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Home » 난장이 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독후감 | [2020수능특강릴레이] 현대소설 전문해설 #13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 조세희 모든 답변

난장이 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독후감 | [2020수능특강릴레이] 현대소설 전문해설 #13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 조세희 모든 답변

당신은 주제를 찾고 있습니까 “난장이 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독후감 – [2020수능특강릴레이] 현대소설 전문해설 #13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 조세희“? 다음 카테고리의 웹사이트 hu.taphoamini.com 에서 귀하의 모든 질문에 답변해 드립니다: hu.taphoamini.com/photos. 바로 아래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작성자 10분의 문학 이(가) 작성한 기사에는 조회수 123,692회 및 좋아요 1,635개 개의 좋아요가 있습니다.

Table of Contents

난장이 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독후감 주제에 대한 동영상 보기

여기에서 이 주제에 대한 비디오를 시청하십시오. 주의 깊게 살펴보고 읽고 있는 내용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세요!

d여기에서 [2020수능특강릴레이] 현대소설 전문해설 #13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 조세희 – 난장이 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독후감 주제에 대한 세부정보를 참조하세요

수능특강 현대소설 전문해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조세희 작가!

난장이 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독후감 주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줄거리와 느낀점 – 네이버 블로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어 보면 옛날의 살기 어려웠던. 그 사회를 볼 수 있으며 그 곳에서 살면 노동자들의 힘든 삶을.

+ 여기에 자세히 보기

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5/20/2021

View: 3987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 | YES24 블로그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 책의 제목은 나에게 낯설지 않았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접해 보았던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내가 …

+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Source: m.blog.yes24.com

Date Published: 12/19/2022

View: 9728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줄거리, 감상평 – 피터팬의 소풍

등장인물 김불이: 키 117cm 몸무게 32kg의 신체를 가짐. 이 책의 실질적인 난장이 주인공이며 아내와 3남매(영수, 영호, 영희)를 둔 가장.

+ 여기에 더 보기

Source: lim826bk.tistory.com

Date Published: 6/5/2022

View: 5866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중앙인 독서 프로그램 中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을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시절이었다. 당시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으시던 선생님의 열띤 작품 분석에도 불구 …

+ 여기에 더 보기

Source: book.cau.ac.kr

Date Published: 10/25/2021

View: 1705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 독후감,독서감상문,도서,책을 읽고 …

조세희 :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출판사 : 가람기획 / 출판일 : 1998/6/15 / 쪽수: 424 <현실속에 난장이 고독한 존재로 남아야 하는지..>

+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Source: joungul.co.kr

Date Published: 4/27/2021

View: 4164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조세희) 독후감 (현유진) – 아들 …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난쟁이 연작중의 한 편으로서 이 책의 제목으로 채택 됐다. 이 책에 메인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만 읽고 독후감을 …

+ 여기에 보기

Source: m.cafe.daum.net

Date Published: 10/4/2022

View: 8017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느낀점 및 줄거리 – 앤조이마이라잎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느낀점 및 줄거리 아주아주 옛날에 교실안에 작은 책장에서 발견했던 것이 처음에 이 소설을 마주했을 때입니다.

+ 여기에 표시

Source: jurlyet.tistory.com

Date Published: 9/7/2022

View: 9453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독후감 – 언제나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독후감 1.소개 2.줄거리 1)뫼비우스의 띠 2)칼날 3)우주여행 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영수의 시점 (2)영호의 관점 …

+ 여기에 자세히 보기

Source: mskjh.tistory.com

Date Published: 2/29/2021

View: 4329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줄거리 요약과 현실비판 메시지 및 …

2.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줄거리 요약 3. 책에서 표현한 난장이의 뜻 4. 작가가 전하려는 현실비판 메시지 5. 읽고나서 느낀점 (독후감) …

+ 더 읽기

Source: www.jisikworld.com

Date Published: 11/20/2022

View: 2079

[책]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공 – 조세희; 난쏘공 다시읽기

독후감을 써보겠다고 문장을 읽어 내려가는 내내, 이 조그만 난장이는 30년째 진한 슬픔을 토해낸다. 나는 한 시대의 슬픔이 아니라, 천년의 아픔이었다고 …

+ 여기를 클릭

Source: subit.tistory.com

Date Published: 4/23/2021

View: 8318

주제와 관련된 이미지 난장이 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독후감

주제와 관련된 더 많은 사진을 참조하십시오 [2020수능특강릴레이] 현대소설 전문해설 #13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 조세희. 댓글에서 더 많은 관련 이미지를 보거나 필요한 경우 더 많은 관련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2020수능특강릴레이] 현대소설 전문해설 #13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 조세희
[2020수능특강릴레이] 현대소설 전문해설 #13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 조세희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난장이 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독후감

  • Author: 10분의 문학
  • Views: 조회수 123,692회
  • Likes: 좋아요 1,635개
  • Date Published: 2019. 3. 15.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WRNJeCxBwak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줄거리와 느낀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줄거리와 느낀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줄거리와 느낀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어 보면 옛날의 살기 어려웠던

그 사회를 볼 수 있으며 그 곳에서 살면 노동자들의 힘든 삶을

찾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책이며 70년대의 노동환경을 보여줍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줄거리

난장이인 아버지인 영수, 영호, 영희네 이야기 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 영수 영호 영희네는 어려움을 겪고

극복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소외계층입니다.

작은 기대감 속에서 그들은 살아갈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

하지만 어느날 마을 통장으로 부터 재개발 통지서를 받고

동네 사람들부터 영수까지 난리법석을 치루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철거는 간단하게 끝나버리고

손에는 아파트 딱지 즉 입주권만 남게 되어 버립니다.

하지만 입주권이 있어도 입주자금이 없는 주민들 ..

시에서 주겠다는 보조금 보다 조금의 돈을 더받고

계간꾼들에게 입주권을 팔고마는 주민들 입니다.

난쟁이 아버지도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다가

어느날 병에 걸려서 일을 유지 할 수 없게 됩니다.

어머니는 제봉공장에 영수는 공부무조역으로 일하며

다시끔 생계를 이어가나는 영수네 였습니다.

하지만 아파트의 입주권의 가격이 뛰어 오르고

영수네도 투기업자에게 입주권을 팔아넘깁니다 .

그러나 전세값을 갚으니 남는돈은 한푼도 없고

그리고 영희는 투기업자들을 따라 집을 나갑니다.

그곳에서 숙식생활을 하면서 사무실에서 일합니다.

하지만 영희는 투기업자들의 농간에 의해서

순결을 빼앗기게 되어버리고 절망합니다.

그리고 그대로 투기업자들에게 복수를 감행하죠

투기업자들을 마취시키고 입주권과 돈을 가지고

동사무소로 향하여 신청을 마치고 나옵니다.

가족들을 찾으러 예전에 살던 이웃 아주머니를 찾아와

가족들에 대해서 묻자 아버지가 벽돌공장 굴뚝에서

자살 했음을 알게 되고 분노하는 영희

큰오빠를 찾은 후에 복수할 것을 다짐 합니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줄거리였습니다.

다음으로 느낀점에 대해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느낀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줄거리를 보면 생각이 납니다

1970년대의 어른들은 정말 힘든 시기를 거쳐오셨으며

아이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셨을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렇게 노력해도 못사는 사람들이 나아갈 구멍은

보이지를 않고 꿈과 희망까지 보이지 않는 느낌 입니다.

사회는 발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어려워지고

모두 행복하게 사는 그런 날이 언제쯤 올까요?

생계가 편해지는 그런날을 꿈꾸며 읽어보았습니다.

1970년대에는 회사들의 갑질, 생계도 꾸려가지 못하는

저임금 사태와 열악한 작업 환경, 부당한 노동행위등으로

사회는 발전하지만 고통받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악순환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역설하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는 나아졌다고 하나 요즘은 정말 청년 취업..

청년 취업의 문제가 크고 사회의 이슈가 되네요

이러한 문제들도 빨리 해결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줄거리와 느낀점에 대해서

쓰고 제 생각도 곁들어 작성해보았는데 어떠신가요?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 책의 제목은 나에게 낯설지 않았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접해 보았던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내가 기억하기로는 사회에 대한 부조리를 난쟁이 가족의 이야기 속에 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 때는 시험 준비 때문에 분석하기 급급했기 때문에 이 책의 전체 내용에 대해 제대로 몰랐으며 이 책이 우리에게 무엇을 전해주는지 외우기만 해서 이번에 제대로 읽어보았다.

우선 구성부터 보자면 이 책은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되어있다. ‘옴니버스식 구성’이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독립된 여러 개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방식이다. 이 책은 하나의 주제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이것은 주인공의 변경, 과거와 대과거 그리고 현재의 시제로 바뀌며 이루어진다. 주인공의 변경은 우선 영수, 영호, 그리고 영희로 바뀌고 시제는 과거, 대과거, 현재 의 순으로 바뀐다. 이런 책의 유형을 처음은 아니지만 자주 접해보지 못해서 소설을 읽으면서 내용을 연관 짓는데 어려움을 겪기고 하였다. 하지만 내용에 대해 연관을 지어가며 이야기의 흐름을 찾는 재미도 있었다. 이 책을 피면서 가장먼저 나오는 ‘뫼비우스의 띠’가 나는 흥미로웠다. 책 초반부분에 선생님의 문제를 내면서 나의 흥미를 당겼고 이후에 나오는 사건은 이 책의 내용을 암시해주고 있어서 첫부분부터 지루하지 않고 흥미진진하게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이 책에 담겨있는 사회모습에 대하여 얘기해보도록 하겠다. 이 작품은 한국 근대 사회에 대한 부조리와 여러 가지 모순에 대하여 표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이 써진 시기는 전쟁의 아픔이 잊혀 갈 쯤 우리에게 근대화의 물결이 밀려오고 가난한 3류 국가 이었던 시기이다. 시기가 이러한 만큼 작품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비극적으로 그려내고 그에 대한 사회운동 등의 내용을 담아내기도 한다. 이 작품은 도시 빈민의 궁핍한 생활과 자본주의의 모순 속에서 노동자의 현실적 패배가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장소가 바로 ‘은강’인데 이 지저분한 곳에서 여러 노동자의 고통을 보여주면서 그 당시 저소득 노동자들의 생활모습을 세세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사용자와 이용자의 토론을 하고 영수와 영희의 가족들의 대화 내용을 일치시키는 것에서 사회의 모순을 가정에서의 모습과 연결하여 보여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에서는 계몽적인 인물이 많이 나온다. 이 사회에 잘못 됨을 느끼고 바꾸려고 하는 인물들이다. 나는 이 인물들을 보면서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당시 사회의 부조리는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나가고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의 결말은 좋지 않다. 왜냐하면 빈민층인 난쟁이 가족의 패배로 이 작품의 결말은 장식되어지기 때문이다. 아를 보았을 때 그 당시의 사회는 정말 막막하고 암울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공’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바로 낮은 계급의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가슴 깊은 먹먹함이었다. 시작점이 다르다는 이유로 빈부격차를 겪으면서 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기초적인 생활도 제대로 못하는 그들에게 나는 연민을 느꼈고 빈부격차와 그 사회모순에 대하여 잘 알 수 있었다. 1970년대에 쓰여진 이 소설이지만 지금에 와서도 빈부격차는 심하다. 오히려 그 때의 시대보다 더욱 심해졌다고 할 수도 있겠다. 낙원구 행복동에 사는 사람들, 은강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아직도 우리 사회속에 들어와있다. 이 책의 얘기는 나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도록 만들어 주었고 빈부 격차나 사회 모순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하여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사회에 대한 깊은 생각을 조금 더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줄거리, 감상평

728×90

728×90

등장인물

김불이: 키 117cm 몸무게 32kg의 신체를 가짐. 이 책의 실질적인 난장이 주인공이며 아내와 3남매(영수, 영호, 영희)를 둔 가장. 이 책에서는 소외계층과 도시빈민의 대표적인 인물로 묘사되고, 삶의 희망이 없음을 비관하여 굴뚝에서 뛰어내려 자살함.

김영수: 김불이의 큰아들. 소외계층이지만 어떻게든 가난을 탈출하려 공부도 하고 책도 읽으며 노력하고 사업자들의 부당함과 불합리에 대응해 노조활동까지 하지만 자신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업체 사장을 살해하려다가 사장 동생을 살해해서 사형을 받게 됨.

김영호: 김불이의 둘째 아들.

김영희: 김불이의 삼형제 중 막내딸.

지섭: 대학을 중퇴한 사람으로서 노동운동에 관심이 많고 김불이와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면서 노동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전국의 공장을 전전하며 살아가는 청년.

줄거리

때는 1970년대 서울의 빈민촌이라고 할 수 있는 동네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김불이 가족은 서울시 낙원구 행복동에 살고 있는 도시 소외계층의 가족입니다. 동네이름이 행복동이지만, 이 집의 장남인 영수는 이곳을 지옥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영수의 일가족의 행복동에서의 삶은 매일매일이 삶과의 전쟁이고 생존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다가올 내일이 노력하면 좋아지고 희망이 보이는 삶이 아니라 지배계층에게 이용당하고 항상 패배하는 생활의 연속입니다.

영수의 가족은 대대로 지어오고 살아오면서 손때가 묻은 집에 철거계고장을 받게 됩니다. 이유는 영수의 가족이 살고있는 행복동 일대를 재개발하고 주택개발사업을 한다는 명목이었습니다. 계고장에는 3주 가량의 시간 안에 자신철거 명령이란 내용도 담고 있었습니다. 철거 계고장을 받은 어머니는 무허가 건물 표시가 되이 있는 알루미늄 표찰을 따로 떼어 보관합니다. 이 표찰이 나중에 이 건물을 거래할 수 있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사무소에 동네 사람들과 함께 찾아가지만, 표찰을 증거로 한 집의 권리는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영수 어머니를 비롯한 동네 사람들의 주장이 받아들지지 않자 동사무소 옆에 있는 공고문을 읽습니다. 공고문에는 철거하고 들어설 아파트의 값이 적혀 있는데, 원주민들의 소득으로는 감당이 안되게 터무니없는 높은 가격에 입주가격이 적혀있고, 만약에 입주권을 포기하면 어느정도의 돈을 받을 수 있다고 적혀있습니다. 물론 입주를 포기하는 금액도 말도 안되게 적은 금액이었습니다. 영수는 예전에 정치인들이 이곳에 와서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준다는 유세를 생각합니다. 결국에는 많은 행복동 주민들이 주민들의 필요에 의한 게 아니라, 정치인들이 그들이 필요로한 정치놀음에 놀아난 셈입니다.

더구나 영수의 집에는 전세를 들어온 가족도 있었는데, 당장에 전세금까지 돌려줘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상황이 난처하게 되었지만, 다행이 이웃집 명희네가 전세금을 빌려줍니다. 그런데 명희네가 빌려준 돈에도 안타까운 사연이 있습니다. 이 돈은 명희가 죽을 때 남긴 통장의 돈입니다. 명희는 영수와도 사귀는 사이였습니다. 그렇지만 영수나 명희나 항상 먹을 게 부족했고 그래서 잘 먹지 못해 체구가 작았습니다. 명희는 어려운 살림에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다방 종업원, 고속버스 안내양, 골프장 캐디 같은 직업에 종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명희는 집에 올때마다 배가 불러왔습니다. 눈군가에게 몹쓸짓을 당한 것입니다.

영수는 이런 지옥같은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게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영수의 희망사항일뿐 중학교 3학년을 다니다가 학교를 중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벌이가 좋지 않았고 정신도 온전치 못했으며 많이 늙어서 지금까지 해오던 수도배관이나 잡일로 가정생활을 충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아버지 김불이는 어느날 그의 꿈인 달나라로 향합니다. 김불이의 살아 있을 때 꿈이 달나라에 가는 것이었지만, 희망이 없는 고된 삶의 무게 앞에 스스로 공장 굴뜩에 올라가서 몸을 던져 삶을 마감한 것입니다. 그렇게 영수의 아버지는 평생 고통뿐인 삶을 스스로 끝내게 됩니다.

한편 영호는 형인 영수에 비해 공부보다는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불합리에 바로바로 대응을 하는 성격입니다. 같은 공장에서 근무했음에도 두 형제는 철저하게 격리되어서 일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영호는 부당한 대우에 반발하다가 쫓겨나기 일수였습니다. 공장안에서는 노동자들끼리 모이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기 때문에 형제들뿐만 아니라 노동자들끼리도 같이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10분 뿐인 점심시간, 그리고 이어지는 떨어져서 20분 공차기를 끝내고 바로 작업에 들어가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영호를 비롯한 동료들에게 필요한 것은 먹는 것, 쉴 수 있는 시간, 인간적인 대우를 바랐지만, 사용자측은 희망적인 이야기만 할 뿐 나아지는 게 없었습니다. 형인 영수는 이러한 노동자들의 권리에 관심이 많아 항상 영호한테 자주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또 영수는 책을 많이 읽어서 노동자의 권리에 관한 지식도 많았습니다.

동생 영호는 집을 사려는 사람과 흥정을 합니다. 왜냐하면 될 수 있으면 집을 가급적 비싸게 팔아야 하니까요. 시에서 나오는 보조금으로 살 곳을 구하기는 너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적어도 25만원은 받아야한다고 흥정을 합니다. 그돈으로 명희네한테 빌린 돈도 갚아야 하고 새 삶을 시작할 집을 마련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영호는 아버지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웃집에서 과외선생으로 오는 명문대 중퇴생 지섭이라는 사람과 자주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버지와 지섭은 잘 통하는 것 같았지만, 영호가 듣기에는 자신들과 맞지 않는 대기권 사람들의 이야기와 같았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그럴때마다 “너는 학교에서 죽은 교육을 받았다. 형처럼 책을 읽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영호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영호집은 행복동 철거촌에 검은 승용차를 타고 온 사람하고 25만원에 거래를 합니다. 검은 승용차를 타고 온 사람은 부동산개발업자인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그리고 행복동의 집을 철거하기만 하면 되는데 갑자기 영희가 사라집니다. 영희를 찾아 가족들 모두 이사를 해야하지만 영희는 보이지 않습니다. 철거를 빨리 하라는 지시가 내려지고 폭력적인 강제 철거반원들이 들이 닥치면서 철거가 시작됩니다. 그 과정에서 지섭이 나서게 되고 지섭은 이마에 피를 흘리며 다치게 됩니다. 이에 항의 하기위해 동네 사람들이 동사무소에 몰려가지만 영호는 피곤함에 지쳐 잠을 자게 됩니다. 잠을 자면서 꿈을 꾸게 되는데 꿈속에서 영희를 보게 됩니다. 그 꿈속에서 영희가 폐수 속으로 팬지꽃 두 송이를 던지는 꿈을 꿉니다.

영희는 난장이의 딸이라고 미끼지 않을만큼 아름답고 고운 소녀입니다. 열 일곱 살이이었고 기타치기를 좋아하는 가난하지만 평범한 소녀였습니다. 영희는 영희의 집의 표찰을 산 검은 승용차를 탄 사람의 차에 타고 가족들과 사라집니다. 검은 승용차를 탄 사람은 큰 부동산 업체를 운영하였는데, 사실상의 사업주는 그의 아버지였고 그는 부동산 관련 업무를 처리하며 일을 배우는 중이었습니다. 영희가 그를 볼때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태어날태부터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았고 다양한 선택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또한 성장하면서 더욱 강력한 사회적 힘을 갖게 된 사람이었습니다. 영희는 그에게 몸을 맡기고 참을성 있게 기다립니다. 긴 시간을 같이 하며 그의 금고 비밀번호를 알아내고, 알루미늄 표찰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면서 영희 집의 표찰을 맨 아래에 보관합니다. 나중에 영희가 영희집의 표찰을 찾기 쉽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영희는 남자가 잠든 사이에 정신을 잃게 만드는 약을 묻힌 손수건을 그의 코에 대고 깊은 잠에 빠져들게 만듭니다. 그리고 집의 표찰을 가지고 집에 돌아옵니다. 이어서 아파트에 들어가기 위해 표찰과 계고장, 돈을 가지고 사무소에 들러 관련된 일을 처리합니다. 드디어 영희의 집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영희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영희는 눈물을 쏟아내며 말합니다.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말하는 악당은 죽여버려”라고 악에 받쳐 말합니다.

소설의 말미에 영수의 가족들은 폐수와 공장 연기로 가득한 은강시 만석동(필자가 보기에는 인천으로 추정 됨)이라는 도시에 이주를 합니다. 그곳에서 영수, 영호, 영희는 이런 저런 공장에서 일하게 되고 사업주의 부당한 횡포에 맞서면서 노조를 만들어 회사에 맞서게 됩니다. 맏이인 영수는 노동운동을 하면서 사업주의 사주를 받은 폭력배들에게 구타를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부당함을 지적하고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합니다. 하지만 사업주들은 갖은 방법으로 노조를 탄압하면서 자신들의 권리만 주장합니다. 결국 영수는 사업주를 살해하겠다고 본사를 찾아가 자신의 의지를 들어내 실행을 합니다. 영수는 사업주로 오인한 사업주의 동생을 살해합니다. 그로인해 영수는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소설은 끝이 납니다.

감상평

소설의 서두에 <뫼비우스의 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수학교사는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고 두 개의 답을 제시합니다.

질문: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한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제군은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답1: “얼굴이 더러운 아이는 깨끗한 얼굴의 아이를 보고 자기 얼굴도 깨끗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깨끗한 얼굴을 한 아이는 상대방의 더러운 얼굴을 보고 자기도 더럽다고 생각할 것이다.”

답2: “두 아이는 함께 똑같은 굴뚝을 청소했다. 따라서 한 아이의 얼굴이 깨끗한데 다른 한 아이의 얼굴은 더럽다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교사는 분필을 들고 돌아섰다. 그는 칠판 위에다 ‘뫼비우스의 띠’라고 썻다.

제군이 이미 교과서를 통해서 알고 있는 것이지만, 이것 역시 입학 시험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이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주기 바란다. 면에는 안과 겉이 있다. 예를 들자. 종이는 앞뒤 양면을 갖고 지구는 내부와 외부를 갖는다. 평범한 종이를 길쭉한 직사각형으로 오려서 그 양끝을 붙이면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즉 한쪽 면만 곡면이 된다. 이것이 제군이 교과서를 통해서 잘 알고 있는 뫼비우스의 띠이다. 여기서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곡면을 생각해보자.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수학선생님의 뫼비우스의 띠와 굴뚝을 청소한 두 아이 이야기는 어찌보면 닮아 있습니다. 한 가지 질문에 두 가지 답변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고, 뫼비우스의 띠도 보통 안과 겉이 뚜렷하게 구분이 가능하지만 뫼비우스의 띠는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 소설에서는 난장이로 불리우는 극빈층과 소외계층으로 구분되는 피지배계층과 사용자와 사회적 기득권층으로 대변되는 사람들이 등장해서 이분법적으로 소설의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이것은 두 계층이 어쩌면 공존하기 힘든 이야기일 수 있는데, 같은 하늘아래서 같은 시간에 두 계층이 존재하면서 충돌하고 있습니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난장이들의 희망을 이야기했지만, 결국에 희망을 쫓아 부당함에 사용자들을 대변하는 거인들에게 저항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했지만 안타깝게도 희망은 좌절되면서 이야기가 끝을 맺게 됩니다. 영국의 산업혁명 이전부터 노동자 계급과 사용자들의 갈등은 있어왔고, 산업화 시대에 우리나라도 같은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1970년대 최초로 연재가 된 뒤, 지금까지도 읽혀지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봤습니다. 그 이유는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르고 상황은 많이 개선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 시대와 다른 곳에서 또 다른 난장이가 생기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회적 계급적 차별과 세대 갈등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지금도 문제가 되고있는 비정규직문제와 ‘열정 페이’,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로 기성세대들이 성장하는 세대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부분은 필자가 보기에도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사회가 발전하고 생활여건이 개선되면서 밝은 면이 밝게 비춰지기도 하지만, 그에반해 깊은 어둠의 그림자도 사회 한켠에 자리잡고 동반성장을 저해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어느 계층을 떠나 서로의 공감대가 형성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사실 계층이란 말도 이 책을 읽고 이 글에서 쓰기가 조심스럽습니다.

사람의 이기심과 탐욕으로 자본주의가 발전한다고는 하지만, 서로의 존재가 없을 때는 자신의 부와 명예도 비교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은 어느 한 사람의 주인이 될 수 없듯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세상입니다. 한 세상 살고 보면 짧기 그지 없고 공수래공수거일뿐임을 절감하듯이 모두가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있음을 소중히 여기고, 아픔과 고통을 나눌 줄 알며 우리 주위의 사소한 것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728×90

중앙인 독서 프로그램 中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을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시절이었다. 당시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으시던 선생님의 열띤 작품 분석에도 불구하고 필자에게 부끄럽게도 “난쏘공”은 큰 의미로 와 닿지 않았다. 기껏해야 난쟁이 가족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을 가졌을 뿐이다. 마치 본문 [기계 도시] 편에서 수험생 ‘윤호’가 빈곤을 뜻하는 Poverty를 암기해야 할 시사용어로만 이해했던 것과 같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 이 소설을 다시 읽어보니, 물론 그들의 생활에 완벽히 공감하기는 힘들었지만 그들의 생활이 너무나도 가슴 아팠다. 현실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로 한 줄 한 줄씩 글을 읽어나가는 게 고통스럽기까지 하였으며 철저하게 격리된, 진정한 불행을 보여주는 난쟁이 가족의 삶은 독자들을 반성의 자세에 이르게 한다.

“난쏘공”은 에필로그 포함 총 12편의 단편이 모여 하나의 단행본으로 출간된 조세희의 소설이다. 각각의 단편에서는 난쟁이의 가족을 중심으로 그 주변 인물들과 얽힌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 중 흔히 “난쏘공”하면 대표되는 이야기는 단행본 속의 네 번째 순서에 나오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다. 철거 통지서를 받은 난쟁이의 가족은 살던 집을 지키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입주권을 어떻게든 비싸게 팔아보려고 하다가 한 투기업자에게 25만 원에 팔게 된다. 하지만 난쟁이의 딸 ‘영희’는 집을 나와 그 투기업자에게 순결을 잃게 되고 그의 집에 기거하면서 잡일을 하고 그의 성적 노리개로 이용된다. 결국, 영희는 투기업자 몰래 금고에서 입주권과 돈을 들고나와 입주 절차를 끝내지만,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하고 절규한다.

조세희는 “난쏘공”에서 철저한 환경론적 관점으로 인간 행동의 특성에 접근하고 있다. 인간의 사고방식과 행동은 살아온 환경에 의해 구조화된다는 것이다. (출처: 두산백과.) 이러한 환경의 차이는 도시화 사회에서 인간을 양분하게 되는데 첫 번째가 난쟁이로 대표되는 ‘가지지 못한 자들’, 즉 노동자들이며 두 번째가 거인으로 대표되는 ‘가진 자들’, 다시 말해 사용자들이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난쟁이와 거인의 대립 관계는 지나친 도시화와 산업화로 벌어진 계층 간의 격차를 설명한다. 이 대립 구조는 유산 계급과 무산 계급, 노동자와 자본가, 빈곤과 풍요, 먹이사슬의 피라미드 하층과 상층 등 대립하는 많은 항목에 적용될 수 있다.

작가는 난쟁이와 거인의 관계를 서로가 서로를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본다. 그의 생각은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에서 표현되는데, 그물에 잡힌 고기들을 건져내려고 하였으나 그것들은 사실 가시고기들이었으며, 어부에게 뛰어올라 살갗을 찢어버리는 존재들이었다는 내용이다. 사용자인 어부가 원하는 것은 순종적인 일반 고기들이지, 자신을 공격하는 가시고기들이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가져야 할 권리를 되찾아 오는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이익을 추구하는 사용자는 자신의 이익을 노동자의 권리 추구에 의해 빼앗긴다고 여길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러한 인식 속에서 둘 사이의 갈등은 절대 해결될 수 없다.

이 작품에서는 독자들이 작품에 보다 공감할 수 있게 다양한 기법들이 사용되었는데, 먼저 난쟁이 가족이 사는 ‘낙원구 행복동’과 난쟁이의 본명 ‘金不伊'(김불이. 한자로 직역하면 ‘나는 그가 아니다.’이지만 본문에서는 ‘나는 노비가 아니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출처: 김습습. “난쏘공의 문학성과 현재성”. 문학 표류하는 이들의 섬. 2011)에서는 반어법을 통해 난쟁이와 그의 가족이 처한 비참한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 그들은 ‘낙원구 행복동’에 살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고 난쟁의 이름은 노비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의 삶은 그의 선조들의 삶과 다른 점이 하나도 없다.

또한, 일반적인 사실주의 소설에서는 현실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문제 의식을 드러내지만, “난쏘공”은 오히려 비현실적인 상황을 제시하여 독자들에게 현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한다. 구체적으로, 난장이가 쏘아 올린 쇠공이 직선으로 날아가는 것을 영희가 보는 부분은 환상적인 장면을 통해 절망적인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난쟁이와 그의 가족의 욕구를 내포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난쟁이와 그의 가족은 이러한 불변의 현실을 비현실적인 이상향을 설정해서 벗어나고자 한다. 난쟁이와 지섭은 달나라로 가고 싶어 하고, 영희는 난쟁이들 밖에 없어 아버지가 따가운 시선을 받지 않고 살아도 되는 릴리푸트읍에 가고 싶어 한다. 그들의 현실과는 정반대되는 이상향이며, 심미주의적 관점에서 극대화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장소들이다.

필자가 “난쏘공”에서 흥미롭게 감상한 기법은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에서 노동자 측 대표들과 사용자 측 대표들이 접견해 회담을 나누는 장면이다. 과거 난쟁이 가족이 나눈 대화 내용이 현재 회담과 연결되어 교차편집 형식으로 일종의 복선처럼 작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 책임은 여러분이 져야 돼요.”라고 한 말은 과거 어머니가 아들이 자기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놀린 아이의 집 유리를 깨버린 상황에서 “너희들이 뭘 잘못하면 그 책임은 아버지가 지셔야 된단다.” “큰 다음엔 너희가 한 일에 대한 책임을 너희 스스로 져야 돼.”라고 말했던 장면과 연결된다. 시점의 자유로운 전환으로 교차 편집이 가능한 소설의 특징을 절묘하게 이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계층 간의 격차가 야기하는 문제점은 아직도 잔재해 있다. 여전히 재개발로 도시 빈민들은 거주지에서 쫓겨나고 몇몇 공장 노동자들은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채 고용주의 압박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는 교육을 하지 않는다. 인간자본(human capital. 인적자본. 여기서는 하나의 자본으로 쓰이는 인간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인간자본으로 썼다.)으로 개발되는 학생들은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 국가가 원하는 인재상으로 자신들의 모습을 맞춘다. 대학에서는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학과를 폐지하고 정부 역시 이러한 ‘인간 자본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취업이 잘 되는 이공계 학생들의 비율을 늘리고 취업이 잘되지 않는 인문대학 정원을 줄이려고 한다. 이 상황 속에서, 거인과 난쟁이의 대립은 끝날 수 있을까? 학생들은 난쟁이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에게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중학교 때 이해하지 못했던 “난쏘공”을 지금 와서라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난쏘공”이 제기한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도 해결되지 않는 미제로 남아 있다.

<끝>

참고문헌

우찬제.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中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 대립과 초극의 뫼비우스 환상곡”. 휴머니스트. (2006).

이수형. “한국 문학의 고전”. 네이버케스트

독후감,독서감상문,도서,책을 읽고 느낀점.. [좋은글]

서평/독후감 영화감상 여행일기 홈 > 독후감 > 독후감 독후감 제목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날짜 04-01-17 등록자 하늘 조회수 26146 – edu 조세희 :

출판사 : 가람기획 / 출판일 : 1998/6/15 / 쪽수: 424

처음 이 책을 친구들에게 빌릴 때마다 들었던 소리가 ˝야 이 책 너무 어려워.˝였다. 어쩌면 1980년대 초반에 태어나 1990년대를 살아온 우리들에게 있어서 이 글은 쉽게 이해되어 진다는 게 불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다는 것도 이 책에서 경애가 윤호를 모임에 끌어들이기 위해 ˝10대 공원˝이라는 주제를 택한 것과 같은 이치로 단순히 독후감을 쓰기 위해 이 책을 끌어들였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에서 나는 지금까지 읽었던 책에서 느꼈던 것과 다른 생각을 그리고 이 책들의 주인공의 생각 하나하나를 다른 방향에서 느낄 수 있었다.

달에 우주선을 쏘아야겠다고 하던 난장이의 삶. 그리고 그 아들들과 딸의 삶. 비록 내가 주변에서 늘 접하고 있는 주제는 아니었지만, 이 책 속에서만이라도 나는 그들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소설에서는 계속 시점이 바뀌어 가면서 다른 상황을 서술해 주고 있었다. 처음엔 뫼비우스의 띠라는 이야기로 시작을 했고, 마지막에도 같은 장면, 즉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장면으로 끝난다. 탈무드에 실린 굴뚝 청소 아이 두 명의 이야기와, 뫼비우스 띠의 이야기, 자주 듣던 이야기지만.. 이 소설 내용과 함께 봤을 때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다.

먼저 난쟁이의 큰아들 영수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의 모습은 그의 아버지와는 달랐다. 아버지와는 달리 모든 것을 배움으로써 해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다음은 영호였다. 각박한 공장의 생활. 그들에게 현실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견뎌내야 하는 무거운 짐에 불과했다. 그와 영희 그리고 어머니의 생활, 나도 그 상황에서 버텨낼 수 있었을까? 어머니의 가계부에 쓰여진 기록은, 그들의 생활이 얼마나 최소한계점에서 이어져 나갔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영희. 영희의 생각은 두 오빠들과는 달랐다. 다른 방법으로 현실에 접근해나갔고, 아파트 입주권을 받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애가 그런 선택을 했어야 했다는 것도 비극이 아닐까?

결국 이 글은 영수가 살인을 함으로써 비극적인 결말로 끝이 난다. 영수의 살의는 우발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미 철도 들고, 고생도 많이 해본 공장 동료들이 일제히 울음을 터뜨려, 엉엉 소리내어 우는 현장에 저는 서 있어보았습니다. 웬만한 고생에는 이미 면역이 된 천오백 명이 …˝

그 살의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경영. 나는 과연 사람보다 중요한 게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에 한 드라마에서 들은 얘기였다. 어떤 연구도 사람보다 중요한 건 없고, 한 사람의 생명은 노벨상보다도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 죽은 사장의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개쌔끼, 왜 우리 아버지가 그따위를 생각해야 하는 거지.˝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참담한 현실이었고, 아픈 우리 나라의 기억이었던 것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무엇이었을까?˝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 아마 다른 사람들도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생각을 했으리라. 전체 내용을 보면 처음에 난쟁이 가족과 꼽추가족이 집을 빼앗기는 것부터 시작해서 어려운 사람들의 생활들, 혹은 그들과 반대되는 위치에 있던 사람들의 모습들을 하나하나 그려나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난쟁이는 그의 아들에게 공을 쏘아올린다는 말을 여러 번 했었다. 그의 꿈? 영수에게 말했던 그의 아버지의 꿈은 달나라에 가는 것, 그리고 그 천문대를 지키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하고 또 소박하고, 하지만 아름답고 조용한 소원인 것 같다. 글자 그대로 그런 일은 이뤄질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결국 아버지는 달나라에 가지 못했다.

하지만 내 꿈, 너무나도 현실적인 그 소망들, 난쟁이 가족에 비해서 너무나도 편하게 살면서, 주어진 것만 잘 하면 되는 그런 삶을 살면서도 조금 더 아름다운 꿈을 갖지 못했던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그가 타고 가려던 우주선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아니면 그 우주선으로 얘기되는 그의 희망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쟁이는 단순히 이 책에 나오는 영수 아버지, 영호, 명희의 아버지, 김불이만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그 시대를 힘겹게 살았던 모든 사람들, 그리고, 뿐만 아니라, 지금 나도,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도, 현실의 무게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역시 난쟁이다.

자신 있게 말하지만, 이 세상에 난쟁이가 아닌 사람은 없다. 어릴 때,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는 그가 난쟁이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커가면서.. 현실을 알아간다는 것이 사람들의 생각을 눌러버리고 작은 난쟁이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희망을 잃지는 않았다. 작은 공을 쏘아올린다는 그 희망. 작가는 우리에게 그러한 희망을 한번더 심어주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비극적인 그 시대의 이야기. 어쩌면 지금도 일부에서 그렇게 행해지고 있을 그러한 이야기들이 나에게 너무나도 큰 아픔으로 다가왔다.

번호 제 목 글쓴이 조회수 3287 허삼관 매혈기 edu 3075 3286 구텐베르크의 가면 edu 1206 3285 다윈의 블랙박스 edu 2124 3284 토끼전 edu 4790 3283 푸른 꽃을 가슴에 안고 edu 1270 3282 장영실 edu 4740 3281 제인 에어 edu 6889 3280 좀머씨이야기 edu 5209 3279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edu 26147 3278 누가 인간복제를 두려워하는가 edu 2270 | 118 | 119 | 120 | 121 | 122 | 123 | 124 | 125 | 126 | 127 | 바로가기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51 52 53 54 55 56 57 58 59 60 61 62 63 64 65 66 67 68 69 70 71 72 73 74 75 76 77 78 79 80 81 82 83 84 85 86 87 88 89 90 91 92 93 94 95 96 97 98 99 100 101 102 103 104 105 106 107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 117 118 119 120 121 122 123 124 125 126 127 128 129 130 131 132 133 134 135 136 137 138 139 140 141 142 143 144 145 146 147 148 149 150 151 152 153 154 155 156 157 158 159 160 161 162 163 164 165 166 167 168 169 170 171 172 173 174 175 176 177 178 179 180 181 182 183 184 185 186 187 188 189 190 191 192 193 194 195 196 197 198 199 200 201 202 203 204 205 206 207 208 209 210 211 212 213 214 215 216 217 218 219 220 221 222 223 224 225 226 227 228 229 230 231 232 233 234 235 236 237 238 239 240 241 242 243 244 245 246 247 248 249 250 251 252 253 254 255 256 257 258 259 260 261 262 263 264 265 266 267 268 269 270 271 272 273 274 275 276 277 278 279 280 281 282 283 284 285 286 287 288 289 290 291 292 293 294 295 296 297 298 299 300 301 302 303 304 305 306 307 308 309 310 311 312 313 314 315 316 317 318 319 320 321 322 323 324 325 326 327 328 329 330 331 332 333 334 335 336 337 338 339 340 341 342 343 344 345 346 347 348 349 350 351 352 353 354 355 356 357 358 359 360 361 362 363 364 365 366 367 368 369 370 371 372 373 374 375 376 377 378 379 380 381 382 383 384 385 386 387 388 389 390 391 392 393 394 395 396 397 398 399 400 401 402 403 404 405 406 407 408 409 410 411 412 413 414 415 416 417 418 419 420 421 422 423 424 425 426 427 428 429 430 431 432 433 434 435 436 437 438 439 440 441 442 443 444 445 446 447 448 449 450 451 452 453 454 455 456 457 458 459 460 461 /461 페이지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조세희) 독후감 (현유진)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조세희) 독후감 (현유진)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난쟁이 연작중의 한 편으로서 이 책의 제목으로 채택 됐다. 이 책에 메인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만 읽고 독후감을 쓰려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과 공장 노동자들이다. 그들을 대변하는 난쟁이와 그 부인, 영수, 영호, 영희 세 남매 가족 에게 철거라는 위기가 닥친다. 그들에게 아파트 입주권이 주어지지만 입주권은 입주권 일뿐 아파트에 들어 갈 수 있는 비용이 없었고, 결국 그들은 입주권을 팔아버린다. 그러던 중 집을 나간 영희는 아파트 투기업자 사무실에 취직했다가 그에게 순결을 빼앗긴다. 그 후 영희는 그의 서류 가방에서 아파트 입주권과 돈을 훔친다. 그리고 가족들을 찾아오지만 집은 이미 철거를 당한 뒤였다. 아버지가 벽돌 공장 굴뚝에서 자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영희는 큰오빠인 영수에게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 버리라고 말하면서 끝이 난다.

당시의 배경은 1970년대, 가난한 소외 계층과 공장 근로자들이 힘들었던 시기, 자본가 계급의 일방적인 착취로 인해 불안정한 시기로 이 작품에서도 자본가 계급들이 일방적으로 철거를 시행했고 소외 계층인 주민들을 쫓겨 날 수밖에 없게 됐다. 이 글에서는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지 않은 도시의 재개발 속에서 아픔을 겪고 소외 받는 사람들을 난장이로 표현하고 있는데 여기서 난쟁이는 키가 작다는 뜻과 사회적으로 힘이 없고 소외됐다는 의미인 것 같다. 마지막에 난쟁이 아버지가 굴뚝에서 떨어져 자살을 하지만 아버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늘 그리던 달나라로 떠난 것이 아닐까? 그가 쏘아 올린 공, 즉 희망과 함께 말이다. 난쟁이 소리를 들으며 번번한 직장하나 얻지 못한 채 여러 가지 일을 노력해보지만 가난을 못 벗어나고 자신의 가족을 부양 못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고 자신이 원망스러웠을까? 하지만, 이해는 가지만 여태까지 해왔던 것처럼 가족들과 함께 어려움을 겪고 이겨보려 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다른 사람들에게는 난쟁이 소리를 들어도 그의 가족들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크고 듬직한 존재 엿을 텐데 말이다. 이글을 보는 내내 돈이 없으면 힘도 못 쓰는 현실, 돈이 없으면 사회로부터 소회 받는 현실을 보니 여러 가지로 평소에 내개 가진 것에 대해 불평하는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가지지 못한 사람도 있을텐데 말이다. 지금 현재에도 누군가가 열악한 환경에서 받아야 할 보수를 받지 못하며 일할 것이고 또 누군가가 부당하게 집을 빼앗겨 갈 곳 없이 방황할 것이다. 이제는 그 사람들에게 눈을 돌려야 할 것 같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느낀점 및 줄거리

난쟁이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느낀점 및 줄거리

아주아주 옛날에 교실안에 작은 책장에서 발견했던 것이 처음에 이 소설을 마주했을 때입니다. 당시 책장에서 낡고 낡은 책 중 하나여서 호기심에 꺼내들었는데, 제목이 특이해 읽게되었습니다. 책이 오래되어서 종이가 누렇게 떠 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하도 오래전에 책을 읽어서 인지 명화하게 어떤 이야기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한번 더 읽고 이번 포스팅을 게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기억으로는 가난한 사람들이 이야기였던 것만 기억하고 이외에 것들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되어 읽는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느낌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고 말입니다.

이야기는 난쟁이 가족이 사는 낙원구 행복동에 철거 예고장이 날아들며 시작됩니다. 주인공 영수의 가족은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수도 파이프 수리공으로 일하는 아버지와 인쇄소 제본 공장에서 일하는 어머니, 그리고 공부를 무척 잘했지만, 가정형편으로 일하는 주인공 수와 영호 그리고 막내딸 영희 이렇게 5명의 식구가 영수네 가족입니다. 어느날, 20일 정도의 짧은 기간안에 자진해서 철거하라는 내용으로 예고장을 받고 맙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가족들은 막막하기만 합니다. 동생 영호는 집에서 떠날 수 없다고 무조건 버티기 시작했고, 영희는 계속 울기만 했습니다. 행복동사람들은 형편이 넉넉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주민들은 새 아파트에 들어갈 형편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하나둘씩 항복하고, 입주권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입주권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갔고 가족들은 입주권의 가격이 조금이나마 더 오를 때까지 버텼습니다. 전셋돈 마련이 어려워 애타고 있을 때 난쟁이나 이웃에 사는 명희네 어머니는 명희가 죽고 남긴 통장에 든 돈을 난쟁이네 집 전셋집 빼는데 쓰라고 빌려주었습니다. 영수네는 이 돈을 갚기 위해서라도 조금 더 입주권이 오를 때까지 버티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명희라는 인물은 주인공 영수를 좋아했습니다. 명희는 영수가 공부를 많이 해 큰 회사에 취직하길 바랬었는데, 결국 주인공 영수는 그렇게 되지 못합니다. 명희는 다방 종업원, 캐디, 버스 안내양 등의 직업만 전전하다가 통장에 십구만 원을 남기고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죽어버리고 맙니다. 영수와 동생 영호는 인쇄공장에서 쉴세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인쇄 공장 사장은 불황이라며, 직원들에게 쉬는 시간없이 무자비하게 일을 시킵니다. 하다못한 영수와 영호는 사장에게 가서 힘든 노동 시간에 대해 사장과 협상하려다 그만 공장에서 쫓겨나고 맙니다. 다행히도 입주권이 팔려 난쟁이네 가족은 이십오만 원을 받게 됩니다. 이돈은 빌린돈을 갚고도 돈이 남아 가족들은 성남으로 이사가기로 결정합니다. 이상하게도 그 이후에 아버지와 막내 영희가 집을 나가 보이지 않습니다. 백방으로 수소문하였으나, 찾을 수가 없어 결국 남은 세사람만 이사를 하고 맙니다. 알고보니 영희는 입주권을 산 남자를 따라갔던 것이었는데, 그 젋은 남자를 따라가 비서로 일하며, 입주권을 되찾을 기회를 엿보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영희는 남자를 따라가 좋은 음식을 먹고 남자가 시키는 대로 순하게 말을 잘 들으며 살게 됩니다. 영희는 남자의 금고에서 자신의 집 대문에 달려 있던 표찰을 되찾아 가지고 집에 들어갈 때의 복장으로 도망쳐 나옵니다. 그길로 주택공사로 달려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파트에 입수할 수 있도록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지만, 가족들은 이미 집을 떠난 뒤였습니다. 영희가 병이 몸저 눕게 되었는데 그런 영희를 데리고 신애 아주머니가 자신의 방에 데리고 가 간호를 해줍니다. 신애 아주머니는 영희의 아버지가 굴뚝 속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음을 듣습니다.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기 힘든 가족들은 온갖 어려움을 마주하면서도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해 애를 씁니다. 철거시기에도 이미 철거통지서가 날아들고, 살고 있는 집을 멋대로 부수기도 하는 걸 보면서 가족들은 눈물겨운 삶을 이어나갑니다. 하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처절한 투쟁을 계속합니다. 마지막에 아버지가 벽돌 공장 굴뚝해서 죽은건 꽤나 충격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웃하는 가정교사를 통해 읽었던 책에서와 같이 희망을 찾아 달나라로 떠난 것입니다. 변두리 생활을 하다 달나라를 향해 종일 비행기를 날리고 작은 쇠공을 날리다 추락사하게 된것입니다. 집을 잃고 가정을 잃고 꿈을 잃은 그들의 소외된 삶이 너무나 안타까웠고, 그 옛 시절 근로자들의 아픔과 재계발 뒤에 감추어져 있던 가난한 서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독후감

반응형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독후감

1.소개 2.줄거리 1)뫼비우스의 띠 2)칼날 3)우주여행 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영수의 시점 (2)영호의 관점 (3)영희의 관점 5)육교 위에서 6)궤도 회전 7)기계 도시 8)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9)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10)클라인씨의 병 11)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12)에필로그 3.구성과 문체 4.현실사회와 이상사회 5.인간소외와 가치전도 6.현실 마주하는 난장이의 자세 7.정의에 대한 생각 차이 8.허수아비 춤, 호밀밭의 파수꾼 9.오늘날의 난장이-청계천, 용산참사, 한진중공업 파업, 희망버스 10.난장이의 아픔에 공감하는 일-내 아버지

1.소개

이 책은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조세희 작가가 각종 문예지에 ‘난장이 연작’이라는 개념으로 연재한 단편 소설들을 묶은 것이다. 단편 소설들의 묶음이지만 그것은 집합이 되어 온전한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고 있다. 처음 책을 읽어 나갈 때는 여느 단편집들처럼 개별적으로 독립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몇 개의 단편을 읽어나가면서 이것이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서 점차 중심으로 접근해 들어가는 하나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이 책은 1970년대의 우리 문학을 대표하고 있는 동시에 그 시대를 대표하고 있기도 하다. 각종 문학상을 휩쓴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역시 가장 유명한 것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단편이겠지만, 연작으로 묶인 다른 단편들을 읽으면서 나는 좀 더 온전히 그 난장이의 세계를 이해해 나갈 수 있었다.

이 독후감에서는 책에 실린 순서대로 각 단편의 줄거리를 살펴보고, 이 책의 구성을 점검한 뒤에, 조세희 작가가 이 이야기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과 내가 느낀 점을 이것저것 이야기해볼 것이다.

2.줄거리

1)뫼비우스의 띠

이 단편에서는 두 개의 장면이 교차되어 나온다. 하나는 고교 3학년 마지막 수학 시간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훈시를 하면서 두 개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다. 하나는 굴뚝 청소부에 대한 이야기고, 하나는 뫼비우스의 띠에 대한 이야기다.

또 하나의 장면은 꼽추와 앉은뱅이의 이야기다. 앉은뱅이와 꼽추는 난장이에 마을에 살던 주민이었다. 마을이 재개발 정책에 의해 강제철거 결정이 나자 그들은 거간꾼에게 아파트 입주권을 팔았다. 하지만 얼마 후 입주권의 거래가격이 두 배가 넘게 뛰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들의 입주권을 산 거간꾼을 덮치기로 한다. 그들은 거간꾼의 차를 세우고 그를 죽인 뒤에 어디론가 사라진다.

2)칼날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난장이 마을 근처에 사는 중산층 주부 ‘윤신애’다. 아직 상수도 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시절이라서 주부인 신애는 깊은 밤에만 나오는 물을 받기 위해 언제나 잠이 부족한 상태다. 남편과 신애는 젊은 시절 사회에 대한 꿈이 있던 영혼이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세상과 타협하고 그런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꿈을 잃은 남편은 무기력했고 언제나 신문만 볼 뿐이었다. 신문에 보도되는 내용들은 각종 부패와 고통들이었고, 30년이 지난 지금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녀의 뒷집 가장은 세무서에 다니는 부정부패 공무원이다. 공무원 비리 사건이 터졌지만 그 집은 멀쩡했다. 앞집은 제과회사 선전부 직원이다. 각종 로비가 들어오는 자리라는 것을 그 집 아주머니는 당당히 자랑하고 다녔다. 피곤에 찌든 남편과 짜증을 내는 아이들에 그녀도 조금씩 지쳐간다. 다행히 딸은 세견이 조금이라도 들었는지 수돗가에 나와 있는 그녀의 곁에 앉아 의젓한 말을 꺼낸다. 신애는 낮에 있던 일을 떠올린다. 낮에 그녀는 난장이를 만났다. 난장이는 앞뒷집 아주머니들에게 일을 달라고 사정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난장이를 신뢰하지 않았고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왠지 그 꼴이 보기 싫은 신애는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에게 일을 맡기겠노라고 소리쳤다. 난장이는 수도를 고치는 일을 했다. 그는 신애네 수도를 손봐줬다. 다른 집보다는 몇 시간쯤 더 빨리 물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난장이는 매우 정직한 사람이었고 땀 흘려서 먹고 살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신애는 그런 난장이가 좋았다. “전 아저씨 같은 분이 좋아요. 방금 아저씨와 이웃해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 수도수리점 사장이 신애네 집으로 들이닥쳤다. 주인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대뜸 난장이를 패기 시작했다. 자신의 일감을 빼앗아 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꼴을 보던 신애는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가져다 그를 찔렀다. 다행히 칼은 그를 스쳐지나갔고 그는 황급히 도망갔다. 신애는 이 세상은 난장이에게 안전하지 않다고, 그리고 사실 우리 모두가 난장이라고 생각했다.

3)우주여행

주인공은 난장이 마을 근처에 사는 법관의 아들 윤호다. 아버지가 데려온 지섭은 대학생이었으며 윤호의 가정교사다. 지섭은 윤호의 할아버지의 친구의 손자였고 행색이 매우 초라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일본군을 죽인 사람이었다. 윤호의 집은 꽤 잘 살았다. 누나는 초라한 지섭을 멸시했다. 하지만 윤호는 지섭을 좋아했다. 지섭은 윤호를 빈민촌 난장이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지섭은 그들을 우주인과 그 가족이라고 소개했다. 난장이네 집 마당에는 ‘재개발 사업 구역 및 고지대 건물 철거 지시’라고 적힌 종이가 떨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지섭이 윤호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여 그를 쫓아냈다. 대신 윤호는 고액과외를 시작했다. 그곳에는 온갖 타락한 아이들이 다 모여 있었다. 아이들은 환각제를 마시고, 슬라이드로 포르노를 봤다. 윤호는 거기서 은희를 만났다. 은호는 악마 같은 인규를 따라서 타락의 늪으로 빠져든다. 그런 스스로를 그는 증오했고 또 괴로워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가 책장에 숨겨놓은 총으로 자살을 하기로 결심했다. 마침내 총을 찾았을 때 은희가 집으로 찾아왔다. 그녀를 밀쳐내는 윤호를 알몸의 은희가 껴안았다.

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난장이 가족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가족의 구성원은 아버지, 어머니, 영수, 영호, 영희다.

(1)영수의 시점

영수의 가족에게 세상에서의 생활은 지옥이고 전쟁이었다. 어느 날 철거계고장이 날아왔다. 동사무소 앞에는 철거에 항의하는 사람들과 입주권을 사려는 거간꾼들이 뒤죽박죽으로 섞여있었다. 영호는 흥분하고 영희는 울었지만,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영수는 의외로 담담했다. 옆집에는 어릴 적부터 소꿉친구였던 명희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녀와 영수는 서로 좋아하는 사이였다. 그녀는 영수에게 공장에 들어가 일하지 말고 꼭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영수는 그러겠노라 약속했지만 결국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영희는 산업화의 역사 어딘가에서 비극적으로 죽었다. 나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공장에 들어갔다. 아버지가 다치면서 밑의 동생들도 공장에 들어갔다. 수도수리점 사장에게 얻어맞은 아버지는 몸이 망가졌다. 아버지는 서커스 일을 하려고 했지만 가족들의 반대로 그만둬야 했다. 아버지는 장남인 나를 배에 태우고서는 서커스 일을 하려는 것을 막지 말라고 얘기했다. 아버지는 요즘 지섭이라는 사람이 빌려준 『일만 년 후의 세계』라는 책을 읽었다. 지섭은 이 땅에서 우리가 기대할 것은 없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벽돌공장 굴뚝 위에 올라가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2)영호의 관점

영희와 함께 입주권 시세를 알아보러 갔다가 입주권을 사려는 어느 아주머니를 만났다. 매매계약서의 계약 날짜를 위조하는 수법을 설명하자 그녀는 그건 불법이지 않느냐고 물었다. 영호는 오히려 그녀에게 동사무소에 들어가서 왜 불법적인 일을 하느냐고 따져보라고 되물었다.

형과 나는 파업을 시도했는데 다른 노동자들이 배신을 해버려서 제대로 얘기도 못해보고 잘렸다. 공장끼리 연락이 다 돼서 다른 공장에서도 받아주지 않을 것이다.

영희가 사라졌고 동네 주정뱅이는 외계인이 데려갔다고 했다. 공장에서 일어나는 노동착취, 근로악조건, 빈부격차,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와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 인간 소외, 자동화로 인한 해고, 계몽되어선 안 되는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영호와 영희는 공장에서 쫓겨났다. 그래서 영희가 집을 나갔을까. 박식한 형은 세상을 폭력적이라고 규정했다. 보이지 않는 폭력. 영호는 형인 영수를 이상주의자라고 규정했다.

난장이네 가족은 이십오만 원에 입주권을 팔았다. 지섭의 책을 읽은 아버지는 이상한 소리를 한다. 아버지는 달에 가서 천문대 일을 하겠다고 했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내게 아버지는 오히려 너는 우주의 법칙을 전혀 모른다고 말한다. 학교에서 배웠는데도 모른다고 말한다.

영희를 찾지 못해 가족들은 집을 떠나지 못한다. 지섭은 감옥에 다녀왔다. 그가 사온 고기로 가족들은 최후의 만찬을 갖는다. 철거인들이 담을 부수고 우리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지섭은 철거 지휘자를 때리고 잡혀갔다.

‘나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잠이 나를 눌러왔다. 나는 부서진 문 한 짝을 끌어내 그 위에 엎드렸다. 햇살을 등에 느끼며 나는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우리 식구와 지섭을 제외하고 세계는 모두 이상했다. 나는 햇살 속에서 꿈을 꾸었다. 영희가 팬지꽃 두 송이를 공장 폐수 속에 던져 넣고 있었다.’

(3)영희의 관점

영희는 입주권을 파는 날 우리의 입주권을 산 사내를 따라가서 신문을 스크랩하는 일을 하고 밤에는 그와 섹스를 했다. 그와 영희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이 달랐다. 그의 금고에서 우리의 입주권 서류를 훔쳐 나왔다. 동사무소에 가서 철거확인원을 썼다. 아버지 이름으로. 동사무소 사무장이 내게 와서는 윤신애 아주머니를 찾아가라고 했다. 구청과 주택공사에 갔다가 그녀에게 갔다.

영희가 집을 나간 사이 난장이 아버지는 벽동공장 굴뚝에 떨어져 죽었다.

5)육교 위에서

신애의 동생은 대학 시절에 운동권이었다. 함께 투쟁을 하던 학생들은 점점 변질돼 갔고 동생과 그의 친구는 고립돼 갔다. 학교신문에 기고하려면 그들의 글을 팽개친 주간교수는 친일파의 자손이었고, 정권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었다.

졸업한 뒤 동생의 친구는 신문사에 들어갔고 신문사 간부로 취임한 주간은 그를 회유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쫓기듯 술집에서 새삼 신념을 다짐했지만 결국 그는 주간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신념은 신념이되 살아야 하는 것, 가족과 같은 것들이 그러한 신념을 지킬 수 없는 인질과 같은 것이 되어 있었다.

6)궤도 회전

대입시험에서 인규의 수험번호를 쓴 것이 걸려 엄청나게 맞았지만 아버지는 결국 윤호를 놔줬다. 이사를 갔다. 은강그룹 회장이 사는 동네였다. 옆집에 사는 경애를 만났다. 그녀는 은강그룹 회장의 손녀딸이다. 윤호는 그녀를 따라서 셀 모임이라는 곳에 간다. 윤호는 이 아이들이 십대 노동자에 대한 토론을 핑계로 유희를 즐긴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실제로 토론이 끝나고 아이들은 은밀한 놀이를 이어갔다. 윤호는 아이들 앞에서 경애를 고문하는 흉내를 내면서 그녀의 죄를 묻는다. 은강 방직 사장의 손녀딸과 난장이의 딸 사이의 간격이 진하게 드러났다. 경애는 조롱이 섞인 문체로 할아버지의 묘비명을 써서 윤호에게 보여줬다. ‘윤호는 대학에 들어가는 대로 경애와 경혼 하겠다고 생각했다.’

7)기계 도시

윤호의 시선이다. 은강이라는 도시가 등장하는데 아무래도 인천을 말하는 것 같다. 아버지를 잃은 난장이의 아들딸이 이곳에서 일한다. 은희는 대학생이 되었다. 그녀가 얻은 것은 일시적 자유였다. 은강공단은 노동자들에게 엄청난 악조건의 공간이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도시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관심이 없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자신들에게 해가 되는 일이 일어날 때만 일시적으로 관심을 가질 뿐이다.

노동자교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빈곤 때문에 일을 시작했고, 인간적 대우를 해주는 직장을 희망했으며, 항상 피로에 시달렸고, 노동조합의 간부들을 회사의 앞잡이라고 생각했고, 열심히 일해도 도저히 잘 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근로자가 아니라 사용자를 위해서 일하는 것, 그게 노조다.

난장이의 큰 아들 영수는 새로운 노조를 만들려 했고, 딸은 해고당했다. 하지만 영수는 사용자들의 탄압에 수없는 좌절을 겪어야 했고 결국에는 무너져 내렸다. 난장이의 큰 아들은 좌절하고 윤호에게 은강그룹 회장을 암살 할테니 너희 집에 숨겨달라고 부탁한다.

8)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큰 아들 영수의 관점이다. 난장이 마을을 생각하니 아버지의 죽음이 더 슬프게 다가왔다. 나는 이제 가장이 되었다. 먹이 피라미드에서 우리는 맨 밑의 단계다. ‘삼남매가 똑같이 은강 그룹 계열 회사의 훈련공으로 들어갔다.’ ‘신분에 맞게 우리는 빈민굴에 살았다.’ ‘조립라인 사람들은 나를 또 하나의 보조기계로 보았다. 공장장에게는 노동자 전체가 기계였다.’

영희는 노동운동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다. 나는 회사의 부당대우에 대한 조치를 노조에 요구했다가 뭔가 일이 잘못되어가는 것을 알고는 알아서 공장을 옮겼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최저 생계비를 벌 수 없는 세상이었다. 영수는 또 하나의 난장이 마을을 꿈꾸기 시작했다.

9)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영수는 산업혁명 당시 160여 년 전의 영국, 프랑스와 지금의 은강이 무척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고통이 그려진다.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법률이 있었지만 사용자들을 그런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고 마음대로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나는 날마다 사무실 게시판 앞에 가 섰다. 퇴직, 해고, 출근정리 처분자의 명단이 거기 나붙었다. 나는 게시판 앞에 아버지보다 작은 몸이 되어 서 있고는 했다.’

영수는 노동자들을 계몽시키고 싶어 했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지만 소리 없이 사람들의 의식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노동자 교회 목사는 영수를 사회조사연구회에 끌어들였다.

영희네 공장의 노조지부장이 실종되고 부지부장이 지부장이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영이였다. 영수는 영희의 소개로 영이와 만나게 되고 그녀를 후방 지원한다.

영이가 지부장이 된 노사희의장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녀가 고분고분하리라 기대했던 사용자들의 예상과 달리 영이는 매우 강경하게 나온다. 일단 습관적으로 노동자 대표를 하대하는 말투를 지적하고, 노동자들을 옷핀으로 찌르는 행위를 고발한다. 사용자들은 공장을 돌리기 위해서는 모든 법을 다 지킬 수는 없다고 말한다. 영이는 같은 근로자라고는 하지만 사용자와 노동자의 임금격차가 너무 크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리고 임금 인상과 부당해고자의 복직을 주장한다. 사용자들은 더 힘든 환경에서도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을 예로 들면서 그 주장을 터무니없다고 일축하지만 영이 지부장은 그건 그 사람들의 잘못이라고 한다. 노사양측은 산업구조나 경제이익의 분배에 대한 관념이 완전히 달랐고 협상은 파결되었다.

‘아버지는 사랑을 갖기 않은 사람을 벌하기 위해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믿었다. 나는 그것이 못마땅했었다. 그러나 그 날 밤 나는 나의 생각을 수정하기로 했다. 아버지가 옳았다.

모두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다. 예외란 있을 수 없었다. 은강에서는 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

10)클라인 씨의 병

은강에 장님이 많다는 것은 자신의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묵묵히 순종하는 노동자들과 그런 고난에 시달리는 이웃의 노동자에 무관심한 일반 주민들을 비꼬는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머니는 영수가 조합의 일에 나서는 것이 매우 못마땅하다. 그녀는 아들이 언젠가는 잡혀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들이 그저 묵묵히 공장 일만 하기를 그녀는 바랐다.

‘애꾸눈 노인네 껍질나무 벽에는 지명 피의자 수배 벽보가 붙어 있었다. 내가 아는 죄인들의 이름은 올라와 있지 않았다. 잡범들의 사진 위에 검거 도장이 찍혀 나갔다. 큰 범법자들은 우리와 먼 곳에 있었다.’

영수의 이름이 기업들 간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기업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노동자 교회의 목사였다. 노동자들에게 사회적 의식을 심어주지 때문이었다.

영수는 지섭을 만났다. 행복동 사건 이후 지섭은 여러 고장을 전전하며 가는 곳마다 노조를 만들고는 했다. 지섭을 다시 만난 가족들은 과거의 기억으로 빠져들었다.

작가는 난장이 아버지가 죽기 전 큰 아들 영수를 배에 태우고 나눴던 대화를 들려준다. 작가가, 큰 아들이 꼭꼭 숨겨놨던 이야기다. 아버지는 죽음을 결심한 것을 아들에게 말했다. 약장수를 따라가 앉은뱅이와 꼽추와 함께 일하게 해준다면 죽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영수는 그러시라고 할 수 없었다. 가족 누구도 그런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지섭은 영수를 혼냈다. 네가 할 일은 이론에 매진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노동자와 사용자가 충돌하는 지점에 서있는 일이라고 했다.

‘우리는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데 너무 많은 것을 허비해왔다고 그가 말했다.’

노동자의 편을 들어주는 중간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목사와 과학자 중 과학자가 영수에게 클라인 씨의 병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그것을 보고 영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알겠어요. 이 병에서는 안이 곧 밖이고 밖이 곧 안입니다. 안팎이 없기 때문에 내부를 막았다고 할 수 없고, 여기서는 갇힌다는 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벽만 따라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죠. 따라서 이 세계에서는 갇혔다는 그 자체가 착각이에요.” 영수는 은강그룹 회장을 죽이기 위해 뛰어나갔다.

11)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은강그룹 손자이자, 경애의 오빠인 경훈의 관점이다. 난장이의 큰 아들 영수는 그룹의 임원을 칼로 찔러 재판을 받았다. 경영자들의 아래 세대들은 윗세대와 다르거나 같았다. 유학의 경험이 그들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나름대로의 이유를 들면서 자신들의 체제와 행위를 정당화하는데 능숙했다. 언변이 막힘이 없었다.

지섭의 공판일에 경훈은 법정에 갔다. 노동자들이 경영자를 조롱하는 노래를 경훈의 면전에서 불렀다. 기분이 상한 경훈은 난장이가 매우 나쁜 사람이었을 거라고, 그래서 그 영향으로 그 아들이 숙부를 살해했으리라고 생각했다.

사촌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살인범인데도 그를 매우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경훈은 그를 이해할 수 없다.

지섭이 영수의 증인이 되었다. 영수의 상인행위는 사회적으로 강요된 일이라고 주장했다. 영수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경훈은 그것이 무척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집으로 돌아온 경훈은 노동자들에게 약을 먹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본가들은 자신의 이익을 포기할 생각은 정말 죽어도 안 했다. 그는 가시고기의 악몽을 꿨다.

‘사람들의 사랑이 나를 슬프게 했다.

경훈은 내일 아버지 몰래 정신과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12)에필로그

맨 처음 장인 ‘뫼비우스의 띠’에서처럼 두 개의 장면이 나온다.

우리가 처한 사회적 상황의 책임을 우리는 누구에게 돌려야 하는 걸까? 작가는 ‘그들’이라고 뭉뚱그려 답한다.

‘그들 자신에게는 죽을 때까지 져야 할 책임이 하나도 없다는 게 특징이다. 그들은 모두 그럴 듯한 알리바이를 갖고 있다.’ 우리는 너무 바쁘게 사는 나머지 이 사회의 의도를 읽을 수가 없었다.

꼽추와 앉은뱅이는 약장수를 따라갔지만 어느 날 약장수 사장은 두 사람을 버리고 도망갔다. 영수는 감옥에서 죽었다. 꼽추는 고속도로에서 반딧불로 착각한 탱크로리에 치여 죽는다.

수학 교사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야기를 끝낸다.

‘그들은 우리의 부분적 실태가 폭로되는 것도 어떤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작은 혹성으로 우주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내가 아직 알 수 없는 것은 떠나는 순간에 무엇을 대하게 될까 하는 것뿐이다. 무엇일까? 공동묘지와 같은 침묵일까? 아닐까? 외치는 것은 언제나 죽은 사람뿐일까? 시간이 되었다. 지구에 살든 혹성에 살든 우리의 정신은 언제나 자유다.’

3.구성과 문체

우선 구성에 대해 논하기 전에 나는 이 책의 제목이 나에게 주는 느낌을 생각해 본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제목은 무척 호기심을 갖게 하는 단어의 조합이 아닐 수 없다. 하나하나씩 놓고 보면 그냥 그런 단어들인데 그것들이 모이면 묘한 느낌을 선사한다. 왜 난장이는 공을 쏘았으며, 왜 공은 하필 난장이에 의해서 쏘아졌단 말인가? 이것은 마치 우화의 제목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우리 문학계에서 이런 느낌으로 제목을 작명하는 것은 어쩌면 이 소설이 원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단편소설집은 난장이 마을을 중심으로 그 주변부에서부터 각종 계층들의 관점을 빌려서 천천히 소개해 들어가다가 난장이 가족들의 이야기로 본격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물론 각각의 챕터가 하나의 단편이기 때문에 작가는 개별적인 단편으로 읽어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능하도록 최소한의 겹치는 줄거리를 단서로 끼워두는 배려를 해두었다.

그리고 각 단편을 읽어 나가면서 다른 단편에서 등장하거나 주인공이었던 인물들의 이름이 언급되거나 혹은 등장하는 방법으로 작가는 각 단편을 그런 고리들로 튼튼히 그리고 꽤나 촘촘하게 엮어 놨다.

작가의 문체라고 할 수 있을지 잘은 모르겠지만 인상적이었던 것은 하나의 대화 도중에 갑자기 다른 장면의 대화로 넘어가는 방식으로 장면의 전환을 취함으로써 그 전환을 매우 날카롭게 만드는 글쓰기였다. 나중에는 제법 익숙해져서 그럭저럭 막힘없이 읽어나갈 수 있었는데 처음에는 적응이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나아가 비슷한 개념으로, 하나의 대화에 다른 장면에서의 대화를 오버랩 시키듯이 교차시켜서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방법도 인상적이었다. 이 방법은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에서 노사대표가 회의장에서 나누는 대화와 난장이 가족들이 나누는 대화를 겹쳐서 보여주는 식으로 사용되었는데 그 대화가 가지고 있는 닮음이 독자들에게는 무척이나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4.현실사회와 이상사회

책의 끝에 붙은 해설에 나오는 대로 이 이야기는 대립적 세계관을 전제로 깔고 있다. 비단 부자와 가난한 자의 대립뿐만 아니라 현실과 이상이라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는 각종의 대립들이 이야기의 곳곳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다.

작품 속에서 묘사되는 현실사회는 영수가 말하는 것처럼 전쟁이나 지옥과 같은 것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그들은 무엇 하나 마음대로 선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법과 사회 제도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자랑스럽게 외치고 있지만 그런 선전은 그들에게는 그저 아무 소용 없는 울림일 뿐이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노동의 구조였고, 부가 부를 재생산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인 병폐에 있었다. 누구나 열심히 일하고 아껴 쓰기만 한다면 잘 살 수 있는 사회라는 절대 깨지지 않는 규칙을 정해놓았지만, 애초에 그들은 그 규칙에 동의한 적도 없고, 그 규칙을 만드는 데 참여한 적도 없으며, 그 규칙은 실제로 그렇지도 않았다. 그것은 실제로는 매우 불공평한 규칙이었다. 그 규칙은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이 처하게 되는 불평등은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을 고려하지 않은 평등이라는 것은 그저 허울에 불과할 뿐임을 모두가 알고 있는 동시에 모두가 그것을 부정했다. 심지어는 그런 규칙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까지도 그것을 부정하거나 애써 모른 채 하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이 이야기 속에서 그려지는 현실 사회다. 그런 규칙을 만들어 놓은 사람들은 심지어 그런 규칙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그러면서 가지지 못한 자들이 그런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불법’을 운운했다.

그런 사회는 누군가에게는 닫힌 감옥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쉴 새 없이 일하고 또 일해서 다음 날이 오고 또 와도 변하는 것은 없다. 그저 병들고 망가져가는 몸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닫힌 사회를 만들어 놓은 사람들은 오히려 웃으며 말한다. 어디가 닫혀있느냐고 언제나 열려있는 사회인데 네 생각이 틀렸다고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가지지 못한 자들은 방황한다. 죽지만 않게 최소의 물자로 연명하면서 그들은 지옥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그런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상사회를 꿈꾸게 된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지섭과 난장이 아버지가 말하는 달나라다. 달나라라고 하지만 실제로 하늘에 떠있는 달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랑으로 가득 찬 세상이다. 그들은 현실사회가 지옥이며 전쟁이고 그들에게 고통으로만 다가오는 원인은 그곳에 사랑이 전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랑이 없는 사람들에게 벌을 주고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 그런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사회가 이상사회인 이유는 그것이 절대 도래하지 않거나 혹은 쉽게 도래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둘 중 어떤 것이든 간에 그런 이유로 난장이 아버지는 죽음을 선택했다. 그에게는 그것만이 유일한 선택의 답지였을 것이다.

5.인간소외와 가치전도

이 작품에서 우리가 가장 여실하게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은 산업화사회에서 일어나는 인간소외의 현상이다. 일찍이 마르크스는 산업사회에서 인간이 노동과, 인간과, 생산물로부터 소외되는 현상에 주목했다. 이 책에는 그런 산업사회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은강공단에서 일어하는 노동자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은 열악한 근로조건이다. 소음과, 산업재해와, 환경오염으로부터 노동자들은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건강이나 그 생존을 따로 챙겨줘야 할 필요가 없는 그저 기계와 같은 존재였다. 노동에서 인간의 자율성이나 능동성 혹은 창의성은 전혀 요구되지 않았고 그저 인간은 기계를 위해 존재한다. 기계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서 인간의 존재 역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사실은 인간 생활의 윤택함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기계일진대 이제는 반대로 기계로부터 인간의 존재 가치가 형성되는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노동의 과정으로부터 소외될 뿐 아니라 자신이 만든 생산품으로부터도 소외된다. 그들이 만드는 자동차와, 방직된 천들을 그들은 쉽게 소유할 수 없다. 엄청나게 만든 재화가 그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그들은 그 재화를 거의 얻을 수 없다. 나아가 결국 그들은 인간으로부터 소외된다. 자본가와 사용자 계층은 그들을 철저히 무시하고 기계와 같은 존재로 인식한다. 물론 그런 대우가 대놓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바로 인식에 있고, 나아가 스스로가 그러한 인식을 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그러한 인식이 자연스러워지는 상황에 있다. 그리고 그들은 생계를 위해 살아가면서 점점 그들 서로와도 멀어지게 된다. 삶 자체가 지옥이고 전쟁인 현실에서는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챙겨주거나 그들에게 맘 놓고 기대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은 자신에게도 소외될 것이다. 스스로의 존재가치가 의문스러워지고, 더 이상 이 세계의 불합리를 골똘히 생각하는 자세로는 살아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자본가들과 보이지 않는 손이 만들어놓은 현실에서 근근이 연명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생각을 멈추고 그들이 시키는 일에 묵묵히 순종하는 일이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노동자가 그런 길을 자의든 타의든 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가치의 전도다. ‘인간적인 것’이라는 가치의 개념은 이제 그 의미가 희미해지거나 상당히 혼탁해졌다. 그 원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사람들은 산업화사회를 살아가면서 빠르게 잊어갔다. 워낙 정신이 없는 세상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그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죄를 물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체 사회를 놓고 볼 때 분명히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고 죄는 곳곳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널브러져 있었다. 일찍이 인류가 동경했던 사랑이라는 가치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우리가 굳건히 믿고 있는 가치가 산업화라는 짧은 기간 사이에 그렇게 급속도로 하찮은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 그 사랑이라는 것은 애초에 그다지 강한 가치가 아니었다고, 그저 인류에게 일시적으로 주어졌던 가치였을 뿐이라고, 인류의 성정은 본래가 악한 것이라고, 사회 진화론에 입각하여 어차피 약한 개체들은 도태되는 것은 옳은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가치가 그토록 위대한 힘을 발휘하고 모두의 마음에 진정한 감동으로 다가왔던 것은 그것이 아름다운 동시에 모두에게 진정으로 받아들여지고 모두가 진정으로 동경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이따금 사람보다 기계가 낫다는 생각과 말을 하곤 했다.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대로 그것은 인간의 예측불가능성과 약속을 지키지 않은 성정을 보며 내가 좌절한 바에로 비롯된 행동들이다. 반면에 기계는 언제나 예측이 가능하고, 약간의 안목과 손재주만 있으면 쉽게 다룰 수 있다. 그들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 나는 내가 그런 말을 내뱉으면서도 그 말이 많이 잘못된 것임을, 그리고 결국에는 내가 다시 인간을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안다. 그것은 이런저런 이유를 댈 것도 없이 바로 내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런 답변만이 가능하지 않을까. 인간은 왜 인간을 사랑하느냐는 답변에는 아무래도 인간의 마음속에는 처음부터 인간을 사랑하도록 본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답변이 가장 효과적이고 납득이 가는 답변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종종 더듬어지는 이 시대의 가치전도의 관념들이 이 이야기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시대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했다.

작품 속에서 전도되지 않은 가치를 꿋꿋이 일관하고 있는 존재는 다름 아닌 난장이다. 그는 이야기 속에서 가장 나약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 소중한 가치를 놓지 않았다. 어쩌면 놓을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마저 놓는다는 정말로 그것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포기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로 그가 사랑이라는 가치마저 놓았다면 이야기를 읽는 우리는 그에게서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사실 가장 우리에게 올바른 가치를 전해주는 그 이지만 그의 작품 속의 이름은 ‘김불이(金不伊)’다. 맞는 해석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이름이 사회가 그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철저한 자본의 시대에서 자본을 가지지 못한 그는 어엿한 사람의 대접을 받을 수 없었다. 오히려 가장 소중한 가치를 갖지 못한 마음이 가난한 자들만이 사람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들의 가치가 철저하게 뒤바뀐 세상에서 그는 살아가고 있던 것이다.

6.현실 마주하는 난장이의 자세

작품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하나의 화두가 있다면 앞서 언급된 현실을 마주하는 등장인물들의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각기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관점을 보여줌으로써 과연 우리라면 저러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우리로 하여금 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지는 것 같다.

이 책에는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일단 난장이 가족이 있고, 최고 부유층인 은강그룹 일족들, 법관의 자식들인 윤호와 은희, 그리고 중산층인 윤신애다. 중산층인 윤신애와 법관의 아랫세대인 윤호의 경우에는 제법 현실 사회의 모순을 잘 파악하고 있다. 물론 그들의 이웃이나 또래들은 아직 철저히 사회의 모순을 즐기며 타락하고 있지만 그 와중에서도 그들은 힘겹게나마 영혼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런 균형은 그들에게 모종의 회의감과 고통을 준다. 분명히 모순으로 가득한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이웃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 이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맞이해야 하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그들은 이중의 회의감과 자괴감을 맞본다. 그것은 무력감에서 기인하는 자기혐오일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사회를 바꾸는 토양이 되는 것은 그들의 그런 현실인식과 자괴감과 회의감이 아닐까 한다.

부유층의 경우에는 철저히 현실 세계를 정상적으로 바라본다. 그들의 시선을 보고 있자면 사회학에서 말하는 기능론과 갈등론 중에서 철저히 기능론적 시각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사회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따금 정신없는 사람들에 의해서 위기에 처하기는 하지만 인류는 무사히 그런 위기를 넘겨 왔다. 자본주의는 인류를 윤택하게 만들기 위한 최고의 발명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은 질서정연하고 그런 질서를 어지럽히려는 사람들은 바로 악 그 자체다. 열심히 일하고 아껴 쓰면 잘 살 수 있다고 크게 외치는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더 달라고 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눈에는 그저 게으른 멍청이들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현실이 그저 천국인 것만은 아니다. 날이 갈수록 그런 질서 파괴자들은 기승을 부리고 잠시라고 정신을 놓고 있다가는 그들에 의해서 체제가 전복될 수 있을 것이다. 이래저래 그들도 지옥 같고,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간다. 물론 그 모양새는 많이 다르지만 말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난장이 가족의 모습이다. 이들은 같은 빈민계층이면서도 비교적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일단은 윗세대와 아랫세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윗세대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경우에는 사회적 폭력에 대해서 묵묵히 참아내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이미 약자의 지위를 점유하고 있는 이상 그것에 굳이 맞섰다가는 오히려 더 큰 봉변을 당하다는 것을 그들은 그들의 경험과 선조들의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내색은 하지 않지만 세상이 아직도 계급사회이며 노비제도가 아직 없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어쩌면 순순히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식들만은 자신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한다.

자식들의 경우에는 그런 폭압에 대해서 저항하고 싶어 한다. 철거계고장이 날아왔을 때 부모들은 이상하게 담담했고 영희와 영호는 무척이나 흥분했다. 영수는 그 중간에 있었다. 큰 아들인 영수는 난장이 가족의 윗세대와 아랫세대를 이어주는 다리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결국 그 가족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윗세대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부모의 바람과는 반대로 결국 그 아랫세대 역시도 부모의 세대와 똑같은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저항의 노선을 택하게 되었다.

7.정의에 대한 생각 차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이야기 속에서 작가는 이 사회의 이런 불합리한 모순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 자본주의라는 것이 애초부터 부자들만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고전적 자본주의 경우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을 활발하게 만들어서 풍부해진 재화가 모든 사람들을 풍족하게 만들리라는 계산으로부터 유래했다. 하지만 정작 그런 자본주의에 의해서 만들어진 현실을 그렇지가 못하다. 재화는 풍부하되 그것을 소유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정해져 있는 것이다.

짐작에 불구하지만 나는 작가가 그 근본적인 원인을 사람들 사이에 차이를 보이고 있는 정의관에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다시 말해 사회정의에 대한 사회계층 사이의 이해 차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전체적인 구도를 본다면 수탈의 주체는 자본가와 사용자들이고 그 대상은 난장이 가족들이지만 가만히 읽다보면 그 누구도 자신이 나쁜 짓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런 모습이 잘 드러나는 것은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에서 나오는 노사협의회 장면과,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에서 영수의 재판과정을 지켜보는 경훈의 심리묘사다.

이것은 정당화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이론적 정당화가 다원주의 사회의 상대주의적 경향과 맞물리게 되면서 그런 정당화의 줄기는 걷잡을 수 없이 뻗어나간다. 모두 각자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행위에 임한다. 때문에 그들 한 명, 한 명을 붙잡고 그 책임을 물으려 하면 그들은 그에 대한 꽤 그럴듯한 이유와 변명을 내놓는다. 그 앞에서 한 방에 통쾌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그리하여 작품 속에서 지섭은 영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데 너무 많은 것을 허비해왔다고 그가 말했다.’

이러한 지섭의 생각은 어차피 이론으로 따지게 된다면 그 누구에도 책임을 물을 수 없을 것이라는 계산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때문에 더 이상 이론에 매진하여 그 누가 잘못한 것인지를 밝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뿌리라고 생각되는 것일 일단 움켜잡고 뽑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지섭의 말에 선뜻 동의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가 옳음과 그름을 생각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가 아닐까? 아니면 무엇이 옳은지 앎에도 불구하고 전혀 엉뚱한 답을 고르거나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더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끊임없이 찾아가고 또 그것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 나가려는 노력을 쉬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또 한편으로 나는 지섭의 말에 공감한다. 그것은 이론에 매진하는 우리의 노력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 속의 상황에서는 더욱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이론에 매진할 수 있다.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까지 난장이의 가족들의 고통을 겪지 않고 잘 견뎌줄 수 있다면 가능할 수도 있는 얘기다.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다. 인간은 삶은 영원하지 않고, 계속되는 악조건과 폭압 아래서 그 생명은 쉽게 꽃을 떨굴 수 있다. 아마 이런 의미에서 지섭은 이론에 매진하는 데 많은 것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현재의 나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이성적인 방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시선에서도 드러나듯이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정의에 대한 생각의 차이이며, 이것은 아무래도 이론 이성의 문제인바 이성적 토의와 연구를 통해서 해결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더 심각한 것은 모든 이 사회를 살아가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책임이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러한 책임과 죄가 자신들에게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생각은 ‘궤도 회전’에서 절망감과 죄책감에 눈을 뜬 윤호가 아직 그런 생각에 눈을 뜨지 경애를 보이지 않는 고문 틀에 묶어 고문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기실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보자면 이 이야기를 통해서 작가가 꾀하는 우리의 변화는 우리들 스스로가 난장이인 동시에 또한 이 모든 일의 책임을 나눠 갖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일단 우리 모두가 난장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우리가 난장이 가족과 같은 계층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만들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복지 정책을 좋지 않고 보고, 가난한 자들에 대해서 냉랭한 태도를 갖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는 ‘중산층’, 혹은 ‘부자’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자유주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의 맥시민 이론에 따르면 원초적 상황에서 무지의 장막을 치고 최초의 사회적 조건에 대해 합의하는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최소 수혜자 즉 난장이 가족과 같은 처지에 처할 것을 염두에 두고 그런 합의에 임할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누구든지 난장이 가족과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런 난장이 가족 같은 사람들이라도 제법 행복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제도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들이 자신이 처한 사회적 위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합의에 임할 때 자신이 사회적으로 부자라는 사실 혹은 거의 확실히 부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들은 결코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려 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의 제한된 재화를 자신들이 아닌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예측불가능성이, 자신들이 난장이 가족과 같은 최하계층, 먹이사슬의 가장 밑바닥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들로 하여금 빈민계층에 대한 복지정책에 합의하도록 만들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대부분의 난장이 가족이라는 자기인식을 해야만 하는 이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소유라는 것은 일종의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지위와 결부되게 됨으로써 인간은 자신을 애써 중산층 이상의 계층으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경향으로부터 저항해야 한다는 말이다.

두 번째로 우리가 모두 책임을 나눠 갖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야기 속의 인물들이나 실제로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이나 마찬가지로 이런 사회적 모순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한다면 그 근거나 정당성이 마땅치 않고 어떻게 해서 묻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모두 각자 나름대로의 변명을 한다. 때문에 언젠가는 이론적으로 그 옳음과 그름이 밝혀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의 고통 받는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이 사회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물론 자유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간다. 민주주의 사회는 개인이 아니라 시민이 그 사회의 주인이 되는 사회다. 시민이란 사회와 동떨어진 개인이 아니라 이웃과 그리고 다른 시민과 함께 어울려 그들 전체의 복지와 권리와 의무를 고민하는 주체를 말하는 것이다.

8.허수아비 춤, 호밀밭의 파수꾼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권의 책이 떠올랐다. 우선 첫 번째는 조정래 작가의 『허수아비 춤』이다. 2010년에 나온 책으로서 우리 사회의 경제적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의 비리에 대해서 폭로하고 있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과 그 책은 묘하게 대비가 되는 데, 조정래의 허수아비 춤이 대기업과 정부가 국가경제를 어떻게 가지고 노는지 그 은밀한 치부를 고발하고 있다고 한다면 이 책의 경우에는 산업화로 인한 노동착취와 인간소외를 그리는 동시에 그 원인에 대한 고찰을 시도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좀 더 인간의 본질과 존재에 대한 고민이 가미된 것이 『난장이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는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작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생각났다. 『난장이 쏘아올린 작은 공』의 전체 모두에서 연상된 것은 아니고 가장 마지막에 있는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라는 단편을 읽을 때 유독 그렇게 생각났다. 처음에는 그 두 개가 어떻게 닳아있는지 명확히 짚어낼 수 없었는데 생각해보니 『난장이 쏘아올린 작은 공』의 그 단편의 경우에는 대기업 총수의 아들인 경훈의 시점에서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인 시선을 보여주고 있었고, 『호밀밭의 파수꾼』의 경우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점점 속물이 되어가는 인간들을 바라보면서 그런 사회의 모순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 약한 영혼의 몸부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를 보여주는 것, 그리고 그런 사회에서 인간의 영혼이 병들어 있는 치부를 드러내는 점에서 두 작품의 유사성을 느꼈던 것 같다.

그 단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경훈은 나약한 스스로를 발견하며 아버지 몰래 정신과를 찾아갈 생각을 한다. 이야기 속에서 전형적인 자본가로 나오는 그이지만 사실 그 내면에는 진정한 사랑을 구별할 줄 아는 마음이 있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그는 그런 마음을 부정해야만 한다. 경제학자들이 뭐라고 하던 자신들이 보고 싶은 이론만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이론만을 받아들여 끊임없이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그렇게 해서 마음과 이론의 벽을 치고 자신을 지키지 않으면 바로 잡아먹히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그들이다. 어쩌면 오히려 그들이 이 이야기 속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물론 샐린저의 홀든 콜필드의 경우에는 조금 다른 선택, 즉 그렇게 자신을 지키며 치열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기 보다는 그런 세상을 등지고 이상적인 세계로 나아가려는 선택을 했지만, 그 기본적인 영혼의 모습에 있어서 두 자아는 무척 닮은 점이 있었던 것 같다.

9.오늘날의 난장이-청계천, 용산참사, 한진중공업 파업, 희망버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어느새 이 책을 쓰인 1970년대 보다 훨씬 더 윤택해진 세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써 모종의 우월감을 느끼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다. 분명히 나는 중산층의 아들로 태어나서 별다른 돈 걱정을 하지 않고 자라, 대학교육을 마친 오늘 날의 평범한 청년인 것이다. 나는 난장이인 아버지를 두지도 않았고, 아르바이트가 아닌 이상 생계를 위하여 공장에 취직하려 해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세상은 여전히 난장이들에게 안전하지 않았고, 풍부한 재화는 모든 사람들에게 돌아가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어찌 보면 나는 난장이였다.

독후감을 쓰면서 나는 최근 이슈가 된 삼성 일가의 법정 분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셀 수 없이 많은 돈을 가졌지만 이건희 회장은 웃는 모습이 드물다. 변호사와 법조항과 언론의 보도를 통해 전해지고 또 확산되는 형제간의 다툼 사이에서 사랑의 여지는 없다. 난장이 아버지는 그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봤을까.

한편으로 난장이 가족의 비극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사건도 많이 있다. 쌍용차 파업 사태와, 용산 철거민 참사 사건, 청계천 철거 상인들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나름대로의 이유로 파업을 시도했으나 정부의 물리력을 동원한 진압에 의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물러 나와야 했던 쌍용차,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른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 소수가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에 의해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저항하다가 목숨을 잃기까지 했던 용산참사, 그리고 버려진 운동장으로 강제 이주된 청계천 상인들이 있었다. 무려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건만,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한다는 세월 동안 세상은 별 반 달라진 게 없었다. ‘칼날’에서 신애의 남편이 읽고 있는 신문에 나오는 기사들은 정부와 기업의 부조리에 대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었고, 지금 현재 발간된 신문의 기사라고 해도 크게 무리가 없는 내용일 만큼 세상은 그대로였다. 그래서 조세희 작가의 이 책은 아직까지도 슬픈 호흡을 하며 우리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희망적인 일도, 개선된 점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것은 2011년에서 2012년에 일어난 한진중공업 파업 사건이었다. 경영진의 경영 실패로 인하여 만들어진 기업 손실을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떠넘겼다. 책임이 있는 경영진들은 오히려 성과급을 받았고, 애꿎은 노동자들은 정리 해고가 될 위기에 처했다. 노동자들은 분노했다. 투쟁했다. 물론 습관처럼 탄압이 시작됐다. 회사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기를 원했다. 어떤 노동자들은 그 타협에 응했고 어떤 노동자들은 응하지 않았다. 물러설 수 없는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 누구도 해고되지 않게 해야만 했다. 여성 용접공 김진숙 씨가 85호 크레인 위에 올라가 자신의 생명을 담보고 고공 농성을 시작했다.

마침 다행인 것은 SNS(Social Network Service)라는 새로운 매체가 우리 사회에서 매우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이들의 투쟁이 사회의 각 구성원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힘을 보아서 버스를 대절해서 부산으로 달려갔다. 버스의 숫자는 날이 갈수록 많아졌다. 사람들은 주말이면 습관처럼 버스를 대절해서 부산으로 갔다. 이 버스의 행렬에는 ‘희망버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들은 비폭력적으로 노동자들을, 크레인 위에 올라가 있는 김진숙을 응원했다. 결국 노동자들이 승리했다.

나는 생각한다. 난장이 가족들이 저렇게 승리한 노동자들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면 어땠을까. 세상이 노동자들의 시위를 관심 있게 귀 기울여주고, 노동자들도 이성적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달했다면, 그래서 공장에서 쫓겨나는 일 없이, 기업의 총수를 살해하는 일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한진중공업 파업의 결과를 보면서 나는 그래도 조금은, 삼십년이라는 세월 동안 세상이 약간이나마 나아지긴 했구나 하고 위안을 삼는 것이다.

물론 한편으로는 가슴이 묵직해지는 요소도 있다. 그것은 파업의 과정에서 SNS와 인터넷 매체들을 통해서 그러나는, 국민들 사이에 여전히 분명하게 존재하는 사회정의관의 불일치였다. 물론 파업을 성공했고 노동자들의 승리로 끝났지만 내가 볼 때 그것은 불완전한 승리였다. 그것은 그저 여론이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을 뿐인 것이고, 일시적으로 노동자들과 생각을 같이 했을 뿐인 것이다. 어찌 보면 이것은 또 다른 탄압에 다름없다. 새로운 매체들로 인하여 노동자들의 입장과 주장이 보다 효과적으로 대중에게 전달될 수 있지만 그와 동시에 대중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일치 역시도 명확하게 노정되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주기에 충분한 차이였다. 너와 내가 이만큼 다르다는 것이 그렇게 분명하게 노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얻은 승리.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서로의 이해와 사회정의관에 대한 불일치를 좁혀 나가려는 노력이다. 이를 위해서는 앞서 얘기한 것처럼 부단한 이성적 노력이 필요하다. 인류의 철학이 걸어온 역사가 그렇듯 인류는 이성적 존재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10.난장이의 아픔에 공감하는 일-내 아버지

역시 억측일 수 있겠지만 나는 작가가 단순한 대립적 구도로 노동자는 착한 사람이고 기업가는 나쁜 사람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작가가 다소 변증법적인 사고를 통하여 그 두 개의 존재를 하나의 사회의 다른 모양의 피해자로 바라보고 있다고 해석한다. 다시 말해서 노동자와 자본가 모두 이사회의 씁쓸한 피해자라는 시선을 건네는 작가라서 나는 더욱더 그 안목에 동의하고 감탄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역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난장이고, 빈민계층이며 고통과 농밀함 역시 그들이 훨씬 심하다. 작가는 난장이 아버지가 죽기 전 큰 아들 영수를 배에 태우고 나눴던 대화를 들려준다. 작가가, 큰 아들이 꼭꼭 숨겨놨던 이야기다. 아버지는 죽음을 결심한 것을 아들에게 말했다. 약장수를 따라가 앉은뱅이와 꼽추와 함께 일하게 해준다면 죽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영수는 그러시라고 할 수 없었다. 가족 누구도 그런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내 마음이 찢어질 것처럼 아프다. 그걸 알아야지. 찢어질 것처럼 아파.”

이야기를 통틀어 난장이가 누군가에게 자신의 아픔을 호소하는 유일한 장면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의 대사와 그가 물가의 풀숲에 머리를 박고 주저앉는 장면이 최고로 가슴에 아프게 다가오며 그 고통에 매우 효과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감히 ‘효과적’이라는 단어를 쓰기가 조심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장면이 이 이야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이야기를 읽고 또 회상할 때 내 눈 앞에는 어두운 물가에서 난장이가 아들과 가족과 세상 앞에 마지막으로 절망하고 뭍으로 돌아와 그 어둡고 차가운 땅에 주저앉아 머리를 박고 오열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그 생생함은 내 가슴을 저미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것은 한편으로 좀 이상한 기분이었다. 살아있는 감정, 나는 며칠 지난 뒤에야 그 이유를 찾아냈다.

이따금 곰곰이 그 감정을 곱씹던 나는 내가 이 이야기를 읽은 후 종종 아버지를 떠올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간 장남을 앞에 두고 얘기하는 난장이, 엎드려 오열하는 난장이의 모습 위로 아버지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그리고 그 앞에 앉은 영수에는 나의 모습이 겹쳐졌다. 물론 내 아버지는 난장이가 아니다. 약 165센티미터의 신장을 가진 평범한 한국 중년 남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아버지의 유년 시절은 난장이의 그것과 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지금은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믿을 수도 있을 만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유년 시절의 아버지는 무척 가난한 집의 장남이었다. 공부를 너무 잘해서 인문계 고등학교에 꼭 가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이 도무지 받쳐주질 않아서 결국 농업고등학교에 들어갔다.

물론 아버지와 난장이는 완전히 같지는 않다. 이를테면 아버지는 명희와의 약속을 지킨 영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영수가 명희와의 약속을 지켰다면 그는 공장에 들어가지 않고 학업을 계속해서 살인 따위는 할 필요 없이 지금의 우리 아버지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닮은 점도 있다. 내 아버지는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제법 민감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그런 사회 앞에서 무력했다. 그것이 난장이와 내 아버지가 닮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몇 번인가 보았던 아버지의 그런 고개 숙임에 나는 나도 모르게 이 이야기 속에서 내 아버지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리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나는 영수가 되었다.

이렇게 이 이야기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나의 존재 안에 들어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인 동시에 새로운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진리의 존재가 되었다. 실로 작지 않은 영향력임에 분명하다. 앞으로는 어떤 이야기가 어떤 모양으로 이어지게 될까. 나와 아버지 역시 언제나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그 사랑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내 자손들은 어떨까. 나 역시 달나라의 천문대 일을 꿈꾸게 될까. 글쎄, 일단은 내 안의 난장이가 건강하고 행복하길 우선 바란다.

-끝-

반응형

[책]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공

728×90

반응형

흔히 말하는라는 개념을 우리말로 바꾸면에 해당한다. 어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에는 작품이외의 많은 것들이 작용한다. 하지만, 10년 20년 30년을 지나도 사랑받는이 되는데는 그 작품의 힘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200년도 더지난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읽으며 젊은 날의 방황을 이해하고, 아픔을 승화시키는 것럼, 시간이 지나도 변치않는 진실이에는 담겨 있다. 이미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이 책 역시, 시간이 지나도 변치않는이 담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을 써보겠다는 것은 사실였다. 계속 핑계를 찾고 있었다. 언젠가 머리가 굵어지고, 더 많은 것을 보고나서 다시 이 책을 읽어야한다고 생각해왔지만, 그러지 못했었다. 한동안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었던 이 작은 책을 다시 집어 들기가 너무 무거워서,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핑계꺼리를 찾고 있었다. 매번 책꽂이를 볼 때마다 이런 저런 정신없는 책 사이에서 작은 몸으로 버티고 있는을 볼 때마다, 너무 안쓰러워서 애써 외면해오고 있었다. 그러다 100만부 인쇄 소식에 맞추어 다시금을 펼쳐보았다. 독후감을 써보겠다고 문장을 읽어 내려가는 내내, 이는 30년째을 토해낸다.고 난장이는 말하고 있다.

오백년 동안 지은 집을 허물었습니다.

그 아비의 아비도 노비였으며, 그는 오랜 세월 이어져온 노비 집안의 후손이다. 이제껏 그의 집안은 상속, 매매, 기증, 공축의 대상이었고, 노비 자신의 소유나 삶은 인정되지 않았다. 하지만,노비문서가 없어진 지금도 그는 태어나면서속에서, 사회로부터받았다. 그의했다. 언제나 주변에 머무르며 방치당하고, 탄압받았다. 정직하게 살려했으나, 일한만큼 대우 받지 못했다. 최소한의 의식주를 가지려 했으나 거인의 그늘에, 아니 삶의 의미를 잃고, 죽음을 선택했다. 어쩌면 난장이 가족의 작은 꿈은 자신의 집에서 가족끼리 모여서을 한 끼 하는 것에 불과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출생부터 달랐다. 나의 첫 호흡은 상처 난 곳에 산을 흘려 넣는 아픔이었지만

그의 첫 호흡은 편안하고 달콤한 것이었다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버려.

그러나,, 난장이의 한과 가난의 굴레는 그의 3명의 아이들에게 계속된다.특별한 기술이 없는 그들은 제일 낮은 계급에 속했으며, 부당한 노동환경 속에서 그들의은 서서히 말라가고, 현실에 좌절한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여도 생계를 꾸려나가기는 더 힘들어지고,. 또, 열악한 작업 환경 속에서 가진 자의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는다. 결국 영수는 사람을 죽이고 법정에 선다. 은강 그룹의 회장의 노동자 억압을 해결하기 위해 죽였다는, 부정한 사회를 바로 잡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논리를 펴나가지만, 영수는 사형을 선고받는다. 영희는 아파트 입주권을 되찾기 위해 거인을 따라가지만 순결을 빼앗긴다.이 그 사람과 그의 자식들에게 평생 벗어날 수 없는가 되어 삶을 옥죄고, 정당한 권리를 빼앗고, 사람으로서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것들조차 포기하게 만든다. 버려진 땅에 모여들어, 그저 한 가족의 집을 가지려는 소박한 소망마저 짓밟아져야 하는가. 온 가족이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해도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것은 왜일까.으로 걸어 나오는들의 슬픔에 가슴이 아린다.

아버지의 몸이 작았다고 생명의 양까지 작았을 리는 없다

누군가는 소설 ‘난쏘공’을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 고도성장을 추구하던 70년대 대한민국의 한 단면을 이야기 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쩔 수 없었던 한 시대의 슬픔과 소외였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 가진 것이 없다고, 신체적으로 부족하다고, 사회적 지위가 낮다하여도이고,. 오히려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는 난장이의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가난과 슬픔이 아프게 어우러져 있다.

90년대 후반 우리는를 경험하였다. 영세 사업자는 도산했고, 노동자는 평생을 일해 온 직장에서 거리로 쫓겨났다. 거리에는 수많은 노숙자들이 생겨났고, 청년들은 일하지 못했다. 겨우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경제위기를 핑계로 고된 노동과 부당한 임금을 강요당했고, 그것을 당연히 받아 들였다. 하지만, 그 시기에 자본은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고금리로 부를 불렸고, 수많은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과 고된 노동을 강요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이후 막대한 외자의 유입으로 대한민국 기업들은을 경험한다. 기업의 가치는 5배 10배로 뛰었고 이는 주식시장으로 이어져 많은 부자들을 양산해냈다. 그러나, IMF가 끝나고, 기업 경영 환경이 개선되었지만, 경제 상황과는 상관없이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노동자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한번 줄어들은 임금은 다시 오르지 않았고, 일자리도 늘지 않았다. 회사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고된 노동을 강요받았고, 졸라맨 허리띠를 풀지 못하고 있다.

삶은 언제나 전쟁이다.그러나 우리는 그 전쟁에서 패배만 한다

그 세상 사람들은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자식을 키운다. 비도 사랑으로 내리고 사랑으로 평형을 이루고 사랑으로 바람을 불러 작은 미나리아재비꽃줄기에까지 머물게 한다

728×90

반응형

공유하기 글 요소

뉴스를 보다 보면을 자주 접한다. 2만원 때문에 같이 지내던 16살 여학생을 죽인 노숙자, 의료보험법 개정으로 병원에 가지 못하게 된 기초수급자 할아버지의 자살과 같은 사건은 결코 지난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순간도 일자리를 잃은 장애인들이 난간에서 뛰어내리고, 철거촌의 이웃들은 끌려나가고 있다.결국 지금과연.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자식을 키우고, 사랑으로 평형을 이루고 순수를 지키며 살 수 있는 세상. 그 세상을 향해 난장이는 끊임없이 공을 쏘았다.후원회의 리플릿에 이런 글귀가 있다.모두가 조금만 덜 가지려고 노력한다면, 난장이에게를 줄 수 있지 않을까,떠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33만의 이주노동자와 200만의 장애인, 그리고난장이가 쏘아올린 12개의 이야기들을 듣다 보니, 어느새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내 가슴에 박혀버렸다.

키워드에 대한 정보 난장이 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독후감

다음은 Bing에서 난장이 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독후감 주제에 대한 검색 결과입니다. 필요한 경우 더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의 다양한 출처에서 편집되었습니다. 이 기사가 유용했기를 바랍니다.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2020수능특강릴레이] 현대소설 전문해설 #13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 조세희

[2020수능특강릴레이] #현대소설 #전문해설 ##13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 #조세희


YouTube에서 난장이 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독후감 주제의 다른 동영상 보기

주제에 대한 기사를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수능특강릴레이] 현대소설 전문해설 #13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 조세희 | 난장이 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독후감,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

See also  눈썹 문신 잘하는 병원 | 반영구 샵과 병원? 여러분은 어디로 가시나요? 상위 114개 베스트 답변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