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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 공정 반박 | 발해가 우리 역사인 근거 L #어쩌다어른 L #Tvn인사이트 모든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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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 → 발해가 역사전쟁에 놓은 사연은?
3:45 → 우리 역사라는 첫 번째 근거, 지배층 대부분이 고구려 유민이었다
5:03 → 우리 역사라는 두 번째 근거, 사료에 남은 기록
5:35 → 우리 역사라는 세 번째 근거, 고구려 문화와 유사한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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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노트]중국 동북공정의 논리와 반박 – 네이버 블로그

동북공정을 통해서 논란이 되고 있는 중국학계의 고구려사 왜곡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朱蒙)은 중국 고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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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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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학계, 중국 동북공정 논리 반박 “고구려‧신라‧발해 … – K스피릿

동북아역사재단은 지난 2020년과 2021년에 걸쳐 재단 내외 연구자들이 … 서구학계, 중국 동북공정 논리 반박 “고구려‧신라‧발해 당시 중국 버금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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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ikoreanspirit.com

Date Published: 6/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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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주장하는 고구려에 대한 동북공정 주요 내용과 반박

그러면 동북공정에서 중국이 주장하고 있는 내용과 그에 대한 반박을 써보겠습니다. 1. 주몽의 성은 한족의 후예인 고이족으로 고구려 민족은 중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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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esas.tistory.com

Date Published: 7/2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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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이 뭐예요? – 동북아역사넷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고조선사, 부여사, 고구려사, 발해사가 중국사’라는 주장을 펼치며 … 고조선 역사에 대한 중국의 주장을 정리하고 이를 반박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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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ontents.nahf.or.kr

Date Published: 10/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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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 나무위키

동북공정 자체를 직역하면 동북 계획이지만 조금 더 한국어로 풀어서 해석하면 … 라고 반박했으며,[8] 이듬해에는 《關於高句麗歸屬問題的畿個爭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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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9/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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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동북공정에 대한 ‘학술적’ 반박 < 보도 < 취재 < 학술

지난 14일(금)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동북공정’ 전후 중국의 한국 고대사 인식」을 주제로 한국사 학술회의가 열렸다. 국사편찬위원회와 한국고대학회가 공동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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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nunews.com

Date Published: 7/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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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조선말대사전, 中 동북공정 반박 – 데일리NK

北 조선말대사전, 中 동북공정 반박 … 북한이 15년 만에 증보한 ‘조선말대사전'(전 3권)을 통해 중국의 고조선.고구려.발해사 왜곡에 맞섰다. 사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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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ailynk.com

Date Published: 2/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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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동북 공정 반박

  • Author: tvN STORY 티비엔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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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12. 10.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I_wSPpwSOFk

[역사노트]중국 동북공정의 논리와 반박

* 이 글은 <<주제별로 접근한 한국고대의 역사와 문화>>에 실린 문창로 교수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동북공정의 허와 실>에서 발췌한 것임을 미리 밝힙니다.

동북공정을 통해서 논란이 되고 있는 중국학계의 고구려사 왜곡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朱蒙)은 중국 고대의 역사에 등장하는 고이족(高夷族)으로 서 고양씨(高陽氏)의 후손이기 때문에, 고구려의 종족계통은 고대 중국의 소수민족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둘째로 역대 중국왕조와 고구려 사이에 전개된 조공(朝貢)과 책봉(冊封)의 관계로 보아 고구려는 중국의 속국(屬國)이 된다는 것이다. 셋째로 고구려와 수·당의 전쟁은 국가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 아니라 중앙정부와 지방정권 사이에 일어난 내전(內戰) 내지는 통일전쟁의 차원에서 이해하였다. 넷째로 고구려 말뭉 후에 그 유민들의 귀속 문제는 대다수 고구려 유민들이 당 나라로 끌려가 혈연적으로 중국의 한족에 동화되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는 고구려의 혈연적 계승이 단절되었다는 것이다. 다섯째 고구려와 고려는 민족구성·국토범위·예속 관계상 완전히 다르며, 실제로 고구려의 왕족은 고씨(高氏)이고 고려의 왕족은 왕씨(王氏)이기 때문에 계승성이 단절되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중국측의 주장은 논리적으로나 실증적으로 보아도 다음과 같이 근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①먼저 고구려가 고이족 또는 고양씨의 후손이라는 주장이다. 곧 B.C. 10세기 경에 한동지역에 존재했던 고이족과 B.C. 1세기 경에 건국한 고구려 왕실이 단지 ‘高’씨 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연결시키는 것은 억지에 불과하다. 고양씨 역시 B.C. 2500년 전에 존재했다는 전설상의 인물로서 중국의 역사학자들조차 그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사실 고구려의 종족은 한족(漢族)과 구별되는 예맥족(濊貊族)으로서 우리민족의 구성 종족이며, ‘고구려’라는 국호 역시 원래 ‘구려(句麗)’에서 출발한 명칭임을 유념해야 한다.

②둘째, 고구려가 중국에 조공하였기 때문에 속국이 된다는 주장도 옳지 않다. 중국의 논리대로라면 당시 중국과 조공-책봉관계를 맺었던 신라·백제·왜·베트남 등도 중국의 지방정권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사실 조공은 진한(秦漢) 제국 이후로 전근대 동아시아의 고전적 국제질서를 상징하는 의례적 외교의 한 형태로 이해된다. 중국은 명분을 중시하면서 스스로를 천자국(天子國)이라고 표방하였고 전통적인 외교관계로써 주변국가와 조공-책봉의 관계를 맺었으며, 또한 조공은 경제적으로 회사품(廻賜品)을 노린 조공무역의 측면에서도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편 고구려의 국왕은 3세기 경에 ‘동맹’이라는 독자적인 제천행사를 주관하였으며, 5세기경에는 광개토태왕비·중원고구려비 등을 통해서 자국 중심의 독자적인 천하관(天下觀)이 확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조공·책봉 관계를 유지하였던 광개토왕대에는 고구려가 ‘영락(永樂)’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썼으며, 장수왕대에는 중국의 남·북조와 등거리 외교를 구사하기도 하였으므로 고구려가 중국의 속국이라는 억지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③셋째, 고구려와 수·당 사이의 전쟁을 통일전쟁으로 보는 주장 역시 논리에 어긋난다. 예컨대 고구려 연개소문은 당의 침입에 대비하여 천리장성을 쌓았는데, 이는 지방정부 차원이 아닌 독립국가로서 견고한 방어만을 구축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수·당을 비롯하여 중국의 왕조는 전통적으로 고구려를 자기 영역 바깥에 존재하는 오랑캐(夷)로 파악하였으며, 당 고조(高祖)가 고구려와 수의 전쟁에서 발생한 양국의 포로석방을 제안할 때 “지금 이국(二國, 두 나라)이 화통하여 의리에 막힘이 없게 되었으므로…”라고 하여 서로 다른 나라로 인식하였음을 분명히 하였다. 실제로 학계에서는 고구려와 수·당 사이의 전쟁은 고구려의 대륙정책과 수·당 제국의 대외정책이 충돌하면서 빚어진 동아시아의 국제전으로 규정하고 있다.

④넷째, 고구려의 유민 대부분이 당에 귀속되어 한국사와 혈연적 계승이 단절되었다는 주장에도 문제가 심각하다. 중국은 고구려 멸망시 전체 70만 명 중 당나라에 30만 명, 발해에 10만 명, 신라에 10만 명, 기타 20만 명 등으로 분산된 사실을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고구려의 인구는 130만 명에 달했을 뿐만 아니라, 대다수 고구려인들은 옛 땅에 남아 있다가 당이 설치한 안동도호부에 저항하였으며, 뒤에 발해의 건국세력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특히 고구려 유이민의 자의식(自意識)이 중요한데, 당으로 간 유민은 거의 강제적인 이주의 성격을 갖는데 비해서 신라·발해·돌궐·일본으로의 귀부는 자의적인 측면이 강한 것으로 파악된다. 한편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한 인식으로 ‘일통삼한의식(一統三韓意識)’이 신라 중대 이후 널리 전해지고, 신라 하대의 최치원은 고구려를 삼한의 하나인 마한으로 인식하여 고구려가 한국고대사의 흐름에 합류한 사실을 분명히 하였다. 나아가 고려시대에 들어서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편찬하면서 고구려를 삼국 중 하나로 정리하였고, 이와 같은 인식은 우리의 전통 사서에서 지속적으로 요지되었다.

⑤다섯째, 고려는 고구려의 명칭만 도용했을 뿐인데, 후세 사람들이 고구려와 고려의 관계를 오인하였기 때문에 고구려와 고려의 계승성은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중국은 그 근거로 고구려와 고려 왕실의 성이 다름을 제시하였는데, 사실 중국의 역대 왕조 가운데 왕실의 성이 서로 같은 경우는 없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왕조의 계승성은 혈연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문제이며, 오히려 역사적 공동체의식 곧 종족, 언어. 생활풍습 등의 관련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 고려는 고구려 멸망 후 250년이 지난 뒤에 건국하여 고구려의 이름을 따서 국호(國號)를 정하여 고구려 계승을 표방하였다. 또한 평양을 서경(西京)이라고 하여 제 2의 수도로 삼고 동명왕 사당을 건립하여 받들고 보존하였다. 나아가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의 왕족을 받아들이고 발해 역대 왕의 왕묘를 세우고 받들었던 점을 주목할 수 있다. 한편 고려 성종 12년(993) 요가 침입하자 서희는 “고려가 고구려 옛 땅을 차지하고 있다. 때문에 나라 이름도 고려라고 하며, 평양을 도읍으로 삼았다. 고구려 땅의 경계로 따진다면 요(遼)나라의 동경도 그 경계 안에 있다”고 반박하여 강동 6주를 얻었던 기록을 통해서도 고려에서 고구려 계승의식이 확고하였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밖에 고구려가 중국사의 일부로 볼 수 없는 이유로는 중국의 정사(正史), 곧 25史에서는 고구려를 줄곧 중국의 역사와 구별하여, 외국의 역사에 해당하는 이역열전(異域列傳) 혹은 동이열전(東夷列傳)으로 편성하여 기록했던 사실을 들 수 있다.

– 문창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동북공정의 허와 실> 中 발췌, <<주제별로 접근한 한국고대의 역사와 문화>>, 2006

서구학계, 중국 동북공정 논리 반박 “고구려‧신라‧발해 당시 중국 버금가는 수준, 한국의 선행국가”

《케임브리지 중국사》시리즈 분석, 〈구미학계의 중국사 인식과 한국사 서술 연구〉 발간

미국과 유럽, 서구 역사학계가 중국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한국 관련내용을 어떻게 서술하는지 《케임브리지 중국사》 시리즈를 분석한 연구서 〈구미학계의 중국사 인식과 한국사 서술 연구〉가 24일 발간되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지난 2020년과 2021년에 걸쳐 재단 내외 연구자들이 ‘케임브리지 중국사 시리즈 전편의 종합적 분석과 논평’을 주제로 추진한 공동연구의 성과를 담은 결과물을 발간한 것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은 24일 미국과 유럽 역사학계의 중국사 및 한 일관계 인식이 담긴 《케임브리지 중국사》시리즈를 지난 2년 간 분석한 연구서 〈구미학계의 중국사 인식과 한국사 서술 연구〉를 발간했다. [사진=동북아역사재단]

《케임브리지 중국사》시리즈는 구미 지역에서 출판되는 세계 역사 시리즈 중 가장 권위 있는 영문 출판물의 하나이다. 총 17책 중 1978년 제10책(청말淸末 편)을 가장 먼저 출판한 후 최근 2019년 11월 제2책 육조(六朝, 220~589)편까지 출판해 완간을 앞두고 있으며, 40년 간 연구 성과를 망라해 집적한 결과물로써 저자들의 통찰이 여전히 빛을 발한다.

분석한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서구 역사학계가 중국의 천하질서를 담고 있는 정치적 허구성을 지적하고 현재적 관점에서 정치적으로 역사를 해석한 점을 비판했다. 중원의 일부 또는 전부를 정복통치한 북방민족인 거란과 금, 대하(서하), 몽골에 대한 한족 중심적 시각을 비판하고 북방민족의 정체성을 강조했다.

이는 중국이 동북공정, 서북공정, 서남공정 등 역사공정을 통해 주변 민족과 나라의 역사를 자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시도를 비판한 것이다.

특히, 한중간 역사 해석에서 논쟁을 일으키고 있는 부분에 대해 한국 입장과 유사한 시각을 보인다. 고구려를 한국의 선행국가로 인식하며,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로 이해했다. 또한 중국 중심적인 역사관을 배척하고 고구려와 신라, 발해를 당시 중국에 버금가는 발달수준의 국가로 서술했다. 전체적으로 동북아시아 국제관계에서 한반도 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아울러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의 허상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한국전쟁에 대해서도 비교적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반면, 중국학계는 서구학계를 상당히 의식해 서구학계의 시각을 비판하고 문제점을 제기하는 서평을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어 중국학계의 학술 네트워크를 통해 일부 중국 측 입장이 반영된 연구 성과도 구미학계에서 출간되고 있는 점은 주목해야 한다.

또한, 각 권별 한국사에 대한 서술이 간략하고 단편적이라는 공통된 지적은 국내 학계가 직시할 과제이다. 대다수 서구 동아시아사 전공자들이 언어상 제약 때문에 주로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된 연구 성과를 인용했고 한국학계의 연구 성과는 극히 미미하게 반영된 점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서구학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개념과 용어로 접근한 한국사 영문 서적을 다수 발간해 고대 동아시아 역사의 다양성과 상호 작용성을 새롭게 발견하도록 하는 지속적인 노력이 절실하다고 할 것이다.

현재 케임브리지 한국사 시리즈가 아직 출간되지 않은 상황에서 향후 한국 학계와 구미 학계 간 적극적인 학술 교류가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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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주장하는 고구려에 대한 동북공정 주요 내용과 반박

그러면 동북공정에서 중국이 주장하고 있는 내용과 그에 대한 반박을 써보겠습니다.

1. 주몽의 성은 한족의 후예인 고이족으로 고구려 민족은 중국 동북의 소수 민족이다.

반박: 기원전 10세기에 있던 고이족과 구분되게 북부여 계통의 예맥족으로 그것도 중국의 삼국지에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2. 고구려의 왕들이 한 이래로 중원 왕조의 책봉을 받는 대신 중국 황제에게 공물을 바치며 중국의 지방 정권을 자처했다.

반박: 조공과 책봉은 중국의 국가가 강성할 때 행한 형식적인 외교적 형식일 뿐이고 영토 편입을 위한 실질적인 침공은 없었습니다. 이것을 중국의 국가의 한낱 신하로 보는 것은 있을 수가 없지요. 공물을 바친다고 지방정권이면 베트남이나 왜나라(현재 일본), 거기에 백제, 신라까지 모두 속국이라고 주장하는 격입니다.

거기다 나폴레옹 시대에 무력으로 눌려 군사와 식량을 대준 옛 독일 국가들 프로이센, 작센, 바이에른, 오스트리아 또한 프랑스의 지방정권이 되는 터무니없는 상황이 됩니다.

3. 중국 학자들은 과거 중국 내 존재했던 나라의 역사도 중국사라고 주장, 평양이 한나라의 군현인 낙랑에 존재했음으로 평양 천도 이후의 고구려사를 중국사라고 주장한다.

반박: 현재의 영토를 기준으로 과거의 역사도 자신의 것이 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말이 안됩니다. 그렇게 따지면 과거 일본이 동남아시아와 중국의 만주와 한반도를 병합했을 때 자신들의 역사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그 논리면 원나라가 송, 금나라의 영토를 차지했었으니 중국의 역사는 몽골의 것이겠네요.

비슷한 사례를 하나 들면 군국주의 시절 독일이 있습니다. 나치당 집권 당시에 히틀러는 과거 프로이센 이후 1차 세계 대전 종전 당시 점령하고 있던 영토에 대해서 미련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독일계 거주민의 수와 많다는 이유와 함께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를 병합하게 됩니다. 지금 중국은 그토록 혐오하는 파시즘의 대표주자인 나치와 비슷한 주장을 펼치는 것입니다.

또한 애초에 기술된 낙랑과 평양이 중국이 주장하는 위치로 지명을 나타낸 건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낙랑이라는 지명 자체가 한의 군현인지 혹은 이후에 세워진 국가 명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평양은 지명으로 보면 수도지만 사전적 의미는 평평한 땅이고요.

무엇보다 낙랑은 미천왕 때 멸망하였는데 평양으로 수도를 천도한 것은 그 이후인 장수왕 때의 일입니다. 따라서 백번 양보를 하기도 어렵지만 만약 중국 주장대로 하더라도 영토 내의 역사로 보기가 힘들기에 전제 자체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4. 고구려와 수, 당과의 전쟁은 중국 내전이며 고구려와 벌인 전쟁은 국제전이 아닌 통일전쟁이다.

반박: 중국이 주장하는 대로 수와 당나라를 중앙 정부로 놓고 고구려를 지방 정권이라고 해봅시다. 그런데 수나라와 당나라가 건국된 시기는 고구려가 건국된 후입니다. 중앙정부보다 지방정권이 먼저 세워지는 국가가 존재할 수 있는가? 물론 아니죠. 그렇다면 고구려는 애초에 지방정권이 아니라 수와 당의 중앙정부가 됩니다.

또한 당의 경우 문왕 때부터 고구려와 국가간 외교관계로 볼 수 있는 사절 파견이 초반에 엄연히 있었습니다. 사절이 오갔다는 것만으로도 국가로서의 지위를 중국 스스로가 보증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5. 고구려 멸망 후 고구려 유민 중 다수가 왕족이나 귀족들인데 중국으로 다수가 이주하여 한족과 중화되으니 고구려의 역사는 중국사에 포함된다.

반박: 가장 큰 오류는 기존 고구려 사회는 소수의 지배층뿐만 아니라 다수의 피지배층인 농민과 노비 계층도 많이 있었다는 겁니다. 130만의 고구려인들 중 중국으로 넘어간 것은 소수이며 대다수의 고구려인들은 남아 도호부에 저항하였고 고구려인들을 지배층으로 말갈족들을 피지배층으로 건국된 것이 바로 발해입니다.

6. 고구려와 고려의 건국시기에 차이가 있음을 근거로 두 나라가 무관하다고 주장하며 고구려가 한국사인 고려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는 고려가 고구려가 멸망하여 혈통이 끊기고 계승성이 없는 국가로 본다는 것인데 자승자박입니다.

중국은 여러 민족이 번갈아서 왕위를 차지했고 대표적인 것이 명-청 교체기를 떠올리실 수 있죠. 한족과 다른 북방 민족이 번갈아 차지한 건데 이것 또한 인정되어 중국사는 반토막이 되어야합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도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국가를 세웠다는 것이 나와있습니다. 이를 들어 고구려와 고려는 역사적으로 계승하였다는 것이 명백하지요.

‘정치적’ 동북공정에 대한 ‘학술적’ 반박

지난 14일(금)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동북공정’ 전후 중국의 한국 고대사 인식」을 주제로 한국사 학술회의가 열렸다. 국사편찬위원회와 한국고대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번 학술회의는 동북공정이 보여주는 한국사 인식 방식을 분석하고, 고문헌 등에 나타난 실증적 자료를 근거로 동북공정의 논리를 반박했다. 학술회의는 △중국의 고문헌자료와 정사류에 나타난 한국사 분석 △1900년대 이후 근대 중국의 한국 고대사 연구의 두 범주로 나뉘어 진행됐다.

‘중국 고문헌 자료에 비친 한국고대사상’을 주제로 발표한 박경철 교수(강남대·교양학부)는 『관자』를 포함한 선진(先秦) 문헌과 송나라 유서(類書)류에 나타난 한국 고대사를 비교·분석했다. 박 교수는 “송대 유서류에는 기자가 봉국을 받았으며(기자봉국론) 한 무제가 군현통치를 행했다(군현고지론)고 기록돼 있지만 선진문헌에서는 기자봉국론이 언급되지 않았다”며 “이는 영웅들의 서사를 통해 역사를 이해하는 중국 역사심성의 산물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중국의 역사인식이 “기록하되 제 생각대로 쓰는 것(述而作)”이라며 중국의 ‘이데올로기적 역사인식’을 비판했다.

정운용 교수(고려대·고고미술사학과)는 ‘중국 정사 4사에 보이는 한국고대사 인식’이라는 주제의 발표에서 박경철 교수와 의견을 같이 했다. 정 교수는 “『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의 조선(동이) 관련 기록을 살펴보면 정보의 확산에 따라 내용이 증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상고시대로 갈수록 중국과 조선간 상관관계가 희박함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결국 4사는 조선을 비중국 집단으로 인식했으나 조선사를 4사의 열전에 포함함으로써 조선을 중화 세계에 편입하려 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정사 속의 역사인식은 현재의 동북공정과도 비견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근대 중국의 한국사 인식에 대한 최광식 교수(고려대·ㅁ한국사학과)의 ‘동북공정 이후 중국의 한국고대사 인식’은 최 교수의 불참으로 박대재 교수(고려대·한국사학과)가 대신 발제했다. 최 교수는 논문에서 “동북공정이 고구려를 비롯한 고조선과 발해 등 한국고대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중국이 고구려를 일개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고구려의 족원은 중국사서에 예맥족이라 기록돼 있다는 점 △수나라는 고구려에게 패해 멸망했으며 이는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 아님을 명시한다는 점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식 때문에 국호를 고려로 했으며 고구려의 도읍 서경을 중시했다는 점 등을 들어 동북공정을 비판했다. 그는 “동북공정이 동북지역의 전략적 지위와 통일 후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행사 등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농후한 프로젝트”라며 단순한 학술적 연구활동이 아님을 강조했다.

종합토론에 참석한 조인성 교수(경희대·사학과)는 학술회의에 대해 “국내적으로 중국의 한국사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알려졌는데 정작 중국에서 변화가 있었는지 또 그동안 논의했던 활동이 얼마나 성과를 얻었는지 그 결과를 알 수 없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사회를 맡은 서영수 교수(단국대·역사학과)는 “이번 학술회의는 중국의 역사인식을 총정리했다”며 “회의의 결과물이 베이징올림픽 이후 다시 전개될 중국의 한국사 왜곡에 대응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며 의의를 평했다.

北 조선말대사전, 中 동북공정 반박

“고구려..최대 령역은 조선반도의 중부 이북과 료하 상류 류역의 동쪽, 송화강 류역, 흑룡강 하류 류역의 남쪽을 포괄하여 동서로 6,000리, 남북으로 4,000리였다.”(2007년 증보판 ‘조선말대사전’)

북한이 15년 만에 증보한 ‘조선말대사전'(전 3권)을 통해 중국의 고조선.고구려.발해사 왜곡에 맞섰다.

사전은 먼저 ‘고구려’에 대한 설명에서 1992년판에 최대 영역을 “동서로 6,000리, 남북으로 수 천 리였다”고 설명했던 것을, 증보판에서는 “동서로 6,000리, 남북으로 4,000리였다”고 못박고 고구려사 관련 어휘를 대거 새로 실었다.

특히 ‘고구려-한 전쟁’, ‘고구려-위 전쟁’, ‘고구려-연 전쟁’, ‘고구려-수 전쟁’, ‘고구려-당 전쟁’ 등 고구려가 중국 대륙의 외세에 대항해 싸우면서 강력한 국력을 과시한 역사를 집중 소개했다.

북한은 지난 3월 일반 주민을 대상으로 발행한 대중역사서 ‘고구려이야기(사회과학출판사)’를 통해 “최근 어떤 학자들의 논조에…고구려는 중국의 ‘속국’, ‘중국 소수민족의 지방정권’이었다는 괴이한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고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강력 반박했었다.

증보판 ‘조선말대사전’은 ‘고구려-수 전쟁’을 “6세기 말~7세기 초 고구려의 군대와 인민들이 수나라의 침공을 쳐물리친 반침략 조국방위 전쟁”으로 정의하고 “고구려 군대와 인민들은 4차에 걸치는 대규모의 침공을 물리치고 커다란 승리를 이룩함으로써 국토를 지켜내고 나라의 위력을 대외적으로 널리 시위하였다”고 강조했다.

또 ‘고구려-당 전쟁’에 대해선 “당나라의 침략에 반대하여 싸운 반침략 방위전쟁. 4차례에 걸치는 전쟁에서 고구려의 애국적인 군대와 인민들은 나라를 지켜내기 위하여 용감히 싸웠다”고 설명하고 그러나 “국왕을 비롯한 통치배들의 무능력과 반역자의 투항행위로 668년 9월에 평양성은 함락됐다”고 덧붙였다.

사전은 특히 ‘고구려국’에 대해 1번 뜻으론 원래의 고구려를 설명하고, 2번 뜻으로 670년대 전반 지금의 황해남도 신원군 장수산성 일대인 한성에 들어선 ‘고구려국’이라고 설명한 뒤 “고구려 멸망 이후 인민들은 반침략 투쟁을 계속하여 당나라의 통치기구인 안동도호부를 료동지방으로 쫓아버리고 사야도(인천 부근 소야도)에 가 있던 고구려왕의 서자 안승을 데려다가 그를 왕으로 하는 고구려국의 재건을 선포하였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이 밖에 사전에 새로 실린 고구려 관련 용어는 ‘고구려다리’, ‘고구려말’, ‘고구려무덤벽화’, ‘고구려벽화무덤’, ‘고구려석각천문도’ 등이며 발해에 대해서도 ‘발해-당 전쟁’을 비롯해 ‘발해자기’, ‘발해장’, ‘발해5경’ 등을 새로 소개했다.

사전은 또 고조선에 대해서도 ‘고조선-연 전쟁’과 ‘고조선-한 전쟁’ 등을 실어 외세의 침공에 대항한 역사를 부각시켰다.

2007년판 ‘조선말대사전’은 임진왜란 때 함경도 의병의 전승을 기념한 전공비이지만 일제시대에 약탈됐다가 남북 공동의 반환운동 끝에 일본으로부터 돌려받은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에 대해 “일제가 1906년에 일본으로 빼여갔는데 2006년에 되찾았다”고 소개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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