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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림 목사 근황 | 이재록 목사의 치료권능? ① 기적의 ‘무안단물’은 눈속임 – Pd수첩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 (1월29일 방송 중) 8272 명이 이 답변을 좋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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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선교회 휴거 이장림 목사 근황, 아직도 이러고 있네요.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다미선교회 이장림 목사를 필두로 전국 몇몇 교회에서 휴거설이 대대적으로 퍼졌습니다. 1992년 10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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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선교회 이장림 근황> 휴거, 그 이후는…? – 네이버 블로그

시한부 종말론: ​. 다미선교회의 이장림 목사를 선두로. 전국의 일부 목회자, 사역자, 신자들이. 1992년 10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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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세기말을 틈타 이장림 목사(1948년생)[1] 중심으로 생긴 유사 개신교 계열의 사이비 종교. 후술할 1992년 10월 28일 휴거가 일어난다는 유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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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선교회 이장림 목사, 근황은? “사기죄 징역 1년…이름 개명 …

다미선교회 이장림 목사는 1992년 10월 28일 휴거가 일어난다고 예언했던 바. 휴거를 한달 앞둔 9월 22일, 이장림 목사는 사기죄로 검찰에 연행됐다. 신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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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림 목사 근황 꼬꼬무 다미선교회 휴거 사건 – 포푸리 만물사전

전국 250개 교회 신도 10만명의 사람들이 이장림 목사의 말에 속아 넘어갔고, 휴거일이 오기전 자살을 하거나, 뱃속의 아기를 낙태하는 신도들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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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을 주장하던 이장림 목사의 근황 – 세상견문 – Daum 카페

종말론을 주장하던 이장림 목사의 근황 · 1. 마포구 성산동에 다미선교회라는 교회를 지은 후, 1992년 10월 28일 인류종말이 온다는 휴거론 주장 · 2. 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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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실화임?] 전국에 생중계 된 ‘지구 종말의 날’. 90년대 초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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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림 목사 근황> 모던코리아 다미선교회 휴거 / 이장림 나이

<이장림 목사 근황> 모던코리아 다미선교회 휴거 / 이장림 나이. by 강찐찐 2020. 2. 20. 2020년 2월 20일,. KBS 다큐멘터리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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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최악의 사건 다미선교회 시한부종말론 사건 총정리(+ …

다미선 교회는 1990년대 세기말을 틈타 이장림 목사를 중심으로 생긴 개신교 계열의 사이비 종교입니다. 이장림 목사는 원래 기독교 서적을 전문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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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4/2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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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 뜻’ 낙태·납치·자살 부른 이장림 목사, 한 달 전 마약혐의 체포

전국 250만 교회의 신도 10만 명이 빠져든 ‘휴거 소동’의 때는 1992년 10월 28일 24시였다. 휴거가 일어날 것이라 주장한 이는 이장림 목사. 하지만 아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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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etoday.co.kr

Date Published: 8/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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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록 목사의 치료권능? ① 기적의 '무안단물'은 눈속임 - PD수첩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 (1월29일 방송 중)
이재록 목사의 치료권능? ① 기적의 ‘무안단물’은 눈속임 – PD수첩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 (1월29일 방송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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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uthor: MBC PD수첩
  • Views: 조회수 990,307회
  • Likes: 좋아요 2,969개
  • Date Published: 2019. 1. 29.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CpgvY4gJsAE

다미선교회 휴거 이장림 목사 근황, 아직도 이러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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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림 목사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다미선교회 이장림 목사를 필두로 전국 몇몇 교회에서 휴거설이 대대적으로 퍼졌습니다. 1992년 10월 28일.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하늘로 거두어간다는 게 휴거설인데요. 지금 들으면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야? 할 수 있겠지만. 그 당시 믿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이 대대적으로 믿었던 휴거

휴거날에 임신하면 안 된다는 지시에 자신의 아이를 낙태한 임산부도 있었고, 가족을 버리고 가출하고. 자신의 재산을 교회에 나눠주는 신도들도 있었습니다. 천국 가서 사는데 뭐가 필요한 것이냐, 라는 심리였던 거죠.

이장림 목사 저서

수많은 신도들이 1992년 10월 28일 각자 교회에 모여 찬송가를 부르고 휴거 간택되길 기도했으나. 결과는 하느님은 개풀 집에 돌아가야 했었죠. 서로 엄청 민만했지만 강렬했던 사건이었습니다.

다미선교회 휴거

이 휴거 사기 사건에 가장 중요한 게 최초 휴거설을 주장했던 이장림 목사인데요. 그의 근황을 잠시 알아보겠습니다.

이장림 목사 근황

현재 나이는 73세로 추정됩니다. 재밌는 건 1992년 10월 28일 휴거 한달 전 이미 이장림은 사기죄로 구속된 상태였었죠. 신자들한테 돈 뜯어서요. 신도 4명에게 6억 5천만 원 갈취. 개인적으로 34억 원 교회 돈 사용. 천만 원 이상 헌납한 신도 30명 이상. 일부는 휴거 날 전까지 생활비를 뺀 전재산 헌납. 어찌 이런 일이… 아무튼 사기죄로 구속되었다가..

이장림 목사 근황

1993년 출소되었습니다. 그 뒤 이름을 이답게로 개명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새하늘교회를 설립했습니다. 그가 2000년에 쓴 저서 [요한계시록 강해]에서 그가 밝히길.

“시한부 종말론이 잘못됐음을 뼈아프게 느꼈다. 시한부 종말론이 다시는 이 땅에 있어서는 안 된다.”라는 문장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장림목사근황

그러다 2003년 건강이 좋지 않아 활동을 접었으나 주변 신도들의 요청으로 복귀. 새로운 교회를 세우고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레머 선교회를 세운 후 종말론을 펼치고 있다 합니다. 다른 소문으로는 건강 문제로 기도원에 있다는 썰도 있습니다.

레머 선교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곳. 정보가 부족한데.. 결론적으로 이렇게 대대적으로 사람들을 속인 사기꾼이 평범하게 살고 있을 거 같진 않습니다. 죗값을 받고 있을까요? 이상으로 다미선교회 휴거 사건, 이장림 목사 근황에 대한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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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선교회 이장림 근황> 휴거, 그 이후는…?

1992년 당시 44세였던 이장림 목사는

2020년 현재 72세로 추정된다.

이장림은 휴거 날짜로 지정된

1992년 10월 28일 한 달 전,

사기 혐의로 이미 구속됐었다.

휴거를 근거로

신자들에게서 돈을 걷었기 때문.;;;

검찰은 이장림이 신도 4명으로부터 6억 5천만원을 갈취하였으며, 개인적으로 34억원을 사용한 장부를 입수하였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천만원 이상을 헌납한 신도가 30여명에 이르렀고 그 중 일부는 10월 28일까지의 생활비를 뺀 전재산까지 헌납했다고 한다. 신도들은 자발적으로 헌납했다고 주장했지만 이장림이 1993년 5월 22일에 만기되는 환매채를 사들인 것이 확인되어 검찰은 사기로 판단하였다. 이어 검찰은 수표 1억 9300만원, 환매채 3억원, 26,700달러를 이씨의 자택에서 압수하기도 하였다. 1992년 12월 4일에 서울형사지방법원은 이장림에게 사기죄로 징역 2년을 선고하였으며, 항소심에서는 징역 1년과 26,000달러 몰수형을 선고하였다.

– 출처: 위키백과

이장림 근황:

1993년, 이장림은 출소 후

‘이답게(사람답게라는 뜻)’로 개명했고,

서울 서교동에 새하늘교회를 설립했다.

2000년에 쓴 저서 <요한계시록 강해>에서

“시한부 종말론이 잘못됐음을 뼈아프게 느꼈다.

시한부 종말론이 다시는 이 땅에 있어서는 안 된다”

라는 문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다 2003년 건강상 이유로 활동을 접었지만,

신도들 요청으로 다시 다미선교회가 있던 성산동에

C교회를 세우고 설교를 시작했다고 한다.

다미선교회 이장림 목사, 근황은? “사기죄 징역 1년…이름 개명 후 목회일 中”

‘꼬꼬무’를 통해 다미선교회 이장림 목사의 근황이 전해졌다.

29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는 ‘지상 최대의 인간 증발 – 휴거 1992’ 편으로 꾸며졌다.

다미선교회 이장림 목사는 1992년 10월 28일 휴거가 일어난다고 예언했던 바. 휴거를 한달 앞둔 9월 22일, 이장림 목사는 사기죄로 검찰에 연행됐다. 신도들이 헌납한 돈을 교회 계좌가 아닌 개인 계좌로 받은 것. 그 금액은 34억 4천만원에 달했다. 무엇보다도 이장림 목사가 신도들을 기망했다는 것은 그의 집에서 환매조건부채권이 발견되면서 확실시 됐다.

환매조건부채권은 금융기관이 일정 기간 후 확정금리를 보태어 되사는 조건으로 발행하는 채권. 이 채권의 만기일은 다름아닌 1993년 5월 22일이었다. 이에 이장림 목사는 자신이 휴거 대상자가 아니며 7년 대환난의 시기 순교해야할 사람이며, 활동비를 준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장림 목사는 채권을 근거로 사기죄로 구속됐다. 하지만 오히려 다미선교회에 더 많은 신도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장림 목사의 구속은 핍박이라는 것. 이에 온 국민의 관심사가 휴거로 쏠렸고 이를 묻고 사재기를 하는 이들, 번화가에서 돈을 뿌리는 이들까지 나타났다.

휴거를 코앞에 두고 경찰들은 비상태세에 돌입했다. 다미선교회 신도들이 친척들에게 고별인사를 하거나 집단으로 유서를 작성하는 등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경찰은 종말론 교주와 신도들이 집단으로 자살한 ‘오대양 사건’을 되풀이 할 것을 우려하기도 했다고.

1992년 10월 28일 휴거일 당일, 수많은 사람들이 다미선교회가 있는 서울 마포구 성산동 주택가에 몰려들었지만 역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특히 그제서야 사기라는 것을 확신한 사람들과 다미선교회 목사들 사이에서 난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28년 후 이들의 근황은 어떻게 됐을까. 이장림 목사는 당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출소 후 그는 이름을 바꾸고 목회 일을 하고 있다는 것만 알려졌으며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일부 목사, 전도사들은 몇년 후 다른 곳에서 종말론 단체를 또 이끌다가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장림 목사 근황 꼬꼬무 다미선교회 휴거 사건

1992년 대한민국 휴거 사건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어이없고도 허무맹랑했던 이장림 목사의 대국민 사기극 사건

휴거란 ?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늘로 승천하는 현상.

전국 250개 교회 신도 10만명의 사람들이 이장림 목사의 말에 속아 넘어갔고, 휴거일이 오기전 자살을 하거나, 뱃속의 아기를 낙태하는 신도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일가족이 홀연히 자취를 감추거나 실종되는 사건도 발생됐습니다. 방송 ‘꼬꼬무’에 게스트로 출연한 김이나 씨의 말에 의하면 당시 “우리 학교에도 사라진 친구가 있었어요”라며 휴거 당시의 기억을 꺼내놓기도 하였습니다.

휴거가 일어나기로 예정되어 있던 1992년 10월 28일, 수 많은 취재진들이 정말로 휴거사태가 일어나는지 취재하기위해 다미선 교회 근처로 몰려들었지만, 정작 휴거 예정인 12시가 되었는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시각 12시가 되기 전 오후 11시. 이장림 목사는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허무맹랑한 거짓 주장과 함께, 이장림 목사는 당시 신도들에게 34억 4천 만원이라는 거액의 금액을 개인 계좌로 받아 사기죄로 연행되었습니다. 어이없게도 채권 만기일이 휴거일 이후인 1993년 5월 22일이었다고 합니다.

이장림 목사 대국민 사과문

양심은 있는지 이장림 목사가 대국민 사과를 올리기도 했었죠, 한번 보시죠

이장림 목사는 사건당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출소후에 이름을 개명한 뒤 목회일을 하고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신자들을 속이고 사기를 치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죠. . . 부디 희생당하는 불쌍한 이들이 없길 바라며 포스팅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종말론을 주장하던 이장림 목사의 근황

20여 년 전 이장림이라는 사람이 종말론을 주장해서 도서관에서조차 그 책을 볼 수 있었답니다.

오늘 이 사람의 기사가 각 신문에 나서, 그때 그 자신, 그리고 그와 함께 하던 사람들의 행적을 살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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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장림 목사 (이답게 목사로 개명)

1. 마포구 성산동에 다미선교회라는 교회를 지은 후, 1992년 10월 28일 인류종말이 온다는 휴거론 주장

2. 서울지검 강력 수사본부에 신도에게 재산 헌납과 과련하여 34억 4천만원에 대한 사기혐의로 구속

3. 서울지검 황인정 검사의 심문에 ‘자신은 맹렬신도의 기세에 밀려 그리 주장했을 뿐 휴거를 믿지않았고, 휴거일 이후에는 사람들이 가정으로 복귀하도록 설득하겠다’고 대답함

4. [하늘문이 열린다] [진군의 나팔]등의 책을 통해서 휴거를 적극 주장함

5. 수많은 학생들이 공부를 포기하고 가출하고, 성인들은 직장과 가정및 재산을 포기하는 사회문제 야기

6. 후거소동후, 마포구 서교동에 새하늘 교회(구 다미 선교회)를 세우고, 이름을 이답게 목사로 개명하고, 일반교회의 모습을 갖추고 목사활동 계속, 교회내에 레머선교회를 부속기구로 운영중임. 그를 정신적 지주로 따르는 100 여명과 함께 함

7. 2011년 10월 하바드대가 사기꾼들에게 주는 이그노벨상을 수상함

2. 하방익 목사 (하다니엘로 개명)

1. 1992년 이장림의 시한부 종말론 당시 16세였으며, 휴거에 대한 직통계시를 받는다던 어린종 3인중(진군, H군, K양), H군에 해당하는 사람

2. 한국을 대표하는 각 교단들에서 다미선교회의 시한부 종말론을 이단으로 규정함

3. 이에 대해 2000년 7월, ‘교회와 이단과 기독교 이단 사이비 연구 대책협의회’라는 소교모 단체를 통해서 사과문을 발표하고, 이단철회를 받아서 과거 경력을 없앰. 그러나 한국을 대표하는 모든 교단들이 이단철회를 한 것은 아님

3. 미국 칼빈성서 신학교 수학, 2009년 4월 예장 합동 개혁측 교단 한남노회에서 목사안수받고 목사가 됨.

4. ‘교회와 이단’ 이라는 잡지 만들어 기독교 이단을 감별하기 시작함

자신이 과거 다미선교회의 중심 인물중 하나였다는 것을 흔쾌히 밝히려 들지않으며, 누가 자신의 경력에 대해 왜곡하여(?) 노출하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여 대응

5. 1992년 사태(휴거설, 순교설 등)는 자기 잘못이 아니고 다른 이들의 잘못과 오해때문이라고 설명함

6. 현재 하다니엘이라는 이름으로, 경기도 하남시 사자교회의 목사로 활동중

7. 사자교회는 홈페이지에 ‘미국 7개지역 중국 129개지역에 교회를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음

3. 이만성 목사

1. 1992년 휴거 소동시 다미선교회 목사들 중 1명이며, 지금은 거제시 장승포 제 2교회 담임목사

2. 1995년 4월 16일 휴거설을 주장

2. 2011년 11월 15일 오전 3시 종말설을 다시 주장, 인테넷 카페 ‘마지막 나팔수'(카페지기 드보라와 김여명 목사도 다미선교회 출신) 운영중

[이거 실화임?] 전국에 생중계 된 ‘지구 종말의 날’. 90년대 초반 대한민국을 휩쓸었던 지구 종말론 ‘휴거’|크랩 | 이장림 목사 근황 오늘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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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림 목사 근황> 모던코리아 다미선교회 휴거 / 이장림 나이

2020년 2월 20일,

KBS 다큐멘터리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에서

1992년에 다미선교회가 일으킨

시한부종말론에 대해 다루었다.

그 내용은,

다미선교회의 이장림 목사를 선두로

일부 목회자와 신자들이

1992년 10월 28일,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하늘로 거두어들인다는

휴거설을 믿는 내용이었다.

휴거를 믿던 신자들은

집과 가족, 돈, 심지어 옷까지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교회에 모여 찬송을 부르고

춤을 추고 기도를 했다.

하지만 민망하게도

10월 28일 12시가 되었을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 당시 휴거설을

가장 먼저 주장하고 이끌었던

다미선교회의 이장림은

현재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1992년 당시 44세였던 이장림 목사는

2020년 현재 72세로 추정된다.

이장림은 휴거 날짜로 지정된

1992년 10월 28일의 한달 전,

사기 혐의로 이미 구속됐었다.

1993년, 이장림은 출소 후

‘이답게(사람답게라는 뜻)’로 개명했고,

서울 서교동에 새하늘교회를 설립했다.

그러다 2003년

건강상 이유로 활동을 접었지만,

신도들 요청으로 다시

다미선교회 본부가 있던 성산동에

C교회를 세우고 설교를 시작했다고 한다.

1992년 이후 쓴 저서

<요한계시록 강해>에서

“시한부 종말론이 잘못됐음을

뼈아프게 느꼈다.

시한부 종말론이

다시는 이 땅에 있어서는 안 된다”

라고 적었다.

현재는 ‘레머 선교회’라는 걸 세운 후

여전히 종말론을 펼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건강 문제로

기도원에 들어가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1992년 최악의 사건 다미선교회 시한부종말론 사건 총정리(+이장림 근황 휴거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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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최악의 사건 다미선교회 시한부종말론 사건 총정리(+이장림 근황 휴거 뜻)

‘꼬꼬무’ 장도연, 장성규, 장항준이 1992년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휴거 사건에 관해 밝히며 당시 사건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1992년 최악의 사건이라고 불리는 1992년 시한부 종말론 휴거 소동, 이장림의 다미선교회 시한부종말론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이 왜 최악의 사건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목차

1.사건의 발단

다미선 교회는 1990년대 세기말을 틈타 이장림 목사를 중심으로 생긴 개신교 계열의 사이비 종교입니다.

이장림 목사는 원래 기독교 서적을 전문적으로 번역/출간하는 생명의말씀사의 번역가였습니다. 이단 사역자가 정통 기독교 출판사나 방송국에서 일하다 마각을 드러내는 경우는 의외로 흔합니다.

만민중앙교회의 이재록 목사는 극동방송에서 설교를 송출한 적이 있으며, 유병언은 무려 극동방송의 부국장으로 재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이름을 “~답게 살자”라고 해서 “이답게”로 바꿨다고 합니다. 다미선교회는 새하늘교회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다미선교회 시한부종말론 사건은 대한민국에서 이장림 등이 1992년 10월 28일에 세계가 종말하면서 휴거(携擧), 즉 예수가 세상에 왔을 때 신도들이 하늘로 들림받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종말론을 주장하여 기독교 계에 파란을 일으킨 사건입니다. 그러나 막상 10월 28일에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휴거 뜻은 세상에 종말이 찾아오는 것을 뜻합니다.

2.1992년 시한부 종말론 10월 28일 휴거 소동

1990년대는 1999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으로 흉흉했던 세기말 분위기와 맞물려 종말론을 내세우는 신흥종교들이 많이 탄생한 시절이었습니다. 그 심리를 이용해 다미선교회는 종말론자 이장림 목사가 주도하여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과 요한묵시록을 근거로 해서 1992년 10월 28일(수) 24시에 휴거가 일어난다는 주장으로 신자들을 모아 돈을 뜯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봐도 복음서에서 그 날은 천사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며 예상치 못한 때에 갑자기 온다고 했습니다. 개신교계에서는 당연히 이단 취급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넘어갔습니다.

이들이 활동하기 시작한것은 대략 1980년대 후반부터로 이때부터 명동이나 서울역 등 주요거리에서 길거리 전도를 했다고는 하지만 본격적으로 사회이슈가 된것은 1990년~1991년도부터로 시한부 종말론을 다룬 종교서적들이 서점에 다수 등장한데다가 1991년에 KBS 사랑방 중계, 뉴스비전 동서남북, MBC PD수첩 등이 다미선교회와 시한부 종말론에 대해 다루면서 이들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방송에서 다미선교회를 딱히 긍정적으로 다룬것은 아니기는 했지만 다미선교회측에서는 이를 오히려 포교의 기회로 삼아 상당수 신도들을 낚았습니다.

월급 100 받으면 잘 번다는 소리 듣던 시절에 뜯은 액수가 몇백 몇천도 아니고 억 단위였다고 하니 얼마나 많이 속였는지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신도들 중 4명은 총합 6억 5천을 냈고, 천만 이상 헌납한 신도는 30여 명이었으며, 그중 일부는 10월 28일까지 먹고 살 만한 돈만 남겨놓고 전재산을 헌납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장림이 신도들로부터 거둬들인 돈이 무려 34억여 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현재 화폐가치로는 75억 상당의 액수입니다.)

아래는 이장림의 휴거발언으로 인해 일어난 피해를 조사하다가 나온 각종 충격적인 사건들입니다.

●철도공무원 하나가 휴거 관련 설교 테이프를 듣다가 해직되었다. 덤으로 이 사람은 해직되자 퇴직금을 전부 다미선교회에 바친 뒤 가족을 데리고 잠적한다.

●서울특별시 마포구에서는 30대 주부가 아들을 데리고 경남에서 선교를 하겠다며 가출했다.

●부산직할시에서는 누군가가 부동산 1억 원어치를 매각해 다미선교회에 바쳤다.

●대구직할시의 어떤 사람은 전세금 7백만 원을 교회에 내고 교회에서 살기도 했다.

●전라남도 강진의 한 여고생은 부모가 다미선교회에 못 나가게 막자 음독자살했다.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동에 사는 윤모씨는 대학생 세 아들들과 함께 모두 종말론에 빠져 가정이 파탄났다. 두 아들은 북한과 외국에서 순교하겠다며 가출까지 했다.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에서는 신도 10여 명이 1991년 10월부터 외부접촉을 끊으며 기도원에서만 생활했는데, 그중엔 어린 애들도 있었다.

●어떤 주부는 자녀 3남매를 모두 데리고 가출, 휴거론을 주장하는 부천의 모 교회에서 숙식하다 교회 목사와 부적절한 관계로 임신하였다.

●휴거론을 주장하던 한 목사는 여중생, 여고생 신도를 대상으로 안수기도를 구실로 삼아 성범죄를 가함.

●임산부가 휴거될 때 몸이 가벼워지려고 낙태하려는 일까지 있었다.

●휴거를 앞두고 세간 살림을 나눠준 사람들도 있었다.

●사표를 내고 교회로 가서 휴거를 기다린 회사원들도 있었다. 그리고 얼마뒤 대규모 복직사태가 일어난다

●세상에 종말이 오고 구원을 받으리라는 생각으로 휴가에 복귀하지 않고 그대로 숙소에서 뻗댄 군인도 있었다그리고 영창에 갔다.

●PD수첩에 나온 사례로 어떤 고교생이 책을 보고 휴거론에 빠져 학교를 빼먹고 교회로 가는 지경이 되자 부모가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켰다.

이 외에도 피해가 100여 건에 달했다고 합니다.

1992년엔 하도 종말론이 유행하다보니 딱히 다미선교회와는 상관없는 다른 평범한 개신교 교회들도 휴거 책자가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분위기가 상당히 어수선해졌습니다. 심지어 당시 이단 상담 전문가의 딸까지 종말론에 낚였을 정도로 크게 성행했습니다.

당시 한국기독교 이단상담소장이었던 진용식 목사가 KBS 모던코리아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진 목사가 사역하던 교회에서는 신도들에게 꾸준히 관련 강의를 하면서 주의를 환기시켜 왔기 때문에 교회 신도들 중에는 다미선교회와 종말론에 빠진 사람이 없었는데, 정작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진 목사의 딸이 다미선교회 추종자였던 담임교사의 영향을 받아 종말론에 빠졌다는 아이러니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담임교사는 결국 사표를 내고 집을 비롯한 전 재산을 처분하고 교회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망의 1992년 10월 28일. TV방송국과 외신기자들까지 취재에 나서며 그날 밤 마감뉴스를 통해(KBS 보도본부 24시, MBC 마감뉴스, SBS 마감뉴스) 생방송으로 휴거를 기다리던 사람들을 촬영하고 있었습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경찰이 출동했고 많은 사람들이 손에 땀을 쥐고 방송을 지켜보았으며 다미선교회와 종말론을 추종하던 교회들의 신도들은 일명 ‘승천복’이라는 흰색 옷을 입고 열광적으로 찬송가를 부르며 예배했습니다. 그리고 신도들은 유언장도 쓰고 남은 옷도 태우고 정말 하늘로 갈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물론 다미선교회 밖은 가족과 친지, 애인등을 찾으러 온 사람과 구경꾼들이 뒤섞이고 인산인해를 보이며 어수선했습니다. 도중에 교회 밖에 설치된 TV 수상기가 한 군중에 의해 부숴지면서 그 소리가 휴거의 징조라고 떠드는가 하면 애인을 찾으러 온 사람이 옷을 벗어던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후 KBS 모던코리아에 출연한 당시 경찰 경비과장에 따르면 실제로는 다미선교회 건물 인근에 살던 한 수험생이 공부중에 바깥 소음이 짜증나서 TV를 발로 차서 부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밤 12시가 되자…. 휴거 같은 건 당연히 오지 않았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고 세상은 그대로였습니다.그러자 신도들은 ‘에러가 났다.’고 했습니다.

흥분한 나머지 몇몇 사람들이 기절하거나, 나방이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누가 “나방이 휴거가 되었다!”라고 소리쳐서 나방이 있던 곳으로 몰려들어 좀비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등 해프닝이 있기는 했지만 별 일 없이 평온하게 다음 날이 되었습니다. 당시 이를 취재하던 한 기자는 “이들은 하늘나라가 아닌 집으로 돌아갔으며…”라는 명대사를 남겼습니다. 휴거가 올 것이라고 믿던 신도들은 허탈감과 후유증만 남긴채 대다수가 일상생활로 복귀했고, 다미선교회를 따라 휴거론을 추종하던 교회들은 비웃음거리로 전락하며 교회 문을 닫는 경우도 속출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던 다미선교회 기도원에서는 분노한 사람들이 기물을 때려부수고 책임자 나오라고 소리지르고 난리가 났습니다. 믿은 사람 책임이지. 억지로 끌려온 것도 아닌데 그나마 오대양 집단 자살사건이나 인민사원 집단자살사건같은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고, 휴거론을 설파한 당사자들과 신도들이 망신을 당하고 교회 문을 닫거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 정도의 수준에서 그친것은 불행중 다행이었습니다.

일부 목사들은 난리통 속에 슬그머니 도망치거나, 심지어 분노한 신도들과 그 가족들에게 사기꾼이라고 욕먹고 두들겨 맞으면서 목사관으로 피신하는 등의 추태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휴거 소동 다음날 MBC 뉴스데스크의 첫 앵커 멘트는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였고, KBS 9시 뉴스의 앵커 멘트도 비슷하게 “휴거의 기적을 기다렸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였다. 또한 당시 조선일보의 사회면 기사 첫 구절은 이보다 더 심플한 “휴거는 없었다.” 였습니다.

3.휴거 소동, 그 후 이야기

휴거소동이 끝난 뒤 다미선교회는 동년 11월 2일 휴거소동 사과문을 발표하고 신도들의 헌금반환 신청을 11월 10일까지 받기로 하면서 해체되었습니다. 해산당시 신도 수는 약 8천 명 정도, 보관한 헌금 액수가 25억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한 가지 웃긴 것이라면, 막상 이장림은 1993년에 만기되는 환매조건부채권을 구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전해지는 이장림의 항변 내용은 예언과 환상을 말하는 미성년자들, 자칭 선지자들에 비해, 이장림 본인은 그런 예언과 환상을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본인은 휴거되는 자격을 얻지 못하고, 지상에 남아서 환란기를 거치며 순교자가 될 것으로 생각하여 그 기간에 사용할 자금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검찰은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휴거 날짜 한 달 전인 9월 24일에 이장림을 사기 혐의로 구속했고, 수표 1억 9300만, 환매채 3억, 2만 6700달러를 압수하였습니다. 법원은 1992년 12월 이장림에게 사기죄로 2년 징역을 선고하였으며, 이장림이 항소하자 2심에선 징역 1년과 2만 6천 달러 몰수형으로 바꾸었습니다.

끝으로 이장림은 1992년 휴거가 일어나지 않자 “여러분, 휴거는 불발했습니다.”(…)휴라는 희대의 멘트를 날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미선교회 신자들은 일반 교회로 흩어졌으나 도저히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다미선교회 건물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등 상당기간 방황하였습니다.

이 후 이장림은 1년 형기를 채우고 출소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현재는 시한부종말론은 잘못된 것이며 종말의 때를 알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뒤로는 또 ‘레머 선교회’라는 걸 세우고는 여전히 종말론을 펴므로 이 사건은 현재진행형입니다. 2012년 종말론이 떠돌았지만, 당연히 이것도 불발했습니다. 그러나 1992년에 있었던 소동은 2012년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현재 이 소동이 일어난 지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지구는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당시 뉴스에 등장했던 다미선교회 서울 본부 건물은 이후 네비게이션 회사 “하이온콥”이 별관으로 사용하였습니다. 하이온콥이 2008년 부도처리되자 지금은 환경단체들이 ‘숲 센터’로 공유하여 사용 중입니다.

사실 이장림 본인은 휴거가 모일 모시에 올 것이라고 딱 잡아서 말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냥 “잘은 모르겠는데 언젠간 올 테니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라”라고 말했을 뿐이며, 휴거가 1992년 10월 28일에 일어난다고 말한 것은 다미선교회 소속의 고등학생 신자였던 하방익이었습니다. 이고깽이냐 당시 다미선교회는 청소년들의 순수함을 이용하여 하방익과 권미나 등 여러 고등학생들을 거짓 예언자로 활용했습니다. 그 때문에 이장림을 체포할 때 사기죄밖에 수사할 게 없었고 형량도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습니다.

현재 하방익은 휴거사태 이후 다미선교회를 떠나서 정식으로 신학교육을 받은 후에 개신교 목사가 되었습니다. 훗날 종말론에 대하여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철없던 시절 넘어가서 사이비 종교 홍보를 했다고 후회한다는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하방익은 종말론과 이단 문제에 대하여 계속 비판하면서 기성 개신교계에 자정을 촉구하고 있다.“일 지진은 재해, 내년 종말은 없다” 권미나도 종말론을 버리고 일반 장로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보면 정말 웃긴일화로 남았는데 저당시는 많은 사람이 불안함에 떨정도로 크게 이슈가 됐던 사건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X천지, 제X교회 등 수많은 사이비들. 문제는 그들이 이젠 권력단체가 되어버려 손쓰기 어렵다는점 입니다. 속아버린 사람들을 비난하진 않지만 이러한 사건들 때문에 속지 않으려고 배워야한다고 생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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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 뜻’ 낙태·납치·자살 부른 이장림 목사, 한 달 전 마약혐의 체포

(출처=다미선 교회 )

휴거 뜻이 무엇일까.

휴거 뜻은 29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에서 휴거 1992에 대해 다루면서 화두에 올랐다. 휴거 뜻은 세상에 종말이 찾아오는 것을 말한다.

‘라이프성경사전’에 따르면 휴거(携擧)는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시 주를 믿고 죽은 성도들이 먼저 부활하고, 그때까지 살아 있는 성도들이 육체의 변화를 받아 공중으로 들어올려져서 주를 만나게 되는 종말적인 사건’을 뜻한다.

휴거 소동은 1992년 9월 11일 추석 때부터 시작됐다. 경상남도 마산에서 나일론 끈을 목매 목숨을 끊은 30대 여성이 고압선 인근에서 발견된 것. 그녀의 유서는 “10월 28일을 앞두고 세상 살기가 싫어졌다”였다. 이후 인천의 한 산부인과에서 의사가 어렵게 첫 아이를 가진 아이를 낙태하겠다는 30대 중반의 산모를 설득했다. 이유는 “10월 28일에는 아이가 있으면 안된다”는 것. 서울 구로경찰서에 두 아이의 실종이 신고 됐다. 범인은 아이들의 아버지. 남편은 아내에게 “10월 28일을 대비해야해”란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고.

전국 250만 교회의 신도 10만 명이 빠져든 ‘휴거 소동’의 때는 1992년 10월 28일 24시였다. 휴거가 일어날 것이라 주장한 이는 이장림 목사. 하지만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자 1992년 11월 2일 각 신문에 사과 광고를 게재, 그달 10일까지 헌금 반환 신청을 받겠다고 밝혔다. 당시 그가 보관하고 있는 헌금은 25억원 가량이었다.

그 또한 휴거를 믿고 있지 않았다고. 그는 휴거 예정일을 한달 가량 앞둔 1992년 9월 24일 마약 복용 혐의로 검찰에 붙잡혔고 “사실은 나도 10월 28일 휴거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지는 않다”고 실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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