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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의 숲 해석 |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 By 무라카미 하루키 한번에 끝내기 (문학줍줍 책 요약 리뷰 | Book Review) 인기 답변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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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노르웨이의 숲>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이고, 주된 주제는 닿을 수 없는 여주인공 ‘나오코’에 대한 그리움과 여러 인물과 부대끼는 젊은 와타나베의 외로움과 고독함, 그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의 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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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일본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입니다.
* 출판사 : 민음사
#하루키 #무라카미하루키 #일본문학 #상실의시대 #노르웨이의숲 #책리뷰 #북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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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 by 무라카미 하루키 한번에 끝내기 (문학줍줍 책 요약 리뷰 | Book Review)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노르웨이 의 숲 해석

  • Author: 문학줍줍
  • Views: 조회수 46,272회
  • Likes: 좋아요 936개
  • Date Published: 2020. 5. 15.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Ax6bEnDD-qs

<노르웨이의 숲>, 시대에 남긴 외로움에 대한 코멘트

같은 번역이지만 다른 버전으로 나온 민음사 판본. 문학사상에서 나온 ‘상실의 시대’ 판본도 유명하나, 이번에 읽은 것은 민음사 판본이라 두 가지를 걸어둔다. (이미지 출처:민음사)

“나를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내가 존재하고 이렇게 네 곁에 있었다는 걸 언제까지나 기억해 줄래?”

“물론. 언제까지나 기억할 거야.”

(본문 22p)

2016년,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집필한 ‘노르웨이의 숲’이 30주년을 맞아 리커버 에디션으로 한국에 출판되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이 2021년 1월 28일이니, 전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 소설이 벌써 35주년을 맞이한다는 소리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지금 기준에서 상당히 오래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컨텐츠가 빠르게, 다량으로 소모되는 요즘 시대에서는 고전의 반열에 오르기에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 해도 무리가 아닐 듯 싶다. (출판사가 그것을 인지하였는지는 모르지만, 노르웨이의 숲 뿐만 아니라 무라카미 하루키의 또 다른 대표작 태엽 감는 새 연대기도 본사 세계문학전집으로 다시 출판했다. 이것도 언젠가 읽어볼 생각이다.)

나는 여태까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과는 상당히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대표작이 전부 장편인데다가,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1Q84의 압도적인 분량이 기억에 많이 남아 있어서 시도해보려고 하지도 않고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읽고, ‘문장은 잘 쓰는데 이야기가 이게 뭐야’하는 감상을 남은 기억이 있을 정도니까. 그리고 20살이 된 2020년 생일에, 나와 마찬가지로 책을 좋아하는 지인에게 이 책을 선물 받았다. (이 지인에게 이번에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도 선물받았다. 그것도 다 읽으면 마찬가지로 여기에 글을 남길 셈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정직하다. 1980년대에 나온, 남성 소설가에 의해 쓰인,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20대 초반 남자 주인공의, 사랑과 이별, 죽음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이것 그대로가 담긴 소설이다. 문장은 단정하고 시니컬하며, 캐릭터와 대화는 실감나고 시대에 대한 묘사도 꼼꼼하다. 우리는 이것을 보통 ‘잘 쓰인 소설’이라고 불린다. 잘 쓰인 소설이 오래되면 고전이 되니, <노르웨이의 숲>은 모던-클래식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의 이야기다. 그렇지만 저 위에 반점으로 분리해둔 키워드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 1980년대에 쓰여졌기 때문에 성 인지 감수성과 감성이 더 이상 현대적이지 않다. 특히 여성 캐릭터를 그려내는 방식이 현대의 독자들에게는 굉장히 거북하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둘.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당시 일본의 사회상을 실감나게 묘사하였다. 어느정도 그 때의 분위기를 알아야 소설에 몰입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셋. 사랑과 이별, 죽음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이것만큼은 진실되며 변하지 않는 가치다.

이런 점때문에 이 이야기의 많은 것들이 걸린다. 읽고 나서 좋은 독서 여행이었음을 실감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책 표지를 덮은 뒤 ‘2021년에 읽기에는 좀…’과 같은 소리가 지금 나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시대를 풍미한 것들은 모두 시간이 지나며 퇴색되기 마련이다. 그것은 모든 고전들이 지나가는 통과의례다. 노르웨이의 숲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코멘트를 달자면, 앞으로 이 소설은 고독과 함께 방랑하는 청춘과 계속 있을 것이다. 재즈와 비틀즈를 사랑하고,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길 좋아하며 쓸쓸함이 유독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 언젠가 운명처럼 만나게 될 소설이 바로 <노르웨이의 숲>이다. 자학처럼 들렸다면 내가 올바르게 쓴 것이다.

서론이 길었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가득한 감상이다. 소설을 읽고 난 뒤 분노에 휩싸인 채로 적어내려가는 것이니, 비판적이고 비관적인 어투로 적혀있다는 것을 감안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썼다고 해도, 이 책을 꽤 감명 깊게 읽었고 어쩌면 다시 찾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알아주길 바란다. 지인의 말을 인용하자면, 나도 이 책으로 인해 ‘하루키의 저주’에 걸리게 되었으니까.

(♬The Beatles – Norwegian Wood♬)

서른 일곱살 주인공 와타나베. 그는 독일로 향하고 있었고, 보잉 747기에 앉아서, 비행기에서 흘러나오는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를 듣고 과거를 회상한다. 그의 젊은 시절에 함께 했던 연인, ‘나오코’를 추억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대학에 막 입학하여 문학을 공부하는 주인공 와타나베의 추억은 기쁨보다는 슬픔이, 충만함보다는 외로움과 고독함이, 삶의 환희보다는 죽음의 불안이 담겨 있다.

대학에 다니는 와타나베는 같은 고향 출신인 나오코와 친하게 지내며 연애 관계에 골인하기까지 이른다. 그들은 ‘기즈키’라는 친구를 사고로 잃어버린 아픔을 공유하고 있는 사이였고, 대학에서 다시 만나 좋은 사이가 된다. 그렇지만 나오코는 기즈키가 죽은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여 정신병에 걸리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시설’에 들어가게 된다. 그동안 와타나베는 발랄하지만 변덕스러운 ‘미도리’와 만나 미묘한 관계를 이어가고, 가끔 나오코가 있는 시설에 가서 ‘레이코 씨’와 함께 나오코를 위로하고 시설의 일을 돕는 등 일상을 보낸다. 여기까지가 중반의 줄거리.

소설을 읽은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소설은 선정적인 장면이 많이 나온다. ‘신조차 모독하는 지상 최강의 야스머신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모 커뮤니티가 붙여준 별명답게, <노르웨이의 숲>에는 섹스 이야기가 정말 많다. 자, 차근차근 짚어보자. 소설 초반. 와타나베의 선배인 나가사와는 여자친구가 있음에도 여러 여자들과 원나잇을 즐기는 플레이보이로, 와타나베는 그의 소개로 어쩌다 낯선 여자들과 자게 된다. 처음에는 감흥이 없다가, 나오코의 생일에 벌어진 모종의 사건 이후 관계가 소원해지자 나가사와와 함께 여자들을 ‘헌팅’한다.

“나는 여자들과 자면서도 늘 나오코 생각을 했다. 어둠 속에 하얗게 떠오르는 나오코의 벗은 몸과 내뿜는 숨결, 빗소리를 생각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할수록 내 몸은 더욱 굶주림과 목마름에 떨었다.” (본문 93p)

어..음..네.

소설이라는 매체에서 선정적인 장면을 사용하는 걸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 욕망, 관계를 외적으로 표현하는데 이야기 상에서 필요한 도구가 있다면 그건 바로 섹스일 것이다. 그런데 <노르웨이의 숲>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이고, 주된 주제는 닿을 수 없는 여주인공 ‘나오코’에 대한 그리움과 여러 인물과 부대끼는 젊은 와타나베의 외로움과 고독함, 그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의 초상이다. 즉, 주인공에게 이입해야 쓸쓸하고 서정적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데 이런 지점에서 현대의 독자들은 이탈해버리고 만다.

그리고 나오코의 몸을 묘사하는 것에도 부적절한 것이 많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성의 몸을 자꾸만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숭배하려 들며, 그것을 나오코를 향한 와타나베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다음과 같은 예시를 보자.

“이 얼마나 완벽한 육체인가. 나오코가 어느새 이리도 완벽한 육체를 갖게 된 걸까? 그 봄날 밤에 내가 안았던 그녀의 육체는 도대체 어디로 가버렸을까?” (266p)

“지금 내 앞에 있는 나오코의 몸은 그때와 완전히 달랐다. 나오코의 몸은 몇 가지 변모를 거친 끝에 지금 이렇게 달빛 속에서 완벽한 육체로 새로 태어났다고 나는 생각했다.” (268p)

으음……….

이런 반박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면 그 육체를 찬미할 수도 있고,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렇지만 나오코가 작중에서 어떤 인물로 사용되고 있을까?

작중 나오코는 와타나베가 하는 사랑의 대상이며, 능동적인 면보다는 수동적으로 휘둘리는 면모를 보인다. 사랑했다고 봐도 좋을 ‘기즈키’의 자살 이후 우울에 빠져 슬픔에 헤어나오지 못하며, 와타나베가 ‘시설’에 편지를 보내거나 찾아와서 함께 자거나 하지 않으면 우울해하기만 하는, ‘대상화된 우울한 여성 캐릭터’다.

<노르웨이의 숲>의 나오코를 ‘비탄에 빠진 성녀 캐릭터’라고 칭하고 싶다. 이것을 설명하자면, 남자 주인공에 의해 숭배되지만 그 자체로는 우울에 빠져 있고 그로 인해 남자 주인공의 반동을 이끌어내는 캐릭터라는 뜻이다. 그리고 실제로, 소설의 결말에서 나오코가 죽음으로 인해 와타나베는 어두운 시대를 살아낸 청소년에서, 삶을 살아가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나오코와 함께 지내던, 열 네살 차이 나는 레이코와의 격정적인 섹스와 함께.

다음으로 넘어가보자. 짤막하게 나오는 레이코의 서사를 비판할 시간이다. 작중 레이코는 어딘가 병들어있는 어른으로 나온다. 나오코와 함께 시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그는 트라우마로 인해 피아니스트를 그만둔 충격으로 불행한 삶을 살게 된 인물이다. 시설에서 치료를 받다가 나와서, 피아노 학원 선생이 되어 가르치던 한 살 어린 학생과 만나 결혼하여 행복하게 지내나 싶더니, 어떤 사건으로 인해 완전히 나락으로 몰락하게 된다.

자신보다 피아노를 잘 치는 천재 학생이 등장한다. 열 세 살. 그는 좋지만은 않은 가정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로, 폭력의 불안에 시달려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자연스레 자신을 칭찬해주기도 하고 잘못된 걸 바로잡아주는 피아노 학원 선생인 레이코에게 의지하고 학원을 좋아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열 세살 꼬마가(??) 그를 성적으로 유혹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연히 레이코는 어른이니 아이를 거부하고 내치지만, 아이는 반대로 레이코가 폭력적으로 자신에게 강요했다며 부모에게 거짓 해명을 한다. 레이코가 살던 곳에 그가 레즈비언이자 정신병원 입원 경력이 있다는 소문이 곡해되어 퍼지고, 남편과의 다툼이 이어진다. 여자아이 하나 때문에 가정이 망가진 것이다. 그리고 레이코는 타인이 두려워져 다시 시설로 가게 된다.

하아………

작중에는 아이가 선천적인 동성애자라는 것을 넌지시 알리기도 하고, 레즈비언이라는 존재를 지우지 않는다. 그러나 그게 전부다. <노르웨이의 숲>에 등장하는 레즈비언 장면은 전부 퀴어를 대상화하고 이해하지 못한 채로 집필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안일함의 나열이다. 무엇보다 ‘아이가 동성 어른을 성적으로 유혹한다’는 장면은 작위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작가가 일부러 ‘여자아이의 악마화’를 하고 있지 않나고 생각될 정도로.

작품에서 와타나베가 만난 여성 등장인물 중에는 ‘미도리’도 있다. 발랄하지만 성적으로 개방되어 있고, 와타나베에게 야한 얘기를 자주 하며 자유로운 삶을 사는 인물로 그려진다. 소설에서 ‘미도리’는 남성들이 주로 편견을 씌우는 ‘가벼운 여성’의 이미지에 부합한다. 깐깐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자주 실망하고 멋대로 거리를 벌리다가도, 문득 외로움을 느껴 다시 누군가에게 연락을 걸고 마는. 이렇듯 남성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점에서 그려진 여성 캐릭터는 생동감 있기 보다는 평면적이고, 예측할 수 있는 패턴에 가깝다. 뇌졸중에 걸린 아버지를 간호하는 반전 매력도 이제는 그렇게 새롭지 않다.

소설의 결말은 여러 가지 방면에서 인상적이다. 나오코는 결국 상실감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목을 매 자살한다. 그 소식을 들은 와타나베는 충격에 빠져 방황하다, 레이코를 만나고 둘만의 장례식(비틀즈의 노래를 메들리로 연주하는데, 이 부분의 음악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으면 정서를 따라잡을 수 있어서 좋다.)을 치르고 죽음을 극복한다. 레이코와의 격정적인 정사 이후 그들은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모든 것이 끝난 후, 미도리가 그리워진 와타나베는 그에게 연락해본다. 오래된 침묵 끝에 미도리가 답한 말. ‘넌 지금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 와타나베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며, 혼란스러워하며 미도리를 찾아 헤매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적 강점은 ‘모호한 서사가 주는 여운’과 ‘시대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씁쓸함’이라고 알고 있는데, <노르웨이의 숲>에서는 이런 부분이 결말 지점에서 폭발한다. 본인은 인지하지 못한 채로 방황하던 와타나베의 갈 곳 없음을 소설 속의 현실로 끌어옴으로서 독자에게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그동안 쌓아온 서사가 마음 속에 퍼질 수 있도록 결정타를 남기는 결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오코의 자살 부분이 마음에 걸린다. 이 작품이 우울하다, 비관적이다, 쓸쓸하다, 여운이 남는다는 대부분 나오코의 죽음에서 기인하는 것일테다. 그러나 이런 소설적 장치에 속아 넘어갈 정도로 현대의 독자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 작가는 남주인공의 반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나오코를 이용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의도적인 여성 캐릭터의 죽음’을 받아들인 독자들은 금방 눈속임임을 알고 있다. 여성을 언제까지 이렇게 납작하게 사용할 것이냐면서. 내가 그러했듯이.

<노르웨이의 숲>은 신비로운 성향이 강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치고는 리얼리즘의 성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르웨이의 숲>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60년대라는 어두운 시대를 살아간 와타나베의 성장담이자 연애담이며, 동시에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가 그 당시 시대에 남긴 코멘트에 가깝다. 위에서 열심히 비판하였듯, <노르웨이의 숲>은 잘못 독해하면 행복하게 연애하다가 갑자기 여자 주인공들이 토라지거나 달라붙거나 하며 주구장창 섹스만 하다가 자살하는 이야기가 된다. 작품이 쓰인&작품의 시대상을 동시에 보아야 그나마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사실 이해한다고 해서 완전히 작품을 공감하고 찬양하게 될 수 있단 소리 역시 아니다.)

1960년대 일본. 이 시기의 일본은 ‘전학공투회의’, 줄여서 ‘전공투’라는 일련의 학생 운동이 벌어진 시기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벌어진 이 운동은 도쿄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갔지만, 그만큼 빠르게 진압되었다. 자유와 혁명,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은 거대한 권력 앞에 무너졌고 당시 젊은이들은 좌절을 겪었다. 이런 ‘절망한 청춘’의 모습이 노르웨이의 숲에서 자세히 묘사되고 있다.

작중 와타나베는 “거대한 자본이 투자되었는데 학생들이 들고 일어난다고 대학이 ‘예, 알곘습니다’ 하고 해체될리 없다”고 냉소하며 운동을 벌이는 학생들이 “대학의 주도권을 어디로 옮기던 아무래도 좋았다”고 생각하며 “동맹 휴교가 분쇄되던 말던 특별한 감회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논평한다. “동맹 휴교를 외치던 녀석들이 자리 맨 앞에 앉아서 수업을 듣는” 아이러니를 묘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101-102p) 이런 운동권의 모순과 실패는 다른 등장인물에 의해 지적되기도 한다. 대학에 입학한 미도리는 포크송 동아리에 들어갔고, 그곳의 운동권 학생들에게 “마르크스를 읽으라”고 강요당하지만 이해하지 못하여 “멍청이 취급을 당했다”고 술회한다. (353-354p) 심지어 여성 회원들에게 야식용 주먹밥을 만들어오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언급되기도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런 1960년대를 배경으로 방황하는 청춘을 그려냈다.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는지도 모르고, 이것으로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할지 감도 잡히지 않으며 매일매일을 술과 섹스로 허탕하게 보내는 젊은이의 초상을 쓴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와타나베부터 시작해서 ‘미도리’, 그리고 ‘나가사와’ 등 이들은 거리에서 방랑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과거의 상처로 나아가지 못하는 ‘나오코’와 ‘레이코’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아주 일관된 인물들의 모습이다. 이렇듯 <노르웨이의 숲>의 세계는 혁명하는 데에 실패한 걸 본 세대가 겪는 좌절과 고독함, 그럼에도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막막함, 그리고 그를 버텨내지 못해 죽어버리고 마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이 소설은 시대착오적인 여성관과 맥락 없는 섹스씬 때문에 갈수록 점점 빛을 바래고 있지만, 골동품이 골동품이기에 가치가 있듯 아예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시대에 흐르는 어떤 감정을 포착하는 것이 바로 예술가가 할 일이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단정한 문장과 대중문화(특히 서양)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통해, 신비롭고 서정적이지만 무겁고 우울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그 어려운 일을 550p의 분량으로 해냈다. 그렇지만 이제 이 소설이 현대적인 감성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긴 여정 끝에는 무언가가 있지만, 2021년에 읽기에는 시대착오적인 여성관이 걸린다. 그럼에도 고독함과 외로움에 괴로워하고 있다면, 앞이 보이지 않는 회색 안개 속에서 헤매고 있다면 함께 그 속을 걸어줄 인물들이 이 속에는 있다.

비록 그것조차도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역작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 를 9년만에 다시 읽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역작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 를 9년만에 다시 읽다

상실의 시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출판 문학사상사 발매 2010.07.20.

-이미 지나버린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대

하루키 문학은 여전히 대중문화와 순문학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 순문학 이라고 하기엔 다른 ‘고전 찬양자’들이나 소위 문학을 좀 읽어봤다는 사람들에게 매도 당하기 마련이고, 그렇다고 장르소설이나 대중문화라고 치기에는 꽤나 고급스럽게 느껴지는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전히 어디가서 나 하루키 책을 좋아한다고 하기에는 좀 망설여지는 감이 없지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키의 책은 잘 읽히고 재미있다.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늘어놓는 이야기라 하더라고 그가 쓰는 책은 재미있다. 그러면 되는 것 아닐까?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의 반응이 영 신통치는 않다. 예전 1Q84가 처음 나왔을때의 그 엄청난 신드롬이 아직 남아있긴 하지만… 이제 하루키의 시대는 지난 것 같기도 하다.

계속 반복되는 하루키만의 메타포들, 어딘가 하드보일드 해보이는 주인공, 세상사에 무관심한 듯 하지만 꽤나 인간적인 주인공. 다만 성에는 다분히 개방적이어서 이런저런 관계를 거부하지 않는 모습. 가슴 한구석에 뭔가를 잃어버리고 기본적으로 냉소적이 되어버린 모습들… 그러한 하루키 문학의 최전성기는 언제였을까? 아마도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가 그 절정이었던 순간이 아닐까 싶다.

민음사 세계문학에 올라간 노르웨이의 숲. 우리나라에선 ‘상실의 시대’로 제목이 바뀌어서 출판 되었지만… 원제가 더 좋은 것 같다.

상실의 시대라는 직접적인 표현 없이도 노르웨이의 숲 노래와 가사를 본다면 충분히 그 상실의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줄거리

와타나베 (나=주인공) 은 학창시절 기즈키와 절친한 친구였다. 사교성이 좋은편도 아니어서 친구도 거의 없었고, 기즈키만이 유일한 친구였다고 할 수 도 있다. 그런 기즈키의 소꿉친구이자 애인 나오코와는 셋이 이따금 만났다. 두사람도 내가 있어주는 걸 더 좋아할 정도로 나름 좋은 사이였다. 하지만 17세의 나이때 기즈키는 차안에서 가스를 틀어놓고 자살한다.

기즈키가 죽은 뒤로 나오코와 만날일은 없었다. 하지만 19살때 낯선 곳의 지하철에서 우연히 나오코를 만나게 되고, 그 뒤로 주말마다 한번 씩 나오코와 데이트인듯 비슷한 만남을 지속하게 된다. 그렇게 연애 비슷한걸 하다가 나오코의 방에서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관계를 맺는다.

그 다음 나오코는 훌쩍 떠난다. 기즈키의 자살 이후로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던 그녀는 교토의 한 요양병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나오코에게 편지를 받고 와타나베는 먼길을 떠나 그녀를 만나러 간다. 거기서 나오코를 돌봐주는 룸메이트 같은 레이코를 포함해 셋이서 만남을 가진다. 나오코는 와타나베를 좋아하지만 아직 마음의 병이 낫지않아서 와타나베에게 자신을 기다려달라고 한다. 레이코 또한 마음의 병이 있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8년째 머무르고 있다. 레이코와 와타나베 또한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고, 셋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일상으로 돌아온 와타나베는 미술사 수업을 같이 듣는 미도리라는 여자애와 만나게 된다. 미도리의 적극적이고 활발한 모습은 이전에 나오코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생기 그 자체였다. 미도리와 여러가지 썸 그 이상을 겪으면서도 나오코 때문에 미도리를 아직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한편 와타나베는 기숙사에서 유일하게 친하게 지낸 나가사와 선배라는 사람이 있다. 나가사와는 상당히 계산적이고 자신이 원하는 일에는 무서우리만치 냉정한 사람이지만 와타나베와는 유일하게 마음이 비교적 통하는 친구다. (이 두사람이 어느이상 교감을 이뤘다고 보지는 않지만…) 둘은 주말저녁마다 여자사냥을 나가 술을 마시고 여자들과 자기도 한다.

미도리와의 만남 이후로 와타나베는 혼란에 빠진다. 나오코를 사랑하고 있고 같이 살고 싶다. 매주 일요일마다 나오코에게 편지를 쓰고 나오코의 편지를 기다린다. 미도리에게는 시간을 조금 더 달라고 했다. 나오코와 미도리 모두를 사랑한다.

그러는 와중에 나오코의 상태는 점차 악화된다. 나아질 거라 믿고 있던 나오코는 결국 스무살때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와타나베는 레이코를 통해 그 사실을 알게된다. 두사람은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서로 만나야 하는걸 깨닫는다. 그리고 와타나베와 레이코는 둘이서 나오코의 장례식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치룬다 (…)

레이코와는 두번 다시 만날일이 없을걸 알고, 서로 편지를 반드시 주고 받겠노라 약속하는 두사람. 헤어지자마자 와타나베는 공중전화에서 미도리의 이름을 부른다. 미도리에게 여태껏 가져보지 못했을 정도의 뜨거운 감정을 내보이며 미도리만을 원한다고 말한다.

그때 문득 자신은 어디에 있는건지… 뭘 하고 있는건지 혼란감에 빠지며 작품은 끝이난다.

-끝없이 반복되는 삼각구조

​ 노르웨이의 숲 (森)

이 작품의 원제 노르웨이의 숲에서 이 한자에 주목해보자. 나무 세개가 하나가 되어서 숲을 이루고 있다. 작가가 천재인지는 몰라도.

제목의 수풀 삼자 처럼 이 노르웨이의 숲에서는 끝없는 삼각관계가 제시되고 있다.

​1) 와타나베 – 기즈키 – 나오코

기즈키와 나오코는 아주 어렸을때 부터 연인 사이로 발전한 사이. 기즈키가 죽어버리자 나오코도 계속해서 삶과 죽음의 세계의 사이에서 갈등한다. 삶의 세계에는 어떻게든 나오코와 함께 살아보려고 하는 와타나베가 있었고, 여전히 죽음의 세계에서는 기즈키가 나오코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와타나베와 나오코가 느낀 감정이 사랑인지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와타나베는 나오코가 세상을 떠나지 않기를 바랬고 자신이 책임을 져야한다는 생각을 갖고있었다.

결국 안타깝게도 와타나베의 마음에도 불구하고 나오코 또한 기즈키에게로 가버린다. 1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와타나베의 삶에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기즈키. 그렇기에 와타나베는 늘 삶과 죽음은 뒤섞여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죽은 기즈키가 결국에는 나오코 마저 자신이 가져버렸고.

‘불완전한 산 자의 세계’에서 나오코와 둘이서 새로운 삶을 구축하려고 했으나… ㅠㅠ

‘누구 하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휑뎅그렁한 박물관’

자신과 기즈키 나오코가 갖고있던 기억에 그러한 형태를 부여하는 와타나베의 모습이 마음이 아프다.

​2) 와타나베 – 나오코 – 레이코

요양병원에서 같은방을 쓰게 된 레이코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레이코는 40살의 나이에 현재 8년째 요양병원에 있으면서 음악선생 노릇을 하고 있다. 결혼도 했고 자녀도 있지만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생각, 한 13살 레즈비언 여자아이에게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은 뒤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마음이 따뜻하고 상대에 대한 배려심도 깊은 여자다.

나오코를 찾아온 와타나베는 자연스레 레이코와 친해지게 되고, 서로 깊은 얘기를 나누면서 연민과 따뜻한 정을 나누게 된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와타나베와 나오코지만, 나오코가 죽고 난뒤에 레이코가 상징적으로 그 역할을 대신하는 장면들이 몇가지 등장한다.

이는 단순하게 생각하면 엽기적으로까지 느껴질 수 있지만, 이 작품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충분히 감동적이기 까지한 장면이다.

둘만의 방식으로 나오코를 생각하며 장례식을 치룬다는 두사람은 와타나베의 방에서 푸짐한 전골요리를 만들어서 먹고, 목욕탕에서 가서 몸을 씻고, 51곡의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너무도 당연한 듯이 19살 차이의 두사람은 관계를 갖는다.

하루키의 작품에서 관계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나타나지만, 이들의 관계가 서로의 육체를 탐하는 관계가 아닌. 삶의 재생으로 받아들인 내가 이상한 것일까? 그래서 나 또한 이들의 관계가 당연하게 느껴졌다. 사실 레이코는 여성으로서 성을 갈구하는 여자가 아니다. 그저 나오코의 역할을 대신해서 마지막으로 와타나베와 뜨겁게 체온을 나눈 것 뿐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고 말이다.

나오코는 결국 기즈키의 곁으로 가버렸다. 와타나베는 최선을 다했고, 이제는 다시 기즈키와 나오코의 세계가 아닌 진짜 삶의 세계로 돌아와야 한다. 세사람이 만들고 있던 삼각형에서 두명이나 죽음으로 가버렸지만, 와타나베 또한 그들 곁으로 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오코를 쉽게 잊을 수는 없다. 나오코를 공유했던 와타나베와 레이코에게 이 성관계는 하나의 의식과도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 다음 부터 와타나베는 진짜 살아있는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고, 레이코 또한 예전처럼 돌아가지는 못하더라도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다. 그렇기에 8년의 요양병원의 생활을 정리하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기로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와타나베를 만난 것이고.

이 둘의 기묘한 사이와 관계는, 정말 말로 형용할 수는 없어도. 감동적이다.

‘날 잊지 말아줘’ 라는 말은 나오코가 항상 와타나베에게 했던 말이다. 저 말을 함으로써 레이코 = 나오코를 더 보여주려 했던 듯 하다.

그리고 ‘잊지 않을거에요 언제까지나’ 라는 말에서, 더더욱 둘은 앞으로 만날일이 없을 것이고, 그게 서로의 행복을 위해 더 좋은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살아있었고, 계속 살아가는 일만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내 몫과 나오코의 몫까지 합한 만큼 행복해야 돼’

나오코라는 죽음의 세계에서 자의는 아니었지만 떠날 수 밖에 없게된 두 사람. 이전까지 삶에 대해서 강하게 갈구한 적이 없는 두 사람이 삶에대한 의지를 보이는 이 장면은 굉장히 감동적이다.

뜬금없기도 어이없을지도 모르지만, 와타나베는 그렇게 레이코와 전날에 네번이나 관계를 하고 나서… 바로 미도리에게 자신의 뜨거운 마음을 전한다… 어찌보면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전날의 ‘관계’가 하나의 새로운 삶을 위한 ‘의식’이라는 생각을 하면 너무나 자연스럽다.

지금 와타나베는 그 어느때보다도 뜨겁게 미도리를 원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어떠한 삶에서도 크게 흥미를 보이거나 적극적이지 않았던 와타나베가 그 누구보다 뜨겁게 미도리를 원하는 모습은 이 작품의 결말로서 손색이 없다.

전날에 있었던 40세 레이코와의 네번의 관계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속에서 이런말을 뱉는 모순성과, 그 속에 숨겨진 당위성이 엮이면서 묘한 결말을 만들어 낸다.

어쨌든 간에… 나는 이 레이코와 와타나베 둘 사이의 이야기가 참으로 좋다

​(영화에서도 잘 구현된 세사람의 모습. 단 나오코가 너무 못났다는게 에러)

3) 와타나베 – 미도리 – 나오코 ​

처음 노르웨이의 숲을 읽었을 때가 21살이다. 그 뒤로 항상 나오코만이 기억이 났는데, 9년이 지나고 읽어보니 의외로 미도리의 분량이 많다는 게 굉장한 충격이었다. 21살때 나는 미도리가 아닌 나오코가 여주인공이라고 느꼈는데, 30살의 나는 미도리가 진짜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은 결국, 기즈키와 와타나베 나오코 셋이서 만든 삼각형 사이에 있던 나오코. 죽음의 세계로 가버린 나오코와 현실세계의 와타나베. 어찌됐든 기즈키를 잊고 살아가야 하는 와타나베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오코의 모습과.

하쓰미와 와타나베의 대화 中…

‘가장 마지막으로 당구를 친 것은 2년 6개월 전이에요’

‘어떻게 그렇게 세세하게 기억하지?’

‘당구를 친 다음날 친구가 죽었거든요’

‘그걸 이제야 깨달았네요. 저는 당구를 치면 반드시 그 친구가 기억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당구를 치지 않았는데. 하쓰미 씨가 말하고 나서야 그 친구 생각이 나는 제 자신이 어딘가 미안하기도 하고…’

이렇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던 기즈키도 언젠가는 잊혀지는 구절이 인상깊었다.

결국 기즈키와 나오코 모두 가슴 한 구석에 잊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와타나베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운 삶, 생기로 가득한 삶을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미도리인 것이다.

발랄하고, 조금 이상하다 싶을정도로 활기차고. 성에 관한얘기를 아무렇지 않게하고, 애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와타나베에 대한 마음을 숨기지 않는 적극적인 미도리의 모습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미도리의 이러한 ‘생기있는 모습’을 보고 와타나베는 쩔쩔맨다. 이전에 나가사와 선배와 함께 아무 여자하고나 자는 모습을 보일 때도 있지만 유독 미도리에게만은 조심스러운 와타나베의 모습이 보기좋다.

‘난 살아 있는 피가 흐르는 생기 넘치는 여자야’

항상 죽음의 세계와 뒤섞인 채 살았던 와타나베에게 이만큼이나 필요한 여자가 있을까?

기즈키와 나오코를 상실한 아픔을 채울 수 있는건 생기가 넘치는 미도리 밖에 없는 것이다.

엔딩 장면 또한 미도리에게 뜨거운 마음을 뱉어내는 와타나베의 모습으로 끝이난다.

와타나베는 기즈키와 나오코, 죽은 자들의 세계를 벗어날 때까지만 미도리에게 기다림을 부탁했고, 미도리는 기다렸다.

사실 마지막 장면에서 미도리가 흔쾌하게 와타나베를 받아주는 해피엔딩이 되리라 생각했는데…

‘아무데도 아닌 장소의 한가운데에서 계속 미도리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자신의 존재에대해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이, 미도리와의 만남. 기즈키와 나오코에게서 벗어나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게 낯설고 쉽지 않을 것임을 알려주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딩 장면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생기발랄한 미도리의 모습 또한 영화내에서 잘 구현되었다)

4) 와타나베 – 나가사와 – 하쓰미

나가사와 선배는 이 작품에서 여러가지 와타나베를 도와주는 장치적 역할과 조력자 역할을 맡고 있다. 물론 그는 절대로 조력자라고 불릴만한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그릇된 가치관을 가지고있고 와타나베에게 크게 좋은 영향을 끼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일정 부분이나마 공유하고 있는 가치관과 서로에게 가지고있는 기본적인 호감으로 인해서, 작품내에서 와타나베와는 좋은 사이로 등장한다.

다만 여자를 무분별하게 사냥한다는 표현으로 꼬시고 자는 장면들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또한 이러한 이야기를 자신의 애인 하쓰미 앞에서 서슴치 않고 하는 모습은 분명히 그가 멀쩡한 사람이 아님을 알게하는 장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소적이며 세상과 거리를 두는 모습이 나가사와와 와타나베는 겹치는 부분이 존재한다.

​ 그리고 나가사와의 여자친구 하쓰미, 굉장히 세련되고 사람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는 여성으로 등장한다. 한편으로는 굉장히 고지식해서 나가사와가 나쁜남자인줄 알면서도 벗어나지는 모습까지 보인다. 누군가를 항상 즐겁게 해주는 그녀가 왜 나가사와에게 매달려있는지 의문에 빠진다.

나가사와도 항상 자신에게 과분한 여자라고 말한다.

작중에서는 ‘나가사와 선배라면 하쓰미씨보다 더 아름다운 여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쓰미씨는 그 이상의 것이 있는 여자다. 나가사와 선배라도 하쓰미씨 정도라면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정도로 굉장히 매력적인 여성으로 묘사되고 있다.

​ 하쓰미와 나가사와 셋이서 저녁식사를 한 자리에서, 나가사와는 하쓰미에게 굉장히 치욕스런 발언을 수차례 내뱉는다. 그에 못참은 하쓰미는 자리를 일어나고 와타나베가 그녀를 에스코트 한다. 그리고 같이 걸으며 나가사와는 하쓰미씨에 대해서 굉장한 동경심을 갖는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십수년 후에 또 다시 그녀에 대해서 생각하는 장면이다.

‘누군가 어떻게든 그녀를 구원했어야 한다’

ㅠㅠ 굉장히 멋지고 미도리 못지않게 사랑스러운 하쓰미씨는 나가사와라는 비틀린 남자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그리고 그 소식을 나중에 나가사와에게 편지로 듣게되고… 하쓰미의 죽음에 슬퍼하는 가증스러운 모습에 와타나베는 나가사와와 인연을 끊게된다.

-상실과 재생,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의 영원한 주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0년의 핀볼, 댄스 댄스 댄스, 양을 쫓는 모험.

내가 읽은 초기의 작품들, 어렴풋하게나마 기억남아있지만 항상 무언가를 상실한 주인공이 냉소적이지만 약간은 따뜻한 느낌으로 세상을 대하면서 다시 삶을 재생하는 그러한 이야기가 주가 되었다. 제대로 기억하는것은 없지만 대부분 그런 느낌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이 주제를 가장 아름답게 다룬 작품이 바로 노르웨이의 숲이 아닐까 생각한다.

수많은 삼각형 속에서 잃어버린 인물들. 그리고 삶을 재생하는 사람들로 인물을 나누어 보면

와타나베, 미도리, 레이코 셋이 새로운 삶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장면이 감동적이게 느껴진다.

*와타나베

와타나베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으로 기즈키의 여자친구인 나오코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고, 사랑과 비슷한 감정을 갖게 된다. 나오코 또한 와타나베를 사랑하는 듯 보였지만 그저 기즈키의 환영과 함께 와타나베를 기즈키랑 어느정도 동일시하고 대했는지… 와타나베를 진정으로 사랑하지는 않았다.

도입부분에 등장하는 회상 씬이지만… 책을 다 본다음에 앞부분을 다시 본다면 여러모로 소름이 돋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9년만에 책을 다시 읽으면서 앞부분이 이렇게 흡입력이 있었나 생각이 들었다.

결국 와타나베 또한 레이코를 나오코와 동일시하고, 그녀와의 관계 후에 깨끗이 나오코에 대한 모든것을 기억의 저편에 쌓아두고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한다. 그런 와타나베의 모습이 감동적이다.

*미도리

미도리 또한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간다. 항상 밝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미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마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그녀 답게 발랄하게 세상을 대한다. 와타나베의 정확한 사정을 모르지만 기다림을 다짐하는 그녀의 모습은 참으로 사랑스럽기 까지 하다.

별 것 아닌거에 토라지고, 혼자 끙끙 앓고. 갑자기 폭풍같이 고백을 한다든가, 엉뚱한 행동을 하는 그녀의 모습은 참으로 발칙하기도 하지만 사랑스럽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작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생기있는 역할을 맡았다.

*레이코

잠시 맺은 연이지만, 나오코와 와타나베 셋이서 맺은 인연을 소중히 한다. 나오코 만큼이나 와타나베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있다. 물론 그녀가 와타나베와 관게를 맺은것은 어떠한 이성적인 감정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13세 여자애에게 희롱당하고, 주위사람들과 남편에게 버림받은 그녀는 8년동안 요양병원에서 세상을 등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나오코의 남자친구로 등장하는 와타나베에게 마음을 열고, 결국 어찌됐든 나오코의 죽음 이후에 오히려 그동안의 자신의 삶도 묻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의지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어쩌면 와타나베 만큼이나 레이코에게 많은 정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평생 이런 걸 안해도 될 것 같애’ 라고 말하는 레이코의 모습이 단순히 성관게를 의미하는게 아니라. 새롭게 삶을 재생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건 내 착각이었을까?

다음날 아침에 헤어지면서 누구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고 레이코와 와타나베는 키스를 나눈다.

그리고 살아있으니 앞으로 살아갈 일만을 생각해야했다 는 말이 감동적이다.

여지껏 둘은 살아가는 일보다는 죽고, 떠나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상실한 것만 생각했고,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작중에 등장하는 성묘사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성관계에 대한 묘사인데, 포르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굉장히 직설적으로 표현이 드러나있다. 내 생각이지만 대부분 이러한 장면이 외설적이거나, 왜 이러한 장면이 있지?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분명히 굉장히 야하게 묘사되는 장면인데도 말이다. 하루키의 문체 자체가 그러한 분위기를 상당히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느낌도 있고, 약간씩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인 것 같다.

단언컨대 노르웨이의 숲에서 등장하는 성묘사가 크게 외설적이거나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굉장히 긴 리뷰였다. 책 리뷰는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될지 몰랐는데… 그냥 하고 싶은 말을 다썼다. 이것저것 동시에 하면서 하다보니 세시간이 넘게 걸린 것 같은데… 내가 엔딩 장면에서 느꼈던 감동을 나중에 이 글을 통해 다시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원제:노르웨이의 숲) 줄거리와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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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상실의 시대>로 잘 알려진 일본의 인기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섯번째 장편소설 노르웨이의 숲은 아직까지도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품입니다. 1987년 일본에서 발행되어 현재까지 1000만부 이상의 발행부수를 기록하여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은 판매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010년에는 베트남 감독인 쩐아인훙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기도 했습니다.

영화 상실의 시대 포스터 (2011)

1. 줄거리

이야기는 독일 함부르크 공항을 떠난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나”인 화자 와타나베이며 도쿄 한 대학의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연극과에 다니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고향은 고베이며 진학을 계기로 도쿄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어느날 주인공은 우연히 전철 안에서 나오코와 재회합니다. 두 사람은 다른 용건이 없었기 때문에 함께 전철에서 내리고 그 곳에서 나오코는 별다른 말 없이 마냥 걷기만 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나오코는 체중이 훨씬 줄어든 것 같지만 그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주인공과 나오코는 매주 만나게 됩니다. 나오코는 고베시절 주인공의 절친한 친구였던 키즈키의 여자친구였습니다. 그러나 키즈키는 어느날 자동차 배기가스를 마시고 자살하게 되고 주인공과 나오코는 모두 그 일에서 벗어나 도쿄로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더이상 나오코와 만날 수 없게 된 어느날 그녀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합니다. 그녀는 교토의 한 요양원에 들어가있었습니다. 그 시설은 한번 나가면 다시 들어갈 수 없다는 규칙이 있는 곳입니다. 나오코와 만나지 못하게 된 사이에 주인공은 미도리라는 어린 여자를 알게 됩니다. 미도리에게는 남자친구가 있고 주인공에게는 나오코가 있었지만 서로 스스럼없이 특별한 친구로써 신뢰해 갑니다.

그러다 나오코의 만나러 와달라는 편지를 받고 주인공은 교토로 갑니다. 그 요양원에서 모두에게 음악치료를 하고 있으면서도 요양원의 환자이기도 한 레이코를 만납니다. 레이코는 나오코의 룸메이트로 두 사람은 요양원에서 서로 의지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나오코는 요양원에서 매우 평온한 시간을 보내며 점차 회복하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 나오코와 한동안 시간을 보내다가 주인공은 다시 도쿄로 돌아갑니다. 글고 주인공은 기숙사에서 나와 혼자 살게 되고 나오코에게는 언젠가 같이 살자는 내용의 편지를 씁니다. 그는 매주 나오코에게 편지를 쓰고 나오코의 답장은 오기도 하고 안오기도 합니다.

곧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오코의 회복은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정신상태가 점점 심하게 무너지고 마침내 시설에서도 나와 병원에서 집중적인 치료를 받게 됩니다. 그 사이 주인공은 미도리와의 관계가 깊어집니다. 하지만 나오코를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나오코의 요양원 룸메이트였던 나오코에게 편지를 보내곤 합니다.

그러나 주인공의 간절한 기도와 염원에도 나오코는 결국 자살하고 맙니다. 그 아픔 때문에 주인공은 한달동안 방랑여행을 떠났습니다. 도쿄에 다시 주인공이 돌아온 후 나오코가 죽었을 때의 이야기를 하러 레이코씨가 시설에서 나와 주인공을 만나러 옵니다. 한번 나오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요양원에서 나온 것입니다. 나오코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레이코였습니다.

둘은 만나 단둘이 와인을 따르고 기타도 치고 노래를 부르며 나오코를 위한 조촐한 장례식을 치릅니다. 그리고 나서 두 사람은 섹스를 합니다. 주인공은 미도리에게 전화를 겁니다. 미도리와 사귀고 싶다는 말을 전하는데 “지금 어디에 있니?” 라는 미도리의 물음에 “내가 지금 어디에 있지” 라고 되물으며 소설은 끝이납니다.

2. 등장인물

와타나베 토오루

주인공이며 이 소설의 화자입니다. 고베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도쿄의 사립대학 문학부 연극과에 진학했습니다. 고베에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도쿄로 상경하며 헤어지게 됩니다. 대학교 1,2학년은 기숙사에서 생활했습니다. 대학생이 되어 고등학교 시절의 절친한 친구였던 키즈키의 여자친구였던 나오코를 우연히 만나 연인관계가 되지만 그녀가 요양을 위해 교토로 떠나버리고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모르는 여성들과 잠자리를 하기도 합니다.

키즈키

와타나베 토오루의 친구이자 나오코의 남자친구였습니다. 나오코와는 아주 어릴때부터 소꿉친구였기 때문에 서로 모르는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사이가 좋았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5월, 집 차고에서 배기가스를 마시고 자살합니다. 나오코와 키즈키는 모두에게 사이좋은 연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와타나베는 대학생이 되어 사귀게된 나오코가 처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나오코

소설에서는 여주인공에 가까운 역할로 과거는 친구 키즈키의 여자친구였지만 현재는 주인공 와타나베의 여자친구입니다. 키즈키가 자살해 버린 후 조금씩 마음의 병을 앓게 되고 와타나베와 섹스 후 치료를 위해 대학을 휴학하고 치료시설인 아미료라는 요양원에 들어갑니다. 병문안을 온 와타나베와 연인관계가 됩니다.

미도리

와타나베와 같은 대학에서 같은 수업을 듣는 여성입니다. 처음 와타나베와 만났을 때는 빡빡머리였습니다. 아버지는 서점은 운영하고 있으며 딱딱하고 재미없는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레이코

아미료에서 나오코의 룸메이트입니다. 피아노를 잘 쳐서 요양원 사람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고 기타도 잘 칠 수 있습니다. 원래 결혼을 했지만 어떤 사건으로 이혼하고 8년간 요양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나가사와

도쿄대학 법학부에 다니고 있는 훈훈한 외모의 남학생입니다. 사후 30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작품은 읽지 않는다는 등 기묘한 고집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츠미라는 여자친구가 있지만 와타나베와 어울려 방탕한 생활을 하며 많은 여성들과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츠미

부자들의 자녀가 다니는 여대에 재학 중이며 나가사와의 여자친구입니다. 나가사와가 여러 여성과 성관계를 하고 있는 것을 알지만 묵인하고 있습니다. 결국 나가사와와 헤어지고 다른남자와 결혼하지만 끝에는 자살하고 맙니다.

3. <상실의 시대>에 대한 해설과 고찰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전적 소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은 물론 전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작가이며 노벨 문학상 후보에도 여러번 올랐던 인물입니다. 그의 다섯번째 장편소설로 1987년 발표된 <노르웨이의 숲>은 그의 자전적 소설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이 작품의 주인공은 무라카미 하루키와 마찬가지로 문과대학에서 연극을 배우는 대학생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졸업한 와세다 대학을 배경으로 한 강의나 교내의 모습도 아주 세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주인공이 자주 다니던 도서관도 실제로 존재하고 있으며 노면전차의 모습 또한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의 관서지방에서 자랐지만 청년시절을 와세다 대학에서 보냈기 때문에 동경을 무대로 한 작품이 많습니다. 결과적으로 <노르웨이의 숲>은 그의 자전적 소설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상실의 시대 와타나베와 나오코

단편소설 <반딧불이>가 원작

무라카미 하루키는 본작을 쓰기전에 <반딧불이, 헛간을 태우다 (1987)> 에서 <반딧불이>라는 작품을 먼저 발표했습니다. 이 작품에는 <노르웨이의 숲>의 전반부에서 그려지는 기숙사에서의 생활이나 전철에서 나오코와 재회하여 요츠야에서 이이다바시로 연결되는 호리단을 걷는 묘사가 동일하게 그려집니다. 단편 <반딧불이>는 노르웨의 숲 2장과 3장 내용에 영향을 줍니다. 그러나 <노르웨이의 숲>에서 돌격대라는 별명이 붙었던 주인공의 기숙사 룸메이트는 <반딧불이>에서는 룸메이트 그대로이지만 친구나 애인에게도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주인공 와타나베 토오루의 매력

주인공 와타나베 토오루는 왠지 여성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특별히 와타나베가 적극적으로 작업하지 않아도 여성들이 먼저 관심을 보이고 모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도리가 주인공에게 “얼마만큼 (내가) 좋아?” 라고 묻는 장면에서 와타나베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봄날의 곰만큼” 이런 이상한 표현으로 미도리에게 봄날의 곰에 대해 상상하게 하며 그녀에 대한 호의를 간접적으로 표현합니다.

<노르웨이의 숲>만 아니라 대부분의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서 “여성이 주인공에게 말을 걸어오고 언젠가부터 주인공과 여성은 호감을 가지게 된다.”라는 구도가 많이 있습니다. 여성들의 접근에 대해서 주인공은 단지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뿐 그녀들과 “연애”를 잘 해나가기는 어렵습니다. 주인공에게는 주체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조금전의 “봄날의 곰”과 같은 대답에서도 애매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와타나베가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어딘가 풍기는 어두운 분위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주체성이 없고 어딘가 그림자가 있는듯한 분위기가 이성에게 있어서는 그냥 놔둘 수 없는 존재로 여겨지게 하는 것은 아닐지요.

나가사와의 존재

나가사와는 와타나베가 사는 기숙사의 선배로 여러가지로 여러가지로 와타나베와 얽히게 됩니다. 그는 용모단정한 도쿄대학의 법학과 학생으로 흠잡을 수 없는 완벽한 존재로도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츠미라는 여자친구가 있음에도 모르는 여성들과 의미없는 섹스를 반복하는 인물입니다. 하츠미는 결국 그와 헤어져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이후 자살하고 맙니다. 작품에서는 두 사람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하츠미가 왜 자살을 했는지 끝까지 알 수는 없지만 몇가지 사건으로 그 이유를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애초에 둘이 헤어진 이유는 나가사와가 하츠미를 구하기는 커녕 그녀의 병세를 악화시킨다고 이해하고 외무성에 응시함으로써 그녀를 떠나려고 합니다. 취업축하파티에서는 일부러 하츠미의 미움을 살만한 행동을 합니다. 그리고 그는 독일에 부임하게 되고 그것이 명확한 전환점이 되어 둘은 헤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츠미에게 있어서 나가사와는 현실세계와 연결되는 연결고리였던 것 같습니다. 둘이 헤어지게 됨으로써 그려는 서서히 자신만의 세계에 침식되어 결국 자살을 선택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오코가 말한 우물이야기

어느날 나오코는 갑자기 와타나베에게 우물이야기를 합니다. 와타나베는 우물이야기를 듣고나서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나오코가 우물이야기를 해준 후로 나는 그 우물이 없는 초원의 풍경을 기억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본 작품뿐만 아니라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우물은 매우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합니다. 여기에서 우물은 “삶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를 잇는 매체”로 취급됩니다. 나오코가 와타나베에게 우물 이야기를 했을 때는 이미 자신이 죽음의 문턱에 와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와타나베는 우물의 모습(죽음의 세계)없이는 초원의 풍경( 삶의 세계)를 생각해낼 수 없게 됩니다. 그것은 이 소설의 큰 기조 중 하나로 결국 죽음이 삶의 일부임을 인정하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나오코의 자살

노르웨이의 숲에서 죽음을 상징하는 존재로 그려지는 나오코는 이야기의 초반부터 등장하지만 그 등장부터 이미 짙게 죽음을 예감하게 합니다. 실제로 나오코는 “만약 내가 깊은 구덩이에 빠지고, 그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면…” 등 불안에 사로집할때가 있다고 와타나베에 고백합니다. 이 일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이미 자신의 죽음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오코는 왜 자신의 죽음을 의식하게 되었을까요? 당시 사귀던 키즈키가 죽은 후 나오코는 죽은 것처러 살아있는 상태가 됩니다. 이것은 죽은 자와 산 자가 그녀 속에 혼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굵은 글씨로 되어있는 “죽음은 삶의 대척점으로서가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라는 노르웨이의 숲의 테마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문장은 키즈키의 죽음을 계기로 나오코 안에서 싹트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와타나베와의 재회가 그녀를 바꿔놓습니다. 처음 그녀가 와타나베를 만난 이유는 키즈키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와타나베와 함께 있음으로 죽은 키즈키를 해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사람의 관계는 서서히 변화를 겪게 되고 그녀의 생일날 섹스를 함으로써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여기에서 나오코는 지금까지 없었던 자의식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녀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은 불안정한 상태를 피하기 위해 요양원인 아미료에 들어가지만 결국 자살하고 맙니다.

<노르웨이의 숲>이 그리는 삶과 죽음

죽음은 삶의 대척점으로서가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한다는 것. 상기된 것처럼 이 문장은 키즈키가 자살한 장면 직후 유일하게 이 작품에서 굵은 글씨로 쓰여져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키즈키와 나오코가 자살함으로써 와타나베에게 죽음은 인간 속에 항상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늘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은 죽음을 내포하면서 항상 존재합니다. 태어나면서 부터 죽음을 향해 살아가고 있으며 이미 죽음은 확실하게 기약되어 있는 약속인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친근함이 담담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숲>의 결말

나오코가 자살하고 와타나베는 그 슬픔을 달래기 위해 한달에 걸친 여행을 떠납니다. 여행을 마치고 그가 도쿄로 돌아오자 나오코가 죽었을 때를 이야기 하기 위해 레이코가 시설에서 나와 그를 찾아옵니다.

나오코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두 사람은 함께 나오코를 위한 조촐한 장례식을 치릅니다. 와인을 따르고 레이코가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릅니다. 슬픔에 잠기기 위한 장례식이 아니라 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나오코를 기리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긍정적인 의식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두 사람은 섹스를 합니다.

다음날 레이코는 홋카오도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녀와 헤어진 후 와타나베가 전화를 겁니다. 그가 누구에게 전화를 거는 것인지는 나오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키즈키를 비롯해 나오코와 레이코처럼 그의 주위에서 계속해서 사람들이 떠나가고 와타나베는 또다시 고독해집니다. 그러나 인간은 삶을 혼자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함께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필요하고 그것이 바로 “삶”이니까요. 깊이 사랑하고 강하게 사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는 결말입니다.

섹스의 의미

이 작품에서 와타나베는 나오코를 좋아하는 한편 나가사와와 어울려 여러 이름모를 여성들과 어울려 하룻밤을 보내곤 합니다. 독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와타나베가 정말 나오코를 사랑하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을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서 섹스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서로를 연결하고 이해하며 회복시키는 의미를 갖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카와아이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라는 대담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육체와 정신 사이에 있는 것이 섹스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자애들하고 엄청 자고 싶어져요”라는 와타나베의 대사는 즉 “정신에 큰 타격을 입고 있어 회복이 필요하다”라는 표현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목에 얽힌 이야기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은 비틀즈의 “Norwegian Wood (This Bird Has Flown)”에서 왔습니다. 소설 서두에서 공항에서 울려퍼지기도 하고 과거에는 나오코가 좋아했던 노래이며 교토의 요양소를 노르웨이의 숲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만 원제에서의 Norwegian Wood는 노르웨이의 숲이 아니라 노르웨이산 목재가구가 맞다고 합니다. 어쨌든 비틀즈의 곡 가사 속에서는 한여자와 만나고 헤어지고 떠나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습니다. 가사에서 “좋은 방이지? 노르웨이산 목재가구야” 에서 Norwegian Wood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상실의 시대>라는 번안된 제목으로 출간되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는 무라카미 하루키와는 상관없이 상실의 시대를 출간한 출판사에서 붙인 제목이라고 합니다. 추후에는 다시 노르웨이의 숲으로 출간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상실의 시대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듯 합니다.

작가의 자전적 배경을 바탕으로 삶과 죽음에 정면으로 부딪치는 청춘의 모습을 담담히 그린 이야기. 상실의 시대는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를만큼 유명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인만큼 한번쯤 읽어볼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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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나서 느낀 점 (후기와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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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르웨이의 숲을 처음 읽었던 것은 고2 무렵이었다.

만화방에서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던 중 노르웨이의 숲의 옛날 제목인 상실의 시대를 발견해 보게 되었다.

내가 그때 느꼈던 노르웨이의 숲에 대한 느낌은 안타까움이었다.

책을 읽고 있는 내내 어딘지 마음이 허~한 느낌이 들다가 밤새 책을 완독 한 후엔 완전히 몰입해서 책을 덮고 밖에 나오니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기분은 집에 올 때까지 가시시 않았다.

그건 평소 내가 가끔씩 느꼈던 한 번씩 몰아붙이는 고독함과는 다른 느낌, 그저 어딘가 한편에서 느껴지는 잔잔한 고독함이었다.

책에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인 와타나베, 키즈키, 나오코는 친한 친구였다. 어딜 가나 같이 다니는 그런

키즈키와 나오코는 소꿉친구이자 연인관계였는데 고등학교 때 키즈키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사실 키즈키 때문에 어울리는 거지 친한 건 아니라서 둘은 그 이후로 사이가 서먹해진다.

와타나베가 대학생활 도중 나오코를 우연히 만나고 둘은 그 이후로 친해서 어느 날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그 이후로 나오코는 소식이 끊기고 둘은 편지로 대화를 주고받게 된다.

그러는 사이 와타나베에게는 미도리라는 여자와 인연이 생긴다.

와타나베는 미도리와 나오코 둘과의 관계에서 갈팡질팡하며 방황하게 된다.

그러던 중 나오코는 자살하게 되고 와타나베는 정처 없이 떠돌다가 미도리에게 연락을 한다-

라는 내용으로 소설을 마치게 된다.

나는 제목이 수정되어 나온 노르웨이의 숲을 다시 읽게 되었다.

다시 읽어본 소감은 이것은 죽음과 상실에 관한 이야기라고 느끼게 되었다.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은 꽤나 내용과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키즈키의 죽음으로써 사람과의 거리를 두게 된 와타나베 , 그에게 나오코는 상실의 고통을 알고 있는 버팀목이다.

누나와 키즈키의 죽음으로 의지할 사람이 없게 돼버린 나오코,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더 이상 의존하지 못하고 거부감을 느낀다. 결국 이 거부감은 그녀의 죄책감과 죽음으로 이어진다.

두 인물 모두 죽음을 경험한 이후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킨다.

대학 선배인 와타나베는 제멋대로이다. 그는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이다. 머리도 좋고 집안도 좋은 와타나베는 상실을 모른다. 때문에 그의 자존심은 자신이 다른 사람 없이도 홀로 우뚝 설 수 있다는 자만심을 가지게 한다. 결국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잃고 나서야 후회를 한다.

이렇게 죽음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들 중 홀로 빛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와타나베가 대학에서 만나게 된 미도리라는 인물이다.

그녀는 부모님을 병으로 모두 잃게 됐다. 즉 죽음에 의한 상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어둡고 끈적한 늪에 빠지지 않는다.

미도리는 항상 주체적이며 스스로를 고립 지시 키 않는다.

자신만에 방법으로 고통을 극복하면서 현실을 살고 있는 인물이다.

마지막 페이지에 와타나베는 나오코가 죽은 이후 한 달간 방황을 하다가 미도리에게 전화를 한다.

미도리는 와타나베에게 묻는다.

‘지금 어디에 있냐’라고

그것은 우리들에게 하는 질문과도 같다.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아직도 상실감에 빠져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에서 헤매고 있는가?

아니면 고통을 마주하고 현실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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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를 처음 접한 건 중학교 여름방학이었다.

독후감으로 읽을 책을 고르던 중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1Q84라는 책을 서점에서 구입하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반의 반도 읽지 못하고 덮어버렸다.

‘도대체 이게 뭐지…?’

책과 거리를 두고 지냈던 나에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첫 인상은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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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이 한 번정도 변하고나서야 다시금 도전해 볼 용기가 생겼다.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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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은 30대의 와타나베가 과거 나오코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와타나베는 그의 친구 기즈키와 기즈키의 여자친구 나오코와 붙어다니며 늘 함께였다. 기즈키가 죽기 전 까지는.

기즈키의 죽음을 통해서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알 수 있다. 바로 ‘죽음’이다.

이 죽음으로 인해서 나오코는 요양소에 들어가게 되고, 와타나베가 가지고있던 나오코에 대한 책임감은 점점 사랑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죽음은 살아남은 사람의 기억 속에 다시금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하고 있다’

와타나베는 문진 안에서도, 당구대 위에 놓인 공들 안에서도 기즈키의 죽음을 느꼈다. 그 죽음이 마치 작은 먼지라도 된다는 듯 하루하루 빨아들이며 죽음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이 먼지입자는 가끔 폐 속에 영원히 남아 괴롭히기도 한다.

나오코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기즈키가 떠나지 않아 ‘깨끗하지 않은 상태’가 되지 못해 자책하고, 와타나베에게도 완전하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결국 나오코는 기즈키와의 재회를 위해 어두운 밤 숲 속에서 생을 마감하기로 결정했다.

한편, 나오코가 와타나베의 기억 속에 자리잡게 되자, 와타나베는 며칠 간 방황을 거듭하게 된다.

하지만 이윽고 레이코와 같이 나오코를 떠나보내주기로하고, 레이코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다시 한 번 나오코의 죽음을 초월할 수 있게 된다.

정리하지 못했던 나오코와의 관계가 갑작스럽게 종지부를 찍게 되자 와타나베는 그제서야 자신을 기다려줬던 미도리에게 전화를 건다.

“너 지금 어디야?”

나는 수화기를 든 채 고개를 들고 공중전화 부스 주변을 휙 둘러보았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지? 그러나 거기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지? 내 눈에 비치는 것은 어디인지 모를 곳을 향해 그저 걸어가는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뿐이었다. 나는 어느 곳도 아닌 장소의 한가운데에서 애타게 미도리를 불렀다.

기즈키의 죽음을 초월했던 와타나베지만, 나오코의 죽음을 안고가면서 계속해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노르웨이의 숲>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상실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나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죽음과 이로 인한 상실감, 하지만 이를 안고 살아가는 것을 얘기하는 게 아닐까 싶다.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하고 있다’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는 시대에서 견디다가 죽음을 택할수도, 죽음을 안고가면서 버틸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노르웨이의 숲>은 죽음을 안고가면서 버티는 한 사람의 일기장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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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리에 남는 작품들에는 대개 극적인 전개나 다소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 포함되어있다. 죽음이라던지 외설적인 내용이라던지.

작품의 시대상이나, 여러 인물들의 가치관, 행동양식을 모두 제쳐두고 작품으로 해석하면 <노르웨이의 숲>에서 성관계는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이름 모를 여성과 하룻밤을 보내는 나가사와나 와타나베에게는 허무함을 채우기위한 것이며,

와타나베와 나오코에게는 기즈키의 죽음을 초월하고자하는 시도이고,

와타나베와 레이코에게는 나오코의 죽음을 초월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의식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가란 무엇인가>에서 말한다.

‘성관계는 영혼을 헌신하는 행위의 일종이라고 생각합니다. 훌륭하면 상처가 치유되고 상상력이 활력을 얻습니다. 이는 더 높은 영역으로, 더 좋은 곳으로 향하는 일종의 통로 역할을 합니다.’

책리뷰) 노르웨이의 숲 / 무라카미 하루키

최근 들어 소설을 많이 읽기 시작했다. 해석하는 재미가 있고 무엇보다도 인문학 서적에 비해 소화가 쉬웠다. 나쓰메 소세키도 읽고, 김영하, 페터 한트케, 제인 오스틴 같은 유명한 작가들을 읽었다. 커피나 음식처럼 소설도 점차 취향이 잡혀가는 기분이다. <금각사>에 이은 두번째 소설 리뷰다. 리뷰를 쓰기 위해 소설을 다시 파고들다 보면 짝사랑하는 이성의 문자를 받은 기분이다. 이 문장은 또 무슨 뜻을 담고 있을지, 설레서 하나하나 집중해 읽게된다. 터무니 없는 해석이 나올 땐 내가 도끼병 환자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아무 뜻 없는 작가의 문자에 열을 올려도 이해해주길 바란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에 전혀 관심이 없을 때부터 들어왔던 이름이다. <상실의 시대>란 제목과 흑백의 <1Q84> 표지 때문에 우울하고 염세적인 일본 작가겠거니 지레짐작했다. 나는 그런 분위기를 선호하지 않는 편이고 또 일본 작가는 대부분 그럴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 책은 <상실의 시대> 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 <노르웨이의 숲> 보다 <상실의 시대>는 내용과 주제를 함축한 것 같아 독자의 입장에서 와닿는 제목인 것 같다. 물론 작가의 입장에선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잘 정리된 제목과 해설은 다양한 독자의 반응을 이끌어 내는데 제한을 건다. 또 그렇게 표현하는 것은 세련되지 않기도하다.

<노르웨이의 숲>은 공허함을 외면하려는 사람과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와타나베, 나오코, 미도리 모두 상실을 겪는다. 그러나 미도리는 현실을 살아가는 ‘외면하는 사람’이고 나오코는 ‘마주하는 사람’ 이다. 정확히는 ‘외면하지 못하는 사람’ 이란 표현이 맞겠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그 사이 길을 잃었고 결국 결말에서 ‘나는 어디에 있지?’ 하는 물음을 던진다.

대학에 입학한 후 만난 나오코와 와타나베의 산책은 기즈키의 상실로 인한 방황이다. 와타나베는 죽음을 외면하며 살고 있었지만 나오코는 그러지 못했다. 언어 장애가 생기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는 모습이다. 산책이라고 하기 애매할 정도로 빠른 걸음으로 나오코는 현실로 돌아오려 발악한다.

둘의 만남은 애써 외면하던 아픔을 찢어놓기에 충분했다. 와타나베가 관계 후 ‘왜 기즈키와 자지 않았냐’고 묻지 않았다면 결말이 달랐을까? 아마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이는 나오코에게 방아쇠가 되고 이 공허함은 와타나베에게 옮겨간다.

나가사와도 외면하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끊임없이 모르는 여자와 자고 높은 목표를 설정해서 성취하는 것을 반복해 시선을 돌린다. 미도리가 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나 레이코의 어린 학생이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공허함을 이겨내는 각자의 방법이다.

모든 삶은 이 무력감과의 사투인 것 같다.

하루키 작품에 적나라한 성관계가 빈번하게 나온다는 점을 비난하는 사람이 많다. 최소한 내가 읽은 <노르웨이의 숲> 에선 의미없는 장면이 없었다. <노르웨이의 숲>에서 성관계는 변화의 기점이다. 우리는 왜 문학에서의 성적 묘사에 그렇게 예민할까. 문학이 고상해야 한다는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게 아닐까. 확실한건 하루키의 책은 그런 잣대를 놓고 보기 아쉬운 작품이라는 것이다.

하루키의 문체는 나쓰메 소세키와 미시마 유키오를 잘 섞어놓은 듯 했다. 깔끔하고 간결하지만 종종 화려한 표현들로 놀라게 한다. 입문하기 좋은 소설과 단단한 팬층이 있는 소설, 한 작품으로 그 두 평가를 받은 것은 그 문장들과 깊은 내용이 조화를 이루기 때문인 것 같다.

비틀즈 – 노르웨이의 숲 가사 해석 듣기 (Beatles – Norwegian Wood)

[비틀즈 – 노르웨이의 숲 가사 해석 듣기 (Beatles – Norwegian Wood)]

세기의 음악가 ‘비틀즈’ 곡들은 하나 같이 유명하지만,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곡이 있습니다. 그 곡은 Beatles(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입니다. 비틀즈 명곡 20선 같은 것을 찾아보면 이상하게도 이 곡은 빠져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곡은 인도 악기가 등장하며, 나중에 ‘라가 록’과 ‘사이키델릭 록’의 발전에 밑바탕이 되는 곡이었습니다. 한편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이란 번역이 잘못됐다는 논란까지 있는 곡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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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 Norwegian Wood 듣기

음악을 들으면서 아래 가사와 비틀즈 노르웨이의 숲 해석을 읽어보세요.

가사 번역은 단어 그대로 하지 않고 의역을 했습니다.

​Beatles – Norwegian Wood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 가사

(Beatles – Norwegian Wood(This Bird Has Flown) : 비틀즈 – 노르웨이 가구(그 새는 날아가버렸네) ​ I once had a girl 한번은 어떤 여자를 사귀었었어 Or should I say she once had me 그녀가 날 유혹한 건지도 모르지만 She showed me her room 그녀는 자기 방을 보여주었지 Isn’t it good Norwegian wood? 노르웨이 나무로 만든 거예요. 멋지지 않나요? She asked me to stay 그녀는 나에게 함께 있겠냐고 했어 And she told me to sit anywhere 그리곤 아무 데나 앉으라고 했지 So I looked around 그래서 난 둘러보았지 And I noticed there wasn’t a chair 의자를 찾을 수가 없더군 ​ I sat on a rug biding my time 난 그냥 카펫에 앉아서 기다렸어 Drinking her wine 그녀의 와인을 마시면서 말야 We talked until two and then she said 우리는 2시까지 얘길했는데, 그녀가 그러더군 “It’s time for bed” 이제 잘 시간이 됐네요 ​ She told me she worked In the morning 그녀는 아침에 일한다고 말을 했어 and started to laugh 그러면서 웃기 시작했지 I told her I didn’t 난 그게 아니라고 말했어 And crawled off to sleep in the bath 그리곤 기어서 욕조에 들어가 잠에 들었지 ​ And when I woke, I was alone 그런데 깨어보니 나 혼자더군 This bird has flown. 그 새는 날아가버린 거였어 So I lit the fire 그래서 나는 불을 지폈지 isn’t it good Norwegian Wood.​ 노르웨이 나무라서 참 좋더군.

비틀즈 노르웨이의 숲 해석

이제 사귀기 시작한 두 남녀의 이야기입니다. 남자는 여자를 따라 그녀의 집에 갔고, 그녀는 자고 가라고 했습니다.

자기 방을 자랑하더니 아무 데나 앉으라고 합니다. 의자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냥 자기중심적인 여자일 뿐일까요?

아무튼, 밤늦게 얘기를 나눴는데, 잘 시간이랍니다.

그녀는 아침에 한다고 말합니다. 일을 하러 나가는 것이겠죠. 남자는 자기는 아니라고 합니다. 백수인가 봅니다.

(비틀즈 – 노르웨이의 숲 가사 해석 듣기 (Beatles – Norwegian Wood) / ⓒ 0rchards1)

자고 가라고 하더니 욕조에 가서 자라고 하는 여자… 그런데 아침에 깨어보니 덩그러니 혼자 있습니다. 이러려면 왜?

남자는 불을 지핍니다. 추워서일까요, 화가 나서일까요…. 화가 나서라면, 그는 이랬을 것입니다. 그래, 노르웨이 나무가 좋아서 잘 타는군…

그건, 가구에 불을 질러버렸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녀와 똑같은 말을 하면서 복수를 했다는 얘기입니다.

[비틀즈 – 노르웨이의 숲 가사 해석 듣기 (Beatles – Norwegian W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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