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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케르 테츠 | 따스한 빛으로 시를쓰는 휴머니스트 –앙드레 케르테츠- 230 개의 자세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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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케르테츠(1894~1985)
헝가리 태생 미국 사진작가입니다.
다양한 사조와 사단이 범람하던 시대에 자유롭고 서정적인 시각으로 일상을 일기처럼 담았던 작가이며 시대를 앞서가던 창의적인 감각은 후대에 유명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있습니다.
자세하고 깊은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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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송이 존경한 구성, 일상 사진의 대가 앙드레 케르테츠

앙드레 케르테츠(Andre Kertesz)는 1894년 7월 2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납니다. 무역 아카데미를 다닌 후에 1912년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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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photohistory.tistory.com

Date Published: 2/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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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앙드레 케르테츠 – PHOTO DATA

앙드레 케르테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인상적인 순간을 포착한 사진으로 유명한 헝가리 출신 작가 앙드레 케르테츠(1894~1985)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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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photocian.net

Date Published: 10/16/2022

View: 3100

<앙드레 케르테츠>전 – 노블레스닷컴

‘내가 보고 느낀 걸 그대로 표현한다’는 원칙에 충실한 사진작가 앙드레 케르테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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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noblesse.com

Date Published: 7/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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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빛으로 시를쓰는 휴머니스트 --앙드레 케르테츠-
따스한 빛으로 시를쓰는 휴머니스트 –앙드레 케르테츠-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앙드레 케르 테츠

  • Author: 너른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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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6. 8.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Qv2ZN8_l_40

<20세기의 전설들>앙드레 케르테츠 (1894-1985)

<20세기의 전설들>

알렉산더 로드첸코 (1891~1956)

앙드레 케르테츠 (1894-1985)

20세기 사진사를 대표하는 두명의 작가. 알렉산더 로드첸코와 앙드레 케르테츠.

동시대에 활동한 두 작가는 기존의 회화적 관습을 거부하고 사진 매체만의 새로운 관점을 실험했다.

그러나 각각 러시아과 유럽에서 활동하면서 한쪽은 사회의 풍경을, 다른 쪽은 내면의 풍경을 담았다.

즉 사진의 생산성을 실험하는 로드첸코와 예술성을 실험하는 케르테츠.

두 개의 다른 풍경이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하는 여전히 던지고 있는 질문은 다르고, 같다

도시의 산책자

<앙드레 케르테츠>

우울한 튤립, 뉴욕

Melancholic Tulip,New York, 1939

ⓒMinistere de la Culture et Communication

– Mediatheque de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 -Grand Palais / Donation Andre Kertesz 우울한 튤립, 뉴욕Melancholic Tulip,New York, 1939ⓒMinistere de la Culture et Communication- Mediatheque de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RMN -Grand Palais / Donation Andre Kertesz

“한 장면 속의 요소들이 내 눈을 만족시키는 구도로 정렬될 때까지 다양한 앵글로 주제를 관찰하며,

나는 그저 걸어 다닌다.” – 앙드레 케르테츠

19세기 말 산업화된 파리의 도심 속에서 멜랑콜리한 시선으로 거리를 배회하는 보들레르, 벤야민은 보들레르처럼 신문 가판대, 카페 테라스, 벽보 등 파편화된 도시의 주변을 카메라처럼 관찰하고, 기록하는 시대적 인물을 ‘도시의 산책자’라고 불렀다. 거리의 군중 사이에서 혼자 부유하면서 근대적 시선으로 그 주변의 풍경을 담아내는 이 산책자의 무위無爲는 벤야민과 같은 시기에 파리를 중심으로 거리의 일상을 담아낸 앙드레 케르테츠에게서도 발견된다.

샹젤리제, Champs-Elysees, 1929

ⓒMinistere de la Culture et Communication – Mediathe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 -Grand Palais

/ Donation Andre Kertesz 샹젤리제, Champs-Elysees, 1929ⓒMinistere de la Culture et Communication – Mediatheque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 -Grand Palais/ Donation Andre Kertesz

70여년의 활동 기간 동안 그는 부다페스트와 파리, 뉴욕을 옮겨 다니며 도시 곳곳의 일상적 이미지들을 사진에 담았다. 그 내면적인 풍경은 마치 일기와 같은 기록이었다. 그의 사진은 초현실주의적인 형태를 띠기도 하고, 사실주의적인 기록이기도 하고, 모더니즘적인 순수성을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그의 작업은 여러 사조에 의해 해석되어지지만, 케르테츠의 작품이 지닌 특별함은 그 당시에 유행했던 사조들을 가볍게 가로질러 간다는 점이다.

동물시장, 생미셸 선창, 파리

Animal Market, Saint-Michel Wharf, Paris, 1929-1928

ⓒMinistere de la Culture et Communication – Mediathe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 -Grand Palais

/ Donation Andre Kertesz 동물시장, 생미셸 선창, 파리Animal Market, Saint-Michel Wharf, Paris, 1929-1928ⓒMinistere de la Culture et Communication – Mediatheque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 -Grand Palais/ Donation Andre Kertesz

사진을 독학으로 익힌 그에게 사진은 어떠한 해석적 틀에 의해서 담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느끼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진을 찍기 위해 대상을 직접 찾아가는 대신, 그가 살던 도시를 산책하면서 천천히 대상을 기다렸다. 그래서 이번에 6월 9일부터 9월 3일까지 성곡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앙드레 케르테츠의 전시는 그가 산책자처럼 걸어 다니며 머물렀던 각 시기의 도시별(헝가리1912-1925/파리 1925-1936/뉴욕1936-1985)로 구분되어 있다.

부다페스트, Budapest, 1915,

ⓒMinistere de la Culture et Communication – Mediathe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 -Grand Palais

/ Donation Andre Kertesz 부다페스트, Budapest, 1915,ⓒMinistere de la Culture et Communication – Mediatheque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 -Grand Palais/ Donation Andre Kertesz

1894년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그에게 피사체는 주변의 목가적인 풍경을 비롯해 가족들과 이웃, 친구들이었다. 본 전시의 <헝가리>(1912-1925) 섹션에서는 그가 초창기 시절에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일상에서 찍은 시적이고 서정적인 풍경들을 보여준다. 사소하지만 따뜻한 그의 초기 사진 속 시선은 이후 그의 활동 내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나타난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군에 징집된 상황에서도 그는 작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전쟁을 역사적인 한 장면이 아니라, 현장 안에 있는 군인들과 그들의 평범한 모습을 담았다. 그가 담은 풍경은 참호 속에서 기다리는 병사들의 모습과 긴 행렬을 이루며 걸어가는 모습들이었다.

포크, 파리, The Fork, Paris, 1929

ⓒMinistere de la Culture et Communication – Mediathe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 -Grand Palais / Donation Andre Kertesz

​ 몬드리안의 안경과 파이프, Mondrian’s Glasses and Pipe, 1926

ⓒMinistere de la Culture et Communication – Mediathe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 – Grand Palais / Donation Andre Kertesz

이후 1925년에 파리로 온 케르테츠는 다다, 초현실주의, 구성주의 등 모더니즘 예술 운동의 선구자들과 예술적으로 많은 교류를 나눴다. 그러나 만 레이, 몬드리안, 샤갈, 콜레트, 짜라와 같은 당대 최고의 아방가르드 작가들과도 교류 속에서도 그는 하나의 사조에 치우쳐 그 틀 안에 갇혀 있기를 거부하고, 일상적인 풍경 안에서 자기 자신만의 감성과 시선을 담은 이미지들을 담아왔다. 동시에 그는 형식적인 실험 또한 다양하게 전개했다. 전시장의 <파리>(1925-1936) 섹션에서 볼 수 있는 이 시기의 그의 작품 <포크>(1928)나 <몬드리안의 파이프와 안경>(1926)은 오브제의 배치와 화면의 구성, 음영의 대비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냄으로써 훌륭한 형식을 구현해냄과 동시에 형식을 꿰뚫는 명상적인 분위기, 시적인 시선을 순수하게 표현해냈다. 또한 소파에서 조각가 이슈트반 뵈티의 작품을 따라 포즈를 취하고 있는 무용수 막다 푀르스트너의 모습, <풍자적인 무용수>(1926)을 통해 평면적인 사진 안에서 교차하는 각도와 기하학적인 구성의 역동성으로 새로운 형태를 계속적으로 실험하는 그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다.

수영하는 사람, 에스테르곰, 헝가리, Swimmer Under Water, Esztergom. Hungary, 1917

ⓒMinistere de la Culture et Communication – Mediathe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 -Grand Palais / Donation Andre Kertesz 수영하는 사람, 에스테르곰, 헝가리, Swimmer Under Water, Esztergom. Hungary, 1917ⓒMinistere de la Culture et Communication – Mediathe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 -Grand Palais / Donation Andre Kertesz

그는 이러한 실험 정신을 1933년 <왜곡> 시리즈를 통해 더욱 극대화한다. 이미 1917년에 <수영하는 사람> 작품으로 물결과 빛에 의해 왜곡되는 몸의 형태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변형 거울을 통해 기괴하게 일그러진 몸의 왜곡 사진들을 작업했다. 그는 여성의 누드 사진을 아름다운 신체로 담아내는 전통적 관점에서 벗어나, 거울 반사를 이용해 뒤틀고 왜곡시킴으로써 자신만의 조형적 언어를 획득한다.

새로운 모더니즘의 실험적 조형 언어인 거울 유희, 반사, 그림자와 복제, 전면 구성, 혹은 야경과 명암의 대비 등을 표현기법으로 활용하면서 사진적 아방가르드의주역이 되었다 – 전시 서문 발췌

이 낯선 이미지들은 후에 다시 조명을 받고 책으로 출판되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는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는 1936년에 사진대행사 키스톤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고 뉴욕에 머물렀지만, 왜곡 시리즈와 새로운 작품이 연이어 실패하고, 케르테츠의 작업이 미국의 상업 사진 시장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우울증에 걸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멜랑콜리적인 시선은 뉴욕의 거리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그는 그 당시의 많은 작가들이 주목하였던 미국의 사회적 장면에 몰두하기보다, 주변의 일상적인 것들에 관심을 가졌다.

케르테츠는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처럼 시대적, 사회적 장면을 잡아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뉴욕의 황폐한 벽돌담, 그림자나 철근 구조물, 외부 계단의 얽힘 속에 자신의 멜랑콜리를 주입하였다. 그에게 뉴욕이란 마치 생각의 공명상자와도 같아서, 자신의 생각들을 사진으로 되돌려 주었다. – 전시 서문 발췌

길 잃은 구름, 뉴욕, Lost Cloud, New York, 1937

ⓒMinistere de la Culture et Communication – Mediathe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 – Grand Palais / Donation Andre Kertesz

깨진 원판, 파리, Broken Plate, Paris, 1929 길 잃은 구름, 뉴욕, Lost Cloud, New York, 1937ⓒMinistere de la Culture et Communication – Mediathe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RMN – Grand Palais / Donation Andre Kertesz깨진 원판, 파리, Broken Plate, Paris, 1929

그 당시에 그가 찍은 <길 잃은 구름>(1937)에는 록펠러 센터와 마주친 한 점의 구름이 담겨있다. 이 사진은 뉴욕의 거대함을 상징하는 건물에 부딪힌 한 개인, 케르테츠를 상징한다. 그는 뉴욕에서 느낀 외로움의 정서를 바탕으로 거리에서 이벤트나 사건이 아니라, 자신만의 사적인 일기를 기록해왔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1959년 <인피니티> 잡지가 실은 그의 기사를 통해 알려지게 되었고 마침내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세계 주요 도시에서 개인전을 치루며 그의 작품이 지닌 예술성을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

ⓒMinistere de la Culture et Communication – Mediathe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 – Grand Palais / Donation Andre Kertesz ⓒMinistere de la Culture et Communication – Mediathe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RMN – Grand Palais / Donation Andre Kertesz

70년이라는 긴 활동기간 동안 이 산책가가 우리에게 보여준 풍경은 거리와 실내, 사물과 초상화까지 다양하다. 그 형식은 사실주의적이며, 모더니즘적이고, 초현실 주의적이다. 그는 형식과 주제에서 자유롭다. 그 당시 회화적 관습과 규범에 메어있지 않은 그의 자유로움은 대상의 본질을 들여다보려는 그의 진정성에서 나온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감상주의자의 것이 아니다. 그는 감정과 함께 구성과 형식, 배치의 아름다움을 절제된 아름다움으로 드러냈다. 즉 완전한 형식적 아름다움 안에 자신만의 심미적 시선으로 대상을 들여다보는 진정성을 통해 그는 휴머니즘적인 감수성과 아방가르드적인 실험성을 획득했다.

앙드레 케르테츠 André Kertész

III. 뉴욕 시기(1936-1985)

1936년 케르테츠는 사진 대행사 키스톤Keystone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고 아내 엘리자벳과 함께 뉴욕으로 떠났다. 하지만 계약은 1년 남짓 지속된 후 파기되었다. 『보그Vogue』, 『하퍼스 바자Harper’s Bazzar』 등 다수의 잡지사들이 케르테츠의 작업에 관심을 보였지만, 그의 사진은 대중적 이미지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37년 뉴욕의 PM갤러리와 1946년 시카고미술관에서의 전시회에도 불구하고 뉴욕에서의 그의 생활은 심적으로 물질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했다. 적은 수익, 연이은 실패, <왜곡> 시리즈에 대한 몰이해와 외국인으로서의 장벽 등이 결국 그에게 우울증을 안겨주었다. 1944년 미국 시민권을 얻은 케르테츠는 1947년 『하우스 앤 가든House & Garden』지와의 작업을 위해 콘데 나스트Condé Nast 그룹사와 독점 계약을 체결했지만, 주로 인테리어 사진을 제공해주던 그는 안정된 수입원을 확보할 수는 있었으나 상업적 작업을 지속하기가 힘들었고 결국 1961년 은퇴를 한다.

아울러 워싱턴 스퀘어가 내려다보이는 5번가 12층 아파트에 정착한 1952년 이후 다시 작업의 열정을 되찾기 시작하는데, 아파트의 테라스에 머물며 망원렌즈의 줌을 이용하여 주변의 생활을 포착하는 작업에 매진하였다. 그러나 그는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처럼 거리와 장소를 옮겨 다니며 시대적, 사회적 장면에 몰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광장에 머무는 사람들의 특이한 행태와 풍경을 오랜 시간 기다림 끝에 마치 ‘발견된 오브제’처럼 찾아내었다. 케르테츠에게 뉴욕은 자신의 다양한 생각들의 공명상자와도 같아서, 그 생각들을 사진이라는 메아리로 돌려주는 것뿐이었다. 직관적이고 암시적인 그의 스타일은 뉴욕의 황폐한 벽돌 담, 그림자나 철근, 외부 계단의 얽힘 속에 자신의 멜랑콜리를 주입하기에 충분했다.

케르테츠의 예술성은 삶의 후반에 들어서며 높이 평가 받기 시작했다. 1959년 『인피니티Infinity』지가 게재한 케르테츠에 관한 기사는 그의 명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고, 마침내 1964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하게 된다. 이 전시를 계기로 세계 주요 도시에서 그의 작품을 소개하는 순회전이 이어졌다. 또한 이즈음 그는 뉴욕으로 건너오기 전 파리에 남겨 두었던 원판 필름 상자를 찾아왔다. 헝가리와 파리 시기의 자신의 작품들을 다시 접하게 된 케르테츠는 생기를 회복할 수 있었다. 이어서 발행한 두 권의 책 『나는 파리를 사랑한다J’aime Paris』(1974)와 『뉴욕에 대하여Of New York』(1976)는 케르테츠가 파리와 뉴욕의 서로 다른 문화 환경 속에서 겪은 갈등을 보여준다. 1977년에는 파리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에서 케르테츠의 개인전이 열렸는데, 안타깝게도 부인 엘리자벳이 전시 개막 직전에 사망한다. 이후 케르테츠는 세상을 떠난 엘리자벳에 대한 사랑을 담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다수 제작한다. 그에 따르면 폴라로이드는 “작품의 내재적 요소를 보다 더 수월하게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었다. 케츠테츠는 1985년 9월 28일 뉴욕 자신의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진이 말을 건다

아트 | 리뷰

2017-06-19

잡지 〈라이프(Life)〉의 편집장은 앙드레 케르테츠(André Kertész)의 사진을 보고 “너무 많은 것을 말한다”고 평가했다. 이 말은 케르테츠의 사진이 번잡스럽다는 뜻이 아니다. 사진 한 장에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는 의미다.

앙드레 케르테츠(1894-1985)는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작가 중 한 명으로, 70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사진작가로서 활동했다. 그의 사진 인생은 사진의 역사와 맥락을 같이 한다. 특정 예술 사조나 유행에 얽매이지 않았던 그의 사진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카파, 브라사이 등 많은 현대 사진가에게 영향을 줬다.

성곡미술관에서 열리는 ‘앙드레 케르테츠’ 전은 원판으로 프린팅한 사진을 그가 머물렀던 세 도시(헝가리, 파리, 뉴욕)를 기준으로 나눠 전시한다. 흑백사진으로 유명한 작가이지만, 삶의 후반에 작업한 컬러 프린팅도 볼 수 있어 앙드레 케르테츠의 작품세계 전반을 훑을 수 있다.

헝가리 시기(1912-1925)

헝가리 출신인 앙드레 케르테츠는 1912년 처음으로 카메라를 구매하여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일기를 쓰듯이 가족과 친구의 모습, 헝가리 전원의 목가적 생활을 촬영했다. 특별한 기교나 철학적 의미는 없지만, 앙드레 케르테츠의 따뜻한 시선을 발견할 수 있다.

앙드레 케르테츠의 휴머니즘적 감성은 1차 세계대전 참전 당시, 군인을 촬영한 사진에서도 나타난다. 전장의 참혹한 실상보다 군인들의 소소한 일상을 찍은 사진은 전쟁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전한다.

파리 시기(1925-1936)

1925년, 앙드레 케르테츠는 당시 예술의 본거지인 프랑스 파리로 이주한다.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입체주의 등 여러 예술가와 교류하던 앙드레 케르테츠는 그 어떤 사조에도 속하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한다.

이 시기에 앙드레 케르테츠는 사진의 기술력과 표현력을 연구, 실험한다. 명암을 세밀하게 담아내 흑백사진임에도 불구하고 깊이가 느껴지며, 거울 반사, 그림자, 명암 대비 등 다양한 효과를 통해 실험적인 사진을 선보였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작업으로는 〈왜곡(Distortions)〉 시리즈가 있다.

뉴욕 시기(1936-1985)

파리에서 마음껏 사진적 실험을 전개하던 앙드레 케르테츠는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다. 여러 잡지사가 그에게 관심을 가졌지만, 감성적이고 이야기가 많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앙드레 케르테츠는 “내가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표현한다”고 말할 정도로 사진에 자신의 감성을 솔직하게 담아낸 작가다. 특히 사물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여 사진을 찍었다. 그의 사진 속 꽃병, 의자, 빌딩 등은 살아있는 생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관람객에게 말을 거는 듯하다.

그러나 파리에서와 달리, 인정받지 못했던 앙드레 케르테츠는 우울증을 겪는다. 자신이 추구했던 사진과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사진 사이의 괴리감에 힘들었던 그는 1961년 은퇴를 선언한다. 그러나 우습게도, 은퇴 후 재평가되어 미국에서도 명성을 얻게 된다. 1985년에 세상을 뜰 때까지 뉴욕과 파리를 오가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 앙드레 케르테츠는 모든 원판과 작업을 프랑스에 기증했다.

정보보다 정서를 전달하는 앙드레 케르테츠의 사진은 관람객의 감성을 자극하고, 피사체에 담긴 뒷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다. 자극적인 사진에 지쳐 있는 우리에게, ‘앙드레 케르테츠’ 전은 사진의 순수함과 낭만을 상기시키는 전시가 될 것이다.

앙드레 케르테츠

2017.06.09-09.03 (월요일 휴관)

성곡미술관

일반 10,000원, 청소년 8,000원, 어린이 6,000원

브레송이 존경한 구성, 일상 사진의 대가 앙드레 케르테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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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모두 케르테츠에게 무언 가를 빚지고 있다 ”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세계적인 사진작가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극찬을 한 사진작가가 바로 ‘앙드레 케르테스(1884~1985)입니다. 케르테스는 구성 사진의 시작점이자 구성 사진의 대가였습니다.

<포크 , 1928년>

그의 사진 중에 가장 유명한 사진은 이 포크 사진입니다. 정말 평범한 소재입니다. 접시 위에 포크를 올려 놓고 촬영한 사진입니다. 그런데 그는 일상을 다르게 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그냥 접시에 포크를 올려 놓고 촬영한 사진이라면 이 사진이 유명해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건 너무나 평범하니까요. 그러나 케르테츠는 평범한 일상과 소재에서 비범함을 만들어내는 사진작가입니다.

접시에 포크를 올린 이 사진은 포크만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눈 여겨 보게 되는 것은 포크라는 도구가 만들어낸 그림자입니다. 포크의 그림자가 포크의 존재을 다시 환기 시키면서 포크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합니다. 이 그림자는 케르테츠가 발견한 이미지이고 이런 일상에서의 색다른 시선을 통한 발견이 그의 사진을 돋보이게 합니다.

“카메라는 제 도구입니다. 그것을 통해 내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한 이유를 담습니다” – 앙드레 케르테츠-

일상의 소재와 장소에서 비범함을 담는 케르테츠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과 수 많은 사진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준 사진작가입니다.

브레송은 “우리가 해온 것들은 모두 그가 처음 했던 것”이라고 극찬을 합니다. 현대 사진의 시작점이자 사진을 기록물이 아닌 느낌을 담은 예술의 도구로의 전환점을 제시한 사진작가이기도 합니다. 브라사이와 로버트 카파, 브레송이라는 사진 거장들을 이끈 케르테츠를 소개합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상류층 아들로 태어난 ‘앙드레 케르테츠'(1912 ~1925)

앙드레 케르테츠(Andre Kertesz)는 1894년 7월 2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납니다. 무역 아카데미를 다닌 후에 1912년부터 증권 회사에 다닙니다. 증권 회사에 다니면서 번 돈으로 카메라를 구입하고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합니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 1차 세계 대전에 참전을 합니다. 이 전쟁 기간에도 카메라를 놓지 않고 전쟁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1918년 증권 회사로 돌아온 케르테츠는 아마추어 사진가 활동을 계속 합니다.

“나는 여전히 나 자신을 아마추어로 여긴다. 나는 이 생각이 내 인생이 끝날 때까지 내게 머물러 있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나는 영원히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세상을 다시 또 다시 발견할 수 있다.” -앙드레 케르테츠-

앙드레 케르테츠(Andre Kertesz)는 평생을 스스로 아마추어 사진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겸손한 말이죠. 그러나 그런 아마추어의 시선이 가장 신선한 시선, 새로운 시선을 꾸준하게 유지할 수 있기에 스스로를 채찍질 하는 말로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1917년 첫 개인전을 개최한 앙드레 케르테츠는 헝가리 생활의 무료함을 느끼고 1925년 파리로 이주합니다.

여러 예술가와 교류를 했던 파리 시절(1925 ~ 1936)

1925년 파리라는 예술의 중심지에서 도착한 ‘앙드레 케르테츠’는 35mm 라이카 카메라를 삽니다. 카메라는 사진을 찍는 도구로 여겼던 케르테츠지만 라이카 카메라는 극찬을 합니다. 카메라를 들고 당시 유명한 다다이스트와 많은 예술가를 만납니다. 브라사이, 만 레이, 로버트 카파와도 교류를 가집니다. 1926년부터 1935년까지 프리랜서 사진가로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여러 잡지사에 사진을 제공하면서 자리를 잡습니다.

앙드레 케르테츠의 대표작 중 하나인 ‘SATIRIC DANCER’입니다. 케르테츠는 기하학에 능통했는지 사진 구성이나 구도가 독특하면서도 세련되었습니다. 옆에 있는 조각상과 쇼파 위에 있는 여자가 묘하게 잘 어울립니다.

교류하던 유명 인사 중에는 추상 표현주의 화가 몬드리안도 있었습니다.

몬드리안를 기다리면서 몬드리안 집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곡선과 직선이 마치 몬드리안의 그림 같아 보입니다.

<몬드리안의 안경과 파이프 , 1926>

벨포크 시절의 파리는 많은 예술가들이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파리 카페에서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습니다. 케르테츠도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많은 활기를 얻습니다. 그렇다고 어떤 예술적 유파에 소속되어서 활동하지는 않고 자신만의 시선을 끊임없이 개척합니다. 그중 하나가 이 사진입니다.

이 사진의 제목은 ‘몬드리안의 안경과 파이프’입니다. 그런데 몬드리안은 없습니다. 몬드리안이 쓰던 안경과 파이프만 있습니다. 몬드리안을 못 본 사람은 의아할 수 있지만 몬드리안을 아는 사람은 박장 대소를 할 사진입니다. 몬드리안의 이미지를 최대한 단순화 한 사진입니다. 그 사람의 외모 정체성을 다른 사물로 표현한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입니다. 그것도 원의 반복을 다양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원만 있으면 단조롭죠. 테이블의 직선을 상단에 넣어서 곡선을 더 강조합니다.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사진으로 느껴야합니다” -앙드레 케르테츠-

<깨진 원판 , 1929>

이 사진을 보면 합성 사진처럼 보입니다. 파리를 촬영한 사진인데 총알이 난 것처럼 구멍이 나 있습니다. 마치 도시를 저격한 사진 같네요. 그러나 이건 제 생각입니다. ‘앙드레 케르테츠’는 1936년 뉴욕으로 이주 하면서 자신의 사진 필름 원판을 파리에 놓고 옵니다. 20년이 지난 후에 다시 찾은 원판들은 크게 손상되거나 깨진 상태였습니다. 그 깨진 원판 중 하나가 이 사진입니다. 보통 이런 깨진 원판 사진은 버릴텐데 케르테츠는 이 원판을 사진으로 촬영해서 또 하나의 대표작을 만듭니다.

“당신은 상상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실은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합니다” – 앙드레 케르테츠

파리 시절 ‘앙드레 케르테츠’ 사진은 다양합니다. 초현실주의 또는 추상 표현주의 그림 같은 사진도 있고 다큐 사진 같은 사진도 있고 일상을 재미있는 시선으로 담은 스냅 사진 같은 사진도 있습니다. 어떤 사진가라고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사진을 찍습니다. 그러나 그가 좋아하는 사진은 일상 사진이나 주변에 있는 아무도 관심 없어 하는 피사체에 대한 깊은 관찰에서 나오는 사진들이 많습니다. 다큐 사진들은 독일과 영국 잡지사의 의뢰로 촬영한 사진들이라서 그에 맞게 촬영한 사진들로 보입니다.

전쟁을 피해 뉴욕으로 이주하다 (1936~1985)

케르테츠는 사진 에이전시인 키스톤과 계약을 맺고 뉴욕으로 이주합니다. 유대인인 케르테츠는 유럽에 2차 대전의 전운이 감돌기도 했고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고자 뉴욕으로 이주를 했습니다. 그러나 뉴욕에서의 생활은 파리에서 보다 쾌청하지는 못했습니다. 키스톤과의 계약이 1년 만에 파기되면서 생활에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보그나 하스퍼 바자같은 잡지사가 그에게 사진을 의뢰했지만 케르테츠 특유의 은유와 일상을 색다르게 보는 시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라이프 편집장은 “당신은 사진에서 참 많은 이야기를 하는군요”라며 그의 사진 스타일을 꼬집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돈이 되는 사진이 아닌 예술적인 사진을 주로 찍다 보니 잡지사들의 외면을 받게 됩니다. 같은 잡지사라도 유럽과 미국은 또 다릅니다. 여기에 헝가리 태생인 것도 걸림돌이 됩니다. 미국이 2차 대전에 참전하면서 적대적인 외국인으로 낙인이 찍혀서 출판 금지 조치가 내려집니다. 그렇다고 케르테츠가 라이프 잡지 스타일의 사진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여러 다른 잡지사에서 근무를 하면서 그의 사진을 알아본 사람이 나타납니다. ‘하퍼스 바자’의 예술관장인 알렉세이 보르도비치의 제안으로 ‘파리의 날’이 출간하게 되고 그 다음 해에 시카고 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후 그는 미국에서도 유명한 사진작가가 됩니다.

그렇게 미국에 정착한 ‘앙드레 케르테츠’는 1985년 9월 28일 뉴욕에서 사망합니다. 그의 유서에는 10만 점이나 되는 필름을 프랑스에 기증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I do not document anything, I give an interpretation.

“나는 기록하지 않는다 나는 해석한다”

<앙드레 케르테츠>

‘앙드레 케르테츠’는 주변 모든 것이 사진의 주제였습니다. 평범한 피사체지만 그는 색다르게 보려고 노력하고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일상에서 만나는 장소와 순간과 사물을 색다르게 담은 사진이 브리사이, 브레송 등의 세계적인 사진작가에게 큰 영향을 줬습니다.

“케르테츠의 셔터가 찰칵할 때마다 그의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일상과 평범함을 색다르게 담은 사진계의 거장 ‘앙드레 케르테츠’, 그의 사진은 현재를 살아가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에게도 큰 영감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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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앙드레 케르테츠

앙드레 케르테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인상적인 순간을 포착한 사진으로 유명한 헝가리 출신 작가 앙드레 케르테츠(1894~1985)의

사진전이 서울 광화문 성곡미술관에서 9일부터 3개월간 개최된다.

이번 사진전은 70여 년간 헝가리 부다페스트와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등지에서 활동했던 작가의 작품세계 전체를 아우른다.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앙드레 케르테츠(1894-1985)는

70여년의 오랜 활동 기간 동안 부다페스트, 파리, 뉴욕을 옮겨 다니며 작품 세계를 펼쳤다.

그는 당시의 유행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과 주제를 일관성 있게 지켜나가며,

사진을 통해 마치 일기를 쓰듯 자유롭고 솔직하게 자신의 감성을 담아냈다.

1894년 부다페스트에서 출생한 앙드레 케르테츠는 8살에 부친을 여의었다.

1912년 처음 카메라를 구입한 케르테츠는 감상주의적 성격의 소유자로, 자신을 둘러싼 소소한 일상을 주제로 사진 작업을 시작하였다.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한 케르테츠는 ‘내가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표현한다’는 작업 원칙에 충실했다.

1925년 파리로 떠난 그는 다다, 초현실주의, 구성주의 등 모더니즘 예술운동의 옹호자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때로는 더 앞서나가는 실험적 작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조나 그룹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사진 미디엄의 잠재적 표현 가능성들에 대해 연구하며, 사진의 형식적, 기술적 혁신에 주목하였

다.

케르테츠는1936년 뉴욕으로 건너간 뒤 많은 난관에 부딪혔는데,

‘자신의 진실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자 하는 그가 당시 미국 사진계의 아방가르드 작가로 자리매김이 어려웠고,

상업적 가치를 우선으로 하는 신문과 잡지사의 지지를 받지 못해 지속적인 소득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케르테츠가 추구하고자 하는 세계는 ‘목격한 것’과 ‘느낀 것’ 모두를 카메라로 잡아내는 것으로,

그의 사진은 삶의 편린과 현실의 조각들을 섬세하게 담아냄과 동시에 작가 자신의 존재감을 생생하게 부각시킨다.

따라서 케르테츠가 세상을 보는 시각과 세상과의 유대는 그 어떤 사진작가들 보다 강력하고 충실하며 심오하다고 말 할 수 있다.

‘빛·실루엣·시간의 조화’…앙드레 케르테츠 사진전

성곡미술관서 9일 개막

앙드레 케르테츠 ‘포크'(1928) [성곡미술관 제공=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인상적인 순간을 포착한 사진으로 유명한 헝가리 출신 작가 앙드레 케르테츠(1894~1985)의 사진전이 서울 광화문 성곡미술관에서 9일부터 3개월간 개최된다.

이번 사진전은 70여 년간 헝가리 부다페스트와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등지에서 활동했던 작가의 작품세계 전체를 아우른다.

헝가리 시기에서는 1912년 카메라를 처음 장만한 케르테츠가 가족과 이웃들을 비롯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촬영했던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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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현대미술의 본거지에 자리 잡았던 파리 시기(1925~1936)에 일상 소재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시각적 실험을 했다.

1936년부터 여생을 마칠 때까지 머물렀던 뉴욕에서는 전시 실패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정서가 투영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전시된 작품들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뚜렷한 명암 대비와 리듬감이 느껴지는 기하학적 구도, 따뜻한 정서 등이다.

‘수영하는 사람'(1917)은 하이 앵글의 카메라 시점과 대각선 구도 등 당시로써는 참신한 시도가 담긴 작품이다.

수영하는 남성의 몸이 물과 빛의 반사작용으로 왜곡된 형태를 띠는 것은 훗날 ‘왜곡’ 시리즈의 등장을 시사하기도 한다.

접시 가장자리에 살짝 걸쳐진 포크를 확대 촬영한 ‘포크'(1928)는 또렷한 농담이 인상적이다.

성곡미술관은 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작품을 설명하면서 “전통적인 정물 사진과 달리 클로즈업을 통해서 당시로써는 매우 과감한 구도를 만들었다”면서 “사진 속 그림자도 단순한 그림자라기보다는 조형 요소의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앙드레 케르테츠의 ‘수영하는 사람'(1917) [연합뉴스 자료사진]

케르테츠의 작품이 특별난 것은 “적절한 빛이 적절한 실루엣을 적절한 순간에 비추는” 것을 잡아내는 능력 덕분이다.

미술관에서 상영 중인 생전 영상에서 작가는 코트 곳곳에 넣어둔 렌즈와 필터를 꺼내 수시로 셔터를 눌러대면서 “나는 무엇인가 (극적인 장면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거나 찾지 않고 보기만 한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9월 3일까지. 문의는 ☎ 02-737-8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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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케르테츠>전

‘몬드리안의 안경과 파이프’, 1926. ©Ministère de la Culture et de la Communication

‘내가 보고 느낀 걸 그대로 표현한다’는 원칙에 충실한 사진작가 앙드레 케르테츠.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작가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그의 70여 년 예술 인생을 소개한다. 초현실주의와 구성주의 같은 모더니즘 예술운동의 옹호자들보다 종종 더 앞서 나간 그의 총 212점에 달하는 작품을 활동 시기별로 전시해 작가로서의 삶과 예술 궤적을 함께 살필 수 있다. 독학으로 사진을 배워 자신의 언어로 구축한 한 예술가의 귀한 작품을 경험해보자. 성곡미술관(9월 3일까지) 문의 02-737-7650

에디터 이영균([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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