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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주의 미술 | [낭만주의(Romanticism)] 이것만 보고 전시회 가자!! – 7분 미술사 216 개의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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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리얼리즘과 인상주의 탄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던 낭만주의에 대해 공부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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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출처 :Wikimedia Commons, The Athenaeum
글꼴 : 네이버 나눔 글꼴
BGM : Touching Moment – Wayne Jones(유튜브)

참고 문헌
제라르 르그랑, 라투스 서양미술사Ⅳ – 낭만주의, 박혜정 옮김, (주)생각의 나무 2011
정은미, 서양미술 역사를 보다, 문음사, 2014
진휘연, 오페라거리의 화가들, 효형출판,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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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 – 나무위키:대문

개성이 없는 고전주의에 반발하여, 창작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한 문학작품·그림·음악·건축·비평·역사편찬의 특징을 이루는 정신적 자세나 지적 동향. 자유로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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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1/20/2022

View: 3085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미술감상-2 – KINX

낭만주의미술(Romanticism/ 1800년-1850년대). Ⅴ.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미술 … 낭만주의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나타난 민주적 제도와 그에 따른 개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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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cw-n.xcache.kinxcdn.com

Date Published: 1/2/2021

View: 5802

낭만주의 미술에는 과연 ‘낭만’이 있는가? – 디아티스트

낭만주의 미술은 감정을 자유롭게 토론하고, 그 내용을 강조하고 정열을 담는 강렬한 표현을 찾아 나아갔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평론가인 샤를 보들레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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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theartist.co.kr

Date Published: 1/19/2022

View: 6533

낭만주의 – 월간미술

개성을 존중하고 자아의 해방을 주장하며 상상과 무한한 것을 동경하는 주관적, 감정적인 태도가 그 특징이다. 따라서 이는 정신 생활의 전역에 영향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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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onthlyart.com

Date Published: 4/14/2021

View: 7125

[Opinion]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비슷하지만 다른 그들 [시각 …

신고전주의 미술의 특징과 등장 배경 vs 낭만주의 미술의 특징과 등장 배경. 신고전주의 미술은 18-19세기에 등장해 고대 그리스 로마 미술로의 복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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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artinsight.co.kr

Date Published: 1/5/2022

View: 1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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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Romanticism)] 이것만 보고 전시회 가자!! - 7분 미술사
[낭만주의(Romanticism)] 이것만 보고 전시회 가자!! – 7분 미술사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낭만 주의 미술

  • Author: 꿀꿀이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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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8. 11. 20.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LEx11gz5Z1U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낭만주의(浪漫主義, 영어: romanticism, 문화어: 랑만주의)는 서유럽에서 발생한 미술적, 문학적, 지적 사조(思潮)이다. 18세기 말부터 시작하여 1800년~1850년 사이에 정점을 찍었다.

개요 [ 편집 ]

18 ~ 19세기 계몽주의와 신고전주의에 반대하여 나타난 낭만주의는 로맨티시즘(Romanticism)이라는 단어의 기원에서 알 수 있듯이 비현실적인, 지나치게 환상적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으며 이성과 합리, 절대적인 것에 대해 거부한 사조였다. 낭만주의의 첫 주자는 계몽주의 시대에 독일의 루소라고 불리던 헤르더이다. 헤르더는 감정과 감성, 민족역사를 강조하였으며, 그의 저서 “인류 역사의 철학적 고찰”은 후에 러셀과 헤겔로 이어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느낌과 감정을 강조하였으며, 계몽주의들이 설파 했던 이성에 대해 강한 회의를 품었지만, 낭만주의자들은 결코 이성이라는 것을 무시하거나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과거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의미로 파악 되었던 이성을 역사적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것으로 수정하여 고려하였다. 또한 이 낭만주의는 개성을 강조하고, 사회를 과거와 달리 하나의 “유기체”로 보았다. 탄생과 성장, 쇠퇴와 소멸을 겪는 것은 사회의 한 특징이라 말하였으며, 이것은 후에 《문명 형태학》(아놀드 토인비)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독일의 슐라이에마허에게 큰 영향을 주어서 자신의 신학방법으로 감정(Gefühl, feeling)을 기독교 종교의 본질로 보았다.

배경 [ 편집 ]

19세기 중엽에 성립된 로맨티시즘은 산업 혁명으로 인한 사회 변화를 따르기 보다는 과거의 중세 봉건사회나 이국적인 것에서 이상을 찾고자 했다. 그 주요한 동기는 사회의 분열과 이기주의의 만연을 부정하고, 중세에서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던 공동체를 다시 일으키고 싶다는 원망(願望)이다. 때로는 중세에서 전인격적(全人格的)인 완성이 가능했었다고 해서 그것을 다시 일으키려고 한다. 후자는 개인을 절대화하는 것에 의해 현실적으로는 니힐리즘으로 발전해 간다. 이에 대해 전자로부터는 사회를 개인보다 우월한 것으로 만드는 이데올로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19세기 중엽에 그것은 사회유기체론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사상은 사회를 절대화하려는 내셔널리즘으로 그 맥락이 이어지게 된다.로맨티시즘, 《글로벌 세계 대백과》

문학 [ 편집 ]

계몽주의의 최고의 성과가 이성에 의한 비합리적인 정치체제의 타파였는데, 혁명을 통하여 드러난 인간의 취악한 면을 보고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주변이 어지럽게 변하는 데 당혹하였으며, 모든 원리가 붕괴되는 것을 보고 일체에 대한 불신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정신의 폐허 위에 자신의 심성(心性)에 맞는 문화를 이룩하려고 한 것이 낭만주의 정신의 본질이며, 그 결과 자아에 대한 확인과 그 내부에로의 침잠(沈潛)이 시작되었다. 내면에야말로 진실이 있다고 주장하고 1798년 독일의 예나에서는 A.W.슐레겔과 W.슐레겔 형제가 《아테네움:Athenäum》지를 창간하였으며, 영국에서는 워즈워스와 콜리지가 자연의 관조(觀照) 중에 상상력에 의한 우주와의 영적 합일감을 노래한 《서정민요집》을 간행함으로써 각기 자국 낭만주의의 효시(嚆矢)를 이루었다.

한국 [ 편집 ]

한국에서는 1920년대에 낭만주의가 대두하였다. 동인지 《백조(白鳥)》를 중심으로 홍사용, 박종화, 이상화 등이 중심이 되어 전통적 도덕과 인습에 반발하면서 개인의 가능성과 창조적 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들의 추구는 낭만적 정열이기보다는 낭만적 허무에 빠졌으며, 이 때문에 프롤레타리아문학에 주도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영국 [ 편집 ]

영국의 낭만주의는 1798년 유럽의 계몽주의 원리에 강한 영향을 받아 워즈워스, 콜리지가 공동으로 출간한 《서정가요집》(Lyrical Ballards)을 효시로, 사우지 등이 이끌었다. 워즈워스와 콜리지 등은 프랑스 혁명 이후 보수화되었지만, 나폴레옹 전쟁 이후 바이런, 셸리, 키츠 등은 반발하여 영국을 떠나 스위스, 이탈리아 등으로 이동하여 이상주의를 지키려 하였다. 또한 바이런은 그리스 독립 전쟁에 종군했다. 이들은 산업 혁명과 중상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산업 혁명의 침투와 때를 같이하여 활동을 펼쳤지만, 곧 산업 혁명의 실용적인 사상에 휩쓸리게 되었다. 바이런이 사망한 1820년 이후 영국의 낭만주의는 급속하게 후퇴하였다.

일본 [ 편집 ]

계몽주의에 이어 인간의 자아(自我)를 강조하고 주관적·이상적·심정(心情)적이어야 한다는 사조(思潮)가 생겨났다. 인간성의 해방, 사상·감정의 자유를 찾아서 현실 자체보다도 관념이나 이상·감정을 중시하고 비합리적·신비적 경향도 함께 갖는 사조는 일본에서는 메이지 20년(1887년)대에야 뚜렷한 모습을 나타내게 되었다.

1888년 독일에서 돌아온 모리 오가이(森鷗外)가 낭만적 단편을 발표하여 초기 낭만주의의 맹아(萌芽)를 틔웠다. 낭만주의가 사조로서의 모습을 갖게 된 것은 1893년부터 시작되는 <분가쿠카이(文學界)> 동인의 활동 이후로 보는데 이 ‘분가쿠카이’파를 초기 낭만주의, 메이지 30년(1897)대에 들어와 <묘죠(明星)>에 의한 요사노 뎃칸(與謝野鐵幹, 1873-1935)과 아키코(晶子, 1878-1902) 등의 활동, 다카야마 조규(高山樗牛, 1871-1902)의 평론 등을 중기 낭만주의, 다시 메이지 40년(1907)대에 들어와서 나가이 가후(永井荷風),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郞) 등의 경향을 후기 낭만주의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미술 [ 편집 ]

상을 뿌리쳐 감정을 자유롭게 토론하고, 그 내용이나 색채에 훨씬 정열을 의식케 하는 표현을 찾아 나아가고 있다. 신고전주의는 고대갖기보다도 개인을 해방하여 개개인의 감수성에서 새로운 창조를 추구하고 있다. 신고전주의는 무궤도(無軌道)를 극도로 금지했으나, 낭만주의는 이성에 치우친 냉정함이 본래의 감동이나 정열을 없앨까 싶어 염려하고 있다. 이미 그것은 제1보로서, 프뤼동의 우아하고 고상한 작품도 로맨틱한 꿈을 생각하게 되지만, 그러나 확연한 기운을 보인 것은 그로의 정열적인 제작이었다. 그로는 루벤스의 정열적인 색채에 심취하고 있으나, 한편에서는 스승 다비드의 엄중한 교의(敎義)를 존중하면서도 그 분방한 천성은 유감없이 작품에 나타나서, 특히 전쟁화에는 초연(哨煙)의 냄새와 더불어 사람을 뒤흔들 것 같은 감동이 움직이고 있다. 그로는 그 색채에서도 약동이야말로 작품의 생명임을 증명하고 있는데, 그로에 이어서 제리코가 나오고, 다시 들라크루아가 나타나서 낭만주의는 크나큰 비약을 하게 되었다.[1]

하위 사조 [ 편집 ]

낭만적 보수주의 [ 편집 ]

과거 프랑스 혁명의 과격하고 잔인한 모습에 영향을 받아 생겨난 사조이며 대표적인 인물로 버크를 들 수 있다. 버크는 1790년 그의 저서 《프랑스 혁명에 대한 고찰》(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에서 다음과 같이 프랑스 혁명에 대해 비판을 하였다.

“ 국가 체제와 질서는 정부와 인민 사이 조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지, 함부로 부수거나 없애는 것은 아니다. ”

이 낭만적 보수주의의 입장은 유지된 체제의 장점과 효율성을 존중한 것이었다. 그러나 어떤 논리적인 이론의 배경없이 변화를 무조건적으로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각주 [ 편집 ]

같이 보기 [ 편집 ]

참고 자료 [ 편집 ]

낭만주의 미술에는 과연 ‘낭만’이 있는가?

[디아티스트매거진=양효주 칼럼니스트] 낭만주의 미술에는 과연 ‘낭만’이 있는가? -고야, 들라쿠르아, 제리코, 크리드리히 다비트, 윌리엄 블레이크 ▲ Francisco Goya, Duchess of Alba the White duchess, 1795. 출처:구글이미지 대개 ‘낭만적romantic’ 이라는 형용사를 떠올리면 우리 머리속에는 곧장 감미롭고 달달한 분위기,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감성의 선율이 흐른다. ‘낭만적인 분위기’, ‘낭만적인 사랑’, ‘낭만적인 시와 음악’……. 데이트 상대에게 “당신은 정말 낭만적이야” 라는 말은 듣고 기분나빠할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바로 이 ‘낭만’이라는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이미지와 느낌 때문에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다. 미술사에서의 ‘낭만주의 미술’이 그것이다. ▲ Francisco Goya, Saturn Devouring His Son, 1823, 출처:구글이미지 위 그림은 낭만주의 미술의 대가로 손꼽히는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이다. 이 그림은 우리가 앞서 묘사한 ‘낭만적이다’ 할 때의 그 느낌과는 확연이 다른, 오히려 괴기함과 공포에 더 걸맞지 않은가? 학술적 의미에서의 ‘낭만주의romanticism’, 미술사의 ‘낭만주의 미술’은 과연 무엇이 다른가? 낭만주의의 태동 낭만주의가 하나의 예술운동으로 공언된 시기는 1798년 독일의 예나에서 A.W.슐레겔과 W.슐레겔 형제가 《아테네움:Athenäum》지를 창간한 때로 본다. 슐레겔형제는 ‘만인을 위한 진보적 성격을 띤 시’를 낭만적인 시라 칭하며 과거에서 물려받은 형식에 얽매인 시, 즉 문화적 특수계급을 위한 시와 구분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슐레겔은 라틴어가 아닌 민중들이 쓰던 프랑스어, 상상력과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중세의 이야기를 뜻하는 ‘로망스’(Romance)에서 ‘로맨틱’(Romantik)이란 단어를 축출했다. 한편 독일어로 das Roman은 소설을 뜻한다. 소설의 특징처럼 낭만주의시대의 문학과 미술은 상상력에 호소하는 비현실적, 환상적, 감정적, 그로테스크, 개성적이며 절대적인 것에 반대한다. ▲ Caspar David Friedrich,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1817 낭만주의는 그 이념의 이상을 중세봉건시대에서 찾았다. 민족주의, 신앙의 재창조, 자연으로의 회귀를 꾀함으로써 타락한 현실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하였다. 카스파르 다피트 프리드리히의 작품 <안개위의 방랑자, 1817-18>를 보면 그림 속 화자의 내면세계와 자연의 미스테리가 교감하는 모습이 느껴진다. ▲ William Blake, The Ancient of Days, 1794, 출처:구글이미지 낭만주의를 일컬어 *흘러넘친 종교’(spilt religion)라고도 하는데, 윌리엄 블레이크<천지창조>를 보면 종교의 서사적 내러티브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인간의 형상을 한 창조주로서의 신의 모습에 중점을 둔다. 블레이크는 신과 예술가를 동격으로 놓고 예술가의 천재성을 강조하였다. 낭만주의 예술가는 창조주 신처럼 화폭 안에 세상을 창조하고, 신이 인간에게 숨을 불어넣었듯이 그렇게 생명을 잉태시킨다. *참고문헌: David Blayney Brown, Romanticism, 강주헌 옳김, 『낭만주의』, 한길아트 이성에서 감성으로, 문학에서 미술로 독일문학의 낭만주의 흐름은 프랑스에도 전해져 파리의 작가, 음악가, 미술가들에게 논쟁의 불꽃을 당겼다. 계몽주의의 최고의 성과가 이성에 의한 합리적·객관적 사고였는데, 프랑스 혁명을 통하여 드러난 인간의 취약한 면모, 나폴레옹 집권의 멸망에 대한 프랑스 지식인/예술인들의 당혹감과 절망은 계몽주의가 표방한 모든 원리의 붕괴와 함께 당대 예술의 지배양식이었던 신고전주의의 불신을 야기 시켰다. ▲ Francisco Goya, The Sleep of Reason produces Monsters, 1797, 출처:구글이미지 이러한 정신의 폐허 위에 형식적 위선을 벗어버리고 자신의 내면세계(감성)에 맞는 문화를 이룩하려고 한 것이 낭만주의 태동의 본질이다. 그 결과 자아에 대한 고민, 가장 숭고하고 순수한 진실 그 내면에대한 진지한 탐색이 시작되었다. ▲ Eugene Delacroix, Death of Sardonapalus, 1827-28, 출처:구글이미지 1827-28년 파리, 살롱전에 선보인 외젠 들라크루아의 작품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은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낭만주의’ 그림으로 유명하다. 작품<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은 당시 관람객들에게 너무나 큰 충격을 던진 사건이었다. 잔혹한 주제, 파격적인 구도, 과장된 색채는 보는이의 눈을 현혹시키고 강렬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이는 당시 지배적인 공식 유파인 신고전주의의 양식을 산산조각 낸 것으로 비평가들은 이를 두고 그림이 마땅히 전달해야할 도덕적 교훈마저도 무시한 것이라 했다. 들라크루아는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전래된 가치 보존에 반하는 -아카데미가 요구하는 규칙에 불순응하고 반항함으로써- 혁명적 성격으로 ‘상상력과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과시하며, ‘대중의 감정’에 직접 호소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프랑스 시인이자 비평가인 보들레르는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을 칭찬하면서 이 그림에서 왕이 보여주는 초연한 모습은 나폴레옹시대 이후의 파리에서 젊은 낭만주의자들이 겪고 있는 무기력을 보여주는 것이라 해석했다. 낭만주의 미술의 삼위일체 1) 저널리즘(현실 고발적) 낭만주의가 현실도피와 노스텔지어적인 성격만을 띄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낭만주의 운동은 시대의 서사적인 사건에 몰입하고 회화와 정치적 이상이 긴밀하게 협조된 것이었다. ▲ Francisco Goya, The Third of May. 1803, 출처:구글이미지 고야의 섬뜩한 작품 <5월 3일, 1808>은 지도자의 야심 때문에 고통 받는 민중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자유주의 사상을 품고 있었던 고야는 유럽의 독재자에 맞선 스페인 민중들의 영광스런 봉기를, 그들의 용감한 정신을 회화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림 좌측에 두 팔을 벌리고 하얀 윗옷을 입고 있는 남자, 바닥에 널부러져있는 시신들 처럼 곧 군대의 총탄에 차가운 주검이 될 이 남자, 그의 모습이 꼭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고야가 그 당시 희생된 민중들을 바라봤던 시선을 가늠케한다. ▲ Jean Louis Andre Theodore Gericault, The Raft of the Medusa, 1819, 출처:구글이미지 제리코 <메두사호의 침몰> 은 대단히 시사적이고 고발적이기에 ‘저널리즘적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1816년 프랑스 식민지인 서 아프리카로 출항한 메두사호가 암초에 난파되어 많은 사상자를 발생시킨 비극을 회화로 표현했다. 메두사호의 침몰은 프랑스 정부의 부정부패로부터 야기된 것이었다. (메두사호의 선장은 경험이 없는 실력없는 자였으나 뇌물로 부르봉 왕가의 신임을 얻어 선장이 되었고, 지도에도 나와있는 암초를 피하지 못해 배를 난파시킨 것이다. 그리고 배가 침몰하자 승객들을 제치고 제일 먼저 탈출하였다. 프랑스 정부는 구명정을 타고 구조된 선장, 선원, 귀족 계층 이외에는 모두 죽었을 것이라 단정하고 이 참사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사건의 기록을 지워버렸다. 정부의 부패와 무책임에 대한 여론의 비판을 은폐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뗏목에 의지해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가 발생했다. 15명의 생존자. 그러나 5명은 이내 죽어버리고 나머지 10명은 사고의 충격으로 정신병에 걸려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다) 제리코는 소재의 리얼리티에 그 사건을 바라보는 작가의 비판적 시각·울분을 담아 화면에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2) 그로테스크하거나 우스꽝스럽거나 ▲ Francisco Goya, the Giant, 1814-1818, 출처:구글이미지 상상의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괴물들이 득실대는 세계, 고야의 작품 <거인>은 어둡고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그러므로 단연 이 그림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프랑스 낭만주의 대표적 문호 빅토르 위고가 1827년 에 쓴 희곡 Paras, 31-60을 보면: “The pure epic muse of the ancients had studies nature in only a single aspect, casting aside without pity almost everything in art which in the subjected to its imitation, had not relation to a certain type of beauty.” “So then you put forward the ugly as a type for imitation, you make the grotesque an element of art. But the graces: but good taste! Don’t you know that art should correct nature? That we must ennoble art? That we must select? Did the ancients ever exhibit the ugly or the grotesque? Did they ever mingle comedy and tragedy? 예술은 고전적 ‘아름다움’의 성질과는 다른 것이다. 고전주의 회화에서 배제시켰던 ‘추함’이 예술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피력한다. 3) 오리엔탈리즘, 빛은 동양에서부터 ▲ Francois Boucher, Cherub watching over the Enchanting Home, 1703-1770, 출처:구글이미지 이국적인 것과 동양적인 것, 다른 세계의 위대한 것을 향한 열망(20세기에 이르러서 원초적, 원시주의로)은 18세기 이후로 급격해졌다. 그러나 서구인의 의식속에 자리잡고 있는 동양은 실재하고 있는 동양이 아닌 허구와 가상의 텍스트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달라진 존재의식 낭만주의 미술은 감정을 자유롭게 토론하고, 그 내용을 강조하고 정열을 담는 강렬한 표현을 찾아 나아갔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평론가인 샤를 보들레르가 말했다. “낭만주의의 핵심은 주제의 선택이나 진실의 정확한 표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표현방식에 있다” 고전주의는 고대의 모방을 존중하고 있었으나 낭만주의는 하나의 전형을 갖기보다도 개개인의 감수성에서 새로운 창조를 추구하고 있다. 그리하여 고전주의 양식에 반하는, 즉 ‘반이성, 비형식, 규칙·체제에 대한 반항, 작가의 주관성, 현실 고발적, 이국적 정서’를 낭만주의 미술의 요체라 할 수 있겠다. 19세기 말, 오스카 와일드는 ‘자아’를 이렇게 정의했다. ‘생각과 열정이라는 생소한 유산을 내면에 품고 있는 다양한 얼굴의 피조물이다’. 낭만주의 화가들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끊임없이 교감하려 하였다. 낭만주의자들에게 꿈꾸는 사람은 합리적 정신에 구애받지 않는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정신은 훗날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 고스란히 이어졌다.

낭만주의 浪漫主義 Romanticism(영)

18세기말부터 19세기초에 걸쳐 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일어난 예술상 및 철학상의 경향. 개성을 존중하고 자아의 해방을 주장하며 상상과 무한한 것을 동경하는 주관적, 감정적인 태도가 그 특징이다. 따라서 이는 정신 생활의 전역에 영향을 미친 주의 또는 경향이며 미술상으로는 고전주의*라든가 바로크 등에 대해 일컬어지는 것같은 독자적인 명확한 양식을 낳게 한 것은 아니다. 낭만주의는 고전주의의 차가운 형식 존중에 대한 반동이라는 형태로 나타나, 프랑스에서는 제리코Théodore Gericault(1791~1824)에서 시작되어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1798~1863)에 이르면서 자유분방한 색채, 유동적인 필치, 동감에 찬 구성을 갖춘 영웅적 작품을 남겼다. 특히 들라크루아의 동방 취향 또는 이국 취미에 의한 후기 작업은 낭만주의의 한 특색을 보여주고 있다. 낭만주의의 이러한 특성은 회화사상 독일 중세 혹은 초기 르네상스의 종교적 정열과 결합된 나자렛파*, 룽게Philipp Otto Runge(1777~1810),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1774~1840)의 범신론적 풍경화 속에서도 뛰어난 선구자적 발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낭만주의 회화는 그려지는 주제보다 화가의 주관적 방법이 중요한 예술사조

Radeau de la Meduse – Theodore Gericault 메두사의 뗏목 작품은 배가 침몰한 후 뗏목을 타고, 목마름과 죽음, 굶주림 속에서 바다를 표류하다가 구조되는 선원들을 그린 작품이다. 1815년 ‘나폴레옹 1세‘가 영국으로 망명할때 타고 갔던 함선 ‘메두사’ 호가, 1816년 ‘세네갈’ 해상에서 파선을 당하여, 뗏목에서 생활하며 선원과 승객 149명 중 15명이 기적적으로 살아 남게 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우리나라의 세월호 사건과 비슷하게도 선장과 선원들이 승객들을 버리고 탈출하였단고….. 정부에서 쉬쉬 숨기던 이 희대의 사건을 접한 ‘제리코’는,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해 파선의 몸체를 연구하고, 실제로 목수를 시켜 뗏목을 만들기도 하였으며, 또한 살아 남기 위해 동료의 살을 먹은 이야기, 죽어 가는 사람을 묘사하기 위해 ‘제리코’는 병원에서 시체와 병자의 모습을 관찰하였다. 그림을 보면 흐린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고, 돛을 단 배는 강풍과 높은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터번을 쓴 남자는 사람들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붙들어 매고 있으며, 뗏목 여기저기에는 시체들이 흩어져 있다. 죽은 아들을 끌어 안고 있는 노인의 허망한 모습………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흑인부터 삶의 대한 희망을 보여준다. 멀리 보이는 수평선에 돛대로 보이는 물체가 나타나자 물통에 올라가 옷을 흔들며 구원의 요청하는 사람들이 보이며, 일어나려 애쓰는 장면들이 보인다. ‘제리코’는 이 그림에서, 뗏목에 탄 사람들이 표류 끝에 구조를 받게 되는 순간의 환희를 담으려고 했다. 거대한 캔버스에 담긴 이 작품은 대각선이 서로 교차하는 동적인 구도를 가지고 있으며, 각각의 인물들의 동작 또한 개성적이며 다양하다. 1819년 […]

김교수의 세상보기

서양 미술사조와 대표작품 요약 (2)

낭만주의 ~ 신인상주의 미술

미술은 시대적 상황에 영향을 받고, 시대에 따라 미술이 가지고 있는 사상이 변하게 되는데

그 변화의 흐름을 미술사조(美術思潮) 라고 한다.

중세 이후의 서양회화의 미술사조와 대표적인 화가와 작품에 대하여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본 내용은 개인 참고용이며 비전문가의 시각으로 인터넷에 공개된 자료를 대층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

상당한 오류가 있을 수 있고, 오류가 발견되면 수시로 수정한다.

사진은 공개된 것 중 비교적 크고 선명한 그림을 골랐다.

(그림 위를 누르면 확대)

낭만주의 ( 浪漫主義, Romanticism, Romantism)

19 세기초

사조해설

특징 :

– 낭만주의(浪漫主義)의 로망이라는 어휘는 속어로 쓰인 문학을 의미한 중세 프랑스어 ‘Romanz’에서 유래

– 신고전주의의 질서와 규범적인데 반하여 직관과 감성, 상상력을 발휘하여 색채와 분위기를 중시

– 객관보다는 주관을, 지성보다는 감정을 중요시하고, 또 개성을 존중하여 자아의 해석을 주장하고,

격정적·정서적으로 자유를 구하여 상상하는 대로 무한한 것에 동경

– 인간 이성의 한계를 벗어난 초월적인 숭고의 미, 또는 중세적이고 이국적인 주제를 표현하기도 함

–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는 서로 공존하며 영향을 주고 받음.

시대적배경 :

– 프랑스 대혁명을 비롯한 혁명의 전파

– 유럽의 사상적 토대인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음

대표 미술가 :

프란시스코 고야 (Francisco Jose de Goya y Lucientes, 1746~1828, 스페인) 작가소개

웨젠 들라크루아 (Eugène Delacroix 1798~1863, 프랑스), 작가소개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 독일), 작가소개

윌리엄 터너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 영국), 작가소개

테오도르 샤세리오 (Théodore Chasseriau 1819~1856, 프랑스), 작가소개

키오스섬의 학살 The Massacre at Chios (들라크루아)

1824

캔버스에 유채,419×354㎝

사조 : 낭만주의

파리 루브르박물관

작품해설

민중을 이끄는 여신 Le 28 juillet 1830 : la Liberte guidant le peuple (들라크루아)

1830

캔버스에 유채, 260x325cm 사조 : 낭만주의

파리 루브르 박물관 작품해설

1808년 5월 3일 몽클로아의 총살 Execution of the Defenders of Madrid, 3rd May, 1808 (고야)

18세기경

캔버스에 유채, 98 x 164 cm

사조 :낭만주의

파리 루브르 박물관 1814

작품해설

옷을 벗은 마하 La Maja Vestida (고야)

1800 년경

캔버스에 유채, 97x190cm

사조 : 낭만주의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작품해설

카를로스4세의 가족, La Familia de Carlos IV (고야)

1800~1801 년 경 캔버스에 유채, 280 x 336cm 사조 : 복합 (고야는 로코코에서 낭만주의까지 걸침)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작품해설

파라솔, The Parasol (고야)

1777

캔버스에 유채, 104 x 152cm

사조 : 낭만주의 (고야의 초기 작품으로 로코코적 요소 가미됨)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작품해설

바람부는날 Windy Day (윌리엄 터너)

1808~1809

캔버스에 유채, 91.5 x 120.6cm

사조 : 낭만주의

맨체스터 대학교, 테블리 하우스 컬렉션

작품해설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프리드리히)

18세기경

캔버스에 유채, 94.5 x 74.8 cm

사조 : 낭만주의

함부르크 아트센터

작품해설

샤세리오 양들 (두 자매) Mesdemoiselles Chasseriau dit les deux soeurs (샤세리오)

19세기경

캔버스에 유채, 180 x 135 cm

사조 : 낭만주의

파리 루브르 박물관

작품해설

샘가에 목욕하고 잠자는 여지 Bather sleeping near a spring (샤세리오)

1850

캔버스에 유채, 137 x 210 cm

사조 : 낭만주의

프랑스 아비뇽 칼배미슬관

사실주의/자연주의(寫實/自然主義, realistic art/Naturalism)

19 세기 중반 사조해설(사실주의 ), 사조해설(자연주의) 특징 :

– 실재하는 현실을 주관적으로 변형 ·왜곡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충실하게 반영하고자 함 – 자연대상을 형식화하거나 주관적으로 변형 ·왜곡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충실하게 재현하고자 함 – 19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나타난 유파로서 쿠르베와 도미에, 밀레 등의 화가들이 지향했던 사조임 시대적배경 :

– 자연과학 및 기술의 발달에 의한 자연과 사회현실에 대한 관심의 고조 – 계몽주의 사상의 파급, 프랑스 대혁명을 통한 민주주의 사회의 도래와 – 실증주의 철학의 확산, 산업혁명, 마르크스 ·엥겔스에 의한 사회주의의 등장 대표 미술가 :

귀스타브 쿠르베 (Gustave Courbet 1819~1877, 프랑스),’사실주의 미술을 최초로 선언한 화가”, 작가소개 장 프랑수아 밀레 ( Jean François Millet 1814~1875, 프랑스), 작가소게 오노레 도미에 ( Honoré Daumier 1808~1879, 프랑스), “19세기 최고의 풍자가”, 작가소개

장 밥티스트 카미유 코로 (Jean-Baptiste Camille Corot, 1796~1875, 프랑스), 작가소개

돌 깨는 사람들 Les Casseurs de pierre (쿠르베) 1849 유화, 159 x 259 cm 사조: 사실주의 독일 드레스덴 국립 미술관 작품해설 오르낭의 매장 Un enterrement à O mans (쿠르베)

1849~1950 캔버스에 유채, 311.5 x 668 cm 사조: 사실주의

파리 오르세 미술관 작품해설 잠 Le sommeil (쿠르베)

1866 캔버스에 유채, 135 x 200 cm 사조 : 사실주의

프랑스 아비뇽 프티팔레 미술관 작품해설 이삭줍는 사람들 Les glaneuses (밀레)

1857 캔버스에 유채, 83.6 x 111 cm 사조 : 자연주의

파리 오르세 미술관 작품해설 만종 L’Angélus (밀레)

1857~1859 캔버스에 유채, 55.5 x 66 cm 사조: 자연주의

파리 오르세 미술관 작품해설

삼등열차 The Third-Class Wagon/Carriage (도미에)

1862

캔버스에 유채, 65 x 90 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작품해설

모르트퐁텐의 추억, Souvenir de Mortefontaine (카미유 코로)

1864년

캔버스에 유채, 65×89cm

사조 : 자연주의

파리 루브르 박물관

작품해설

인상주의/인상파(印象主義, Impressionism art)

19 세기 후반

사조해설

특징 :

– 인상주의(印象主義)는 모네의 작품 “인상·일출(日出)”이라는 풍경화의 제명에서 불리기 시작함.

– 빛에 대해 예민한 관찰을 기본으로 하며, 빛과 함께 시시각각으로 움직이는 색채의 미묘한 변화 속에서

자연의 특별히 인상적인 면을 묘사하고자 노력함

– 자연을 하나의 색채현상으로 보고, 색채ㆍ색조ㆍ질감 자체에 주된 관심을 둠.

시대적배경 :

– 사실주의 이전 화가들이 궁정소속으로 기득권의 시선을 반영하였다면 이들은 일반 시민으로서 본격적인 미를 추구

– 사상에 있어서 근대적 감성의 해방운동이고, 객관주의에서 주관주의로 옮아가는 시기 – 사진술의 발명으로 더 이상 사물을 똑같이 그리는 것은 의미가 없으므로 색다른 스타일의 그림을 추구함.

즉, 그림에서 보이는 것은 없고 남는 것은 인상밖에 없어지는 경향

–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회화운동으로 영향이 아메리카와 동양에까지 미침

대표 미술가 :

–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1840~1926, 프랑스), 작가소개

– 카미유 피사로 (Camille Pissarro, 1830~1903, 프랑스), 작가소개

– 알프레드 시슬레 (Alfred Sisley, 1839~1899), 작가소개

– 에드가 가 드가 (Edgar Degas, 1834~1917), 작가소개

– 에두아르 마네 (Edouard Manet, 1832~1883, 프랑스), “인상주의의 아버지”, 작가소개

– 오귀스트 르누아르 (초기)(Auguste Renoir, 1841~1919, 프랑스), 작가소개

인상: 해돋이, Impression: Sunrise (모네) 1872 캔버스에 유채, 48 x 63 cm 사조 : 인상주의 마르모탕 미술관 작품해설 야외사생 수련, 양산을 든 여인 Study of a Figure Outdoors: Woman with a Parasol, facing left (모네) 1886 캔버스에 유채, 131×88㎝ 사조 : 인상주의 파리 오르세 미술관 작품해설 풀밭 위의 점심 식사, Le Déjeuner sur l’herbe (마네) 1863 캔버스에 유채, 208x 264.5 cm 사조 : 인상주의 파리 오르세 미술관 작품해설 봄, Spring (Jeanne de Marsy) (마네) 1881 캔버스에 유채, 51x 73 cm 빙엄 컬렉션 작품해설 피리부는 소년, Le fifre (마네) 1860 캔버스에 유채, 161x 97 cm 사조 : 인상주의 오르세 미술관 작품해설 스타, l’Etoile ou Danseuse sur scène (드가) 1876~1877 파스텔, 58x 42 cm 사조 : 인상주의 파리 루브르박물관 작품해설 두자매, Two Sisters(On the Terrace) (르누아르) 1881 캔버스에 유채, 100.6x 81 cm 사조 : 인상주의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작품해설 책읽는 소녀, La Lecture (르누아르) 19세기경 캔버스에 유채, 55 x 65 cm 사조 : 인상주의 파리 루브르 박물관 작품해설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Bal du Moulin de la Galette (르누아르) 1876 캔버스에 유채, 131x175cm 사조 : 인상주의 파리 오르세 미술관 작품해설 서리 내린 밭에 불을 지피는 젊은 농부 (밭 태우기) Jeune paysanne faisant du feu, gelée blanche, ou la brûle des champs (카미유 피사로) 19세기경 캔버스에 유채, 92.7x 93.3 cm 사조 : 인상주의 오르세 미술관 작품해설 루브시엔느의 마쉰 길, Chemin de la Machine, Louveciennes (시슬레) 1873 캔버스에 유채, 54.5 x 73 cm 사조 : 인상주의 오르세 미술관 작품해설

후기 인상주의 (後期印象主義)

19세기 후반

사조해설

특징 :

– 인상파 화가들이 도시적인데 비해 후기인상파는 향토적이며 강한 개성을 나타냄.

– 인상파, 신인상파 색채 이론의 효과를 생각하며 객관적인 대상을 밝게 그리려고 한데 비하여

후기 인상파는 자연과 작품과는 별개의 독립된 세계라는 생각을 가짐

– 주관적으로 작가 자신의 강열한 개성을 강조하여 표현함

시대적배경 :

– 초기 인상주의의 진보적 계승

– 인상주의자들 이후 유럽 각지에서 주목 받은 20세기 초까지의 진보적인 화가들을 아우르기 위해

이들 작가의 사후에 붙여진 명칭

대표 미술가 :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1890, 네델란드), 작가소개

폴 고갱 (Paul Gauguin, 1848~1903, 프랑스), 작가소개

폴 세잔 (Paul Cézanne, 1839~1906, 프랑스), 작가소개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 프랑스), 작가소개

별이 빛나는 밤, The Starry Night (고흐)

1889

캔버스에 유채, 73.7 x 92.1 cm

사조 : 후기인상주의

뉴욕 현대미술관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

Self Portrait with Bandaged Ear and Pipe (고흐)

1889

캔버스에 유채, 51 x 45 cm

개인소장

작품해설

해바라기, Sunflowers (고흐)

1888

캔버스에 유채, 91 x 72 cm

사조 : 후기인상주의

뮌헨 노이에 피나코텍

작품해설(유사작품 포함 )

까마귀가 있는 밀밭, Wheatfield with Crows (고흐) 1890 캔버스에 유채. 50.5 x 103 cm 사조 : 후기인상주의 반 고흐 미술관 작품해설 감자먹는 사람들, The Potato Eaters (고흐) 1885 캔버스에 유채. 81.5 x 114.5 cm 사조 : 후기 인상주의 반 고흐 미술관 작품해설

타히티의 여인들, Femmes de Tahiti ou Sur la plage (고갱)

1891

캔버스에 유채, 69 x 91.5 cm

사조 : 후기인상주의

파리 오르세 미술관

작품해설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Autoportrait au Christ jaune (고갱)

1890~1891

캔버스에 유채, 38 x 46 cm

사조: 후기인상주의

파리 오르세 미술관

작품해설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Where do we come from? Who are we? Where are we going? (고갱)

1897

캔버스에 유채, 141 x 376 cm

보스턴 미술관

작품해설

이아 오라나 마리아, Hail Mary (고갱)

1891

캔버스에 유채, 87.7 x 113.7 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작품해설

카드놀이하는 사람들, Les Joueurs de cartes (세잔)

1890/1895경

캔버스에 유채, 47.5 x 57 cm

사조 : 후기인상주의

오르세 미술관

작품해설

사과와 오렌지, Pommes et oranges (세잔)

1895~1900경

캔버스에 유채, 74 x 93 cm

사조 : 후기인상주의

오르세 미술관

작품해설

생트 빅투아르 산, La Montagne Sainte-Victoire (세잔)

1887~1890경

캔버스에 유채, 65 x 92 cm

사조 : 후기인상주의

오르세 미술관

작품해설

물랭 루즈에서의 춤, La danse au Moulin Rouge (로트렉)

1890

캔버스에 유채, 116 x 150 cm

사조 : 후기인상주의

필라델피아 미술관

작품해설

화장, la toilette (로트렉)

1896

마분지에 유채, 67 x 54 cm

사조 : 후기인상주의

오르세 미술관

작품해설

신인상주의 (新 印象主義) 19세기 후반

사조해설

특징 :

– 인상파의 수법을 더욱 과학적으로 추구한 미술 사조로 19세기 말엽에 주장한 회화의 경향임.

– 신인상파는 광선 효과와 색채 분할의 기법을 응용하기 때문에 ‘점묘파’라고도 함

– 점묘주의 혹은 분할주의는 캔버스에 색칠을 할 때 순색(純色)만을 사용하되 이를 일체 팔레트에서 뒤섞지 않고

작은 점으로 찍어나가는 방법을 말함. 색조의 순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보는 이의 망막에서

중간색이 형성되므로 더욱 강렬하고 밝은 색채 효과를 거둠.

시대적 배경 :

– 미술의 과학화 체계화 경향

– 튜브물감, 사진기 발명, 광학(光學)과 색채이론 발전

대표 미술가 :

조르주 쇠라 (Georges Pierre Seurat, 1859~1891, 프랑스), 작가소개

폴 시냐크 (Paul Signac, 1863~1935, 프랑스), 작가소개

테오 반 리셀베르그 (Théo van Rysselberghe, 1862~1926. 벨기에), 작가소개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Sunday Afternoon on the Island of La Grande Jatte (조르주) 1884~1886 캔버스에 유채, 207.5 x 508 cm 사조 : 신인상주의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 작품해설 아스니에르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 Bathers in Asnières (조르주) 1883 ~ 1884 캔버스에 유채, 300 x 200 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작품해설 우물가의 여인들, Femmes au puits, (시냐크) 1892 캔버스에 유채, 195 x 131 cm 사조 : 신인상주의 파리 오르세 미술관 작품해설 아비뇽 교황청, Le château des Papes à Avignon (시냐크) 1909 캔버스에 유채, 73.5 x 92.5 cm 사조 : 신인상주의 오르세 미술관

작품해설

돛단배와 강 하구, Voiliers et estuaire, (리셀베르그)

1892~1893경

캔버스에 유채, 61x50cm

사조 : 신인상주의

파리 오르세 미술관

작품해설

출처; People2Nature 블로그 http://blog.daum.net/kwuny/13383300

[Opinion]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비슷하지만 다른 그들 [시각예술]

신고전주의 미술과 낭만주의, 비슷하지만 다른 그들

1. 신고전주의 미술의 특징과 등장 배경 vs 낭만주의 미술의 특징과 등장 배경

신고전주의 미술은 18-19세기에 등장해 고대 그리스 로마 미술로의 복귀를 주장하였고, ‘아카데미즘 미술’이란 이름으로 주류를 형성했다. 신고전주의의 특징은 첫 번째, 감성적인 이전 사조와 달리 이성 중심의 합리주의 미술이었다 . 두 번째, 색을 부차적으로 여겨 형태 , 선묘, 드로잉에 중점을 두었다 . 마지막으로 화면 공간을 단순화 시켰고 질서를 중시했다 .

신고전주의 미술의 등장배경은 두 가지가 있다. 먼저, 고대 로마 도시 폼페이가 발굴되었다 . 고대 유적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고 , 미술 연구 학자 빈켈만은 고대 유적의 예술성을 ‘고귀한 단순성과 위대한 고요’라고 표현했다. 다음으로 ‘ grand voyage’, 즉 ‘대 여행 시대’가 열렸다 . 미술사 학자들은 이란, 터키, 북부 아프리카 등 여러 곳을 탐사하여 트로이와, 크레타의 크노소스 궁을 발굴했다. 이렇게 유적이 드러나면서 고대 미술에 대한 흥미가 고취되어 신고전주의가 등장했다 .

한편 낭만주의의 등장 배경은 신고전주의와 확연히 달랐다. 첫 번째로, 프랑스 대혁명으로 인해 사회가 민주화되기 시작했다 . 이제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이 중시되며 개인주의 가 발달했다. 두 번째로, 산업대혁명으로 인해 시장경제가 부활했다 . 작품이 상품화됐으며 그에 따른 예술가의 지위 상승으로 화가들은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다음으로 자율적인 천재의 개념이 확립 됐다. 특징으로는, 낭만주의 미술은 먼저 이성과 합리성이 아닌 개인의 감성을 중시했다 . 또한 주관에 대한 신념을 근거로 창조성을 인정했고 스스로 천재임을 드러냈다 . 그리고 낭만주의 예술가들은 현세적이었으므로 동시대의 저널리스틱한 소재들을 그림으로 그렸다 .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호기심과 향수로 오리엔탈리즘을 띠었고,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주제로 했다. 자연을 ‘대자연’이라 부르며 작품의 소재로 삼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신고전주의가 선묘 중심인데 비해 색채를 중시했다 .

2. 신고전주의의 대표 화가와 화풍

고전주의 대표 화가로는 자크 루이 다비드가 있다. 그는 1748년에 태어나 1825년에 몰했다. 다비드는 아카데미즘의 성립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고 대혁명에 참여하는 등 미술과 정치적 활동을 겸업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호라티우스 형제들의 맹세>에 대해 설명하겠다.

[그림1] 호라티우스 형제들의 맹세, 고전주의로의 복귀를 주장한 신고전주의의 화풍이 잘 드러난다

1784년 작으로 크기가 매우 크다(이는 다비드의 그림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내용을 살펴보자면, 로마의 호라티우스가 자신의 세 아들에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놓으라고 설득하고, 결과적으로 전쟁에 나서게 된 아들들이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하겠다는 맹세를 하는 장면을 담았다. 이는 영웅심, 애국심, 희생심의 도덕적 교훈을 담은 그림이며 프랑스 대혁명 당시의 군중에게 바쳐진 그림이었다. 즉, 정치적 프로파간다의 역할을 했다 .

그림을 보면, 인물의 윤곽선은 뚜렷하고 형태는 명확하다. 그들은 무대에서 배우들이 연극을 하는 것처럼 과장된 제스처를 취한다. 남성들은 강건한 정신으로 직선적 자세를 취한 데에 비해 여인들은 지그재그로 꺾였으며 슬픔, 절망을 뜻한다. 전체적으로 색은 얌전하다.

앵그르 또한 신고전주의의 대표 화가이다. 1780년에 태어나 1867년에 몰했다. 그는 특히 초상화에 뛰어나 아카데미 졸업 이후 궁정에 머무르며 초상화를 그렸다. 그의 대표작은 <옥좌 위의 나폴레옹>으로 1806년 완성됐다.

[그림 2] 옥좌 위의 나폴레옹, 신의 모습처럼 위풍당당한 묘사는 왕권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이다

대관식 직후의 나폴레옹의 모습을 로마황제처럼 당당한 정면상으로 나타냈다. 그림은 나폴레옹에게 역사성을 부여했다. 그는 로마 황제들이 쓰는 월계관을 머리에 쓰고 있다. 왼손에는 삼위일체를 뜻하는 지팡이를 쥐고 있는데 이는 신성 로마 제국의 상징으로, 나폴레옹이 제국을 계승했음을 의미한다. 그의 망토와 장식은 화려하고 카펫의 독수리 또한 황제를 뜻한다. 즉, 앵그르는 초상화 속에서 나폴레옹을 이상화시킴으로써 황제로서의 정당성을 표현했다 .

3. 낭만주의의 대표화가와 화풍

낭만주의 대표화가 제리코는 1791년에 태어나 1824년에 몰했다. 그는 낭만주의의 창시자였다. 대표작은 <메두사 호의 뗏목>으로 메두사 호 난파라는 당시의 국제적 스캔들을 소재로 그렸다 .

[그림 3] 메두사 호의 뗏목, 구도와 묘사, 비례보다는 그림의 분위기와 감정에 집중하게 된다

그는 이 그림을 사실적으로 그리기 위해 시체를 직접 보고 그렸고 , 생존 인물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어 생생하게 나타냈다 . 그림은 대각선 구도이며 감정적으로 매우 격정적이다 . 그림은 고전주의적 형식, 예를 들어 뚜렷한 윤곽선이나 카라바조 식 명암대비(빛과 어둠의 극심한 대비)가 있지만 감정 묘사가 중심이기에 낭만주의 사조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대표 화가로는 외젠 들라크루아가 있다. 제리코가 낭만주의의 창시자라면, 들라쿠르아는 낭만주의의 완성자이다. 대표작으로는 <키오스 섬의 학살>이 있다.

[그림 4] 키오스 섬의 학살, 전체적으로 절망과 비통함에 잘 맞는 색, 구도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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