06) 307.5

(12.11) 155.4

(6.12) 49.7

(1.96) 47.6

(1.87) 19.0

(0.75) 1,288.7

(50.74) 출처: 항공기상청[26]

대기 [ 편집 ]

시내에는 큰 건물과 공장의 굴뚝에서 내뿜는 매연, 자동차의 배기가스 등의 오염물질이 늘어나면서 태양광선이 제대로 땅에 닿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시내에 내리쬐는 일사량은 매년 감소되어 가고 있다. 비행기나 높은 산 위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면 연기와 먼지를 품은 오염대기층인 연진모자가 상공을 덮고 있어 서울 시야를 나쁘게 하고 있다.[17] 2011년 환경부가 7대 도시의 대기 오염물질을 조사한 결과, 전국의 미세먼지 평균농도는 51㎍/m3이고,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는 49㎍/m3로 나타났다. 2013년을 기준으로 하여 서울시는 전국 16개 지방 (서울, 부산, 대구, 경기, 제주, 전남 등) 에서 8위 (7위: 대구 9위: 전북) 를 하였고, 광역시나 특별시 중에서는 4위(3위: 대구 5위: 울산)를 하였다.(중위권) 그러나 최근, 수년 동안 서울시에서는 청정연료 확대보급, 경유자동차 저공해화, 도로비산먼지 청소, 공사장 비산먼지 관리 등과 같은 대기질 개선활동을 집중적으로 전개해 오면서 대기질이 좋아지기 시작했으나, 황해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 중국의 수많은 공장에서 뿜어져나오는 매연에 서울의 대기질은 겨울과 봄에 최악을 기록하고 있으며, 미세먼지 농도가 100㎍/m3을 훌쩍 뛰어넘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출처 필요]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 상황과 역대 가장 긴 장마 때문에 서울의 미세먼지는 110일 동안 보통 이하를 기록하기도 하였다.[27]

대도시권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수도권 (대한민국) 입니다.

행정 구역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서울특별시의 행정 구역 입니다.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은 2022년 5월말 기준으로 25개 자치구와 426개 행정동이 있다. 한강 남쪽에 11개, 한강 북쪽에 14개 자치구가 있다. 2020년 4월말 주민등록 인구는 9,726,787명이다.[28] 가장 인구가 많은 구는 송파구, 가장 인구가 적은 구는 중구이다.

자치구 세대 인구 면적 종로구 74,299 150,936 23.91 중구 63,091 126,126 9.96 용산구 111,037 229,369 21.87 성동구 135,563 298,249 16.85 광진구 165,579 350,016 17.06 동대문구 165,516 345,793 14.2 중랑구 182,433 395,072 18.5 성북구 194,095 442,174 24.56 강북구 145,049 312,691 23.61 도봉구 138,724 330,707 20.7 노원구 217,302 530,302 35.44 은평구 208,771 477,973 29.69 서대문구 142,559 312,809 17.6 마포구 176,385 374,426 23.88 양천구 178,257 457,132 17.4 강서구 264,111 588,281 41.43 구로구 177,432 405,271 20.12 금천구 111,787 232,396 13 영등포구 178,323 372,225 24.57 동작구 182,236 394,988 16.35 관악구 271,313 498,978 29.57 서초구 173,561 429,729 47 강남구 233,363 543,240 39.51 송파구 279,460 672,862 33.88 강동구 191,399 455,042 24.58 합계 4,361,645 9,726,787 605.25 한강 한강 한강 경기도 경기도 마포구 도봉구 중랑구 노원구 은평구 강북구 성북구 종로구 중구 용산구 동대문구 강서구 양천구 구로구 성동구 광진구 송파구 강동구 서초구 강남구 서대문구 동작구 영등포구 금 천 구 관악구

선거구 [ 편집 ]

21대 국회의원 선거 기준 49개 선거구로 나뉜다. 주민등록 인구(외국인 제외)에 따라 29만5천 명 미만인 자치구는 1개, 29만5천 명 이상 ~ 59만 명 미만인 자치구는 2개, 59만 명 이상인 자치구는 3개의 선거구를 가진다.

인구 [ 편집 ]

고려 멸망 후 조선이 천도(1394년)한 후 조선 태종 때 인구는 약 10만 명이었으며, 이후 1900년대까지 20만 명 선을 유지하였다.

일제 강점기 이후 서울의 인구는 지방 인구의 도시집중 현상으로 급격하게 늘어나여 과밀화 현상을 빚고 있다. 1919년에 인구 25만 명, 인구밀도 6,874명/km2이었던 것이 1925년에는 인구 34만 명, 인구밀도 9,297명/km, 1930년에는 인구 33만 명, 인구밀도 9,824명/km2, 1935년에는 인구 40만 명, 인구밀도 11,172명/km2에 달하였다. 이에 따라 1936년에 시역을 확장하여 인구는 73만 명으로 증가하고 인구밀도는 5,430명/km2으로 감소하였다. 1945년 광복 당시의 인구는 90만 명, 인구밀도 6,628명/km2이었는데, 외국에서의 귀국, 한반도 북부지역 출신 등으로 1946년에는 인구가 127만 명으로 급격하게 증가하였고, 인구밀도는 9,309명/km2이 되었다. 1948년에는 인구 171만 명에 인구밀도 12,055명/km2으로, 1949년에는 136.05 km2이었던 시의 면적이 268,35 km2로 확장되었고 인구는 142만 명, 인구밀도는 5,284명/km2이 되었다.

1951년에는 한국 전쟁으로 인구가 65만 명, 인구밀도는 2,416명/km2으로 급격하게 감소하였다. 그러나 1953년에 휴전과 환도로 다시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하여 1955년에는 인구 157만 명, 인구밀도 5,869명/km2, 1960년에는 인구 245만 명(전체 인구의 10%), 인구밀도 913명/km2, 1970년에는 인구 543만 명(전체 인구의 18%), 인구밀도 9,013명/km2, 1980년 인구는 836만 명, 인구밀도 13,074명/km2, 1990년에는 1,061만 명, 인구밀도가 15,532명/km2이 되었다.

이렇게 계속 증가하던 인구도 1992년 인구 1,097만 명, 인구밀도 18,121명/km2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는 정부의 서울 인구 분산 정책에 따른 것으로. 서울 교외에 분당·일산·평촌·중동과 산본 등의 1기 신도시가 개발되었고 이 마저도 포화상태로 현재 운정, 판교, 동탄등 2기 신도시 개발에 따른 이주에 의한 것이다.[29] 계속 감소하던 인구는 2003년 인구 1,028만 명, 인구밀도 16,975명/km2을 정점으로 다시 증가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뉴타운’으로 불리는 서울 시내 대규모 재개발로 인한 인구 유입의 영향이 크다. 2009년 12월말 기준 인구는 10,464,051명, 4,116,660세대이고, 인구밀도는 17,289명/km2이다.

서울의 인구증가를 보면 1960년경부터 대한민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각종 산업이 발전하면서 고용 증대가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농촌인구가 급격하게 서울로 집중하게 되었다. 서울 지킴자금 농촌에서는 생계가 어려워 무작정 서울로 온 이농 인구 덕분이었다.[30] 서울은 자연증가보다 사회증가에 의하여 과밀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서울에는 교육기관이 많이 분포하고 있어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주로 서울에서 취업을 하거나 생활 터전을 마련한다.[31]

다만, 2010년대 들어 서울의 높은 전세로 인해 서울의 인구순유출 속도가 한국 도시들 중 가장 빠르며, 2016년 5월을 기점으로 서울 인구가 1,000만명 선 아래로 떨어졌다. 사실상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1000만명을 넘어선 서울의 인구가 28년만에 1000만명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2018년 5월 기준으로 서울의 인구는 980만명이다. 서울을 빠져나가는 대부분의 인구는 경기도로 이동하고 있으며, 세종시나 제주도로의 이동도 이루어지는 역도시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인구와 가구 그래프 [ 편집 ]

일제강점기 [ 편집 ]

이 글을 보려면 오른쪽 ‘펼치기’ 버튼 클릭 연도 인구(명) 가구(세대) 비고 1915년 241,085 55,367 1920년 250,208 54,614 1925년 336,349 70,192 1930년 355,426 74,909 1935년 404,202 82,822 1940년 935,464 174,336 1945년 901,371 189,530

대한민국 정부 수립 [ 편집 ]

이 글을 보려면 오른쪽 ‘펼치기’ 버튼 클릭 연도 인구(명) 가구(세대) 비고 1949년 1,418,025 272,314 1955년 1,574,868 259,660 1960년 2,445,402 446,874

군사 정부 시기 [ 편집 ]

이 글을 보려면 오른쪽 ‘펼치기’ 버튼 클릭 연도 인구(명) 가구(세대) 비고 1965년 3,424,385 649,290 1970년 5,433,198 1,096,871 1975년 6,889,502 1,409,577 1980년 8,364,379 1,849,324

신군부 시기 [ 편집 ]

이 글을 보려면 오른쪽 ‘펼치기’ 버튼 클릭 연도 인구(명) 가구(세대) 비고 1981년 8,676,037 1,915,104 1982년 8,916,481 2,000,678 1983년 9,204,344 2,116,334 1984년 9,501,413 2,245,598 1985년 9,639,110 2,337,564 1986년 9,798,542 2,428,123 1987년 9,991,089 2,518,128

민주화 이후, 정보 혁명 시대 [ 편집 ]

이 글을 보려면 오른쪽 ‘펼치기’ 버튼 클릭 연도 인구(명) 가구(세대) 비고 1988년 10,286,503 2,658,371 1989년 10,576,794 2,816,510 1990년 10,612,577 2,820,292 1991년 10,904,527 3,330,317 1992년 10,969,862 3,383,169 1993년 10,925,464 3,430,528 1994년 10,798,700 3,455,665 1995년 10,595,443 3,448,124 1996년 10,469,852 3,456,575 1997년 10,389,057 3,498,506 1998년 10,321,469 3,458,511 1999년 10,321,446 3,490,616 2000년 10,373,234 3,540,492 2001년 10,331,244 3,570,228 2002년 10,280,523 3,623,929 2003년 10,276,968 3,714,697 2004년 10,287,847 3,780,305 2005년 10,297,004 3,871,024 2006년 10,356,202 3,978,938 2007년 10,421,782 4,046,086 2008년 10,456,034 4,097,562 2009년 10,464,051 4,116,660 2010년 10,575,447 4,224,181 2011년 10,528,774 4,192,752 2012년 10,442,426 4,117,970 2013년 10,388,055 4,182,351 2014년 10,369.593 4,194,176 2015년 10,297,138 4,189,948 2016년 10,204,054 4,189,839 2017년 10,124,579 4,220,082 2018년 10,049,607 4,263,868 2019년 10,010,983 4,327,605 2020년 9,668,465 4,327,605

주요 기관 [ 편집 ]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입법부·행정부·사법부 등 국가의 통치 기관이 집중되어 있다. 종로구에는 청와대와 정부서울청사를 비롯한 중앙 행정 기관과 헌법재판소 등 국가 중요 기관이 있고, 중구 정동에는 각국의 외교 대사관이 밀집해 있다. 또한 여의도에는 국회가, 서초구에는 대법원을 비롯한 법조 단지가 형성되어 있다.

경제 [ 편집 ]

2014년 서울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327조 6020억 원이며, 실질성장률은 2.2%이다.[32]

삼성, LG, 현대자동차, SK, 롯데 등 주요 대기업의 본사가 있다. 대한민국 GDP의 22%를 창출하고 있으며, 금융 기관의 50% 이상이 집중되어 있다.

2007년[33] 국내총생산

(10억원)

사업체 수

(개소)

은행예금

(10억원)

내국세

(10억원)

의료기관

(개소)

자동차수

(천대)

대학교

(개소)

전국 581,516 3,131,963 512,419 82,226 44,029 13,949 180 서울 127,175 735,258 259,355 35,436 12,396 2,691 42 집중도(%) 21.87 23.48 50.61 43.1 28.15 19.29 23.33

삼성 – 전자, 중화학 등을 중점 사업으로 하는 세계적인 기업 (서초구 서초동 1320-10)

LG – 1947년 창업한 한국의 전자/화학 분야 기업 (영등포구 여의도동 LG트윈타워)

현대자동차 –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 기업 (서초구 양재동 231)

SK – 에너지, 통신 등을 중심으로 사업을 펼치는 한국 3위의 기업 (종로구 서린동 99번지)

롯데 – 유통, 화학, 식음료 등을 중심 사업으로 활동하는 한국 재계 5위의 기업 (송파구 신천동 29)

공업 [ 편집 ]

서울의 공업은 1919년에 영등포에 세워진 방직공장을 시초로 한다. 영등포에는 그 외에도 피혁공장과 철도공작창이 지어졌으며, 1940년대 들어서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일본의 군수물자 조달을 목적으로 영등포와 용산을 중심으로 군수 산업이 발달하였다. 8·15 광복과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잠시 침체 상태에 있었으나, 1962년부터 시작된 국가 주도의 경제 개발로 인해 서울의 공업은 급속도로 발달하였다. 1971년 형성된 구로동 수출산업공단은 섬유·전자기계·고무합성수지제품·금속·광학기기류 등의 생산으로 서울 최대의 산업단지가 되었으며, 인근의 영등포 기계공단과 묶여 경인공업지구를 형성하였다.

1990년대 초까지 용산·영등포·천호동·노원구 등에 공업지구가 형성되어 있었으나, 수도권이 팽창하면서 인천·시흥·안산·부천 등 인근 지역으로 옮겨갔다. 2000년대 들어 첨단산업이 발달하면서 구로동·가산동 지역의 대규모 공단이 디지털산업단지로 탈바꿈하여 현재는 수많은 IT 벤처 기업이 있다.[34]

상업 [ 편집 ]

서울의 상업은 4대문 안 서울 도심인 종로·남대문로·충무로·명동·을지로와 청계천 등의 상가와 남대문시장·동대문시장·중부시장 등의 시장과 백화점, 대형 할인점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1960년대 들어 대단위 슈퍼마켓과 연쇄점·지하상가가 시내 요소에 설치되어 새로운 상가를 형성하였다. 전문상가로는 전국에 의류를 공급하는 남대문 의류상가와 동대문 평화시장,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 노량진수산시장, 용산전자상가, 경동시장 등이 있다.[35]

업무 지구 [ 편집 ]

교육 [ 편집 ]

서울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체육대학교 등 국공립 대학교와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서강대학교, 성균관대학교(인문사회캠퍼스), 한양대학교, 중앙대학교, 경희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건국대학교, 동국대학교, 광운대학교, 홍익대학교, 국민대학교, 숭실대학교, 세종대학교 등 사립 대학교들이 소재하고 있다. 대학교 40개교, 교육대학 1개교, 방송통신대학교 1개교, 전문대학 12개교 등이 있다.[36]

서울특별시의 학교 · 학생 · 교직원 현황 (2012년) 교육기관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합계 학교 886개교 594개교 376개교 311개교 2,206개교 학생 87,997명 502,000명 315,241명 344,391명 1,262,970명 교직원 6,213명 29,762명 18,442명 23,245명 79,490명 자료 : 서울교육통계연보[37]

문화와 관광 그리고 주요시설 [ 편집 ]

서울은 대한민국 문화활동의 중심지가 되고 있으며 도서관·박물관·신문사·출판사·방송국·공원과 기타 문화시설들이 집중되어 있다.

관광 [ 편집 ]

서울은 최근 K 문화의 인기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어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 서울관광재단에서는 서울 여행을 계획하거나 서울을 여행중인 관광객들을 위해 ‘비짓서울’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 공식 관광 정보 웹사이트인 ‘비짓서울’은 서울에서 개최되는 각종 행사, 축제, 전시 정보는 물론이고 명소, 맛집, 쇼핑 등 다양한 관광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관광 정보를 발 빠르게 제공하여 관광객들이 서울을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비짓서울’은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간체, 중국어 번체, 러시아어, 말레이어 총 7가지 언어를 제공한다.

문화재, 박물관 [ 편집 ]

서울에는 132개의 국보, 380개의 보물, 61개소의 사적, 11개의 천연기념물, 32개의 무형문화재, 46개의 중요민속자료 등이 있다. 또한 경복궁 등의 고궁과 각종 공원 등이 있어 시민들과 외국 관광객들에게 좋은 휴식처와 관광 명소가 되고 있다. 운동경기장으로는 잠실에 잠실종합운동장, 목동에 목동운동장, 성산동에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있다.[36]

국립중앙박물관 등 60여 개의 박물관이 있다.

이름 비고(내용) 국립중앙박물관 대한민국 최대의 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조선 왕실의 문화재 전시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생활사 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의 도시 역사 박물관 전쟁기념관 전쟁사 박물관 덕수궁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과천 소재)의 서울 분관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 공공 미술관

도서관 [ 편집 ]

서울에는 시립 도서관 23개 소가 있으며, 시립 도서관의 경우 대부분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운영하고 있다. 그 외에도 각 자치구에서 설립한 구립 도서관이 있다. 최근 구립 도서관의 숫자가 늘고 있는 추세이다. 장서(藏書) 100만여 권을 가진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 그외에도 공공 및 사립도서관, 대학도서관 등이 있다.[36]

공연 시설 [ 편집 ]

국립국악원 – 예술의 전당 옆이다. 대한민국의 민족음악을 보존·전승하고, 그 보급 및 발전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38]

국립중앙극장 – 남산 중턱에 있다. 해오름극장, 달오름극장, 별오름극장, KB청소년하늘극장으로 구성된다. [39]

세종문화회관 – 세종대로에 있다. 전국기준 도로원표, 세종대극장, 세종M시어터, 세종체임버홀, 세종예술아카데미로 구성된다.

롯데콘서트홀 – 잠실 롯데월드몰 내

예술의 전당 – 우면산 자락 [40]

정동극장 – 덕수궁(경운궁) 옆

대학로 – 소극장과 연극장이 모여 있다.

블루스퀘어 – 용산구 한남동 한강진역 앞

비보이 전용극장 – 마포구 서교동 ‘SJ비보이즈’ 건물 지하

대중매체 [ 편집 ]

방송사

한국방송공사 (KBS) –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출자하여 설립한 공영방송사 (영등포구 여의공원로 13)

문화방송(MBC) – 특수 공공법인이 지배하는 주식회사 형태의 준공영방송사 (마포구 성암로 267)

SBS – 주식회사 형태의 지역 민영 방송사 (양천구 목동서로 161)

TV조선 – 조선일보의 종합편성채널 방송사 (중구 세종대로21길 40)

매일방송 (MBN) – 매일경제의 종합편성채널 방송사

JTBC – 중앙그룹의 종합편성채널 방송사

채널A – 동아그룹의 종합편성채널 방송사

YTN – 정부출자기업 형태의 보도 전문 방송사 (마포구 상암산로 76)

연합뉴스TV –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가 대주주로 자회사 형태로 설립한 보도 전문 방송사 (종로구 율곡로2길 25)

CJ E&M – Mnet, KMTV, tvN, OCN, X tvN 외 방송사업부문의 약 18채널을 운영하는 회사

신문사

서울의 도심 지역에는 대형 종합 신문사들의 본사가 몰려 있다. 도심인 중구에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매일경제신문, 종로구에는 동아일보, 한국일보 본사가 있고, 마포구에는 한겨레가 위치하고 있다.

서울신문 – 1904년 7월 18일 창간. 대한매일신보를 근간으로 하는 신문사이다. (중구 세종대로 124)

조선일보 – 대한민국에서 가장 발행 부수가 많은 최대 일간지 (중구 태평로 1가 61번지)

동아일보 – 1920년 민족 자본으로 창간된 일간지 (종로구 세종로 139)

경향신문

한국일보

서울경제

한국경제신문

중앙일보

매일경제신문

한겨레

국민일보

세계일보 – 1989년 2월 1일 창간한 신문이다. (금천구 가산동 550-15)

문화일보 – 유일한 석간신문이다.

유적지 [ 편집 ]

고궁 [ 편집 ]

경복궁 – 조선 태조 4년 창건된 조선 왕궁. 세종 때 정궁. 임진왜란 때 불 탔으나 고종 2년(1865년)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에 의해 중건됨.

창덕궁 – 1405년(태종 5) 지어진 조선 왕궁.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창경궁 명정전 – 조선 왕들이 살았던 궁궐 중 하나이다. 창덕궁과 붙어 있다.

경희궁 흥화문 – 조선 궁궐 중 하나이다. 내부에 서울역사박물관이 있다.

덕수궁(전경) – 조선과 대한제국의 궁궐이다. 광무 연간 동안 대한제국의 정궁이었다.

서울시티투어버스는 광화문을 기점으로 서울의 중심 관광지를 순환하고 있다.

명소 [ 편집 ]

공원 [ 편집 ]

종교 시설 [ 편집 ]

주요 의료 기관 [ 편집 ]

서울대학교병원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 1885년 미국 선교의사 알렌(Dr. H. N. Allen)에 의해 세워진 한국 최초의 현대적 의료기관인 광혜원을 모태로 하는 의료기관이다. (규모: 2062개의 병상) [46]

서울아산병원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축제 [ 편집 ]

스포츠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서울특별시의 스포츠 입니다.

서울은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하계 올림픽, 1988년 하계 패럴림픽을 개최하였으며 2002년 FIFA 월드컵의 개막전과 4강전을 비롯한 총 3경기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치러졌다. 서울특별시 송파구에는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하계 올림픽의 개막식, 폐막식이 있었던 서울올림픽주경기장과 이를 기념하는 올림픽공원이 있으며, 마포구에는 월드컵공원이 있다. 노원구에는 종합선수합숙훈련장인 태릉선수촌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프로스포츠팀을 보유한 도시이며 특히 프로스포츠 양대 산맥인 프로축구 K리그와 프로야구 KBO 리그에서 1990년 럭키금성 황소와 LG 트윈스 그리고 2016년 FC 서울과 두산 베어스의 2차례 동반 리그 우승을 달성하였다.[47]

축구 [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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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 편집 ]

농구 [ 편집 ]

배구 [ 편집 ]

스포츠 시설 [ 편집 ]

교통 [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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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와 대중교통인 지하철, 버스, 택시 등이 주된 시내 교통 수단이다. 주요 환승지로는 1호선 서울역, 영등포역, 용산역,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센트럴시티, 동서울종합버스터미널, 남부터미널, 1,2호선 시청역, 2호선 강남역, 신도림역, 2,4호선 사당역 등이 있다. 2007년 말 기준으로 자동차 등록 대수는 2,933,286대로 수송 분담률은 2006년 기준으로 지하철 34.7%, 버스 27.6%, 택시 6.3%, 자가용이 26.3% 등이다. 1899년부터 운행하던 전차가 1968년 없어지면서 서울의 대중 교통 수단은 많이 달라졌다. 1966년부터는 시가지의 대폭적인 재개발로 건물의 고층화와 함께 도로의 입체화가 진전되었다. 대중 교통 수단의 재배치는 서울 도시 구조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쳐왔다. 대표적인 예로 1기 지하철, 특히 당초 계획과는 달리 거대 순환선으로 변경된 2호선이 서울의 공간에 끼친 영향을 들 수 있다.

도로 [ 편집 ]

여의도 근방을 통과하고 있는 올림픽대로의 모습

경부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 용인서울고속도로 등이 남쪽으로 이어져 있으며,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와 경인고속도로는 서쪽에 있는 인천광역시와 연결된다. 시 외곽에는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가 둘러싸고 있다. 도시 내부에는 강변을 따라가는 강변북로, 올림픽대로, 내부순환로, 동부간선도로, 서부간선도로, 남부순환로, 북부간선도로 등의 간선도로가 건설되어 있다.

강변북로[48]는 고양시와 파주시, 올림픽대로는 인천광역시와 부천시, 동부간선도로는 성남시와 의정부시, 서부간선도로는 안양시와 광명시, 북부간선도로는 구리시와 연결된다. 서울시내의 주요 도로로는 테헤란로, 세종대로, 종로, 강남대로, 시흥대로 등이 있다.

버스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서울특별시의 시내버스 입니다.

서울의 버스

서울시티투어버스

서울에서 버스가 처음으로 운행을 하기 시작한 때는 1928년으로, ‘경성 부영버스’라는 이름으로 10대를 운영했다. 1949년 17개 회사가 서울시로부터 면허를 받고 버스 운영에 뛰어들었다. 이후로 여러 차례의 확장과 개편을 거쳤으며, 2004년 서울특별시 버스 개편으로 버스 준공영제와 환승할인 제도가 도입되었다. 현재 시내버스, 간선버스, 마을버스, 광역버스 등을 포함한 수백개의 버스노선이 시내를 연결하고 있다.

택시 [ 편집 ]

서울에서 택시는 1912년에 처음 운행을 시작하였고, 1919년 최초의 택시회사가 설립되었으며, 1926년에는 미터기가 도입되었다. 8·15 광복 후에도 발전을 거듭하여 1970년 콜택시가 등장하고[49], 1988년에는 콜택시 대체용으로 도입된 중형택시[50], 1992년에는 모범운전수가 운전하고 콜택시를 도입하는 등 서비스 수준을 높인 모범택시가 선을 보였다.[51] 또한 2009년에는 소형택시 부활이 결정된 이후 2011년 12월부터 소형택시 70여대가 운행되고 있다.[52][53] 2015년 10월에는 고급택시가 운행을 시작했다. 2020년을 기준으로 서울시 소형택시의 기본요금은 2100원, 중형택시는 3800원, 모범택시는 5000원, 고급택시는 8000원이다.

철도 [ 편집 ]

서울역 주변 전경

서울은 한반도 철도의 중심지이다. 서울에서 다른 도시간을 잇는 철도 교통이 골고루 발달되어 있다. 지역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역이 나뉘어 있어, 서울역에서는 경부선과 경전선 KTX, 용산역에서는 호남선·전라선·장항선, 청량리역에서는 중앙선·태백선·영동선 강릉선열차가 출발한다. 그 외에도 영등포역 등의 중간역에서 열차를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인천국제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철도를 이용하여 서울역까지 접근할 수 있다. 또한 철도관제센터 또한 서울에 위치해 있어 그곳에서 대한민국 전역의 모든 철도를 총괄 관리 및 명령한다.

1968년 서울전차의 퇴역으로 이를 대신할 대중교통수단 건설이 논의되었고, 1974년 수도권 전철 1호선의 개통으로 본격적인 도시 철도 시대를 열었다. 1기 지하철 사업으로 2호선, 3호선과 4호선이 개통되었고, 그다음 2기 지하철 사업으로 5호선, 6호선, 7호선, 8호선이 새로 건설되어 추가되었다. 이후 9호선이 건설되면서, 2011년 현재 한국철도공사 관할 구간을 제외하고 9개 노선이 운행하고 있다. 서울의 도심과 부도심을 이어주며, 특히 서울 지하철 2호선의 개통은 서울의 공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서울 지하철 5호선의 경우에는 최초로 한강 아래로 터널을 뚫어 운행을 시작했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을 포함한 일부 노선은 한국철도공사의 수도권 전철과 연계 또는 직결 운행하여 서울 주변의 위성도시들을 연결한다.

항공 [ 편집 ]

동아시아 (일본,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 단거리 국제선과, 대한민국 국내선은 주로 김포국제공항을, 나머지 중장거리 국제선은 인천국제공항을 이용한다. 서울 도심에서 인천국제공항까지는 약 1시간 정도가 소요되며, 인천국제공항철도 또는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접근할 수 있다.

공항철도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인천국제공항철도 입니다.

인천국제공항철도(AREX)는 한국의 관문인 인천공항에서 서울도심을 가장 빠르게 연결해 주는 교통수단이며, 인천국제공항 교통센터 지하 1층 승강장에서 서울역행 직통, 일반열차 탑승이 가능하다. 공항철도를 이용하여 명동, 홍대입구, 동대문, DMC 등 주요 관광지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다. 인천공항에서 서울역까지 43분 소요되는 직통열차는 4인 이상 이용 시 그룹할인(6,000원/1인)이 가능하고, 항공사 이용객(대한항공, 아시아나, 제주항공), 국제학생증소지자 등 다양한 할인제도(6900원/명)를 시행하고 있다. (https://web.archive.org/web/20200428235346/https://www.arex.or.kr/) 현재 공항철도는 입국장 45번 부스 안내센터 및 교통센터 지하 1 층에서 트레블 센터를 운영 중에 있으며,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 중에 있다. 특히 주요 호텔까지의 Door to Door 서비스인 직통열차 + 인터내셔널 택시와 직통열차 + 티머니 카드 상품은 트래블 센터가 제공하는 인기 상품이다.

2007년 3월 23일 첫 운행을 시작한 공항철도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두 개의 국제공항(인천국제공항, 김포국제공항)과 도심을 연결하는 철도이다. 2007년 3월 1단계 구간(인천국제공항역(현 인천공항1터미널역)∼김포공항역, 37.6 km)을 개통한 뒤, 2010년 12월 29일 2단계 구간(김포공항역∼서울역, 20.4 km)을 개통했으며 이어 공덕역(2011.11.30)과 청라국제도시역(2014.06.21), 영종역(2016.3.26), 인천공항2터미널역(2018.1.13)을 개통함으로써 인천국제공항철도 건설사업이 마무리됐다. 현재 서울역∼인천공항2터미널역 간 63.8km의 영업거리에 총 14개역이 있으며 서울역에서는 도심공항터미널을 운영하고 있다.

공항철도 열차는 서울역∼인천공항1터미널역을 무정차로 43분에 운행하는 고급형 열차인 직통열차와 모든 역에 정차하는 일반열차(56분 소요)로 이원화 운영되고 있다. 운임은 인천공항1터미널역 ~ 서울역 구간의 경우 직통열차는 8,000원, 일반열차는 3,950원이다. 일반열차의 경우 수도권 대중교통 통합요금제에는 포함되어 있으나 영종도 구간 (운서역 ~ 인천공항2터미널역)에서는 별도의 요금제를 적용한다. 직통열차 이용객은 4인 이상 이용 시 그룹할인(6,000원/1인), 항공사 이용객(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국제학생증소지자 등 다양한 할인제도(6900원/명)를 시행하고 있다. (https://web.archive.org/web/20200428235346/https://www.arex.or.kr/) 또한 서울역에서는 도심공항터미널의 탑승수속 및 수하물 탁송(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출국심사 서비스가 무료로 제공된다.

공항철도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역간 거리가 길고 빠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63.8km 구간에 14개역이 위치해 있어 역간 평균거리가 5.3km에 달한다. 수도권 전철의 경우 역간 평균거리 1km내 외임을 감안할 때 공항철도는 모든 열차가 급행열차인 셈이다. 공항철도의 최대 운행 속도는 110 km/h로 역을 출발해 다음 역에 정차할 때까지의 표정속도가 70km로 수도권 전철에 비해 2배 이상 빠르다. 이로 인해 인천 서부권과 서울 도심(디지털미디어시티, 홍대입구, 공덕, 서울역 등)을 가장 빠르게 연결하여 등하교하는 학생과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에게도 사랑받고 있다.

수상 교통 [ 편집 ]

과거에는 뚝섬과 마포에 포구가 있어 번창하였으나, 육상교통이 발달되면서 자취가 사라졌다. 또한 노량도(서울 시흥)·양화도(서울 인천)·한남도(서울 용인)·송파도(서울 광주)·광나루(서울 광주) 등의 나루터가 있었으나 한강대교가 가설된 후부터 옛날의 나루터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한강 개발 이후가 된 후 관광용으로, 또한 통근용으로 수상 교통의 부활이 이루어졌다.

한강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1986년 10월 26일부터 관광용 한강 유람선 운행을 시작했다. 여의도와 잠실 등 8개 선착장에서 운행하고 있다.[54]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07년 10월 11일부터 한강 수상택시 운행을 시작했다. 여의도와 잠실 등 한강변 18개 승강장에서 운행하고 있으며, 교통수단 뿐만 아니라 관광용으로 이용되고 있었으나 운항정지 중이다.

자매 도시 [ 편집 ]

서울특별시는 2014년 2월 기준 20개국, 24개 해외 자매도시들과 교류를 하고 있다.[55]

각주 [ 편집 ]

외부 링크 [ 편집 ]

서울 Seoul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이다. 서울의 면적은 605㎢로서 도쿄의 23개 특별구와 비슷하며, 싱가포르와 뉴욕시보다 다소 작은 크기이다. 서울은 외사산과 내사산에 둘러싸인 분지의 지형이다. 그리고 수계로서 청계천, 중랑천, 홍제천, 안양천, 탄천 등의 지천이 한강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렇게 서울은 동서 간 37㎞, 남북 간 30㎞로, 산악지형의 분지에 입지하고 있고 주변이 1971년부터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어 이를 제외한 시가화면적은 도쿄나 뉴욕에 비해 상당히 작다. 그러나 인구는 1990년에 1,061만 명을 넘어 1992년 1,097만 명으로 피크를 보이다가 2010년에 979만 명으로 완만한 감소 추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최근 급격한 인구 증가를 보이고 있는 베이징보다 적으나, 도쿄 23개 구부나 뉴 욕, 런던보다는 많은 편이다.

서울시는 대도시권의 중심도시로서 인구밀도가 16,181명/㎢ 이며 21,289명/㎢인 파리를 제외하고는 도쿄 등 타 도시보다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서울대도시권은 서울시를 포함하여 인천광역시와 경기도를 포함하는 지역(수도권)을 의미하며, 도심으로부터 반경 70㎞에 이르는 11,819㎢의 면적 에 약 2,384만 명(2010년)이 살고 있다.

서울의 도시 역사는 백제의 수도로서 위례성이 서울 동남부의 한강변에 위치하였던 약 2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 후 오늘의 도시발전은 서울이 1394년 조선왕조 (1392~1910년)의 수도가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도시지역 이었던 사대문의 성곽 안과 성곽 밖 교외지역으로 이루어진 서울은 조선시대에 큰 변화 없이 약 20~30만 명 내외의 규모를 유지하였다.

서울은 19세기 말 개항과 함께 전기, 철도, 전차, 공원, 상수 도, 학교와 병원 등의 시설을 도입하면서 근대 도시로서의 틀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곧 일제강점기(1910~1945년)로 이어졌고, 점차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불량 정착촌 이 도시 곳곳에 형성되었고, 외곽지역이 급속히 편입되어 새로운 주거지로 변모해 나갔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서울시로 부르다가 1949년 8월 15일 서울특별시로 개칭되었으며, 한국전쟁(1950~1953년)으로 폐허가 되었다.

서울의 인구는 1942년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고 성곽 을 허물고 간선도로를 따라 시가지가 확장되어 나갔다. 해 방 후 급속한 도시화 과정을 거치면서 서울의 인구는 1968 년 4백만 명에 이르렀다. 이후 서울시는 국가의 경제성장과 함께 간선도로의 확장 및 연장, 청계고가도로 및 여의도 건 설, 각종 도시 재개발, 무허가 정착지에 시민아파트 건설 등 도시개발을 추진하였다.

1968년 전차를 걷어내고, 1974년 서울에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남북한 간의 긴장고조에 따라 서울의 도시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이 서울의 경계부에 환상으로 설정되었다. 그리고 서울 강북지역의 도시기능을 분산시키기 위하여 강남개발이 결정되었으며, 대대적인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시행되어 신 시가지로 탈바꿈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인구유입이 지속됨 에 따라 1963년 서울의 행정구역도 605㎢로 확장되었다.

1980년대에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유치함에 따라 적극적인 도시개선과 미화정책이 시행되었다. 잠실지역에 대규모 경기장들과 올림픽공원 및 선수촌 등 올 림픽 관련 시설의 대대적 건설, 한강의 종합개발계획과 한 강변에 강변북로 및 올림픽대로의 건설, 강남지역의 개발에 따른 한강 교량의 지속적 건설, 지하철 2, 3, 4호선의 연이은 개통, 도심부의 재개발 및 주택 재개발이 대표적인 사업이었다.

또한, 을지로와 테헤란로 도시설계에 의한 시가지의 정비 및 계획, 중산층의 폭발적인 주택수요에 대응한 강남, 목동, 고덕, 개포, 상계지역에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건설도 서 울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와 함께, 1988년에는 인구가 천 만 명을 넘어서기에 이르렀다. 1990년대에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어선 서울은 지하 철 5~8호선을 추가로 건설하였고, 고층건물들은 서울의 도심과 강남의 스카이라인을 바꾸어 놓았다. 그 이후 서울은 교외화와 광역화를 경험하면서 시가지가 경기도로 확산되었으며,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의 5개 신도시와 함께 교외지역이 끊임없이 개발되었다.

100년 전 성곽도시였던 서울은 엄청난 거대도시로 성장하였고, 청계천이 복원되고 서울광장 및 광화문광장 등이 건 설되었으며, 한양도성과 고궁들을 아우르는 역사도심을 유네스코에 등재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용산과 삼성동, 잠실, 상암 등에 100층 이상의 초고층 건축물의 건축이 논의 되고, 지하철 9호선과 신분당선의 광역급행노선이 건설되었으며, 중앙버스차로제가 도입되는 등 대중교통 체계가 개편 되었다. 또한, 남북통일에 대비하고 서울 도심과 부도심, 수도권 도시를 직접 연결하기 위한 광역급행노선이 검토되는 등 편리하고 신속한 대중교통체계를 공급하려고 하고 있다.

서울은 20세기 중반 들어 오늘날의 발전을 시작하였지만, 서구의 런던과 뉴욕은 20세기 초반에 이미 수백만의 인구를 가진 대도시였고, 이웃한 도쿄도 이미 100만을 훨씬 넘긴 대도시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울은 20세기 후반 들어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여 이들 도시보다 인구가 많은 대도시로 성장하였다. 이에 따라, 현재 서울은 대중교통, 도로, 상하수도 등 도시기반시설도 상당한 수준에 와 있으며, 최근에는 세계의 각종 도시경쟁력 평가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예로서, 서울은 일본 모리사가 발표하는 글로벌 파워도시 지수에서 세계 6위의 도시로 연이어 발표되고 있다.

반면, 최근 저성장 시대를 맞이하여 저출산, 고령화와 1·2 인 가구의 증가와 높은 주택 가격 때문에 인구의 경기도 이 주, 행정중심복합도시로의 행정기능과 공공기관의 이전 문제 등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여러 도시문제를 안고 있다. 이에 따라, 2030 서울플랜에서는 시민참여를 통해 ‘소통과 배려가 있는 행복한 시민도시’란 비전으로 5개의 이슈와 17개의 목표, 58개의 전략으로 통합하고, 공간구조 계획과 생활권계획으로 구체화하여 이를 실현하려고 하고 있다.

비교대상도시 소개

도시별 주요현황 Main Characteristics of 7 Cities 자료다운로드 | 엑셀 주 도시별 면적(행정구역)은 2010년을 기준으로 하되, 베이징은 2008년, 파리는 2012년 수치를 사용함

베이징시의 면적은 현재 전국제2차토지조사(全国第二次土地调查) 결과가 정식 발표되지 않았으므로, 2013년까지 2008년 기준으로 작성함

싱가포르의 면적은 섬 면적을 포함함

뉴욕의 면적은 강과 바다를 제외한 육지의 면적만 포함함

런던 면적은 테임즈강 등을 제외한 육지의 면적만 포함함

도시별 인구는 2010년을 기준으로 하되, 런던은 2011년 수치를 사용함

서울과 뉴욕의 인구는 외국인을 포함한 수치임

서울, 뉴욕, 도쿄의 인구는 인구센서스에 기반한 자료임

베이징의 인구총조사는 전체 도시지역 내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을 보유한 인구를 대상으로 실시 함. 상주인구는 실제 해당지역에 6개월 이상 거주하고 있는 인구를 나타내며, 법적인 호적인구와는 차이가 있음

싱가포르의 인구는 거주권자(residents)와 비거주권자(non-residents)의 합인 총인구(total population) 지표를 사용함 residents는 시민권자(citizens)와 영주권자(permenant residents)를 포함해 지칭함 non-residents는 영주권 없이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포함함

런던의 인구는 상시거주인구(usual resident population)를 대상으로 작성함

파리의 인구는 시 인구(population municipale) 지표를 사용함 파리의 총인구는 population municipale과 기타 인구(population copmtee a part)로 구성되나, 총 인구는 통계자료로 사용하지 않음 population municipale은 주 거주지 거주자 인구로 교도소 내 인구, 노숙자 모두를 포함함 population copmtee a part는 학업을 위해 학교에 기숙하는 미성년자, 양로원에 거주하는 노인 등 행정상으로 본 거주지가 있으나 타 도시에 거주하는 인구를 뜻함

강수량 평년값과 기온 평년값은 1981년부터 2010년까지 30년의 평균값을 원칙으로 함. 싱가포르의 경우 1984년부터 2010년까지를 산정함

GDP는 도시별 국가의 GDP이며,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 국제통화기금)가 World Economic Outlook Database(2014년 10월)를 기반으로 2015년 발표한 수치를 사용함 자료 서울 【면적】 국토해양부, 2010, 1-1.행정구역현황(전국), 국토해양통계연보 2010 ; 2010년 기준

【인구】 통계청, 인구·가구 및 주택-읍면동, 인구총조사 ; 2010년 기준

【강수량 및 기온 평년값】 http://cleanair.seoul.go.kr/climate.htm?method=year(서울특별시 대기환경정보 홈페이지), 1981~2010년 평년값 도쿄 【면적】 総務省統計局, 都道府県市区町村別主要統計表, 平成22年国勢調_査 ; 2010년 기준

【인구】 東京都, 2-3 地域別人口(大正9~平成25年), 東京都統計年鑑 平成25年 ; 2010년 기준

【강수량 및 기온 평년값】 http://weather.time-j.net/climate/chart/tokyo(오픈 데이터 비즈니스 연구회 홈페이지), 1981~2010년 평년값 베이징 【면적】 北京市统计局, 2013, 4-15 土地面积及利用状况(2008年), 北京统计年鉴2013 ; 2008년 기준

【인구】 中华人民共和国 國家統計局, 2013, 表1, 第六次人口普查分县数据(2010年) ; 2010년 기준

【강수량 및 기온 평년값】 北京市统计局, 2014, 4-17 气象情况(1978~2013年), 北京统计年鉴 2014, 1981~2010 년 평년값 싱가포르 【면적】 Singapore Land Authority, Total Land Area of Sigapore ; 2010년 기준

【인구】 Department of Statistics Singapore, 2014, Population Trends 2014, p.37 ; 2010년 기준

【강수량 및 기온 평년값】 National Environment Agency, 24 Hours Mean Temperature, 1984~2010년 평년값 National Environment Agency, Total Monthly Rainfall, 1984~2010년 평년값

뉴욕 【면적】 United States Census Bureau, 2012, 2010 Census Summary File1 G001: Geographic Identifiers ; 2010년 기준

【인구】 United States Census Bureau, 2012, 2010 Census Summary File 1 G001: Geographic Identifiers ; 2010년 기준

【강수량 및 기온 평년값】 National Weather Service, Average Monthly&Annual Precipitation at Central Park, Central Park·NY Historical Data, 1981~2010년 평년값 National Weather Service, Average Monthly & Annual Temperatures at Central Park, Central Park·NY Historical Data, 1981~2010년 평년값

런던 【면적】 Greater London Authority, 2015, Population Density(GLA estimates/projections), Land Area and Population Density ; 2010년 기준

【인구】 Office for National Statistics, 2012, Table 2, 2011 Census: Population and Household Estimates for the United Kingdom ; 2011년 기준

【강수량 및 기온 평년값】 http://www.metoffice.gov.uk/pub/data/weather/uk/climate/datasets/Rainfall/date/England_S.txt (MeT Office 홈페이지), 1981~2010년 평년값 http://www.metoffice.gov.uk/pub/data/weather/uk/climate/datasets/Tmean/date/England_S.txt (MeT Office 홈페이지), 1981-2010년 평년값

파리 【면적】 INSEE, 2015, Circonscriptions Administratives au 1er Janvier 2015, RP 2012; Code Officiel Geographique ; 2012년 기준

【인구】 INSEE, Populations Legales en Vigueur aCompter du 1er Janvier 2013, p.75-1 ; 2010년 기준

【강수량 및 기온 평년값】 http://meteo-climat-bzh.dyndns.org/departement75-1981-2010-1675-2012-4.php(METEO FRANCE 홈페이지), 1981~2010년 평년값 【GDP / 모든 도시】 http://www.imf.org/external/pubs/ft/weo/2014/02/weodata/index.aspx(International Mondtary Fund 홈페이지) ; 2015년 기준

서울 Seoul

이렇게 서울은 동서 간 37㎞, 남북 간 30㎞로, 산악지형의 분지에 입지하고 있고 주변이 1971년부터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어 이를 제외한 시가화면적은 도쿄나 뉴욕에 비해 상당히 작다. 그러나 인구는 1990년에 1,061만 명을 넘어 1992년 1,097만 명으로 피크를 보이다가 2010년에 979만 명으로 완만한 감소 추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최근 급격한 인구 증가를 보이고 있는 베이징보다 적으나, 도쿄 23개 구부나 뉴 욕, 런던보다는 많은 편이다.

서울시는 대도시권의 중심도시로서 인구밀도가 16,181명/㎢ 이며 21,289명/㎢인 파리를 제외하고는 도쿄 등 타 도시보다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서울대도시권은 서울시를 포함하여 인천광역시와 경기도를 포함하는 지역(수도권)을 의미하며, 도심으로부터 반경 70㎞에 이르는 11,819㎢의 면적 에 약 2,384만 명(2010년)이 살고 있다.

서울의 도시 역사는 백제의 수도로서 위례성이 서울 동남부의 한강변에 위치하였던 약 2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 후 오늘의 도시발전은 서울이 1394년 조선왕조 (1392~1910년)의 수도가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도시지역 이었던 사대문의 성곽 안과 성곽 밖 교외지역으로 이루어진 서울은 조선시대에 큰 변화 없이 약 20~30만 명 내외의 규모를 유지하였다.

서울은 19세기 말 개항과 함께 전기, 철도, 전차, 공원, 상수 도, 학교와 병원 등의 시설을 도입하면서 근대 도시로서의 틀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곧 일제강점기(1910~1945년)로 이어졌고, 점차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불량 정착촌 이 도시 곳곳에 형성되었고, 외곽지역이 급속히 편입되어 새로운 주거지로 변모해 나갔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서울시로 부르다가 1949년 8월 15일 서울특별시로 개칭되었으며, 한국전쟁(1950~1953년)으로 폐허가 되었다.

서울의 인구는 1942년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고 성곽 을 허물고 간선도로를 따라 시가지가 확장되어 나갔다. 해 방 후 급속한 도시화 과정을 거치면서 서울의 인구는 1968 년 4백만 명에 이르렀다. 이후 서울시는 국가의 경제성장과 함께 간선도로의 확장 및 연장, 청계고가도로 및 여의도 건 설, 각종 도시 재개발, 무허가 정착지에 시민아파트 건설 등 도시개발을 추진하였다.

1968년 전차를 걷어내고, 1974년 서울에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남북한 간의 긴장고조에 따라 서울의 도시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이 서울의 경계부에 환상으로 설정되었다. 그리고 서울 강북지역의 도시기능을 분산시키기 위하여 강남개발이 결정되었으며, 대대적인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시행되어 신 시가지로 탈바꿈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인구유입이 지속됨 에 따라 1963년 서울의 행정구역도 605㎢로 확장되었다.

1980년대에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유치함에 따라 적극적인 도시개선과 미화정책이 시행되었다. 잠실지역에 대규모 경기장들과 올림픽공원 및 선수촌 등 올 림픽 관련 시설의 대대적 건설, 한강의 종합개발계획과 한 강변에 강변북로 및 올림픽대로의 건설, 강남지역의 개발에 따른 한강 교량의 지속적 건설, 지하철 2, 3, 4호선의 연이은 개통, 도심부의 재개발 및 주택 재개발이 대표적인 사업이었다.

또한, 을지로와 테헤란로 도시설계에 의한 시가지의 정비 및 계획, 중산층의 폭발적인 주택수요에 대응한 강남, 목동, 고덕, 개포, 상계지역에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건설도 서 울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와 함께, 1988년에는 인구가 천 만 명을 넘어서기에 이르렀다. 1990년대에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어선 서울은 지하 철 5~8호선을 추가로 건설하였고, 고층건물들은 서울의 도심과 강남의 스카이라인을 바꾸어 놓았다. 그 이후 서울은 교외화와 광역화를 경험하면서 시가지가 경기도로 확산되었으며,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의 5개 신도시와 함께 교외지역이 끊임없이 개발되었다.

100년 전 성곽도시였던 서울은 엄청난 거대도시로 성장하였고, 청계천이 복원되고 서울광장 및 광화문광장 등이 건 설되었으며, 한양도성과 고궁들을 아우르는 역사도심을 유네스코에 등재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용산과 삼성동, 잠실, 상암 등에 100층 이상의 초고층 건축물의 건축이 논의 되고, 지하철 9호선과 신분당선의 광역급행노선이 건설되었으며, 중앙버스차로제가 도입되는 등 대중교통 체계가 개편 되었다. 또한, 남북통일에 대비하고 서울 도심과 부도심, 수도권 도시를 직접 연결하기 위한 광역급행노선이 검토되는 등 편리하고 신속한 대중교통체계를 공급하려고 하고 있다.

서울은 20세기 중반 들어 오늘날의 발전을 시작하였지만, 서구의 런던과 뉴욕은 20세기 초반에 이미 수백만의 인구를 가진 대도시였고, 이웃한 도쿄도 이미 100만을 훨씬 넘긴 대도시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울은 20세기 후반 들어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여 이들 도시보다 인구가 많은 대도시로 성장하였다. 이에 따라, 현재 서울은 대중교통, 도로, 상하수도 등 도시기반시설도 상당한 수준에 와 있으며, 최근에는 세계의 각종 도시경쟁력 평가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예로서, 서울은 일본 모리사가 발표하는 글로벌 파워도시 지수에서 세계 6위의 도시로 연이어 발표되고 있다.

반면, 최근 저성장 시대를 맞이하여 저출산, 고령화와 1·2 인 가구의 증가와 높은 주택 가격 때문에 인구의 경기도 이 주, 행정중심복합도시로의 행정기능과 공공기관의 이전 문제 등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여러 도시문제를 안고 있다. 이에 따라, 2030 서울플랜에서는 시민참여를 통해 ‘소통과 배려가 있는 행복한 시민도시’란 비전으로 5개의 이슈와 17개의 목표, 58개의 전략으로 통합하고, 공간구조 계획과 생활권계획으로 구체화하여 이를 실현하려고 하고 있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이다. 서울의 면적은 605㎢로서 도쿄의 23개 특별구와 비슷하며, 싱가포르와 뉴욕시보다 다소 작은 크기이다. 서울은 외사산과 내사산에 둘러싸인 분지의 지형이다. 그리고 수계로서 청계천, 중랑천, 홍제천, 안양천, 탄천 등의 지천이 한강으로 흘러가고 있다.이렇게 서울은 동서 간 37㎞, 남북 간 30㎞로, 산악지형의 분지에 입지하고 있고 주변이 1971년부터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어 이를 제외한 시가화면적은 도쿄나 뉴욕에 비해 상당히 작다. 그러나 인구는 1990년에 1,061만 명을 넘어 1992년 1,097만 명으로 피크를 보이다가 2010년에 979만 명으로 완만한 감소 추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최근 급격한 인구 증가를 보이고 있는 베이징보다 적으나, 도쿄 23개 구부나 뉴 욕, 런던보다는 많은 편이다.서울시는 대도시권의 중심도시로서 인구밀도가 16,181명/㎢ 이며 21,289명/㎢인 파리를 제외하고는 도쿄 등 타 도시보다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서울대도시권은 서울시를 포함하여 인천광역시와 경기도를 포함하는 지역(수도권)을 의미하며, 도심으로부터 반경 70㎞에 이르는 11,819㎢의 면적 에 약 2,384만 명(2010년)이 살고 있다.서울의 도시 역사는 백제의 수도로서 위례성이 서울 동남부의 한강변에 위치하였던 약 2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 후 오늘의 도시발전은 서울이 1394년 조선왕조 (1392~1910년)의 수도가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도시지역 이었던 사대문의 성곽 안과 성곽 밖 교외지역으로 이루어진 서울은 조선시대에 큰 변화 없이 약 20~30만 명 내외의 규모를 유지하였다.서울은 19세기 말 개항과 함께 전기, 철도, 전차, 공원, 상수 도, 학교와 병원 등의 시설을 도입하면서 근대 도시로서의 틀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곧 일제강점기(1910~1945년)로 이어졌고, 점차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불량 정착촌 이 도시 곳곳에 형성되었고, 외곽지역이 급속히 편입되어 새로운 주거지로 변모해 나갔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서울시로 부르다가 1949년 8월 15일 서울특별시로 개칭되었으며, 한국전쟁(1950~1953년)으로 폐허가 되었다.서울의 인구는 1942년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고 성곽 을 허물고 간선도로를 따라 시가지가 확장되어 나갔다. 해 방 후 급속한 도시화 과정을 거치면서 서울의 인구는 1968 년 4백만 명에 이르렀다. 이후 서울시는 국가의 경제성장과 함께 간선도로의 확장 및 연장, 청계고가도로 및 여의도 건 설, 각종 도시 재개발, 무허가 정착지에 시민아파트 건설 등 도시개발을 추진하였다.1968년 전차를 걷어내고, 1974년 서울에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남북한 간의 긴장고조에 따라 서울의 도시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이 서울의 경계부에 환상으로 설정되었다. 그리고 서울 강북지역의 도시기능을 분산시키기 위하여 강남개발이 결정되었으며, 대대적인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시행되어 신 시가지로 탈바꿈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인구유입이 지속됨 에 따라 1963년 서울의 행정구역도 605㎢로 확장되었다.1980년대에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유치함에 따라 적극적인 도시개선과 미화정책이 시행되었다. 잠실지역에 대규모 경기장들과 올림픽공원 및 선수촌 등 올 림픽 관련 시설의 대대적 건설, 한강의 종합개발계획과 한 강변에 강변북로 및 올림픽대로의 건설, 강남지역의 개발에 따른 한강 교량의 지속적 건설, 지하철 2, 3, 4호선의 연이은 개통, 도심부의 재개발 및 주택 재개발이 대표적인 사업이었다.또한, 을지로와 테헤란로 도시설계에 의한 시가지의 정비 및 계획, 중산층의 폭발적인 주택수요에 대응한 강남, 목동, 고덕, 개포, 상계지역에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건설도 서 울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와 함께, 1988년에는 인구가 천 만 명을 넘어서기에 이르렀다. 1990년대에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어선 서울은 지하 철 5~8호선을 추가로 건설하였고, 고층건물들은 서울의 도심과 강남의 스카이라인을 바꾸어 놓았다. 그 이후 서울은 교외화와 광역화를 경험하면서 시가지가 경기도로 확산되었으며,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의 5개 신도시와 함께 교외지역이 끊임없이 개발되었다.100년 전 성곽도시였던 서울은 엄청난 거대도시로 성장하였고, 청계천이 복원되고 서울광장 및 광화문광장 등이 건 설되었으며, 한양도성과 고궁들을 아우르는 역사도심을 유네스코에 등재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용산과 삼성동, 잠실, 상암 등에 100층 이상의 초고층 건축물의 건축이 논의 되고, 지하철 9호선과 신분당선의 광역급행노선이 건설되었으며, 중앙버스차로제가 도입되는 등 대중교통 체계가 개편 되었다. 또한, 남북통일에 대비하고 서울 도심과 부도심, 수도권 도시를 직접 연결하기 위한 광역급행노선이 검토되는 등 편리하고 신속한 대중교통체계를 공급하려고 하고 있다.서울은 20세기 중반 들어 오늘날의 발전을 시작하였지만, 서구의 런던과 뉴욕은 20세기 초반에 이미 수백만의 인구를 가진 대도시였고, 이웃한 도쿄도 이미 100만을 훨씬 넘긴 대도시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울은 20세기 후반 들어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여 이들 도시보다 인구가 많은 대도시로 성장하였다. 이에 따라, 현재 서울은 대중교통, 도로, 상하수도 등 도시기반시설도 상당한 수준에 와 있으며, 최근에는 세계의 각종 도시경쟁력 평가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예로서, 서울은 일본 모리사가 발표하는 글로벌 파워도시 지수에서 세계 6위의 도시로 연이어 발표되고 있다.반면, 최근 저성장 시대를 맞이하여 저출산, 고령화와 1·2 인 가구의 증가와 높은 주택 가격 때문에 인구의 경기도 이 주, 행정중심복합도시로의 행정기능과 공공기관의 이전 문제 등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여러 도시문제를 안고 있다. 이에 따라, 2030 서울플랜에서는 시민참여를 통해 ‘소통과 배려가 있는 행복한 시민도시’란 비전으로 5개의 이슈와 17개의 목표, 58개의 전략으로 통합하고, 공간구조 계획과 생활권계획으로 구체화하여 이를 실현하려고 하고 있다.

도쿄 Tokyo 도쿄는 일본의 수도로서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이다. 행정구역상 도쿄도는 23개 특별구의 구부지역과 그 서쪽 외곽의 타마지역 등을 포함하고 있다. 중심도시인 23개 구부지역은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과 유사한 규모의 시가화된 지역으로, 면적이 622㎢이며, 2010년 약 895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어 2000년의 813만 명에 비해 10%가 늘었다.

그러나 일본은 경제 저성장 추세로 돌아섰고, 금융기관의 이자율이 0%대로 낮아진 지 오래되었다. 2010년 인구의 분포를 보면 유소년 인구가 10.8%로 감소하여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며, 고령화율은 19.8%에 이르러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리고 도쿄대도시권은 도쿄도와 주변의 3개 현인 사이타마, 가나가와, 지바로 구성되어 있으며, 50~70㎞의 광범위한 통근권을 형성하고 있다. 지역적으로 구부의 서측에는 타마신도시가 건설되어 도쿄의 배후지 역할을 하고 있다.

도쿄대도시권은 면적 13,558㎢(국토의 3.6%)에 3,562만 명의 상당한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도쿄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그의 본부를 두었던 1603년 이래로 수도 역할을 해왔다. 그 이후 1868년에 메이지 황제가 도쿄로 옮겨오면서 이름도 도쿄로 개칭하였고, 일본의 공식적인 수도이자 중심지로 성장해왔다. 1889년까지 도쿄시는 15개의 구로, 1936년에 현재의 범위로 확대되었다. 그 이후 1943년 의회와 시장이 선출되어 도쿄는 처음으로 자치체가 되었으며, 1947년에 지방자치법에 따라 특별구가 총 23개 구로 늘었다. 1970년대에 들어 도쿄의 23개 특별구는 각각 구청장과 구의회를 투표로 선출하는 등 자치체로서 상당한 역할을 하기 시작하였다.

1872년 도쿄에서 최초의 철도가 개통되면서 시가지가 공간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이와 함께 교통망이 확충되면서 인구도 교외의 철도를 따라 분산되었다. 철도교통망이 발달하던 당시 도쿄는 통근자들이 야마노테선에서 환승하게 됨에 따라, 신주쿠, 이케부쿠로, 시부야 같은 철도 환승역이 부도심으로 성장하였다. 이와 함께 도쿄의 중심부는 1923년의 관동대지진과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시가지가 크게 훼손되어 정형화된 격자형 도시구조로 개조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한국전쟁과 월남전에 힘입은 일본의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라 도쿄는 대량의 인구유입으로 교외 팽창을 가속화시켰다. 그러한 가운데 1980년대 후반 들어 도심지역의 지가 상승으로 지가가 상대적으로 안정된 교외로 많은 사람이 이주하게 되어 교외 통근자가 많이 늘었다.

이 시기의 급속한 도시성장으로 도쿄는 집중과 분산의 두 가지 특성이 있었다. 인구는 도시외곽에서 성장하고, 고용은 도심부와 요코하마, 가와사키, 지바 등에서 증가하였다.

이에 따라 증가하는 주택수요를 채우기 위해 대형주택 개발사업이 철도 노선을 따라 방사상의 형태로 이루어졌으며, 자동차의 보급이 급증하면서 주요 간선도로를 따라 산업단지가 다양하게 형성되었다.

1980년대 거품경제의 호황기에 있었던 대규모 도시개발사업으로는 도쿄 도심과 나리타 국제공항 사이의 마쿠하리 신도시 개발사업, 하네다 국제공항의 확장, 도쿄의 임해 부도심을 가로지르는 해상고속도로 등이 있다.

2000년대 들어 대규모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중앙정부의 주도와 지방정부 및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로 시나가와, 시오도메, 록본기힐스 등이 개발되고 야간인구의 확보정책이 성과를 내면서 도심 인구가 상당히 증가하는 추세에 있으며, 인구의 도심회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도쿄의 도시계획 중 2009년에 개정된 도시만들기 비전을 보면, ‘세계의 모범이 되는 매력과 활력을 갖춘 환경선진도시 도쿄를 창조’하기 위해 도쿄는 국제경쟁력을 갖춘 도시활력의 유지 발전, 지속적 발전에 불가결한 지구환경과의 공생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광역 인프라인 공항과 항만의 기능 강화, 환상의 고속도로와 대중교통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 이와 함께, 2020년 도쿄올림픽을 유치해 도시발전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도쿄는 일본의 수도로서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이다. 행정구역상 도쿄도는 23개 특별구의 구부지역과 그 서쪽 외곽의 타마지역 등을 포함하고 있다. 중심도시인 23개 구부지역은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과 유사한 규모의 시가화된 지역으로, 면적이 622㎢이며, 2010년 약 895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어 2000년의 813만 명에 비해 10%가 늘었다.그러나 일본은 경제 저성장 추세로 돌아섰고, 금융기관의 이자율이 0%대로 낮아진 지 오래되었다. 2010년 인구의 분포를 보면 유소년 인구가 10.8%로 감소하여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며, 고령화율은 19.8%에 이르러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그리고 도쿄대도시권은 도쿄도와 주변의 3개 현인 사이타마, 가나가와, 지바로 구성되어 있으며, 50~70㎞의 광범위한 통근권을 형성하고 있다. 지역적으로 구부의 서측에는 타마신도시가 건설되어 도쿄의 배후지 역할을 하고 있다.도쿄대도시권은 면적 13,558㎢(국토의 3.6%)에 3,562만 명의 상당한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도쿄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그의 본부를 두었던 1603년 이래로 수도 역할을 해왔다. 그 이후 1868년에 메이지 황제가 도쿄로 옮겨오면서 이름도 도쿄로 개칭하였고, 일본의 공식적인 수도이자 중심지로 성장해왔다. 1889년까지 도쿄시는 15개의 구로, 1936년에 현재의 범위로 확대되었다. 그 이후 1943년 의회와 시장이 선출되어 도쿄는 처음으로 자치체가 되었으며, 1947년에 지방자치법에 따라 특별구가 총 23개 구로 늘었다. 1970년대에 들어 도쿄의 23개 특별구는 각각 구청장과 구의회를 투표로 선출하는 등 자치체로서 상당한 역할을 하기 시작하였다.1872년 도쿄에서 최초의 철도가 개통되면서 시가지가 공간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이와 함께 교통망이 확충되면서 인구도 교외의 철도를 따라 분산되었다. 철도교통망이 발달하던 당시 도쿄는 통근자들이 야마노테선에서 환승하게 됨에 따라, 신주쿠, 이케부쿠로, 시부야 같은 철도 환승역이 부도심으로 성장하였다. 이와 함께 도쿄의 중심부는 1923년의 관동대지진과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시가지가 크게 훼손되어 정형화된 격자형 도시구조로 개조하는 계기가 되었다.이후 한국전쟁과 월남전에 힘입은 일본의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라 도쿄는 대량의 인구유입으로 교외 팽창을 가속화시켰다. 그러한 가운데 1980년대 후반 들어 도심지역의 지가 상승으로 지가가 상대적으로 안정된 교외로 많은 사람이 이주하게 되어 교외 통근자가 많이 늘었다.이 시기의 급속한 도시성장으로 도쿄는 집중과 분산의 두 가지 특성이 있었다. 인구는 도시외곽에서 성장하고, 고용은 도심부와 요코하마, 가와사키, 지바 등에서 증가하였다.이에 따라 증가하는 주택수요를 채우기 위해 대형주택 개발사업이 철도 노선을 따라 방사상의 형태로 이루어졌으며, 자동차의 보급이 급증하면서 주요 간선도로를 따라 산업단지가 다양하게 형성되었다.1980년대 거품경제의 호황기에 있었던 대규모 도시개발사업으로는 도쿄 도심과 나리타 국제공항 사이의 마쿠하리 신도시 개발사업, 하네다 국제공항의 확장, 도쿄의 임해 부도심을 가로지르는 해상고속도로 등이 있다.2000년대 들어 대규모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중앙정부의 주도와 지방정부 및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로 시나가와, 시오도메, 록본기힐스 등이 개발되고 야간인구의 확보정책이 성과를 내면서 도심 인구가 상당히 증가하는 추세에 있으며, 인구의 도심회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도쿄의 도시계획 중 2009년에 개정된 도시만들기 비전을 보면, ‘세계의 모범이 되는 매력과 활력을 갖춘 환경선진도시 도쿄를 창조’하기 위해 도쿄는 국제경쟁력을 갖춘 도시활력의 유지 발전, 지속적 발전에 불가결한 지구환경과의 공생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광역 인프라인 공항과 항만의 기능 강화, 환상의 고속도로와 대중교통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 이와 함께, 2020년 도쿄올림픽을 유치해 도시발전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베이징 Beijing 베이징은 중국의 수도이자 16,411㎢에 이르는 광활한 면적을 가지고 있는 도시로서 우리나라의 수도권보다 크며, 도시지역만이 아니라 넓은 농촌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서쪽과 북쪽의 산악지형이 전체면적의 60%를 차지하고 나머지 면적은 평지로 베이징의 중심시가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이와 같이 베이징시의 행정구역은 대도시권으로 분류하였으며, 그 구성은 중심도시인 성육구의 6개 구와 도시 주변의 8개 구, 두 개의 현으로 되어 있다. 중심도시의 면적은 1,368㎢이며, 2010년의 인구는 1,172만 명으로 2000년의 850만 명에 비해 37.8% 급증하였다. 대도시권 인구도 2000년 1,357만 명에서 2010년에는 1,961만 명으로, 2014년에는 2,150만 명으로 성장하여 이 연구에서 비교하는 7개 도시 중 인구가 가장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도시이다.

베이징은 5천 년의 역사를 가진 고도로서 역사적으로 중국 대륙과 요동지방이 만나는 군사적, 정치적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국시대 이래 요, 금, 원, 명, 청나라 등 중국 역대 왕조의 수도였다. 연나라의 수도이던 베이징이 진시황 이래로 약 천 년 간 수도의 지위를 잃었지만 동북부 변경의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수양제나 당태종이 고구려를 침략할 때도 베이징은 중요한 근거지가 되었다. 그 이후, 거란족이 요나라를 건립하고 나서 남경(또는 연경)이라고 칭하였으며, 12세기 초반을 지나면서 금나라와 원나라의 수도가 되었다.

원은 베이징의 성곽 둘레를 29㎞로 하여 면적을 52㎢로 확장하였고, 이후 명나라와 청나라를 거치면서 수도로서 비약적으로 성장해 왔다.

천진조약 이후에 영국의 조차지였다가 1937~1945년간 일본에 강점되었던 베이징은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에 이어 1949년 모택동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다시 중국의 수도가 되었다. 1949년 공산정권이 수립된 후 행정기능의 위치를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으나, 소련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행정기능을 구도심의 남측과 자금성의 서쪽에 놓게 되었다. 이후 베이징의 중심도시 인구는 1980년 515만 명에서 1990년 657만 명, 2000년에 850만 명, 2010년에 1,172만 명으로 급속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베이징의 급격한 인구증가는 산업화에 원인이 있으며 이러한 다양한 산업의 성장과 함께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루어냈다.

경제성장을 수치로 보자면 1952~2008년까지 56년간 연평균 GDP 성장률이 10.7%에 달하며, GDP의 총량은 318배 증가하였다. 1인당 GDP는 2008년에 9,075달러에서 2013년에 14,838달러로 성장하여 세계를 다시 한 번 놀라게 하였다.

또한, 2000년대 들어 도시의 대규모 개발사업들을 보면, 금융가, IT산업의 중심지 중관촌, 중공업공장을 개조하여 문화산업단지로 변모시킨 798지구, 최근에 2008년 올림픽을 위해 건설한 올림픽촌과 대규모로 개발 중인 CBD 등이 대표적이다.

베이징의 도로망은 2환, 3환, 4환, 5환, 6환의 4각형 순환망과 장안가로 등 도시내부의 동서방향과 남북방향의 격자형 도로망을 들 수 있다. 이와 함께 2000년에는 2개 라인밖에 없던 지하철을 2013년에는 18개 라인을 갖추도록 대규모로 투자하였다. 또한, 최근에는 300㎞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는 고속철도 노선을 전국 각지로 연결하여 상하이까지 5시 간에, 광저우까지 10시간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경제성장과 인구증가는 도시개발의 부작용도 낳고 있다. 대중교통 중심도시로 개편하고자 하였지만 여전히 도시에서의 교통혼잡은 심각하며, 대규모 공해를 유발하는 제조업 등의 산업구조는 겨울철 석탄 중심의 난방구조와 함께 대기오염을 심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징진지계획은 공해를 유발하는 베이징의 전통산업기능을 주변의 허베이성 등으로 옮기고 베이징 내에는 첨단산업과 업무, 상업기능을 중심으로 하는 중심지를 구축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도시기본계획은 과거부터 여러 차례 있었으며, 개방경제 이후에는 1982년, 1992년, 2004년을 예로 들 수 있다.

2004년의 계획을 보면, 2020년의 목표인구를 1,800만 명으로 하고, 성육구 주변에 녹지기능을 강화해 도시성장 경계선을 설정하여 인구를 조절하려고 하고 있다. 최근에는 베이징시의 행정기능을 주변으로 이전하고, 도시경쟁력 차원에서 기존 공항에 더하여 서우두국제공항에 버금가는 제3의 신공항을 2025년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베이징은 이러한 내용 등을 담은 차기 도시기본계획을 마련 중이다. 베이징은 중국의 수도이자 16,411㎢에 이르는 광활한 면적을 가지고 있는 도시로서 우리나라의 수도권보다 크며, 도시지역만이 아니라 넓은 농촌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서쪽과 북쪽의 산악지형이 전체면적의 60%를 차지하고 나머지 면적은 평지로 베이징의 중심시가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이와 같이 베이징시의 행정구역은 대도시권으로 분류하였으며, 그 구성은 중심도시인 성육구의 6개 구와 도시 주변의 8개 구, 두 개의 현으로 되어 있다. 중심도시의 면적은 1,368㎢이며, 2010년의 인구는 1,172만 명으로 2000년의 850만 명에 비해 37.8% 급증하였다. 대도시권 인구도 2000년 1,357만 명에서 2010년에는 1,961만 명으로, 2014년에는 2,150만 명으로 성장하여 이 연구에서 비교하는 7개 도시 중 인구가 가장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도시이다.베이징은 5천 년의 역사를 가진 고도로서 역사적으로 중국 대륙과 요동지방이 만나는 군사적, 정치적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국시대 이래 요, 금, 원, 명, 청나라 등 중국 역대 왕조의 수도였다. 연나라의 수도이던 베이징이 진시황 이래로 약 천 년 간 수도의 지위를 잃었지만 동북부 변경의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수양제나 당태종이 고구려를 침략할 때도 베이징은 중요한 근거지가 되었다. 그 이후, 거란족이 요나라를 건립하고 나서 남경(또는 연경)이라고 칭하였으며, 12세기 초반을 지나면서 금나라와 원나라의 수도가 되었다.원은 베이징의 성곽 둘레를 29㎞로 하여 면적을 52㎢로 확장하였고, 이후 명나라와 청나라를 거치면서 수도로서 비약적으로 성장해 왔다.천진조약 이후에 영국의 조차지였다가 1937~1945년간 일본에 강점되었던 베이징은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에 이어 1949년 모택동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다시 중국의 수도가 되었다. 1949년 공산정권이 수립된 후 행정기능의 위치를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으나, 소련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행정기능을 구도심의 남측과 자금성의 서쪽에 놓게 되었다. 이후 베이징의 중심도시 인구는 1980년 515만 명에서 1990년 657만 명, 2000년에 850만 명, 2010년에 1,172만 명으로 급속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베이징의 급격한 인구증가는 산업화에 원인이 있으며 이러한 다양한 산업의 성장과 함께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루어냈다.경제성장을 수치로 보자면 1952~2008년까지 56년간 연평균 GDP 성장률이 10.7%에 달하며, GDP의 총량은 318배 증가하였다. 1인당 GDP는 2008년에 9,075달러에서 2013년에 14,838달러로 성장하여 세계를 다시 한 번 놀라게 하였다.또한, 2000년대 들어 도시의 대규모 개발사업들을 보면, 금융가, IT산업의 중심지 중관촌, 중공업공장을 개조하여 문화산업단지로 변모시킨 798지구, 최근에 2008년 올림픽을 위해 건설한 올림픽촌과 대규모로 개발 중인 CBD 등이 대표적이다.베이징의 도로망은 2환, 3환, 4환, 5환, 6환의 4각형 순환망과 장안가로 등 도시내부의 동서방향과 남북방향의 격자형 도로망을 들 수 있다. 이와 함께 2000년에는 2개 라인밖에 없던 지하철을 2013년에는 18개 라인을 갖추도록 대규모로 투자하였다. 또한, 최근에는 300㎞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는 고속철도 노선을 전국 각지로 연결하여 상하이까지 5시 간에, 광저우까지 10시간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이와 같은 경제성장과 인구증가는 도시개발의 부작용도 낳고 있다. 대중교통 중심도시로 개편하고자 하였지만 여전히 도시에서의 교통혼잡은 심각하며, 대규모 공해를 유발하는 제조업 등의 산업구조는 겨울철 석탄 중심의 난방구조와 함께 대기오염을 심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징진지계획은 공해를 유발하는 베이징의 전통산업기능을 주변의 허베이성 등으로 옮기고 베이징 내에는 첨단산업과 업무, 상업기능을 중심으로 하는 중심지를 구축하려고 하고 있다.그리고 도시기본계획은 과거부터 여러 차례 있었으며, 개방경제 이후에는 1982년, 1992년, 2004년을 예로 들 수 있다.2004년의 계획을 보면, 2020년의 목표인구를 1,800만 명으로 하고, 성육구 주변에 녹지기능을 강화해 도시성장 경계선을 설정하여 인구를 조절하려고 하고 있다. 최근에는 베이징시의 행정기능을 주변으로 이전하고, 도시경쟁력 차원에서 기존 공항에 더하여 서우두국제공항에 버금가는 제3의 신공항을 2025년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베이징은 이러한 내용 등을 담은 차기 도시기본계획을 마련 중이다.

싱가포르 Singapore 싱가포르는 말레이반도 남단 싱가포르섬에 위치한 도시국가이다. 싱가포르는 동남아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면적이 712㎢이며, 섬의 2/3가 해발 15m 이하의 평탄지이다. 인구는 2000년의 403만 명에서 2010년에는 508만 명으로 성장하였다. 싱가포르 센서스는 시민권자와 영주권자, 그리고 외국인을 포함하여 조사하여 발표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인구는 1920년의 42만 명에서 꾸준히 증가하여 1990년에 300만 명에 이르더니 최근에는 10년마다 100만 명 이상의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 중 인종분포를 보면 중국계가 가장 많아 대다수를 차지하며, 나머지는 말레이반도와 남아시아에서 온 이민자 등이다.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의 중요한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주변 지역으로부터 세력 갈등이 있었다. 14~15세기에는 자바 사람 등 여러 민족이 교대로 지배하다가 16세기부터는 세계 열강들의 식민지가 되었다. 16세기에는 포르투갈, 17세기에는 네덜란드의 지배하에 있다가, 1819년에는 영국의 기지가 되었다. 이에 따라 영국으로부터 싱가포르로 온 식민지 통치관 래플즈(Raffles)는 도시의 기능과 인종 간 커뮤니티를 계획적으로 배치하는 등 오늘날 중요한 도시계획의 토대를 놓았다.

그리고 그 이후인 19세기에 들어서는 영국의 주요한 교역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1차 세계대전에는 영국의 해군기지로서 역할을 했으며, 1942년부터 2차 세계대전 종전 때까지는 일본군의 식민지가 되었고 그 이후 다시 영국의 식민지와 말레이시아 연방이 되었다가, 1965년 독립을 선언하였다.

싱가포르는 영연방의 하나로 공화국 형태의 정부를 공식적으로 선포한 이후 동남아시아의 상업중심지가 되어 세계무역과 금융센터의 허브로 성장하였다. 싱가포르는 1970년대에 이르러 한국, 홍콩, 타이완과 함께 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 설명되면서 미국 등 서구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싱가포르는 보행자 중심의 도시중심부로부터 외곽으로 향하는 대중교통시스템으로 연결되는 에너지 효율적인 도시구조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도심과 주변지역을 지하철인 MRT(Mass Rapid Transit)와 경전철, 버스로 체계적으로 연결하고, 도시중심부에는 혼잡통행료를 징수하는 ERP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대중교통 우선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지하철 또는 경전철망을 추가로 공급하여 늘어나는 교통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아울러, 싱가포르는 세계화된 컨테이너 항구와 세계적으로 수송량이 많은 공항 중 하나인 창이국제공항을 갖추고 있어 국제적인 항구도시로서 손색이 없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주택개발국(Housing Development Board)은 인구증가에 대비한 주택정책의 하나로 고층아파트를 적시에 공급함으로써 주택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산업은 외국의 휴렛패커드, 마이크로소프트 등 첨단산업과 제조업은 물론 국제금융업이 발달해있고, 동남아 국가협의체(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 ASEAN)의 주요한 멤버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합계출산율이 1.15로 서울의 1.02보다 높은 수치를 보이며, 고령화율도 9.0%로 서울과 근사한 수치를 보이고 있다. 결국 싱가포르는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서울과 함께 겪고 있으면서도 서울보다 다소 나은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싱가포르는 국가개발부, 도시재개발청, 주택개발국이 역할을 분담하여 도시 및 주택 관리가 철저히 되고 있는 도시 중의 하나이다. 도시계획 체계는 1971년부터 10년마다 수립되고 있는 Concept Plan과 이를 구체화한 Master Plan으로 되어 있다. Concept Plan(2001, 2014)을 소개하면, ‘21세기의 월드클래스를 향하여’란 비전을 통하여 지속가능한 경제성장과 삶의 질이 높은 도시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도시에서의 새로운 주거와 고밀도시에서의 살기 좋은 경관, 여가의 다양한 선택, 비즈니스의 유연성, 세계적인 비즈니스센터, 철도네트워크의 연장,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는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말레이반도 남단 싱가포르섬에 위치한 도시국가이다. 싱가포르는 동남아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면적이 712㎢이며, 섬의 2/3가 해발 15m 이하의 평탄지이다. 인구는 2000년의 403만 명에서 2010년에는 508만 명으로 성장하였다. 싱가포르 센서스는 시민권자와 영주권자, 그리고 외국인을 포함하여 조사하여 발표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인구는 1920년의 42만 명에서 꾸준히 증가하여 1990년에 300만 명에 이르더니 최근에는 10년마다 100만 명 이상의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 중 인종분포를 보면 중국계가 가장 많아 대다수를 차지하며, 나머지는 말레이반도와 남아시아에서 온 이민자 등이다.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의 중요한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주변 지역으로부터 세력 갈등이 있었다. 14~15세기에는 자바 사람 등 여러 민족이 교대로 지배하다가 16세기부터는 세계 열강들의 식민지가 되었다. 16세기에는 포르투갈, 17세기에는 네덜란드의 지배하에 있다가, 1819년에는 영국의 기지가 되었다. 이에 따라 영국으로부터 싱가포르로 온 식민지 통치관 래플즈(Raffles)는 도시의 기능과 인종 간 커뮤니티를 계획적으로 배치하는 등 오늘날 중요한 도시계획의 토대를 놓았다.그리고 그 이후인 19세기에 들어서는 영국의 주요한 교역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1차 세계대전에는 영국의 해군기지로서 역할을 했으며, 1942년부터 2차 세계대전 종전 때까지는 일본군의 식민지가 되었고 그 이후 다시 영국의 식민지와 말레이시아 연방이 되었다가, 1965년 독립을 선언하였다.싱가포르는 영연방의 하나로 공화국 형태의 정부를 공식적으로 선포한 이후 동남아시아의 상업중심지가 되어 세계무역과 금융센터의 허브로 성장하였다. 싱가포르는 1970년대에 이르러 한국, 홍콩, 타이완과 함께 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 설명되면서 미국 등 서구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싱가포르는 보행자 중심의 도시중심부로부터 외곽으로 향하는 대중교통시스템으로 연결되는 에너지 효율적인 도시구조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도심과 주변지역을 지하철인 MRT(Mass Rapid Transit)와 경전철, 버스로 체계적으로 연결하고, 도시중심부에는 혼잡통행료를 징수하는 ERP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대중교통 우선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지하철 또는 경전철망을 추가로 공급하여 늘어나는 교통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아울러, 싱가포르는 세계화된 컨테이너 항구와 세계적으로 수송량이 많은 공항 중 하나인 창이국제공항을 갖추고 있어 국제적인 항구도시로서 손색이 없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싱가포르의 주택개발국(Housing Development Board)은 인구증가에 대비한 주택정책의 하나로 고층아파트를 적시에 공급함으로써 주택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산업은 외국의 휴렛패커드, 마이크로소프트 등 첨단산업과 제조업은 물론 국제금융업이 발달해있고, 동남아 국가협의체(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 ASEAN)의 주요한 멤버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싱가포르는 합계출산율이 1.15로 서울의 1.02보다 높은 수치를 보이며, 고령화율도 9.0%로 서울과 근사한 수치를 보이고 있다. 결국 싱가포르는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서울과 함께 겪고 있으면서도 서울보다 다소 나은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싱가포르는 국가개발부, 도시재개발청, 주택개발국이 역할을 분담하여 도시 및 주택 관리가 철저히 되고 있는 도시 중의 하나이다. 도시계획 체계는 1971년부터 10년마다 수립되고 있는 Concept Plan과 이를 구체화한 Master Plan으로 되어 있다. Concept Plan(2001, 2014)을 소개하면, ‘21세기의 월드클래스를 향하여’란 비전을 통하여 지속가능한 경제성장과 삶의 질이 높은 도시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도시에서의 새로운 주거와 고밀도시에서의 살기 좋은 경관, 여가의 다양한 선택, 비즈니스의 유연성, 세계적인 비즈니스센터, 철도네트워크의 연장,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는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뉴욕 New York 뉴욕시는 미국 동북부의 뉴욕주 동남 쪽 바다에 면하여 위치한 미국 최대 규모의 도시이다. 1524년 지오바니 다 베라자노(Giovanni da Verrazano)가 발견한 후, 1626년 네덜란드인들이 무역사무소를 설치하고 먼저 정착하여 뉴암스테르담으로 불리었다. 그 이후 1664년 영국이 이 지역을 장악하면서 찰스 2세가 형제 요크 공에게 이 땅을 주며 뉴욕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뉴욕이 최초의 수도가 되었다.

뉴욕시의 2010년 인구는 818만 명으로 2000년의 801만 명에 비해 2.1% 증가하였다. 면적은 784㎢로 서울보다 크며, 인구밀도는 10,430명/㎢로 7개 도시 중 중간 크기이다.

뉴욕시는 맨해튼(Manhattan), 브롱크스(Bronx), 브루클린(Brooklyn), 퀸스(Queens), 스태튼 아일랜드(Staten Island)의 5개 자치구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뉴욕대도시권은 뉴욕주의 나소(Nassau), 서퍽(Suffolk), 퍼트넘(Putnam), 웨스트체스터(Westchester)와 함께 뉴저지주의 록랜드(Rockland), 베르겐(Bergen), 파이크(Pike), 서섹스(Sussex), 퍼세이크(Passaic), 모리스(Morris) 등의 카운티와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주의 헌터든(Hunterdon) 카운티를 포함하여 뉴욕시를 둘러싸고 있는 광활한 면적의 MSA이다. 뉴욕대도시권의 2010년 인구는 1,890만 명으로 2000년의 1,832만 명에서 3.1% 증가하였다. 뉴욕대도시권의 면적이 17,319㎢이므로 인구밀도는 1,091명/㎢이다.

뉴욕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이 남과 북의 경계점에 위치한 워싱턴으로 수도를 옮기기로 하고 잠정적으로 필라델피아로 옮기면서 수도로서의 기능을 잃었다. 그러나 북미에서 제1도시를 놓고 필라델피아와 경쟁 중 1825년 이리운하의 개통으로 시카고 등 중서부지역의 곡창지대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져 결국 미국 최대의 도시로 성장하게 되었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뉴욕은 항구를 기반으로 하여 유럽의 다양한 기술과 문화의 수입, 내륙으로의 전파, 그리고 미국생산물의 수출기지라는 전략적인 위치에 입지하여 오늘날까지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뉴욕은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유럽으로부터의 많은 이민자 유입과 맨해튼 전역의 격자형 도시개발, 중앙의 넓은 센트럴파크 조성 등으로 현대적인 의미의 도시계획적 토대를 만들었다. 뉴욕은 세계의 금융과 보험, 무역, 기업경영의 국제중심도시이며, 미국의 경제, 사회, 문화, 예술의 중추도시이다. 특히, 뉴욕에는 일찍이 증권거래소와 미국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이 입지하여 월가를 형성하고 그 일대가 세계적인 금융가로 발전하였다.

아울러, 세계의 많은 법률, 광고, 정보, 하이테크, 디자인, 출판·인쇄 등의 생산자서비스 산업, 크라이슬러와 록펠러센터 등 미국의 자동차 및 전통 제조업의 다국적기업의 본사 등이 입지하였다. 이에 더하여 브로드가에는 연극과 뮤지컬산업이 발달하고, 센트럴파크 인근에는 링컨센터 등이 입지하는 등 예술과 문화, 오락 등 엔터테인먼트산업이 성장하였으며, 그 외 관광산업과 컨벤션산업 기업들이 입지하여 발달하고 있다.

1904년에 런던과 파리에 이어 뉴욕의 지하철이 개통된 후 최근까지 18개 노선이 개설되었으며, 버스 등 대중교통시설이 잘 발달되어 미국 도시 중 대중교통 중심도시로서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 특히, 맨해튼 진입을 위한 비싼 교통요금과 맨해튼 내에서의 비싼 주차요금은 이러한 대중교통 위주정책을 펴고 있는 뉴욕시의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이다.

뉴욕시의 도시기본계획으로는 기존의 전략계획(Strategic Plan) 외에 뉴욕시의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법정계획’으로서 2007년에 최초로 수립되고 2011년에 두 번째 수립된 PlaNYC가 있다. 이 계획은 2030년을 목표로 ‘더 푸르고 더 위대한 뉴욕시’를 모토로, 뉴욕이 처한 당면 문제인 성장에 대한 대응, 노후화된 기반시설, 열악해지는 환경문제에 대하여 10가지 핵심이슈, 11개 부문별 정책목표, 41개 기본전략과 132개 세부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핵심이슈는 주택·공원, 브라운필드, 교통, 에너지, 기후변화 등이다. 뉴욕시는 미국 동북부의 뉴욕주 동남 쪽 바다에 면하여 위치한 미국 최대 규모의 도시이다. 1524년 지오바니 다 베라자노(Giovanni da Verrazano)가 발견한 후, 1626년 네덜란드인들이 무역사무소를 설치하고 먼저 정착하여 뉴암스테르담으로 불리었다. 그 이후 1664년 영국이 이 지역을 장악하면서 찰스 2세가 형제 요크 공에게 이 땅을 주며 뉴욕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뉴욕이 최초의 수도가 되었다.뉴욕시의 2010년 인구는 818만 명으로 2000년의 801만 명에 비해 2.1% 증가하였다. 면적은 784㎢로 서울보다 크며, 인구밀도는 10,430명/㎢로 7개 도시 중 중간 크기이다.뉴욕시는 맨해튼(Manhattan), 브롱크스(Bronx), 브루클린(Brooklyn), 퀸스(Queens), 스태튼 아일랜드(Staten Island)의 5개 자치구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뉴욕대도시권은 뉴욕주의 나소(Nassau), 서퍽(Suffolk), 퍼트넘(Putnam), 웨스트체스터(Westchester)와 함께 뉴저지주의 록랜드(Rockland), 베르겐(Bergen), 파이크(Pike), 서섹스(Sussex), 퍼세이크(Passaic), 모리스(Morris) 등의 카운티와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주의 헌터든(Hunterdon) 카운티를 포함하여 뉴욕시를 둘러싸고 있는 광활한 면적의 MSA이다. 뉴욕대도시권의 2010년 인구는 1,890만 명으로 2000년의 1,832만 명에서 3.1% 증가하였다. 뉴욕대도시권의 면적이 17,319㎢이므로 인구밀도는 1,091명/㎢이다.뉴욕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이 남과 북의 경계점에 위치한 워싱턴으로 수도를 옮기기로 하고 잠정적으로 필라델피아로 옮기면서 수도로서의 기능을 잃었다. 그러나 북미에서 제1도시를 놓고 필라델피아와 경쟁 중 1825년 이리운하의 개통으로 시카고 등 중서부지역의 곡창지대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져 결국 미국 최대의 도시로 성장하게 되었다.19세기에 접어들면서 뉴욕은 항구를 기반으로 하여 유럽의 다양한 기술과 문화의 수입, 내륙으로의 전파, 그리고 미국생산물의 수출기지라는 전략적인 위치에 입지하여 오늘날까지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다.그리고 뉴욕은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유럽으로부터의 많은 이민자 유입과 맨해튼 전역의 격자형 도시개발, 중앙의 넓은 센트럴파크 조성 등으로 현대적인 의미의 도시계획적 토대를 만들었다. 뉴욕은 세계의 금융과 보험, 무역, 기업경영의 국제중심도시이며, 미국의 경제, 사회, 문화, 예술의 중추도시이다. 특히, 뉴욕에는 일찍이 증권거래소와 미국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이 입지하여 월가를 형성하고 그 일대가 세계적인 금융가로 발전하였다.아울러, 세계의 많은 법률, 광고, 정보, 하이테크, 디자인, 출판·인쇄 등의 생산자서비스 산업, 크라이슬러와 록펠러센터 등 미국의 자동차 및 전통 제조업의 다국적기업의 본사 등이 입지하였다. 이에 더하여 브로드가에는 연극과 뮤지컬산업이 발달하고, 센트럴파크 인근에는 링컨센터 등이 입지하는 등 예술과 문화, 오락 등 엔터테인먼트산업이 성장하였으며, 그 외 관광산업과 컨벤션산업 기업들이 입지하여 발달하고 있다.1904년에 런던과 파리에 이어 뉴욕의 지하철이 개통된 후 최근까지 18개 노선이 개설되었으며, 버스 등 대중교통시설이 잘 발달되어 미국 도시 중 대중교통 중심도시로서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 특히, 맨해튼 진입을 위한 비싼 교통요금과 맨해튼 내에서의 비싼 주차요금은 이러한 대중교통 위주정책을 펴고 있는 뉴욕시의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이다.뉴욕시의 도시기본계획으로는 기존의 전략계획(Strategic Plan) 외에 뉴욕시의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법정계획’으로서 2007년에 최초로 수립되고 2011년에 두 번째 수립된 PlaNYC가 있다. 이 계획은 2030년을 목표로 ‘더 푸르고 더 위대한 뉴욕시’를 모토로, 뉴욕이 처한 당면 문제인 성장에 대한 대응, 노후화된 기반시설, 열악해지는 환경문제에 대하여 10가지 핵심이슈, 11개 부문별 정책목표, 41개 기본전략과 132개 세부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핵심이슈는 주택·공원, 브라운필드, 교통, 에너지, 기후변화 등이다.

런던 London 런던광역시(Greater London)는 영국의 수도이자 유럽 최대 규모의 도시이며, 런던광역시(Greater London Authority)가 관할하고 있다. 런던광역시는 런던 중앙부의 구시가지인 City of London, 런던 내부의 12개 자치구, 런던 외곽의 20개 자치구를 더해 총 33개 자치구로 구성되어 있다.

2010년 중심도시인 런던광역시의 인구는 817만 명으로 2000년 717만 명에서 14% 증가한 수치이다. 런던광역시의 면적은 1,572㎢로 7개 도시 중 가장 넓으며, 서울의 2.6배에 달한다. 특히, 행정구역의 상당 부분이 오픈스페이스나 그린벨트로 되어 있으며, 인구밀도는 5,199명/㎢로 7개 도시 중 가장 낮은 편이다.

런던대도시권은 외곽의 그린벨트와 도시들을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는 런던 관할청(Government Office for London, South East, East)의 3개 청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면적이 27,189㎢로 7개 도시 중 대도시권 면적이 가장 넓다. 2010년의 인구는 2,027만 명으로 2000년의 1,839만 명에 비해 10.2% 증가했으며, 인구밀도는 745명/㎢로 가장 낮은 편이다.

런던광역시의 행정을 관할하는 광역지방정부의 존재 여부에 대해 마가렛 대처의 보수당 정부와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 정부 간에 큰 차이가 있다. 먼저, 대처 총리는 집권하자 1986년 대런던 시의회인 GLC(Greater London Council)를 폐지하였으나, 2000년에 런던광역시(Greater London Authority)를 다시 설립하였다. 그리고 대처 총리는 지역의 정치권을 33개 자치구에 위임함으로써, 지방행정과 정책결정을 런던시와 32개 자치구에 의해 이루어지게 했다. 1998년 토니 블레어 총리는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광역서비스의 제공을 위해 다시 광역지방정부의 설립을 제안하고, 시민들의 투표에 의해 런던 광역시장과 시의회의원을 선출하도록 하였다.

런던의 시작은 BC 1세기경 로마인이 런던시 지역에 전진기지를 세운 시기까지 올라가지만, 알프레드왕이 9세기경 런던을 수도로 정한 이후 중요한 중세도시로 발전하였다. 16세기 들어 런던거래소(Royal Exchange)가 설립되어 금융센터로 부상하였다.

런던은 17세기에 이르러 비약적인 발전의 계기를 맞았다. 먼저 1665년 런던시에 대규모의 페스트가 창궐하여 많은 인명피해를 주었고 그 이듬해에 런던을 거의 전소시킨 대화재가 발생하였다. 런던 대화재는 런던시의 도시계획을 새롭게 발전시킬 기회를 주었는데, 훌륭한 건축가인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 경에게 도시를 계획하게 한 것이다. 그는 대로를 포장하고 건물의 외장재료가 내화성 재료인 벽돌과 석조로 건축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1710년에는 성바울로 대성당(St. Paul’s Cathedral)을 설계하여 완공함으로써 런던을 복구시킨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런던은 17세기 동안 인구 50만 명의 세계무역 중심지로 성장하였고, 1800년대 말에 이미 450만 명에 이르러 세계 최대의 도시가 되었다. 그리고 1863년에 도시철도가 개통되고, 1890년에는 전철화가 되어 교외지역에까지 철도가 보급되었다. 이와 함께, 도시 중심부에 고밀도로 집중되었던 시가지가 자연스럽게 외곽으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파괴된 도심지역에서 바비칸센터가 재개발되었고, 1944년 아비크롬비(Abercrombie)가 수립한 대런던계획은 그린벨트를 지정하여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제어하고 도시개발을 시가지 안쪽으로 유도하였다. 그린벨트는 런던의 도심에서 약 16~24㎞의 거리에 16㎞의 폭을 유지함으로써 런던의 도시경계를 한정하였다.

대처 하에서 런던의 계획은 시장경제 논리 아래 경제 활성화와 고용창출이 주요한 과제로 등장하였다. 그 대표적인 사업이 도크랜드 재활성화사업과 밀레니엄 돔, 원 캐나다스퀘어 건물 등이다.

2004년, 2008년, 2011년에 수정된 런던계획은 2031년을 목표로 모든 사람과 기업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고품격의 환경기준과 삶의 질 추구, 21세기 도시문제를 해결하는데 리더십을 갖는 제1의 세계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6개의 계획목표로 경제와 인구성장문제 해소, 국제 경쟁력 제고, 안전하고 접근성이 양호한 공동체, 건물과 거리의 보전 및 오감만족, 환경개선의 세계적 리더, 일자리에 접근이 쉽고 편리한 도시를 제시하고 있다. 런던광역시(Greater London)는 영국의 수도이자 유럽 최대 규모의 도시이며, 런던광역시(Greater London Authority)가 관할하고 있다. 런던광역시는 런던 중앙부의 구시가지인 City of London, 런던 내부의 12개 자치구, 런던 외곽의 20개 자치구를 더해 총 33개 자치구로 구성되어 있다.2010년 중심도시인 런던광역시의 인구는 817만 명으로 2000년 717만 명에서 14% 증가한 수치이다. 런던광역시의 면적은 1,572㎢로 7개 도시 중 가장 넓으며, 서울의 2.6배에 달한다. 특히, 행정구역의 상당 부분이 오픈스페이스나 그린벨트로 되어 있으며, 인구밀도는 5,199명/㎢로 7개 도시 중 가장 낮은 편이다.런던대도시권은 외곽의 그린벨트와 도시들을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는 런던 관할청(Government Office for London, South East, East)의 3개 청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면적이 27,189㎢로 7개 도시 중 대도시권 면적이 가장 넓다. 2010년의 인구는 2,027만 명으로 2000년의 1,839만 명에 비해 10.2% 증가했으며, 인구밀도는 745명/㎢로 가장 낮은 편이다.런던광역시의 행정을 관할하는 광역지방정부의 존재 여부에 대해 마가렛 대처의 보수당 정부와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 정부 간에 큰 차이가 있다. 먼저, 대처 총리는 집권하자 1986년 대런던 시의회인 GLC(Greater London Council)를 폐지하였으나, 2000년에 런던광역시(Greater London Authority)를 다시 설립하였다. 그리고 대처 총리는 지역의 정치권을 33개 자치구에 위임함으로써, 지방행정과 정책결정을 런던시와 32개 자치구에 의해 이루어지게 했다. 1998년 토니 블레어 총리는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광역서비스의 제공을 위해 다시 광역지방정부의 설립을 제안하고, 시민들의 투표에 의해 런던 광역시장과 시의회의원을 선출하도록 하였다.런던의 시작은 BC 1세기경 로마인이 런던시 지역에 전진기지를 세운 시기까지 올라가지만, 알프레드왕이 9세기경 런던을 수도로 정한 이후 중요한 중세도시로 발전하였다. 16세기 들어 런던거래소(Royal Exchange)가 설립되어 금융센터로 부상하였다.런던은 17세기에 이르러 비약적인 발전의 계기를 맞았다. 먼저 1665년 런던시에 대규모의 페스트가 창궐하여 많은 인명피해를 주었고 그 이듬해에 런던을 거의 전소시킨 대화재가 발생하였다. 런던 대화재는 런던시의 도시계획을 새롭게 발전시킬 기회를 주었는데, 훌륭한 건축가인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 경에게 도시를 계획하게 한 것이다. 그는 대로를 포장하고 건물의 외장재료가 내화성 재료인 벽돌과 석조로 건축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1710년에는 성바울로 대성당(St. Paul’s Cathedral)을 설계하여 완공함으로써 런던을 복구시킨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런던은 17세기 동안 인구 50만 명의 세계무역 중심지로 성장하였고, 1800년대 말에 이미 450만 명에 이르러 세계 최대의 도시가 되었다. 그리고 1863년에 도시철도가 개통되고, 1890년에는 전철화가 되어 교외지역에까지 철도가 보급되었다. 이와 함께, 도시 중심부에 고밀도로 집중되었던 시가지가 자연스럽게 외곽으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2차 세계대전 이후 파괴된 도심지역에서 바비칸센터가 재개발되었고, 1944년 아비크롬비(Abercrombie)가 수립한 대런던계획은 그린벨트를 지정하여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제어하고 도시개발을 시가지 안쪽으로 유도하였다. 그린벨트는 런던의 도심에서 약 16~24㎞의 거리에 16㎞의 폭을 유지함으로써 런던의 도시경계를 한정하였다.대처 하에서 런던의 계획은 시장경제 논리 아래 경제 활성화와 고용창출이 주요한 과제로 등장하였다. 그 대표적인 사업이 도크랜드 재활성화사업과 밀레니엄 돔, 원 캐나다스퀘어 건물 등이다.2004년, 2008년, 2011년에 수정된 런던계획은 2031년을 목표로 모든 사람과 기업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고품격의 환경기준과 삶의 질 추구, 21세기 도시문제를 해결하는데 리더십을 갖는 제1의 세계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6개의 계획목표로 경제와 인구성장문제 해소, 국제 경쟁력 제고, 안전하고 접근성이 양호한 공동체, 건물과 거리의 보전 및 오감만족, 환경개선의 세계적 리더, 일자리에 접근이 쉽고 편리한 도시를 제시하고 있다.

서울특별시_1인당 거주면적 통계_20071231

서울특별시_1인당 거주면적 통계

2007년 생산종료. 서울시 인구 1인당 거주면적을 제공하는 일반ㆍ가공통계입니다. 서울시 자치구별 주택평균 면적과 평균 가구원수 산출을 통해 1인당 거주 면적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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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4천 ha 불타‥서울 면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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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경북 울진과 강원도 일대 대규모 산불이 사흘째 계속되고 있습니다.산림당국은 진화헬기를 투입해 큰불을 잡는데 주력하고 있는데요.지금까지 피해 면적은 1만 4천 헥타르로, 서울시 면적의 1/4에 달합니다.먼저 이 시각 현재 산불 상황을 김지인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현재 전국 7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산불 진화 작업이 벌어지고 있습니다.경기도 안산 수리산 산불은 24시간여 만에 90%가량 진화됐지만, 다른 지역에선 여전히 불길이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전국적으로 가장 피해가 심한 곳은 경북 울진과 강원 지역.그제 오전 11시쯤,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서 시작한 불은, 거센 바람을 타고 남북 양방향으로 삽시간에 번지면서, 50시간 넘게 진화 작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산림당국은 현재 전국적으로 진화헬기 90여 대와, 산림청 산불재난특수진화대 등 1만 7천여 명을 투입해 총력 대응하고 있습니다.다행히 한울원자력발전소와 삼척LNG 생산기지는 피해가 없지만, 울진 고성리와 소광리 등 조선시대부터 버텨온 금강송 군락지는 5백 미터 앞까지 불길이 근접해 있습니다.지금까지 인명피해는 없지만, 울진 지역 388곳, 강릉과 동해 등에서 75곳이 소실됐습니다.또 근처 주민 4천6백여 세대, 7천3백여 명이 임시거주 시설 등으로 긴급 대피했습니다.어제 새벽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에서 60대 남성의 방화로 시작된 산불은 2시간여 만에 동해시로 옮겨붙었습니다.다만 오늘 오전 이 일대 강풍특보가 해제되면서 진화 작업은 더욱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최병암 / 산림청장]”오후 12시 이후에는 바람 방향이 북풍으로 바뀌고, 풍속도 좀더 낮아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좀더 공세적인 산불 진화작전할 예정이고요.”전체 산림피해 면적은 1만 4천여 헥타르로, 서울시 면적의 1/4에 달해 완전 진화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산불로 인해 전면 통제됐던 동해고속도로와 동해안 7번 국도, 동해-강릉을 오가는 열차는 오늘부터 운행이 재개됐습니다.MBC뉴스 김지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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